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20
120.
“…뭐냐고 물어봐도 대답할 리는 없나.”
나는 령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령은 기본적으로 죽은 사람 본인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남긴 한이 변한 것이다.
그래서 원한과 관련되지 않은 기억은 남아있지도 않고, 그 때문에 이성적인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대화가 가능한 영체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적어도 적령이나 흑령 이상이다.
거기까지 강해진 영체는 스스로의 자아를 형성할 수 있으니.
하지만 이 지박령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20 레벨 대의 청령.
그래서일까.
“……”
내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령은 어쩌지도 못하고 내 주변을 배회했다.
령에게서는 이렇다 할 강조 표시는 없었다.
그야 화살표는 이곳을 가리키고 있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지박령의 저 당황한 모습은 나에게 사건의 경위을 추측하게 하는데, 의외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아무나 공격하지는 않는 다라…”
그리고 보니 지금까지의 사건에서도 운전자는 전부 사망했지만, 유일한 동승자였던 운전자의 부인은 아무 문제 없이 구조되었다.
이 지박령은 특정 인물, 즉 자신이 원한을 품은 사람만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망자들은 모두 같은 고향 출신에, 단서들은 중학교를 가리키고 있다.
여기까지 오면 사망자들이 중학교 시절,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거의 확실해 보였다.
“오히려 이쪽이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건가.”
이제야 나는 화살표가 이 저수지를 가리키고 있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기서 이 지박령을 퇴치하면 내비게이션에 얽힌 사건은 끝이 나겠지만.
그 뒤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사건은 영영 파묻혀 있게 된다.
이를 깨끗이 처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뒤에 있는 사건을 조사해라, 이건가.
물론 그게 좋긴 하지.
그렇게 판단한 나는 저수지를 떠나기로 했다.
그러자 헤엄도 치지 않았지만, 마치 공중 부양을 하듯 천천히 내 몸이 떠올라 수면으로 향한다.
그 모습을 지박령은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수면 위로 올라온 나에게 나하정이 소리쳤다.
내가 물에 빠졌다고 생각한 건지, 그녀는 이제 막 저수지에 들어오려던 찰나였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알리고, 나 역시 저수지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된 건가요? 분명 뭐가 있던 것 같은데.”
나하정의 물음에 나는 저수지 안에 있던 지박령과 내 추측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 지박령은 어쩌면 범죄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하정의 시선이 냉담해졌다.
“그럼 이제 어쩌실 건가요?”
“일단 학교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요?”
“예.”
나는 사망자들이 다녔던 중학교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러자 역시나 화살표는 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더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럼 가시죠.”
사망자들이 다녔던 중학교는 저수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 시골에서는 그나마 읍내로 불릴 법한 곳에 있는 중학교였다.
시간은 이제 오후 2시.
건물의 규모는 의외로 도시에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학생 수는 거기에 못 미치는지, 한창 오후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학교는 반 이상의 교실이 비어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런 중학교 근방에 경찰차를 세워두고, 학교 정문으로 들어갔다.
“어, 여기 함부로 들어오면…”
그러자 정문에 서 있던 누군가가 나를 막아섰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그는 그대로 나를 쫓아내려 했지만, 입고 있는 경찰복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경찰이십니까?”
“예. 특수본의 강진우 경감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에게 경찰증을 내밀며 내 신분을 증명했다.
“여긴 무슨 일로…”
“사건 조사 때문에 왔습니다. 학교 관계자십니까?”
“아, 내가 이 학교 선생이요. 한민훈입니다.”
나는 그에게 최근 일어난 저수지 차량 침수 사건 때문에 왔다고 설명했다.
한동안은 일반 사건으로 다뤄져서, 지역 신문에는 충분히 실렸을 법한 사건.
그래서인지 한민훈 역시 사건 자체는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듣긴 했는데…보는 눈도 있으니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는 운동장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벌써 체육 수업을 받고 있던 학생들 몇몇이 우리를 보며 떠들고 있었다.
나도 학생들의 눈에 띄어 좋을 건 없었기에, 한민훈의 안내를 따라 교무실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교사가 수업에 들어간 교무실은 조용했다.
한민훈은 그런 교무실 한쪽에 있는 응접실 안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런데 사건 조사라니…그게 우리 학교와 관련이 있는 사건입니까?”
응접실의 테이블에 우리를 앉힌 그는 그렇게 물었다.
“조사 중인 사건이라 자세히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사망자들이 모두 이 학교 출신이더군요.”
“허어…”
내 말에 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령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착잡한 사실이긴 할 테니.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학생 명부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대충…30년 전 거요.”
