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18
118.
내가 공세를 취하자 열풍은 더욱 강해졌다.
당장이라도 나를 날려버릴 듯한 바람이 눈앞을 가린다.
그 순간, 놈이 움직였다.
쾅!
사자의 것으로 변한 마인의 발톱과 내 검이 부딪힌다.
그 날카로운 발톱은 평범한 짐승의 것이 아니었다.
파주주의 권능으로 강화되어, 검에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것이 마치 금속과 같았다.
게다가 거기에 실린 힘은 검을 쥔 팔이 잠깐 휘청일 정도로 강렬하다.
이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서로 간의 완력 차이는 선명했다.
기본적인 능력치에서 밀리고 있다는 뜻.
하지만…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전승과 스킬, 그리고 아이템 덕분에 70 레벨 대의 적을 상대로 능력치가 부족한 일은 없을 터인데.
금서에 깃든 조로아스터교의 악신, 앙그라마이뉴의 주술이 파주주를 다시 한 번 강화하고 있는 건가.
악신끼리의 시너지라니, 웃기지도 않은 일이었다.
“키-”
한편 마인은 일격에 자신의 우세를 눈치챈 건지, 곧바로 사나운 기세로 공격해왔다.
열풍을 휘감은 짐승의 발톱이 내 목을 노렸다.
쾅! 콰광!
순식간에 수십 합이 넘는 공방이 오고 간다.
놈은 짐승처럼 자신의 발톱을 앞세워 나에게 돌격했고, 나는 그 돌격을 전기를 두른 참격으로 막아섰다.
놈의 움직임은 과연, 과감하면서도 기발했다.
사자의 상체가 만들어 내는 힘과 더불어, 날개를 이동한 급가속은 물론.
열풍까지 응용하여 허공에서도 빈틈을 노린 내 반격을 작은 부상만 입고 피해내는 묘기를 선보였다.
이세계로 치면, 여러 수인의 전투 방식을 뒤섞어 놓은 듯한 모습.
“호오…”
그 수준은 짐승의 본능인지, 신격이 가진 무도인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괜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작 마인은 자신에게 하나둘 늘어가는 부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키이이!”
기괴한 목소리를 내며 그 발톱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마인은 네 날개를 크게 펼치고 땅을 박찼다.
막대한 각력이 만들어 내는 섬광 같은 질주에 강렬한 열풍이 그 뒤를 떠민다.
그것이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저돌적인 돌격.
자신의 몸 전체를 포탄이나 다름없이 만든 놈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속도로 나에게 쇄도했다
“…!”
승부를 걸어온 건가.
하지만 피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단지 검을 들었다.
침묵 속에 검날에 희미한 빛이 스며든다.
그 검에 싣는 것은 가루라의 전승.
그러자 그 악신을 멸하는 성스러운 새의 힘이 인검에 깃들었다.
그리고 놈과 부딪히는 찰나의 순간.
나는 가속해오는 놈의 발톱을 떨쳐낼 몇 개의 검로를 보았고.
선명한 일섬이 그 검로를 정확히 지나쳤다.
“키-”
까가각!
마인의 비명과 금속이 깨부숴지는 파열음이 겹쳤다.
가죽이 갈라진 틈으로 피가 터져 나왔다.
마침내 놈의 앞발에 큰 상처가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마인, 파주주의 시선에는 여전히 독기가 차올라 있었다.
아직 뭐가 더 있는 건가.
그것을 직감한 순간.
쐐액!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전갈 꼬리가 마침내 움직였다.
놈의 충격을 옆으로 흘렸을 뿐인 나에게 꼬리가 꼬챙이처럼 휘어 날아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나에게도 대책은 있었다.
바로 예리코의 방벽.
비록 악신이기에 신성을 포함하고 있을 테니 그리 효율적인 대책은 아니지만.
영력을 희생한다면 이런 일회성 공격 정도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콰광!
철퇴가 내려친 듯한 충격과 함께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꼬리를 막는다.
영력은 뭉텅이로 빠져나갔지만, 내 몸은 멀쩡했다.
그러자 나를 지나쳐 다시 땅을 밟은 놈의 눈에는 미세한 당황이 내비쳤다.
“키이이이…”
비장의 꼬리까지 동원한 승부수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일까.
자세를 정비한 마인은 더 이상 적극적으로 돌격해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대응을 지켜보겠다는 듯, 발톱만 세운 채 나를 경계하고 있다.
이제야 내 실력을 조금이나마 가늠한 모양.
“그럼 내가 간다?”
이번에는 내가 돌진했다.
그러자 놈은 이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날개를 펼쳤다.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마인은 이어지는 내 검격에 날개를 퍼덕이며 급하게 뒤로 몸을 빼더니, 다시 열풍으로 제 몸을 보호했다.
이에 곧바로 따라붙으려던 나는 잠시 발을 멈췄다.
“저건 좀 번거롭네…”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열풍이 문제였다.
그 안에 든 열기는 무시할 법도 했지만, 그 바람만큼은 아니었다.
