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22
122.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도로 위로 올라가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진유나가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는 해도 최정숙은 화랑 소속의 퇴마사였을 텐데.
진유나는 그녀의 죽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반응이었다.
물론 화랑에 전후 사정을 알리고, 최정숙을 이곳으로 불러와 달라고 부탁한 건 나였다.
하지만 그런 나도 화랑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여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최정숙의 죽음은 화랑의 손해와 연결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이래도 화랑은 괜찮은 겁니까?”
그래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러자 진유나는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범죄가 사실이라면, 그녀는 죄수입니다. 그리고 죄수는 본래 폐사에 입사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랬다.
대기업 소속의 외인기관의 인사 시스템은 정규 기관만큼이나 까다롭다.
그래서 그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C반에 속하는, 고의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화랑에서는 취업 사기를 당한 셈.
“하지만 이미 죄수를 받아들인 이상, 무를 수도 없는 일. 그래서 전무님은 이 자가 정말 자신의 죄를 숨겼을 경우, 이를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친 것으로 판단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범죄의 증명과 그 처분을 지시하신 겁니다”
처분이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정숙이 죄수의 신분으로 강등당한 그 순간.
그녀의 생사여탈권은 그녀를 받아들인 기관의 장, 즉 전무가 쥐게 되는 것이니.
즉 화랑에서는 취업 사기에 대한 본보기를 보인 것이었다.
“그렇군요.”
나는 그렇게만 답하며 나하정을 바라보았다.
같은 죄수 신분인 나하정에게는 기분이 뒤숭숭할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표정은 평소보다도 살짝 밝아 보였다.
하긴 나하정에게 중요한 건, 살인을 저지른 죄인이 죽었다는 것뿐이겠지.
“그럼 저는 이만.”
용무가 끝난 진유나는 유유히 차를 타고 돌아갔다.
우리 역시 더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기에 그날은 그대로 철수했고.
내비게이션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 * *
그로부터 몇 주 후, 금요일 저녁.
“슬슬 더워지네.”
사건 하나를 정리하고 곧바로 퇴근한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시각은 저녁 7시.
운 좋게 일은 일찍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그리 늦은 밤도 아니고 딱 여유가 있는 시간이었기에, 나는 켕켕이를 소환했다.
먹이를 주기 위해서였다.
“켕!”
“이제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오늘 마인을 처리하면서 얻은 혼백을 꺼내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구미호의 꼬리를 모으라는 서브 퀘스트가 생긴 이후.
켕켕이의 상태창에는 새로운 막대그래프가 나타났다.
그게 먹이를 줄 때마다 조금씩 차오르는 걸 보면, 아무래도 경험치를 표시하는 모양.
그리고 그 그래프는 지금 거의 다 찬 상태였다.
그야 퀘스트가 생긴 후에는 마인을 처리할 때마다 착실히 혼백을 추출해 먹이로 주고 있었으니까.
그 덕분일까.
“켕!”
마침내 오늘, 경험치 그래프가 다 채워지며 켕켕이에게 세 번째 꼬리가 생겼다.
밝은 빛과 함께 늘어난 또 하나의 꼬리.
그와 함께 퀘스트 버튼도 반짝이며 퀘스트의 갱신을 알려왔다.
– 선도성모의 신수인 상서로운 백여우의 꼬리를 모아 등선에 이르게 하기.
– 3개의 꼬리를 모을 때마다 추가 능력 개방
– 현재 요물화 개방. 인간화 진행 중…(3/6)
요물화 다음은 인간화인가.
하기야 9개를 다 모으면 신선이 된다고 하니, 그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겠지.
하지만 그럼 요물화는 뭐지?
그렇게 생각하며 켕켕이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거기에는 요물화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구미호가 가진 괴이로서의 전승을 재현한다.
화염을 다루며, 일시적으로 거대화하여 모든 신체 능력을 강화.
단, 요물화 상태에서는 괴이의 본능에 지배당해 이성을 잃는다.
이를 강화 및 제어하기 위해서는 산신의 힘이 필요하다.
“…광폭화 같은 스킬이네.”
아무래도 켕켕이가 위치 추적 능력을 넘어서, 전투 능력을 갖추게 되는 듯 보였다.
꼬리가 늘어나며, 어느새 레벨도 30으로 올라갔다.
저 정도면 잡령 정도는 알아서 치워줄 수 있을 테니 나쁜 건 아니지만.
제대로 쓰려면 산신의 힘이 필요한 듯 보였다.
하지만 산신의 힘이라니.
갑자기 저런 걸 어디서 얻지.
어디서 산신령이라도 찾아서 잡아야 하나 생각하던 그때.
마침 퀘스트 창에 있던 또 다른 퀘스트가 눈에 띄었다.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한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사방신 퀘스트.
그중에서도 백호에 대한 퀘스트였다.
“백호라…”
호랑이는 본래 산군이라 불리며, 전승 속에서는 산신의 면모를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백호는 그런 호랑이 중에서도 최상급의 신격.