“3…30년 전이요?”
“정확히 28년에서 30년 전 정도면 될 겁니다. 보관은 하고 있죠?”
사망자들이 중학교에 다녔을 시절의 것.
“예. 그건 그럴 겁니다. 잠시만…”
이에 한민훈은 명부를 찾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났다.
그 사이 나하정이 입을 열었다.
“주소를 찾아보려고 그러시나요?”
주소?
갑자기 주소가 왜 나오는 거지?
나는 그냥 명부를 보면 강조 표시되는 이름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단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망자들은 모두 같은 마을 출신이니까요. 게다가 그 마을과 학교 사이에는 저수지가 있죠. 아마 우연은 아닐 거에요.”
“…맞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그렇네.
나는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나하정과 사건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잠시 후, 한민훈이 돌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그가 가져온 것은 겉보기에도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명부였다.
나는 곧바로 그 명부를 살펴보았고 이내 강조 표시된 이름 다섯을 찾았다.
셋은 이미 사망한 내비게이션 사건 피해자들의 이름이었고.
나머지 둘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하정의 말대로, 그들의 주소는 모두 같은 마을이었다.
이 정도면…확실하겠군.
나는 그 두 명의 이름을 확인하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다시 경찰차에 탄 나는 가장 먼저 두 사람의 이름과 주민 번호를 분석팀에 넘겨 조사를 요청했다.
그러자 그 결과는 금방 돌아왔다.
“이 사람인가.”
먼저 이성화.
그 이름은 학생 명부에서도 졸업하기 전년도에 사라진 이름이었다.
비록 명부에는 왜 이름이 지워졌는지까지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경찰 DB에는 그 이유가 명확히 나와 있었다.
이 사람은 중학생 때 실종되어, 3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사망 처리된 상태.
그렇다면…자연스럽게 나머지 하나, 이 김희은이라는 여자는 가해자라는 말이었다.
그녀는 현재 인천에 거주 중인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럼 인천까지 가야 하는 건가 싶은 찰나.
“응…?”
퀘스트의 화살표가 갑자기 깜빡이기 시작했고, 그것도 모자라 그 위에는 시간이 나타났다.
7:28
처음 보는 현상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28이라는 숫자가 27로 바뀌면서 그 의도가 보였다.
이건 시간제한이었다.
그것도 이제 겨우 7분 남짓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
화살표는 분명 저수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나는 곧바로 운전대를 잡은 나하정에게 말했다.
“이동합시다.”
“네? 어디로요?”
“저수지요. 최대한 빨리 가야 합니다.”
* * *
“후…”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김희은은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목적지까지는 그리 많이 남지 않았으나 그녀는 찜찜한 눈으로 앞을 주시했다.
전방으로는 서서히 어떤 저수지가 보이고 있었다.
“……”
그리 좋은 기억이 있지는 않은 곳.
그래서 그녀는 이곳에 오기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 저 저수지 너머에 있는 작은 마을에는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있다.
그리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이 저수지를 지나는 길이 전부다.
그러니 아무리 찜찜하다고는 해도, 그런 이유로 부모를 평생 안 보고 살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오늘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까지 받았다.
원래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자택에서 요양 중이었는데, 최근 갑자기 증세가 심각해졌다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무슨 사고가 있었다던데…”
갑작스런 고향 친구들의 사망 소식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겨우 몇 주 사이에 셋이나 되는 친구가 이 저수지에 빠져 죽었단다.
그 사실을 떠올린 그녀는 얼굴을 굳히고, 저수지로 인접하는 도로에서 속도를 크게 줄였다.
오래전, 이 저수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귀신이 어디 있다고…”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김희은 역시 그 일련의 사고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제 와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죄책감까지 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직장에 반차까지 내고 대낮에 이동했다.
시간은 오후 두 시 반.
한창 햇살이 쏟아지는 시간이었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그 때문에 앞은 훤히 보인다.
이 정도라면, 멍청하게 길을 잘못 들어 저수지에 빠지는 일은 없으리라.
“……”
그래서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심호흡으로 다스리며 저수지에 인접한 도로로 들어섰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만약을 대비해 속도조차 내지 않았다.
그렇게 저수지의 급커브 구간으로 들어선 순간.
“왼쪽입니다.”
갑자기 내비게이션에서 그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희은은 소름이 쫙 돋았다.
그야 왼쪽은 저수지가 있는 방향이었으니까.
자신도 모르게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내비의 지시와는 반대로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뭐…뭐야!”
