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21
121.
화인 그룹 본사 건물 내부의 어느 사무실.
“최정숙 차장님.”
“…뭐야?”
그곳에서 최정숙은 자신의 자리까지 찾아온 어느 여성을 쳐다보지도 않고, 짜증스럽게 되물었다.
최근 어떤 사건 때문에 한창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 무례한 반응에도, 상대 여성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전무님의 호출입니다.”
이어지는 그 말에 최정숙은 아차 싶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차장님이라고 부르는 말에 당연히 직급이 낮은 부하 직원이라 생각했었건만.
뒤를 돌아보니, 자신을 찾아온 것은 진유나 대리였다.
물론 최정숙은 진유나보다 나이도 많고, 진유나보다도 회사 내의 직급도 높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진유나를 쉽게 대할 수 있는 직원은, 이 회사에 한 명도 없었다.
그녀가 화랑의 총책임자인 이현아 전무의 개인 비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그래서 이어지는 최정숙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는 달리 매우 부드러웠다.
“전무님께서 저를 부르셨다고요?”
“예, 따라오시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진유나는 말했다.
최정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최정숙은 화랑에서 근무한 지는 오래됐지만, 한 번도 전무와 독대한 적은 없었다.
그녀가 그리 뛰어난 퇴마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차장이라는 직급도 오래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은 것일 뿐.
주변에서는 차장에 어울리는 능력은 아니라고 수군대기도 했다.
하지만 최정숙은 그게 항상 불만이었다.
내가 뭐가 부족하다고.
그래서 그녀는 더욱 직급에 집착했고, 더 승진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다.
그 때문일까.
전무실로 향하는 길.
그녀는 괜히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최정숙은 조심스럽게 진유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전무님께서 저를 무슨 일로…”
“가보면 아실 겁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간결했다.
이에 최정숙은 진유나의 분위기를 살폈다.
하지만 저 로봇 같은 비서는 그 말투나 표정만 보고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
그래서 최정숙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진유나의 거만한 태도가 내심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불만을 꾹 참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찾아온 전무실 앞.
“전무님, 최정숙 차장입니다.”
“…들어오세요.”
커다랗게만 보였던 갈색 문이 천천히 열렸고, 최정숙은 홀린 것처럼 그 안으로 들어갔다.
같이 왔던 진유나 역시 전무실 안으로 들어가 경비원처럼 문앞에 섰다.
전무실 내부의 커다란 책상에는 이 방의 주인, 이현아가 있었다.
“어서 와요, 최정숙 차장.”
이현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맞았다.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최정숙은 헐레벌떡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전무님.”
“그래요. 갑자기 불러서 놀랐죠?”
자기보다 한참은 어린 이현아가 자연스럽게 하대했지만, 최정숙은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이현아는 화인 그룹 회장의 손녀이자, 외인기관 화랑의 실질적 주인.
그 압도적인 격차는 최정숙이 품고 있는, 능력에 대한 열등감조차 찍어누를 정도였기에.
“아닙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무님.”
그래서 최정숙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마치 조선 시대의 평민이 왕을 만난 듯한 태도.
하지만 이현아는 그저 고개를 한 번만 끄덕일 뿐이었다.
“오늘은 최정숙 차장의 경험을 확인하고 싶어서 불렀어요.”
“제 경험…이요?”
“우리 회사에 근무한지, 꽤 오래됐죠?”
“예. 10년 정도 됐습니다.”
최정숙은 그전까지 정규 기관인 LB 아카데미에 있었다.
그곳에서 경험과 퇴마 지식, 그리고 연차를 쌓아 화랑으로 이직한 것.
“그거 갖고 오세요.”
이현아의 말에 진유나는 작은 상자 하나를 챙겨 최정숙에게 내밀었다.
최정숙이 그걸 열어보니, 그 안에는 검은색의 팔찌 하나가 들어있었다.
“이건…”
“신기에요.”
