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17
117.
나는 곧바로 지난주에 받아두었던 SC 테크 양우형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현재 시각은 오후 6시.
저녁 시간인데다, 일요일이라서 안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의외로 통화연결음은 길지 않았다.
“예, 양우형입니다. 강 경감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그렇게 답하는 그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아직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이에 나는 무난하게 말을 이었다.
“휴일 저녁에 죄송합니다. 혹시 출근하셨나요?”
“하하, 그럼요. 이번 달 당직이 저라서.”
“아…그렇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오늘도 회사에 있었다.
“실은 금서에 관해 확인할 게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확인이요?”
“예. 그게-”
나는 그에게 금서의 보관 방식이나 위치, 안전 대책 그리고 보안 체계 등.
금서가 아직 잘 있는 건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보관 위치는 회사 건물 내부의 금고였다.
안전 대책은 만약을 대비한 부적 몇 장.
거기에 보안 체계라고 할 만한 것은 몇 가지 보안 관련 주술과 당직인 양우형이 경비 인원을 겸하고 있는 정도였다.
“좀 허술해 보이긴 해도, 규정대로 관리하는 중입니다.”
“그건 그렇네요.”
양우형의 말대로였다.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SC 테크는 딱 귀물을 보관하는 최소한의 기준은 충족시키고 있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그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심한 잡음과 함께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음?”
회선에 문제가 싶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러나 여전히 전화 연결은 유지되고 있는 상황.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폰 너머의 소리에 집중했다.
계속해서 사납게 이어지는 잡음.
하지만 잘 들어보니 그건 잡음이 아니라 거센 바람 소리였다.
또한 그 중간 중간에는 양우형의 것으로 보이는 비명과 무언가 박살 나는 듯한 날카로운 파열음이 몇 차례나 들려왔다.
“……”
역시 일이 벌어졌구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밖으로 나섰다.
SC 테크가 있는 부산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 * *
콰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SC 테크가 위치한 건물의 한쪽 벽이 사납게 폭발했다.
동시에 짙은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안에서 이국적인 풍모를 가진 남성이 뛰어내렸다.
머리에는 하얀 스카프 같은 구트라를 둘렀고, 입은 옷은 흰 로브처럼 발목까지 내려오는 중동의 복장인 토브를 입은 남성.
전형적인 중동 아랍계 남성의 복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손에는 지금, SC 테크가 보관하고 있던 금서가 손에 들려 있었다.
“…귀찮아졌군.”
남자는 사납게 울리는 경보음을 들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직 건물 내부에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존재는 이 순간 발각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제 와서 목격자를 처리한다고 해도, 경찰의 추적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니 그런 것보다는 우선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현명했다.
후우우웅!
거센 바람이 그를 태웠다.
등에서 4개의 날개가 돋아난 남자는 그 바람을 타고 쏜살같이 허공을 질주했다.
“……”
순식간에 현장에서 멀어진 남자가 조심스럽게 품에서 금서를 꺼내 들었다.
그의 이름은 샤힌.
중동 지역에서는 나름 유명한 마인으로, 원래 이 조로아스터교의 금서는 그의 것이었다.
샤힌은 서둘러 금서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금서 자체는 전혀 훼손되지 않은 상태였다.
“후…”
멀쩡한 금서를 보며 샤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세계에서 누구보다 이 금서를 오래 연구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금서의 내용을 상당 부분 해석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속에 실린 금지된 주술의 실현에도 거의 근접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의 끈질긴 연구에도 금서의 나머지 부분을 끝내 해석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는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 바로, 고대 언어의 언령을 사용한다는 살만이라는 마인이었다.
“살만, 그 멍청한 자식 때문에…!”
샤힌은 나지막하게 불만을 중얼거렸다.
샤힌은 살만을 포섭하기 위해 상당한 액수의 돈까지 지급했다.
그러나 그 후의 일은 그의 의도대로 풀리지 않았다.
살만이 금서의 해석 작업 도중 퇴마사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고.
금서는 퇴마사에게 회수되어 결국 먼 이국의 땅인 한국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에게는 곤란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마인의 신분으로 외국, 그것도 전혀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은 그가 주로 활동했던 중동 지역과 크게 차이가 있는 극동 아시아의 나라다.
그래서 이슬람교나 중앙아시아의 전승이 주류를 이루는 중동과는 달리.