운전대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걸린 것처럼 아무리 힘을 줘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거 왜 이래!”
“왼쪽입니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그 냉담한 기계음은 운전대에 매달려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김희은을 놀리듯 똑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왼쪽입니다.”
“웃기지마!”
김희은은 필사적으로 운전대를 꺾었다.
그러자 천천히 운전대가 겨우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점점 오른쪽으로 기우는 운전대를 따라, 차 역시 서서히 급커브 구간을 벗어나며 멀쩡한 도로를 향한다.
“왼쪽입니다.”
“왼쪽은 얼어 죽을…!”
이에 김희은은 승리했다는 듯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왼쪽이라고!!!”
불현듯 내비게이션이 비명과 같은 괴성을 토해내며 상황은 반전되었다.
어마어마한 힘이 운전대를 억지로 왼쪽으로 비틀었다.
그 힘에 김희은은 순간적으로 운전대를 놓쳤고.
그녀가 다시 운전대에 손을 댔을 때는, 이미 차량이 저수지를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안 돼!”
김희은의 비명과 함께 차는 그대로 저수지에 처박혔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덮쳐오는 어떤 얼굴을 보며, 김희은은 의식을 잃었다.
* * *
“후우…”
그날 저녁.
나는 김희은을 근처 병원으로 입원시키고 경찰차에 탔다.
“늦을 뻔했네.”
저수지에 떨어진 김희은은 그곳에 있던 지박령에게 거의 죽을 뻔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나하정은 냉담한 태도로 말했다.
“굳이 구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 의문에는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가 있었다.
김희은을 구출한 직후.
공포에 질려 패닉에 빠진 그녀가 내 앞에서 스스로 고백한 일들은, 그냥 넘길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저수지에 있는 지박령은 살인 사건의 희생자였다.
김희은과 죽은 사망자들을 포함한 무리는 30년 전, 피해자인 이성화를 중학교 시절 지속적으로 괴롭혀 왔다고 김희은은 말했다.
그러던 중 그들 무리는 이성화의 발에 돌을 묶어 그녀를 저수지에 빠뜨리는 짓을 저질렀고.
이 일로 이성화는 저수지에서 익사, 그대로 실종 처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경찰은 그 범죄를 처벌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되기도 한참 전에 있었던 사건이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적용된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김희은에게 아무 일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박령 입장에서도 팔다리 하나씩은 뽑아 놨으니, 화풀이는 됐겠죠.”
우리가 지박령을 발견했을 때, 이미 김희은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거대한 힘으로 억지로 비틀려 뽑힌 왼팔과 오른 다리가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도움도 됐잖아요. 손해는 아닙니다.”
그 후 나는 지박령을 없애지 않고 김희은을 꺼내오느라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결국 지박령은 마지못해 김희은을 포기했고 덕분에 나는 소중한 자백과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건…그렇죠.”
내 말에 나하정 역시 그렇게 말했다.
김희은의 증언 속에는 우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이름은 최정숙.
그녀는 당시 마을에 살던 고등학생으로, 이성화를 괴롭혔던 집단의 주동자라고 했다.
김희은은 그녀가 그저 대기업에 취직해서 서울로 이사했다고 알고 있었으나.
그 후 확인해본 결과 최정숙의 직업은…놀랍게도 퇴마사였다.
아마 이 사건을 계기로 마에 개안, 이후 퇴마사의 길을 걷게 된 듯 보였다.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근데 퇴마사면…계산이 어떻게 되는 거야?”
일반인의 범죄라면 공소시효가 적용될 테지만, 퇴마 쪽의 범죄에는 그런 게 없다.
그런데 이 경우는 퇴마사가 일반인일 때 저지른 범죄다.
그럼 공소시효가 성립하는 건가, 하지 않는 건가.
내 말에 나하정이 답했다.
“처벌은 힘들 거에요. 하지만…신분이 강등되겠죠.”
“신분?”
“저처럼요.”
“아…”
즉 연수원의 C반, 사형수들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는 건가.
그렇다면…의외로 쉽게 끝날 수도 있겠군.
내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하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그럼요?”
“퇴마사는 귀한 인재에요. 그러니 이 여자가 속한 기관에서는 오히려 사실을 부정하려 들겠죠. 증거라고는 말뿐이니까요.”
나하정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퇴마사가 된 최정숙은 정말로 대기업에 입사해 있었다.
그리고 그 대기업의 이름은…다름 아닌 화인 그룹.
“제가 그쪽 전무님이랑 좀 친하거든요.”
최정숙은 이현아 전무가 대표로 있는, 화랑 소속의 퇴마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