“신기요?”
“오늘은 그걸 착용하고, 업무 하나를 처리해줬으면 해요.”
최정숙은 눈을 크게 떴다.
회사에서 신기를 지급하는 일은 자주 있지만, 이렇게 이현아에게 직접 하사받았다는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거기에 이걸 착용한 상태로 업무를 처리하라니.
짧은 시간에 머리를 굴린 최정숙은 이내 그 의도를 파악했다.
“이건…시험인가요?”
“시험? 맞아요. 시험이죠.”
이현아는 숨길 것도 없이 그렇게 답했다.
역시나.
그 대답에 최정숙에 머릿속에는 금방 더욱 밝은 가능성이 떠올랐다.
“승진을 위한…?”
이에 이현아는 그저 부드러운 미소만 지었다.
하지만 최정숙에게는 그것이 긍정의 의미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무가, 일개 차장을 1대1로 불러 신기까지 건네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럼 이만 가보세요. 안내는 진유나 대리가 해줄 겁니다.”
이현아의 축객령에 최정숙은 다시 한 번 깊게 고개를 숙이고, 전무실을 나왔다.
자신의 가치가 비로소 인정받은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오른손에 찬 팔찌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 신기의 효능은 아직 몰랐지만, 터무니없이 고급스러운 광택을 가진 물건이었다.
팔찌 위에 새겨진 이니셜은 T.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분명 엄청난 기능을 갖추고 있으리라.
“드디어…”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어느새 진유나가 운전하는 차량에 탑승해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최정숙은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몸을 떨고 있었다.
이런 식의 시험은 장기간 근무해왔던 그녀도 들어본 적이 없다.
도대체 자신에게 어떤 직책을 맡기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아예 퇴마 부서 하나를 통째로 내어주려는 건가.
그러면 최소 이사 직함을 달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이제 와서 그건 너무 뜬금없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자신은 지난 10년간, 이렇다 할 실적은 없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뭐가 있을까.
외국 지사?
“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최정숙은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 보니 최근 화랑이 인도와 남미, 그리고 동유럽에서 퇴마 단체 인증을 받은 후, 적극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게다가 이현아는 자신의 경험을 확인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생각할 것도 없다.
분명 자신을 외국 지사의 책임자로 보낼 생각이리라.
그 결론에 최정숙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갔다.
기왕이면 동유럽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차창 밖을 내다본 그녀는 차가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어디까지 가는 거야?”
최정숙의 입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반말이 흘러나왔다.
아까는 그렇게나 대단해 보였던 전무의 비서가, 어느새 하찮게 보였다.
“몇 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목적지가 어딘데?”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단호한 대답에 최정숙은 쯧-하고 혀를 찼다.
시험인 건 알고 있지만, 목적지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그 정도 융통성도 없는 건가.
“……”
그녀가 속으로 그런 불만을 쌓아가는 사이에도 차는 계속 달렸다.
그렇게 어둠이 내리깔린 도로를 얼마나 달렸을까.
“…뭐야.”
문득 최정숙은 주변 풍경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내 이곳이 어디인지, 겨우 떠올렸다.
여기는 그녀의 고향이었다.
내세울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저 시골 촌동네.
어렸을 때도 지금도, 그녀는 이곳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녀가 한때 다녔던 고등학교 건물이 차창 옆을 지나간다.
이에 최정숙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진유나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거의 다 왔습니다.”
“그러니까 어디 가는 거냐고!”
“조금만 기다리시죠.”
최정숙은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반복했지만 진유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이에 최정숙이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게 될 때쯤.
그들이 탄 차량이 한 저수지 인근으로 접근했다.
그러자 최정숙의 기세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
갑자기 조용해진 최정숙은 불안한 시선으로 도로를 바라보았다.
깜깜한 밤, 환한 차량의 라이트에도 앞은 그리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드문드문 설치된 가로등은 깜빡거리며, 당장이라도 꺼질 듯 흔들린다.
