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16
116.
“흠…”
나는 인검의 설명 창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비아탄.
정확히는 레비아탄에게서 생겨난 짐승의 머리를 베어내고 인검에 추가된 스킬이, 다소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현재 새겨진 괴물 – 라이칸스로프, 나가, 올고이 호르호이, 치우, 비틀린 짐승
– 비틀린 전승의 흔적 : 하나의 존재에 깃든 또 다른 전승을 개화하여 고유 스킬을 변경한다. 사용 시 소모됨.
괴주가 레비아탄에게서 파생된 전승을 억지로 발현했기 때문일까.
인검에 새겨진 괴물은 레비아탄이 아닌 비틀린 짐승이라는 이름이었고.
그 스킬 효과 또한 전혀 이질적이었다.
또 다른 전승의 개화라.
즉 여러 종류의 전승을 가진 괴이에 한해, 중심이 되는 전승이 아닌 또 다른 측면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말일까.
“그럼…”
시험삼아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 그 스킬은 나가의 스킬이나 라이칸스로프, 치우의 스킬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먼저 나가의 스킬에는 굳이 이걸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내 인검에 새겨진 나가는 캄보디아의 주신급 나가다.
그러니 인도 신화나 불교 등, 다른 전승 속의 나가의 일면이 개화한들.
그 격이 주신에 미치지는 못할 테니, 오히려 스킬의 수준은 떨어지는 셈이었다.
그리고 라이칸스로프 역시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 등, 다른 전승이 존재하지만.
이 역시 저주받은 대상이나 악역으로 등장하는 등, 그리 주목할 것은 되지 못한다.
그러니 그나마 격이 높다고 할 만한 건 치우의 전승이다.
하지만.
“무투 계열은 별로 쓸데가 없는데.”
치우가 가진 최상급의 전승인 군신의 전승은 나에게 별 필요가 없었다.
결국 당장은 사용하기 애매한 상황.
그렇다면…일단은 그냥 아껴두는 편이 좋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으로 넘어갔다.
다음은, 이번 메인 퀘스트의 완료 보상이었다.
“이건 또 뭐야.”
내가 메인 퀘스트를 완료하자 아이템 창에 작은 스크롤이 추가되었다.
아이템의 이름은 퀘스트 스크롤.
그 설명을 읽어보니, 유용한 퀘스트를 준단다.
퀘스트를 깼더니 보상으로 퀘스트를 준다고?
뭔가 속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곧바로 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러자 정말로 눈앞에 퀘스트 하나가 새롭게 나타났다.
– 선도성모의 신수인 상서로운 백여우의 꼬리를 모아 등선에 이르게 하기.
– 3개의 꼬리를 모을 때마다 추가 능력 개방
– 현재 요물화 개방 진행 중. 진행도 (2/3)
그건 구미호, 즉 켕켕이에 관련된 퀘스트였다.
선도성모라.
자료를 찾아보니 그 이름은 신라의 모신이자 신선으로,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의 어머니라는 기록도 있는 여신이었다.
그런데 그 켕켕이가 선도성모의 신수라니.
게다가 꼬리를 다 모으면 등선에 이른단다.
잠깐 구미호도 신선이 될 수 있는 건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구미호의 설화 중에는 유성신이라고 불리는, 구미호가 신격을 갖는 전승도 있었다.
잘만 키우면…정말로 켕켕이가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
이럴 줄 알았으면 먹이나 잘 챙겨줄 걸 그랬나.
“음…좀 소홀하기는 했지.”
구미호의 꼬리를 늘리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혼백이다.
내 경우에는 죽은 마인의 영혼을 추출해서 그걸 먹이로 주는 거지만.
최근에는 강한 마인을 죽인 적이 별로 없어 한동안 먹이를 주지 못했다.
그래서 이 퀘스트를 준 건가?
생각해보니 켕켕이 자체도 메인 퀘스트의 보상이었다.
아무래도 신선이 될 수도 있는 켕켕이를 내비게이션으로만 사용했던 게, 어지간히도 답답했던 모양.
뭐, 지금부터라도 잘 키워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창을 닫았다.
그리고 미리 타 놓은 커피를 한 입 들이키자, 때마침 서인나가 나를 호출했다.
“강 경감!”
“예.”
새로운 사건의 알람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그로부터 약 2주일 후.
나는 몇 달 만에 시내의 카페에서 모니카를 만났다.
금서에 관한 조사를 부탁해놓았던 모니카가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다고 알려왔기 때문이었다.
“안녕.”
오늘도 먼저 와 있던 모니카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수녀복을 입은 서양인이라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외형에 그녀는 여전히 주변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앞에 앉았다.
“어, 오랜만이네.”
“정말 오랜만. 너, 먼저 연락을 안 해.”
모니카는 불만이 있는 얼굴로 말했다.
나름대로 단체 채팅방에서는 대화를 많이 나눴던 것 같은데, 굳이 따로 연락할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그저 익숙한 핑계를 입에 담았다.
“바빴어. 경찰 일이 얼마나 많은지는 너도 대충 알잖냐.”
