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15
115.
“…난리 났네.”
하늘에서는 불비가 떨어지고, 수면에는 화염이 파도와 함께 이글거렸다.
거기에 회오리가 만드는 풍랑은 요란한 바람 소리를 내며 귓가를 어지럽혔다.
아무리 이능이 작용했다고는 하나, 현실의 풍경이 아닌 것 같은 그 참상 속에서 나는 그저 수면을 밟고 전진했다.
“우어어어어-”
심해처럼 깊고도 낮은 레비아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마어마한 몸이 만들어 내는 그 성량은 공기의 떨림을 귀가 아닌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전황은 레비아탄에게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화륵!
두 마리의 화마가 이끄는 미카엘의 불병거가 허공에 불의 궤적을 새긴다.
불병거는 마치 유성처럼 신속하고도 과감하게 레비아탄의 몸 위를 지나갔다.
그 위에 새겨지는 것은 선명한 화상 자국.
불병거가 지나간 자리에는 진한 화염만이 남아, 극히 일부분이지만 두꺼운 레비아탄의 가죽을 천천히 녹이고 있었다.
“호오…”
저 불병거는 그저 이동수단인 줄 알았는데.
상대가 레비아탄과 같은 초대형 괴이만 아니었다면, 그저 밟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위력을 낼 수 있는 신기인 듯 보였다.
하지만 그에 비해 레비아탄은 그 불병거를 상대로 효과적인 수단이 딱히 없었다.
놈이 내뱉는 화염이나 지느러미는 불병거의 속도에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래서일까.
“……”
전장에 은근슬쩍 발을 디딘 나를 먼저 발견한 것은, 레비아탄에 타고 있던 괴주였다.
놈의 의문스러운 시선이 잠시 나를 향한다.
어떻게 바다 위에 서 있는 건지, 그리고 치우는 어디 간 건지.
묻고 싶은 게 참 많아 보이는 눈빛이었으나, 피차 그걸 물어보고 답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괴주는 나를 노려보다가 금방 그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놈은,
“음?”
자신의 품속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왕관을 꺼냈다.
이윽고 놈의 입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거리가 너무 멀어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괴주가 들고 있는 왕관을 감싼 빛이 선명히 보였다.
검은색.
신기가 아닌, 귀물의 일종.
뭔가 수를 쓰려는 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한 찰나, 놈은 그것을 레비아탄의 머리 위에 박았다.
그러자,
“우어어어어어!”
바다에 떠 있던 그 거대 괴수는 공간을 뒤흔드는 울음소리와 함께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킬로미터 단위의 육중한 몸이 해수면을 뒤흔든다.
이에 거대한 해일이 사방으로 몰아쳤고, 바닷물은 하늘로 솟구치며 쏟아지던 불비마저 잠잠하게 했다.
그렇게 얼마 후.
발광하던 레비아탄이 잠잠해지더니, 놈은 어느새 괴상한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멀쩡하던 몸에서 머리가 자라났다.
원래 있던 것까지 합하면 전부 7개의 머리.
그 중 셋은 붉은 용과 같았지만, 나머지 셋은 키메라처럼 다른 맹수들을 적당히 섞어 놓은 모습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묵시록의 전승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저건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거 같은데.
“…뭐여, 저게.”
“묵시록의 용, 그리고 멸망의 첫째 짐승입니다.”
갑자기 내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인지, 불병거를 탄 미카엘이 바로 근처까지 와 있었다.
용과 짐승이라.
묵시록에서는 말세에 사탄을 상징하는 붉은 용이 두 마리의 짐승을 부른다고 한다.
그 중 둘째 짐승은 짐승의 인을 새기는 거짓 선지자를 상징하는 존재로, 괴주 본인이 그 전승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남은 전승은 첫째 짐승의 것일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둘이 섞인 거 같은데요?”
저건 레비아탄에, 첫째 짐승과 용의 머리가 뒤섞인 미묘한 모습이었다.
미카엘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승의 재현이 불완전하기 때문일 터. 하지만…이사카르 지파 놈들이 여기까지 도달했을 줄은…”
미카엘이 그렇게 한탄하는 사이.
나는 속으로 첫째 짐승의 전승을 떠올렸다.
묵시록에 기록된 놈의 권능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되었더라도 그 상처를 낫게 한다는 것.
쉽게 말해 재생과 불사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인검에는 불사를 끊는 자라는, 모든 종류의 재생과 불사 특성을 무시하는 효과가 있었으니.
그리고 두 번째는 용에게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긴다는 능력.
그건 교회의 전승을 부정하는 능력으로, 이 역시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 마지막 세 번째는 성도가 아닌 자들을 지배하는 능력이었다.
지배라.