저 정도의 폭풍이라면 다짜고짜 돌격했다가는 균형을 잃고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으니.
그래서 나는 곧바로 을 사용했다.
저 열풍 자체를 봉인하고, 그대로 끝장을 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없어…?”
스킬 목록에 있는 것은 파주주의 스킬이 아닌, 원래 마인이 갖고 있었을 법한 시시한 것들뿐이었다.
그래서 로그 창을 확인해 보니.
그런 문장이 떠 있었다.
즉 파주주의 신격이 너무 높아서 표시되지 않는다는 말.
그리고 보니 지난번에, 주신급 나가를 상대할 때도 이랬던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잠시 대책을 고민하는 사이.
놈은 그 열풍 속에서 날개를 이용해 위로 날았다.
설마 도망갈 셈인가.
좋지 않은 전개를 떠올린 나는 놈이 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초승달을 등지고 선 파주주는 오만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시 하늘에서 번개를 떨궈야 하나 싶은 순간.
“음…?”
파주주의 날개 뒤로 보이는 초승달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인검에 새겨진, 라이칸스로프의 기술을 떠올렸다.
– 라이칸스로프 : 광폭화 디버프를 획득하고 늑대 인간으로 변한다. 변신 시 모든 능력치 +300%. 영력 소모 50.
“변신이라…”
효과 자체는 좋았다.
모든 능력치를 세 배나 더 올려준다는 건, 단순하지만 파격적인 효과였으니.
대신 영력 소모가 심한데다 늑대 인간으로 변한다는 점도 마음에 걸려, 사실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는 스킬이었다.
평소에는 그냥 벼락이나 떨구는 게 편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하늘을 나는 적이라 벼락을 얌전히 맞아줄지도 의문이고, 무엇보다 지금은 저 열풍을 통과할 힘이 필요했다.
“…써보지, 뭐.”
그래서 나는 라이칸스로프를 발동했다.
그러자 꾸득-하는 근육의 맥동이, 온몸에서 느꼈다.
* * *
“아고…”
쓰러진 동료를 셋이나 들고 산길을 헤쳐 안전한 곳까지 옮겨온 부산 경찰청의 경위, 은시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동료들은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
목숨이 위험한 큰 부상은 없는 듯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곧바로 부산청에 현재 위치와 지원을 요청하고는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
멀리서는 아직도 전투의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은시영은 마인이 갑자기 돌변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분명 그렇게 강하지는 않은 마인이었는데.
그 열풍이 몰아친 순간, 무언가 변했다.
하지만 그 변화의 근원이 뭔지는 잘 알지 못했다.
강진우 경감이라고 했던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가 그 후 전투를 도맡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은시영은 팔짱을 낀 채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는 그녀에게 후방에서 대기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동료들은 다 데려왔고 본부에는 이 위치를 알렸다.
그러니 여기에 그녀가 계속 대기하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저 곧 도착할 구조대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그와 합류하는 게 더 옳은 판단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자신의 무기인 레이피어를 챙겨 들고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치열한 파열음이 앞쪽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곧이어 눈에 들어온 전장의 모습은 그녀의 예상과는 많이 다른 것이었다.
“저기 뭐꼬…?”
은시영이 아연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곳에 강진우라는 경찰은 보이지도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두 마리의 괴물뿐.
그중 하늘에 뜬 것은 날개를 달고 있는 마인, 파주주였다.
놈은 네 개의 날개를 퍼덕거리며 열풍의 회오리 속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막 땅에서 뛰어올라, 열풍을 헤치고 그 안에 있던 파주주의 목을 잡아챈 것은 처음 보는 괴물이었다.
그 모습은 전형적인 늑대인간이다.
그런데 그 무장이 이상했다.
늑대인간이 뜯어진 경찰복을 입고 있었다. 그 한쪽에는 검까지 차고 있다.
마치…조금 전 보았던 강진우 경감이 늑대인간이 된 것 같은 모습.
“키이이이!”
파주주가 고통에 울부짖으며 하늘에서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늑대인간은 파주주에게 단단히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반대편 손으로 파주주의 날개를 거칠게 뜯어냈다.
“힉…”
살갗과 가죽이 억지로 잡아 뜯기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은시영은 숨을 삼켰다.
뜯긴 파주주의 날개를 늑대인간은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그것은 은시영 바로 앞에 떨어졌다.
검은색의 커다란 날개.
그 뿌리 부분에는 섬뜩한 핏물이 묻어 있었다.
“키이이이이이이이!”
그 맹렬한 고통에 파주주가 발광했다.
놈은 날개가 찢어진 잠자리처럼 불규칙하게 허공을 날았다.
하지만 늑대인간에게는 자비가 없었다.
거침없이 나머지 한쪽 날개를 더 뜯어낸 늑대인간은 추락하는 파주주의 얼굴을 그 주먹으로 수도 없이 내리쳤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땅을 불태우는 열풍이 몰아쳤지만, 그것은 늑대인간의 털끝조차 태우지 못했다.