그러니 이 백호의 분령을 얻을 수만 있다면 겸사겸사 산신의 힘을 얻는 것도 가능해 보이기는 했다.
다만.
“…면역이 애매하단 말이지.”
주작과 청룡, 그리고 현무는 각각 불과 전기, 얼음 속성을 사용한다.
그래서 스킬만 갖춘다면 이른바 속성 면역이 가능하지만, 백호의 경우에는 아니었다.
백호는 사방신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고 강인한 신체를 갖춘 탓에 완벽한 무투파에 속했다.
또한 음양오행에서는 강철을 주관하는 존재.
그때문에 백호만큼은 속성 면역 스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철저히 힘으로 찍어 누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데…지금의 나에게 그게 가능할까.
“……”
나는 내가 가진 스킬을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 정도면 되겠지.”
– 괴수 사냥꾼 : 짐승 계열 몬스터에게 100% 추가 데미지
사실, 라이칸스로프를 사냥하고 얻은 이 스킬을 제외하면 백호를 저격한다고 할만한 스킬은 없었다.
하지만 이 스킬이면 충분했다.
서로 직접 무기를 들고 벌이는 근접전이라면 그 상대가 인간이든 짐승이든,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럼… 내일 가야겠네.”
본의 아니게 휴일에 할 일이 생겨버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나를 보고 옆에 있던 켕켕이가 켕-하고 울었다.
다음날.
나는 백호 퀘스트의 화살표를 따라서 차를 움직였다.
주작이 제주도, 청룡이 울릉도였던가.
그래서 나는 내심 먼 곳까지 갈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뜻밖에도 백호의 신역이 있는 곳은 상당히 가까운 곳이었다.
“…여기였어?”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던 것은 서울에 있는 인왕산이었다.
산 아래에 있는 표지판을 보니, 경복궁을 감싸고 있는 좌청룡 우백호 중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이라고 한다.
정작 좌청룡은 울릉도에 있건만.
백호는 고맙게도 서울 안에 머물러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서쪽을 담당한답시고 서쪽 끝에 있는 이름도 모르는 섬에 있는 것보다야 인왕산에 있는 게 나았으니.
“흠…”
나는 곧바로 산을 올랐다.
역시 서울 한복판에 있는 산이라서인지, 휴일을 맞은 등산객들이 꽤 많이 보였다.
안 그래도 이제 막 본격적으로 따뜻해지는 시기.
외출하기 좋은 날씨이기는 했다.
그런 등산객들의 옆을 지나며 나는 금방 목적지에 도달했다.
화살표의 방향이 크게 꺾인 것은 인왕산의 범바위 근처였다.
이름부터가 호랑이 바위.
하지만 범바위를 자세히 봐도, 사실 어디가 호랑이를 닮았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건 이 근방에 백호의 신역이 있다는 말.
“…아래쪽인가.”
나는 화살표를 따라 등산로를 벗어났다.
그렇게 산길을 조금 더 내려가자, 숲 속에 뜬금없이 작은 호랑이 석상이 서 있었다.
그 높이는 약 1미터 전후.
회색의 돌로 만들어진 호랑이 석상 앞에는 같은 재질의 둥글고 납작한 판이 있다.
이건…그릇인가?
하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신역의 입구가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짐승?
아무래도 이 그릇에 제물을 바쳐야 하는 모양이었다.
상대는 백호니까…역시 고기를 원한다는 건가.
“갑자기 짐승을 어디서 갖고 오냐. 마트라도 가야 하나.”
나는 작게 혀를 찼다.
한우…까지는 필요 없고, 호주산이면 충분하겠지.
하지만 그 순간, 생각에 미치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켕켕이였다.
나는 영력을 사용해 이제 꼬리가 셋이 된 켕켕이를 불러냈다.
“켕!”
그러자 켕켕이가 기분 좋게 울며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켕켕이를 바칠 생각은 아니었다.
잠깐 그런 가능성을 떠올렸던 건 사실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보다 더 좋은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근처에서 동물 하나만 사냥해 와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인왕산이라도 산은 산이니 동물이 있을 터였다.
전에 멧돼지가 나왔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었고.
물론 켕켕이가 멧돼지를 잡아올 거라는 기대는 안 하지만.
제물에 특별히 조건이 붙지 않는 걸 보면, 참새 한 마리만 잡아와도 충분할 터였다.
“켕!”
내 말에 켕켕이는 쪼르르 산속으로 사라졌고.
얼마 안 있어 입에 무언가를 물고 다시 나타났다.
저건…다람쥐인가?
아니, 자세히 보니 그건 청설모였다.
“잘했어.”
나는 켕켕이를 몇 번 쓰다듬고, 그 청설모를 돌그릇 위에 놓았다.
그러자 석상 옆의 공간이 흔들리더니 이윽고 신역으로의 입구가 나타났다.