말이 모호하긴 하지만, 정신 지배 같은 형식이라면 그것도 나에게 통하지는 않을 텐데.
“방어는 완벽하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카아아아아!”
레비아탄에게 새로 생긴 머리인 맹수의 형상을 한 머리가 사납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미카엘이 바다에 빠졌다.
저 짐승에 의해 교회의 전승이 부정되며, 그가 타고 있던 불병거가 소멸했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세요?”
“……”
그는 분노에 눈썹을 꿈틀거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물속에서 균형을 잡았다.
수영에도 나름의 소양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미카엘은 수면에 멀쩡히 서 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묻고 싶었습니다만, 그 전승은 도대체…”
“교회 쪽은 아닙니다. 나가라고 아시려나?”
물 위를 걷는 능력은 교회에서는 최상급의 전승인 성자의 전승이다.
미카엘은 그 점이 걸려 물어본 듯싶었지만.
“또 뱀입니까.”
내 대답에 금방 흥미가 식은 듯 그는 고개만 한번 끄덕였다.
“그보다 이제 어쩔 생각이세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반쯤은 떠보는 질문이었다.
교회의 전승을 부정당한 그가 이제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던 탓이었다.
다른 퇴마사라면 모를까.
90 레벨이 넘는 한국 교회의 3인자라면 여기서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예상대로.
“강 경감님이 상관하실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최후 승리는 주님의 것이니.”
미카엘은 담담하게 말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지만, 역시나 비장의 수가 남아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 교회의 전승을 부정당한 거 아닙니까?”
“저 짐승의 권능이 미치는 것은 교회에 속한 성도의 전승뿐. 감히 땅을 딛고 선 짐승 따위가 하늘에 속한 전승까지 부정할 리 있겠습니까.”
즉 짐승의 능력이라고 해도 교회의 전승 전부를 부정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늘의 전승이라.
그럼 역시 떠오르는 건 성자의 전승이었다.
그 말은 미카엘이 그 성자의 전승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가?
“성배나 롱기누스라도 갖고 계시나?”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레비아탄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몸 여기저기가 꿈틀거리며 기괴한 변화를 지속하고 있었지만.
새로 생긴 머리의 시선이 선명하게 빛나는 것이 곧 놈의 변신도 끝날 것으로 보였다.
곧 공격이 시작된다는 이야기.
이에 미카엘은 싱긋 웃으며 자신의 품속에 손을 넣었다.
거기서 꺼낸 것은 새하얀 깃털이었다.
수면 아래에 있었음에도 전혀 젖어있지 않은 그것은 찬란한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레전더리 아이템을 또 갖고 있었나.
“비록 성자의 전승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역시 하늘에 속한 것. 이제 사탄과 짐승은 무저쟁에 떨어질 것입니다.”
미카엘이 오만하게 말했다.
나는 그가 든 깃털의 이름을 확인했다.
“하…”
그 이름을 확인한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어쩐지 자신만만하더라니.
미카엘.
이 남자의 세례명이기도 한 그것은 묵시록에 기록된, 사탄의 군대와 맞서 싸워 이겼다는 대천사의 이름이었다.
성경과 전승 속에서 끊임없이 사탄의 천적으로 등장하는 존재로.
사탄을 상징하는 붉은 용과 뒤섞인 불완전한 짐승에게는, 생각할 것도 없이 지극히 위험한 전승의 주인공이다.
“아버지의 군대가 이곳에 있나니.”
그리고 그 대천사의 전승이 이 자리에서 재현되었다.
그의 중얼거림과 함께 미카엘의 등 뒤로 거대한 흰 날개가 펼쳐졌다.
물속에 잠겨 있던 그의 몸이 하늘로 솟구친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 위에 당도한 그의 손에 빛나는 검이 들린다.
“이거…”
나는 그걸 보고 곧바로 레비아탄에게 달려갔다.
미카엘의 권능은 허명이 아니었다.
이미 해가 저문 지는 오래 됐지만, 미카엘은 마치 태양처럼 빛나며 주변을 대낮처럼 환히 밝혔다.
또 그 아래에 선 변화를 마친 레비아탄은 사납게 울부짖으며 자신의 권능을 흩뿌렸지만.
그중 어느 하나도 하늘에 선 미카엘을 흔들지 못했다.
인간을 지배하는 권능은, 대천사에게는 절대 닿지 못하는 것이었다.
“……”
한편, 레비아탄의 울부짖음을 보며 미카엘은 그저 자신의 검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늘을 뒤덮듯, 수많은 무기가 그곳에 나타났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영력은 농밀하다 못해 초월적인 수준.
그리고 그 무기들은 각각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들려, 레비아탄을 조준했다.
저건…천사의 군대인가.
“못 버티겠는데?”
나는 그걸 본 순간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레비아탄은 저걸로 끝이었다.