그런 상태에서 눈앞에, 저수지의 급커브 구간이 보였다.
“좀 천천히 가.”
최정숙이 말했다.
그러자 차량은 크게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 순간.
“왼쪽입니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내비게이션이 그렇게 말했다.
이에 최정숙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저 말 듣지 마!”
최정숙이 소리쳤다.
비록 차량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최정숙은 발작이라도 하듯 계속해서 소리쳤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의 말은 이어졌다.
“왼쪽입니다.”
여전히 내비게이션은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하지만 세 번째 음성이 반복되는 순간.
“왼쪽-”
쾅! 하는 소음에 내비게이션의 음성이 끊겼다.
운전하고 있던 진유나가 자신의 손으로 내비게이션을 내리친 것이었다.
“내비게이션이 고장 났나 보군요.”
“……”
그리고 진유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최정숙은 위에서부터 찌그러져, 완전히 화면이 나간 내비게이션을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보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이어지는 진유나의 말에 최정숙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
“예.”
“아무것도 없는 도로 한복판이잖아.”
“이곳이 맞습니다. 어서 내리시죠.”
진유나가 딱딱한 시선으로 최정숙을 노려보았다.
그녀를 강력히 재촉하는 듯한 그 시선에 최정숙은 내키지 않는 태도로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아, 이제 오셨네.”
도로 옆에서 누군가 걸어나왔다.
그건…처음 보는 두 명의 경찰이었다.
* * *
“최정숙 씨, 맞으십니까?”
진유나와 함께 차에서 내린 여성을 보며 말했다.
꼬장꼬장하게 생긴 40대 후반의 여성.
그 머리 위에 뜬 레벨 역시 40대였다.
그러자 그녀는 그 첫인상 그대로 날카롭게 반응했다.
“너희는 뭐야?”
“특수본의 강진우 경감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나하정 의경이고요.”
그 말에 최정숙은 나를 지나 내 뒤에 서 있던 나하정을 흘겨보았다.
의경이라는 말 때문일까.
그리 좋게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저수지는 잘 아시죠? 고등학생 때까지는 저쪽 마을에서 사셨고.”
“뭐…?”
내 질문에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한 건지, 최정숙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나에게서 고개를 돌려, 진유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하자는 거야?”
“경감님에 질문에는 성실히 대답하라는, 전무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진유나의 말에 최정숙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최정숙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여기 살았어.”
“그럼 이성화라는 이름은 아십니까?”
“몰라.”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는 내 질문을 부정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김희은 씨는 아시죠?”
그 말에 최정숙은 눈썹을 꿈틀거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실은 이성화 씨의 시신이 최근 이 저수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김희은 씨는 자신과 동네 친구 몇 명이 그녀를 죽였다고 자백했고요.”
“……”
“그런데 그 동네 친구 중에, 최정숙 씨의 이름이 있던데요.”
“나는 모르는 일이야.”
예상대로 최정숙은 혐의를 부인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럼 마에 대한 개안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정식으로 제출된 자료에는 삼촌의 사고사에 연루되었다고 되어 있지만, 조사해보니 삼촌분께서는 지병으로 인한 심부전으로 돌아가신 걸로 되어 있어서-”
“그만!”
최정숙이 소리쳤다.
그녀는 더 듣기 싫다는 듯 나에게서 몸을 돌려, 진유나에게 다가갔다.
“이러려고 날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겨우 저따위 말이나 믿고, 나를 살인자 취급이나 하려고 데려왔냐고! 이게 다 전무님 뜻이야? 증거도 하나 없이 이렇게 죄 없는 사람을 몰아가라고 그래?”
최정숙은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이에 진유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무님은 끝까지 최정숙 차장을 믿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래서 그 팔찌를 주신 겁니다.”
“팔찌…?”
최정숙은 그녀가 오른팔에 낀 팔찌를 바라보았다.