“…응. 들었어. 최근에, 장로님이랑 같이 싸웠지?”
모니카 역시 괴주 때의 이야기를 들은 건지 그렇게 말했다.
“위험했다던데.”
“뭐…만만치는 않았지.”
“정확히 어땠어?”
모니카의 물음에 나는 괴주 사건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전했다.
그녀는 그게 무척이나 흥미로운지, 눈을 빛내며 들었다.
“굉장해. 종말의 짐승까지 나왔다는 건, 처음 알았어.”
옛날 이야기를 들은 어린아이처럼 그녀는 말했다.
아무래도 교회 소속이니, 묵시록의 전승이 구현된 것에 관심이 쏠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이야기의 화제를 바꿨다.
“그보다 금서가 들어왔다고?”
“응. 그런데 소유주가 마인이 아니야.”
“그럼?”
“그러니까…”
모니카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원래 금서를 갖고 있던 것은 중동에 머물던 마인이었다.
하지만 그 마인은 현지의 퇴마사에 의해 격퇴되었고, 그 마인이 갖고 있던 금서는 그 퇴마사의 소유가 되었다.
그 후 중동의 퇴마사는 금서를 적당한 가격에 처분했고.
그것을 구매한 기업이 한국에 있다는 것이었다.
“…골치 아프게 됐네.”
모니카의 말에 의하면 금서를 구매한 것은 어느 외인 기관이었다.
그곳은 연구 목적으로 금서를 구입했으며, 그 절차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불법적인 일이 없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그 금서를 얻어야 하는 나에게는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금서는 기본적으로 귀물에 속한다.
그리고 귀물은 정부의 허가를 받았을 경우.
주술의 재료로 사용하는 등, 제한적인 조건 아래에서는 합법적으로 연구가 가능하다.
어떻게 금서에 연구 허가가 내려졌는지는 몰라도, 내 마음대로 뺏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기야.”
모니카는 나에게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거기에 적힌 사명은 ‘SC 테크’.
어째 적당히 지은 듯한 그 기업명은 처음 듣는 것이었고, 당연히 대기업 소속도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소규모의 외인 기관인가.
외인 기관 중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퇴마사 집단도 상당수 있다.
퇴마 업계에서는 말 그대로 중소기업 같은 곳.
경찰은 주로 정식 기관과 협력하기에, 나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지만.
정식 기관이나 대기업 소속의 외인 기관은 종종 까다로운 일거리를 소규모 외인 기관으로 넘기기도 한다는 모양이었다.
즉…퇴마 업계에서는 하청 기업 같은 느낌.
그런 기업에서 금서를 구입한 걸 보면, 아마 투자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금서의 종류는?”
“조로아스터교의 금서.”
그렇게 말하며 모니카는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정리된 자료를 나에게 넘겼다.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매우 오래된 종교였다.
종교의 주요 무대는 중앙아시아.
종교적으로는 주신인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하는 유일신 사상의 종교였다.
거기에 불을 숭상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세계관이 특징이며, 이 때문에 여름을 선으로, 겨울을 악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조로아스터교의 악신은 유명한 앙그라 마이뉴.
모든 악의 근원이라 알려진 존재였다.
“금서에 실린 주술은 뭐야?”
그래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모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몰라. 워낙 오래된 문자라서, 아직 술식 전체가 해독이 안 됐어.”
금서가 어떻게 정부에 허가를 받았나 싶더니만.
아예 어떤 주술이 있는지 판명되지 않았던 건가.
그렇다면 연구 목적의 반입도 이해할 만했다.
“해독된 내용은 있어?”
“약간. 죽음에 관련이 있다는 것 정도야.”
조로아스터교에서 죽음은 그 자체가 악이다. 그래서 시체는 그 자체로 불길하게 여겨지며, 그런 시체에 모여드는 파리나 구더기는 아예 악마라고 칭한다.
그런 세계관에서 죽음을 이용한 금지된 술법이라.
다른 금서들처럼 위험한 분위기가 만연했다.
“직접 가보려고?”
모니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서를 얻기 위해서 협상을 하든, 거래를 하든.
어쨌든 이를 구매한 외인 기관과 이야기를 해봐야 했으니.
“근데 좀 머네.”
명함에 표시된 외인 기관의 위치는 부산이었다.
그냥 이야기만 하고 와도 하루가 소비될 정도의 거리.
“…어쩔 수 없지.”
결국 그 외인 기관에는 휴일을 하루 잡아 직접 방문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금서에 대한 이야기가 정리되고.
“이제 뭐 할 거야?”
묘한 시선으로 모니카가 물었다.
사실 그냥 집에 갈 생각이었는데, 시간을 보니 마침 점심때였다.
기껏 금서에 대한 정보도 물어와 준 모니카가 아닌가.
역시 밥 정도는 내가 사야겠지.
“뭐라도 먹을까?”
내 질문에 모니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날.
“여긴가.”
나는 부산의 한 작은 빌딩 앞에 서 있었다.