아무리 거대한 몸을 지녔다고 해도, 저 대천사의 전승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일 테니.
“주님이 널 심판하시리라.”
그 순간 미카엘이 치켜들었던 검을 아래로 내렸다.
그 진격 신호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무기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크아아아!”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레비아탄의 거체를 유린했다.
레비아탄의 일곱 머리가 고통에 울부짖었다.
순식간에 놈의 거대한 신체가 찢기며 고깃덩이로 변해간다.
그리고 나는 그걸 보면서 필사적으로 아직 남아있는 레비아탄의 몸을 타고, 그 머리를 향해 달려갔다.
레비아탄의 원래 머리인 악어 머리와 붉은 용의 머리는 이미 잘려 나간 지 오래였다.
그나마 재생 능력을 가진 맹수의 머리 셋이 버티고는 있었지만.
천사들의 맹공을 보니, 그조차도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았다.
“커어어-”
그리고 역시나.
내가 막 목덜미에 도달했을 때, 맹수 머리 하나가 더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흔적도 없이 잘려나간 그것은 더 이상 재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둘.
“안 좋은데.”
나는 입술을 깨물고 가장 가까운 머리로 달렸다.
이미 반 이상 잘려나간 사자의 머리.
하지만 다행히도 놈은 열심히 재생하며 몇 초를 더 버텼고.
촤악!
마침내 죽기 직전, 얌전히 내 검에 잘려 나갔다.
거대한 사자의 머리가 바닷속으로 추락했다.
“후…”
이걸로 끝인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다른 머리가 아직 남아있었다.
표범의 형상을 한 그것은 이제 막 천사들에 의해 분쇄되어 잘려나가고 있었다.
이러면…계산이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그런 찜찜한 생각을 하는 사이, 남아있던 레비아탄의 몸이 기울었다.
“……”
나는 서둘러 레비아탄의 몸 위에서 수면으로 뛰어내렸다.
그 직후.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모든 머리를 잃은 레비아탄은 그대로 쓰러져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미카엘은 고고한 시선으로 하늘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괴주가 레비아탄과 함께 쓰러진 후.
나는 미카엘의 차를 타고 다시 파출소로 돌아왔다.
“아닙니다. 수고라니, 성도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일 뿐. 그럼 다음에 뵙지요.”
그렇게 말하며 미카엘의 차는 다시 움직였다.
이걸로 한 건 끝난 건가.
나는 반짝이는 퀘스트 버튼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보상은 뭘 주려나.
그런 의문도 문득 스쳐 갔지만, 일단은 보고가 먼저였다.
“저 왔습니다.”
시간은 벌써 오후 9시가 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파출소 사무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무실에 있는 것은 당연히 서인나 팀장.
거기에 최은영의 모습도 보였다.
둘은 사무실로 돌아온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와. 일은 잘 끝났니?”
나는 괴주와 관련된 일을 서인나에게 보고했다.
서인나는 이무기가 서울대공원에 있었다는 부분에서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괴주와 미카엘의 싸움에서는 헛웃음까지 터뜨렸다.
“괴주가 레비아탄을 지배하고 있었고, 미카엘은 대천사의 전승까지 사용했어? 내 생각보다도 일이 컸네.”
“그야 그랬죠.”
본질적으로 보면 크게 다를 건 없었다만 스케일 하나는 컸다.
하늘과 바다를 뒤덮는 불이나 빛 같은 건, 이세계에서도 흔하게 볼 수는 없는 풍경이었으니.
“그럼 괴주는 확실히 처리한 거야?”
“교회에서 직접 데려갔습니다.”
“교회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괴주는 천사들이 레비아탄을 토막 내는 와중에도 살아있었다.
괴이가 없으면 무력하다는 점 때문인지, 미카엘이 의도적으로 그를 살린 것이었다.
“그럼 걱정할 건 없겠네. 수고했어. 피곤할 텐데 어서 퇴근해. 은영이 너도.”
서인나의 말에 최은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서인나에게 물었다.
“팀장님은 안 가세요?”
“당연히 나도 가고 싶지. 나라고 좋아서 아직까지 여기 있는 줄 아니?”
서인나는 자신이 처리하던 서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류가 아직 한 뭉텅이가 남아 있는 걸 보면 아직 일이 끝난 건 아닌 것 같다.
“내일 하시지.”
“내일은…내일의 일이 있잖니.”
“……”
서인나는 풀이 죽은 말투로 말했다.
그 슬픈 현실에 할 말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서인나를 남겨두고 최은영과 나는 파출소를 나왔다.
다음날.
파출소의 내 책상 앞.
“분명히 어제 얻었던 게…”
나는 그곳에 앉아 어제 얻었던 보상을 살펴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