그 너머에서는 메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케엥…”
이에 켕켕이가 기가 죽은 것처럼 떨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백호는 짐승들의 왕이니, 여우인 켕켕이 역시 그 신역의 위압에 영향을 받는 거겠지.
나는 켕켕이의 소환을 해제하고, 신역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
쩌렁쩌렁한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백호의 신역은 역시, 산이었다.
그리고 마치 나를 위협하는 듯한 그 소리는 지금 높은 산꼭대기에서 들려왔다.
그렇다는 건…저기까지 올라오라는 건가.
“후우…”
눈으로 대충 그 경로를 확인한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백호의 신역은 바위와 절벽, 그리고 숲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 산세가 지극히 험해 보였다.
제대로 된 등산로는커녕, 절벽에서 떨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
게다가 그 높이는 수백 미터도 넘어 보였다.
“쯧…”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도 없었기에, 나는 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은 바위가 드문드문 앞길을 가로막는 급경사 코스였다.
일반적인 등산이었다면 꽤 위험한 길이지만 나에게는 그리 힘들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길.
그렇게 한동안 산을 오르자, 갑자기 넓은 평지가 나왔다.
갈색의 갈대가 논처럼 펼쳐진 땅.
그 위에서는,
“캬아아앙!”
커다란 스라소니 한 마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크기는 척 봐도 황소만큼이나 크다.
절대 정상적인 몸집의 스라소니가 아닌 놈은 나에게 털을 바짝 세우며 적의를 표하고 있었다.
레벨은 37.
괴이…라기보다는 백호가 만들어낸 식신 같은 건가.
“흠…”
이에 나는 검을 뽑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이전에 주작과 청룡의 신역이 그랬듯이, 백호의 신역이 나에게 내는 시험이었다.
산을 올라라.
그리고 적을 만나면 쓰러뜨려라.
다른 시험보다는 훨씬 직관적이고, 단순한 시험.
청룡의 시험처럼 이상한 퍼즐을 푸는 것보다야 나에게는 이게 더 좋았다.
“그래, 시작하자고.”
“캬아아아!”
내 말과 동시에 스라소니가 움직였다.
놈은 그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고양잇과 특유의 스피드로 나를 덮쳐왔다.
그 속도가 나름 빠르긴 하다만.
내가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촤아악!
솥뚜껑만 한 놈의 앞발을 피하고, 그 직후 뱃가죽을 검으로 베어냈다.
그저 평범한 스라소니라면 이대로 내장을 쏟아내며 쓰러졌겠지만.
“캬아!”
놈은 식신이라서인지, 뱃가죽이 갈라진 채로 다시 공격해왔다.
날카로운 이빨이 박힌 단단한 턱이 내 목을 노린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검으로 그 턱을 조준했다.
그리고 검광이 한 번 번뜩였다.
털썩-하고, 벌린 입부터 몸이 세로로 양분된 스라소니의 식신이 겨우 땅바닥으로 쓰러진다.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은 식신의 몸은 이윽고 연기처럼 허공으로 사라졌다.
“……”
나는 그걸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산 위로 향했다.
갈대가 펼쳐져 있던 평지를 지나자, 이번에는 까마득한 절벽에 난 좁은 길이 보였다.
그 후는 그와 같은 시험의 반복이었다.
거친 산길을 지나거나,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거나, 눈으로 덮인 바위를 지나치면 항상 평지가 나왔고.
거기에는 각종 짐승이 하나씩 수문장처럼 서 있었다.
그 수문장들은 종류도 다양했다.
처음의 스라소니를 시작으로 멧돼지, 늑대, 표범, 곰 등 온갖 맹수가 등장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연히 위로 올라갈수록 맹수의 크기는 커졌고 레벨 역시 높아져서.
여섯 번째 수문장인 반달곰은 그 레벨이 70에 달해 있었다.
“후우…”
그 70 레벨의 반달곰을 쓰러뜨린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놈의 힘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 가죽 역시 강철처럼 단단했다.
말 그대로 중상급 괴이 하나를 온전히 사냥한 것과 같은 피로감.
그나마 괴수 사냥꾼이라는 스킬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마지막인가?”
나는 흩어져 가는 반달곰의 형상 뒤쪽으로 난 계단을 보며 말했다.
산꼭대기는 이제 금방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거친 산길과는 달리, 그 순백색의 계단은 그 산꼭대기로 올곧게 이어져 있었다.
하늘에는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 달이 내뿜는 월광 속에서, 나는 검은 바위에 난 흰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
그렇게 도달한 산꼭대기.
그곳에 있는 것은 하얀 돌로 만들어진 제단이었다.
잘 닦인 원형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은 4개의 기둥.
그 기둥 위에는 신역의 입구에 세워져 있던 호랑이의 석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제단의 중앙에는,
“——!”
용맹하게 울부짖는 백호의 분령이 보였다.
80이 넘는 레벨.
그 백호와 나 사이에서는 짧은 말조차 필요 없었다.
말이 통할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나는 그저 검을 들고, 놈에게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