“……”
그 기괴하기까지 한 광경을 은시영은 어쩌지도 못하고 경악과 함께 바라보았다.
저 파주주는 분명 자신이 쫓던 마인이다.
하지만 이와 싸우는 늑대인간을 돕자니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늑대인간은 괴이가 아니던가.
게다가 저 늑대인간은 파주주를 압도하고 있다.
저렇게나 강한 괴이라면, 만약 적대할 경우 자신 같은 건 상대도 되지 않을 테지.
그렇다면…이대로 도망쳐야 할까.
그녀가 그렇게 갈등하는 사이.
“키이이이이!”
그 늑대인간은 땅으로 추락한 파주주의 등을 한 발로 밟고, 마지막 날개를 억지로 쥐어뜯었다.
그리고 그 늑대인간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못 날겠지.”
놀랍게도 늑대인간은 그렇게 말했다.
아니, 못 나는 게 문제일까?
은시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그야 날개가 다 뜯겨나간 파주주는 차마 눈에 못 볼 꼴을 하고 있었으니.
“아, 꼬리.”
하지만 그것도 모자란 건지, 늑대인간은 파주주에게 달려있던 전갈 꼬리마저 땅에서 고구마 줄기를 뽑듯 잡아 뽑았다.
은시영은 그 장면만은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비참한 파주주의 비명만이 그 자리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늑대인간을 바라보자, 늑대인간은 파주주에게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그건 책이었다.
이어서 책은 마치 눈 녹듯 사라져, 늑대인간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
그걸로 만족한 건지, 늑대인간은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커다란 늑대인간의 몸집에 비하면 작은 검.
늑대인간은 그것을 들어 올려, 널브러진 파주주를 겨눴다.
하지만 그것이 움직이기 직전.
“음?”
늑대인간의 코가 움직였다.
동시에 섬뜩한 직감이 은시영의 머릿속을 스쳤다.
열풍은 이제 완전히 잦아들어 있었다.
그 열풍은 그녀가 쉽사리 전장에 발을 딛지 못하게 했던 장애물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어찌 보면 그 열풍은 그녀의 체취를 저 늑대인간에게서 감춰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이제야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직감대로.
늑대인간의 시선은 곧바로 나무 뒤에 있던 은시영을 향했다.
“으…으아…”
그 날카로운 시선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은시영의 발치에 아까 뜯겼던 파주주의 날개가 보였다.
그 날개에 묻은 핏물이 은시영의 두려움을 부추긴다.
“거기서 뭐-”
“으아아아악!”
그래서 그녀는 늑대인간의 말을 듣지도 않고, 비명과 함께 줄행랑을 쳤다.
힘들게 올라왔던 산길을 올라왔을 때의 몇 배의 속도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 뒤를, 늑대인간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뭐야, 저거.”
나는 비명을 지르며 사라진 누군가의 뒤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아까 봤던 그 사람인 것 같은데.
다시 돌아온 건가?
“다시 왔으면 온 거지, 왜 비명은 지르고 난리…”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다 말고, 비로소 내 상태를 점검했다.
지금 내 모습은 늑대인간이다.
거기에 파주주의 날개를 맨손으로 잡아 뜯어, 온몸은 피투성이나 다름이 없었다.
“……”
과연, 오해할 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검을 쓰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늑대인간으로 변하며 신체가 커져, 검의 사이즈가 손에 맞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들어보니 나무젓가락을 들고 싸우는 느낌이라, 그냥 맨손이 낫겠다 싶었을 뿐.
실제로 가루라의 전승을 부여한 맨손은 검만큼이나 강했다.
“쯧…”
나는 혀를 차고, 다 죽어가는 파주주를 끝장냈다.
그러자 마인은 그대로 사망했고, 파주주의 신격 역시 그에게서 흩어졌다.
그의 죽음을 확인한 나는 로 켕켕이의 먹이를 확보한 뒤, 조용히 스킬을 해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찢어진 경찰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여름이라 코트를 두고 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래도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거지꼴인가.
이거, 웬만해서는 쓰지 말아야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로그 창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예상대로 금서의 획득을 알리는 로그가 실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스킬창을 살폈다.
그런데.
“음?”
시체의 죽음을 수집하여 저장한다.
수집한 죽음 : 1
당장은 별다른 기능이 없는 스킬이었다.
아무래도 금서를 해석하는 스킬의 레벨이 올라간 후.
해석 진행률이 늘어난다면, 수집한 죽음을 사용해서 뭔가를 하는 것 같긴 하다.
그때까지 열심히 죽음을 수집해 놓으라는 건가.
“무슨 적금도 아니고.”
나는 그대로 창을 닫았다.
서서히 열풍으로 달궈진 땅이 식고, 찢어진 옷 사이로 차가운 밤 공기가 스며들었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이 넘은 상태로, 그것도 월요일 새벽 1시였다.
내가 눈치채기도 전에, 내 주말이 끝나버린 것이었다.
“…춥다.”
씁쓸한 마음에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