한국은 토속 신앙은 물론, 교회와 법당의 전승이 크게 번성한 나라로 샤힌에게 있어서는 미지의 위협이 가득한 곳이었다.
웬만한 마인이었다면 설령 금서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쉽게 발을 딛지는 못했으리라.
하지만 샤힌에게는 반드시 금서를 손에 넣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크윽…”
하늘을 날던 그는 불현듯 찾아온 고통에 가슴을 움켜쥐고, 급격히 땅으로 착지했다.
이제 막 도심을 벗어난 그는 날개를 없애고 자신의 발로 걸었다.
그가 사용하는 전승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샤힌에게 날개와 바람의 힘을 부여한 것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파주주 전승이다.
파주주는 사자의 팔과 머리, 독수리의 다리와 네 장의 날개, 그리고 전갈의 꼬리를 갖고 있다는 바람과 열병의 악신으로.
샤힌은 그 강력한 힘을 빌려 쓰는 대가로 항상 질병에 시달리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
젊었을 때는 그 힘에 취해 이를 감내했으나, 정작 죽음이 다가오니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서 그는 이 금서에 미래를 걸고 있었다.
“아직 죽을 수는 없지.”
그는 비릿한 웃음을 입에 걸고 금서를 바라보았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죽음은 단지 생명이 끝나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생명이라는 선이, 죽음이라는 악에 패배한 결과로.
결국 살아있는 사람조차 그 내부에서는 생명과 죽음의 전투가 끝없이 벌어지고 있음을 뜻했다.
그리고 이 금서에 실린 주술은 죽음이라는 악을 힘의 근원, 즉 일종의 에너지로 사용하는 술법.
그렇기에 이 금서가 가진 진짜 가치는…다름 아닌 바로 불사의 재현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금서의 주술은 죽음을 에너지화하여 이를 소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주술을 통해 술자 본인의 죽음을 소비함으로써, 그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했고.
이는 오히려 술자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 힘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샤힌에게 있어서는 이 금서에 실린 주술이 삶과 동시에 더욱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더없이 완벽한 해결책이었고.
그것이 샤힌이 이 금서 하나 때문에 한국까지 온 이유였다.
그때 샤힌의 귓가에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샤힌의 얼굴에 초조함이 비췄다.
아직 거리는 멀었으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한국은 국가 권력이 직접 퇴마에 힘을 쏟고 있어, 퇴마 대책이 상당히 잘 갖춰진 국가에 속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빨리 반응할 줄이야.
그래서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대처를 고민했다.
설령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한동안은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쫓아온 이들이 금방 해치울 수 없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그래서 그는 조용히 금서를 바라보았다.
아직 해독이 끝나지 않은 금서의 주술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불완전한 주술을 사용하는 것은 반쯤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그 자살행위를 선택해야 할 수도 있으리라.
샤힌은 그런 각오를 다지며, 날개를 꺼내 몸을 숨길만 한 산을 향해 날아갔다.
* * *
마인이 금서를 훔쳐갔단다.
그 상황을 양우형에게 실시간으로 중계받고 있던 나는 마인이 건물을 빠져나간 직후, 부산 경찰청에 이를 알렸다.
같은 경찰의 신고라서인지, 아니면 내가 폭주 예정인 마인의 위험성을 과장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 마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에게 일을 맡겨 놓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
“용의자, 발견했습니다.”
마인이 숨어들었다는 부산 외곽의 산 근처에 도착했을 때쯤.
부산 경찰청을 통해 연결해 놓은 무전을 통해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앞서 마인을 추적하던 인원들이 몇 시간이나 지난 지금에야 마인을 겨우 따라잡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날아다닌다는 목격도 있다고 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닌가.
그리고 그 뒤, 한동안 이어지는 무전은 없었다.
전투가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서둘러야겠네.”
나는 마인이 숨어들었다는 산 아래에 차를 세웠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이미 산에는 어둠이 내리깔려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하지만 저 산 위 어디서는 마인과 경찰이 전투를 벌이고 있을 터.
나는 화살표를 따라 산길을 성큼성큼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마인이 폭주했다거나 발작을 시작했다거나 하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역시 전투 중에 일이 벌어진다는 뜻일까.
“…저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한참 산을 오른 나는 겨우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 합류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네 명의 경찰과 그 가운데 포위된 마인 하나였다.