이 빌딩의 3층이 SC 테크의 사무실이었다.
오기 전에 미리 전화를 해봤는데, 놀랍게도 오늘은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회사에 당직이 있단다.
경찰도 아니고 사기업이 당직이라니.
아무래도 여기도 만만치 않은 근무 환경을 갖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건물을 올라가 SC 테크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그 흔한 유리문 뒤로는 로비도 없이 곧바로 사무실과 이어졌고.
그 사무실에 놓인 여러 개의 책상 중 하나에서 어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시죠?”
“아까 연락했던 강진우 경감입니다.”
“아, 그 경찰분.”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를 맞았다.
“반갑습니다. SC 테크의 양우형 과장입니다.”
그와 악수를 한 나는 사무실 한 켠에 마련된 테이블로 갔다.
양우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믹스 커피 하나를 후루룩 타오더니, 내 앞으로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런데…경찰에서 갑자기 무슨 일로…”
양우형은 묘하게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나는 별로 눈치를 준 적도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중소 외인 기관은 정규 기관과 대기업 소속 외인 기관에서 일을 받아 처리하고, 그것으로 먹고산다.
그래서 그 사이의 구도는 일반 대기업과 하청 업체 사이에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정규 기관과 대기업이 철저한 갑, 이런 중소 외인 기관은 완전한 을의 입장인 셈.
하지만 퇴마 업계에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런 갑이나 다름없는 정규 기관 위에, 경찰이라는 슈퍼 갑이 존재했다.
경찰은 정규 기관에게 일을 할당하는 것은 물론.
실제 퇴마 사건 전체에 관여할 수 있는 데다 위법이 확인될 경우, 이에 대한 사법 집행까지 주도하는 절대적인 국가 기관이었으니까.
그러니 이런 소규모 외인 기관에서 경찰의 눈치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난 오늘 전혀 갑질하러 올 생각이 없었기에, 곧바로 손사래를 쳤다.
“오늘은 경찰이 아니라 개인으로 온 겁니다. 공무도 아니고요.”
“아, 그러시군요.”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전혀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긴, 휴일에 사복 차림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찾아온 경찰이 그렇다는 데 누가 믿겠냐.
나 같아도 의심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그럼 개인으로 오신 용건을 들을 수 있을까요?”
“최근에 여기에서 금서를 구매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혹시 뭐가 잘못됐습니까? 그거 다 허가받고 정식으로 들어온 건데. 관련 허가증이라도 보여 드릴까요?”
금서라는 말에 양우형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그 금서를 취득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취득이요?”
“예.”
“저희보고 경감님에게 금서를 도로 팔라는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내 말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어…잠시만요.”
이어서 그는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 안 있어 다시 돌아온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가격은 어느 정도나…?”
금서와 같은 귀물은 신기와는 달리 그 가격대가 높지 않다.
그야 위험한 폭탄 같은 물건이니 그 취급이 곤란하기도 하고.
연구 용도로 사용한다 한들, 그 목적이 달성된 후에는 파괴나 봉인이 기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SC 테크가 금서를 구매한 비용은 약 2천만 원.
아무리 신기보다 싸다고 해도 개인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절대 낼 수 없는 돈은 또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을 이었다.
“얼마에 가져오신 건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쳐 드리죠.”
“휴…그러시군요.”
그는 눈에 띄게 안심하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경찰의 위치를 이용해서 억지로 뺏어갈 거라 생각한 건가.
사실 그런 방안도 고려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굳이 미래에 문제가 될 소지를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느니 정식으로 금서를 구입하고, 이를 내가 흡수해서 처분 신고를 하는 게 나았지.
비록 돈은 들지만, 뒤끝은 없는 방법이었으니.
“그럼…혹시 누군가 금서를 원하는 분이 따로 계시는 건지…”
내가 경찰에서 높으신 분의 심부름이라도 하는 것 같았나.
양우형의 말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려다가.
“……”
곧 표정을 바꿨다.
만약에라도 이 사람이 마음을 바꿀 생각이 들지 않도록, 여지를 남겨둘 필요는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약하게 얼굴을 굳혔다.
“그런 건 묻지 마시고. ”
“아, 죄송합니다.”
그러자 그는 사과까지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정도면 됐겠지.
“거래할 의향은 있으십니까?”
“예. 물론입니다. 다만…저희 쪽에도 사정이 있어서…”
“사정이요?”
“그 연구를 위해 계약된 인원이 많습니다. 그 계약 기간만이라도 기다려 주실 수는 없을지…”
하긴, 회사라면 연구에 투자한 비용이 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양우형이 말한 기간은 반년.
6개월인가.
좀 길긴 하지만, 확정적으로 금서 하나를 얻게 된다면 기다릴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6개월 후로 거래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낸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데 딱 일주일 뒤.
“…응?”
갑자기 집에서 쉬고 있던 내 눈앞에 퀘스트가 생겼다.
– 폭주한 마인을 물리치고 조로아스터 교의 금서를 회수하기.
“폭주한 마인?”
아무래도 뭔가,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