검은색이지만 팔찌 자체는 은은한 보라색을 발하고 있었다.
레어 급의 신기.
그리고 아이템 창에 표시된 그 이름은…
“그건 티시포네의 전승이 담긴 신기, 티시포네의 족쇄입니다.”
티시포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복수의 세 여신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티시포네가 담당하는 전승은 살인자에 대한 성스러운 복수.
이름부터가 살인에 복수하는 여인이라는 뜻을 가진 티시포네는, 모든 살인에 대한 복수를 관장하며 이를 실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팔찌는 사람을 죽인 령과 괴이를 상대할 때, 그 희생자의 유족이 사용할 경우 강력한 힘을 부여해주는 귀중한 신기입니다. 다만…”
묵묵히 진유나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사이 최정숙은 그 팔찌에 손을 댔다.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그 팔찌를 빼려고 했지만,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정 반대의 효과를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살인자가 자신이 죽인 인간의 한이나 령을 상대하게 된다면, 착용자의 모든 능력을 앗아가게 되죠.”
“뭐야, 이거 왜 안 빠져!”
“그러니 최 차장님께서는 부디…전무님의 믿음에 보답해주시길.”
“뭐…?”
최정숙이 아연한 표정으로 되물은 그 순간이었다.
진유나가 최정숙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호신술이라도 배운 것처럼 능숙하게 최정숙을 들더니, 그대로 저수지를 향해 집어 던졌다.
“뭐하는 짓이야아악!”
거기에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못한 최정숙은 그저 비명을 지르며 그 검은 수면으로 낙하했다.
그리고 최정숙이 경악과 함께 바라본 저수지의 바닥에는,
“……”
소리도 없이 섬뜩한 미소만 짓고 있는 지박령이 하나 있었다.
풍덩-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최정숙이 저수지에 빠졌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사실 위험할 건 없었다.
지박령의 레벨은 고작해야 20 전후.
그에 비해 퇴마사인 최정숙은 40이 넘는다.
아무리 지박령에 물귀신이라고는 해도 2배가 넘는 레벨 차이를 쉽게 뛰어넘을 수는 없는 일.
그러니 최정숙이 정말 무고한 퇴마사라면.
아무 일 없이 지박령을 퇴마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나올 터였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지박령에 의해 물속으로 끌려간 최정숙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시각.
“……”
다시 수면에 나타난 것은 조금 전의 그 지박령 뿐이었다.
이제 최정숙은 물론, 그녀의 존재를 나타내던 레벨 표시조차 어디에도 없다.
그저 어디선가 터져 나온 막대한 양이 핏물만이, 이미 복수가 끝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
자신의 영역인 물속에서 나온 지박령은 수면에 서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 손에 들린 것은 티시포네의 족쇄.
귀한 건 줄은 알아서 일부러 가지고 와준 건가.
“저건 제가 가져올게요.”
나는 움직이려는 진유나를 물리고, 저수지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지박령에게 다가가 그것이 건넨 팔찌를 넘겨받았다.
나는 그걸 진유나를 향해 던졌고, 이어서 인검을 꺼내 들었다.
이대로 지박령이 남아있어 봐야, 갖고 있던 한이 변질될 뿐이었다.
결국 얼마 안 있어 존재 자체가 해악이 되는 진짜 악령이 되겠지.
그리고 그런 미래를 아는 걸까.
“……”
내 검을 보고서도 지박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복수가 끝났으니, 자신 역시 사라질 때라고 말하는 듯.
그리고 그 희망대로,
쇄액!
청명한 소리와 함께 내 검이 영체를 갈랐다.
지박령은 검이 닿는 그 순간까지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그 검에 몸을 맡겼다.
기괴하게 뒤틀려 있던 하나의 인영이 먼지처럼 흩어진다.
“…끝났네요.”
나하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마침내 어둠이 깔린 저수지에는 고요한 침묵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