주변에는 두꺼운 성목들 여럿이 일제히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전투의 결과는… 아마도 마인의 패배로 보였다.
마인의 레벨은 53.
놈은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주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경찰들은 그런 그를 사방에서 압박하고 있는 상황.
“……”
나는 곧바로 인검을 들고 나섰다.
아무리 봐도 놈이 폭주할 때는 지금이었으니.
하지만 내가 첫 발짝을 뗀 그 순간, 이미 마인은 금서를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은 지체하지 않고 그 주문을 입에 담았다.
불길하고 알 수 없는 소리의 나열에 나는 물론 주변의 경찰들이 일제히 달려들었지만.
후우우웅!
갑자기 휘몰아친 메마른 열풍이, 우리가 너무 늦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아악!”
가까이 있던 네 명의 경찰이 그 열풍에 휘말려 날아갔다.
나는 그중에 우연히 내 쪽으로 날아온 한 사람을 지면에 부딪히기 직전에 받아냈다.
그건 레이피어를 들고 마인과 대치하던 여성.
옷에 박힌 계급장은…경위로 나보다 한 단계 낮은 계급이었다.
“괜찮아요?”
“아니, 니는 뭐…”
여성은 내 존재에 놀라다가, 내 옷과 계급장을 보고는 금방 상황을 이해한 듯 보였다.
그녀는 사투리의 어감이 많이 남아있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지, 지원…입니까?”
“그런 셈이죠. 특수본의 강진우 경감입니다.”
“특수본요?”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같은 퇴마 경찰이지만, 부산청 소속의 그녀에게는 서울에 본부를 둔 특수본 인원이 여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었으니.
“그보다 이 전승은 뭡니까?”
나는 마인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열풍을 보며 물었다.
그 열풍은 단지 강하기만 한 바람이 아니었다.
거기에 실린 열기는 점점 격해져서, 이제는 마인 근처에 있는 나무를 태우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화염이 실린 바람.
다행히 주작의 전승을 활용한 나는 그 열기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수는 있었지만.
이것만 봐도 저 마인이 적당한 수준의 전승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파주주라 카던데.”
파주주라.
그 이름은 알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기반을 둔, 유명한 영화에 등장했을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놈이었으니.
“저건 제가 상대할 테니 다른 인원들 수습해서 일단 후방으로 빠지세요.”
이어서 나는 여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파주주는 열풍은 물론 열병의 악신이다.
그렇기에 언제 저 바람이 화염이 아닌 병균을 실어 나를지는 알 수 없는 일.
나야 그런 상태 이상이 통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경찰들은 아니었다.
이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나 싶었지만, 내 계급 때문인지 이내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짧게 대답한 그녀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마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마인의 레벨이 이상했다.
“응?”
어째서인지 마인의 레벨이 확 올라가 있었다.
70 레벨.
조금 전만 해도 53이었던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20 가까이 오른 것이었다.
거기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초조한 기색을 보이던 마인은 어느새 열풍의 한가운데에서 소리도 없이 웃고 있었다.
그런 놈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불길하면서도 심상치 않았다.
마인이 아니라… 괴이나 령을 바라보는 느낌.
그래서 나는 저놈에게 일어난 일을 자연스럽게 직감했다.
아무래도 금서의 주술 때문에 마인이 폭주한 것 같긴 한데.
그 폭주의 방향성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설마…파주주냐?”
내 말에 마인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진짜인가.
금서의 주술이 뭔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마인의 자아가 날아가고 그 빈틈을 파주주가 채운 듯 보였다.
그리고 놈에게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 등 뒤로 날개가 솟아났다.
그리고 팔과 다리가 짐승의 것으로 변했고 뒤로는 전갈의 꼬리까지 돋아났다.
신화 속 파주주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모습.
동시에 주변에서 화염이 휘몰아쳤다.
끔찍한 열기가 남아있던 나무와 지면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든다.
다행히 경찰들은 이미 전장을 떠난 터라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그 모습에 나는 혀를 찼다.
“쯧…”
파주주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악신으로서는 격이 높은 존재다.
설령 그 본체가 아니라 신격만이 깃든 화신체라고는 해도 만만치는 않은 적.
한편 마인, 파주주 역시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열풍 속에서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내가 신기하다는 듯, 그 기분 나쁜 시선이 나를 훑었다.
“뭘 꼬나 봐, 새끼야.”
이에 나는 검에 전격을 휘감고, 놈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