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24
124.
다음주.
나와 최은영은 페루로 떠나기 위해 인천 공항에 와 있었다.
다행히 저녁 비행기인지라, 지난번과는 달리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이번 출장의 안내역을 맡은 인원과 합류했다.
“이번에는 젊은 사람들이네. 반가워요, 송윤주라고 해요.”
송윤주라고 자신을 소개한 것은 50대 정도의 여성이었다.
겉보기에는 푸근한 동네 아줌마 같은 인상.
또한 그녀는 퇴마 경찰들의 남미 부근 출장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경찰 소속은 아니라고 밝혔다.
“나도 전엔 퇴마 경찰이었는데, 지금은 퇴직해서 소속은 따로 없어요. 프리랜서 같은 거지, 뭐. 사실 나는 애들도 다 컸겠다, 그냥 쉬려고 했는데 경찰에서 하도 부탁을 해서-”
송윤주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남미의 출장을 지원할 마땅한 인원이 없어, 경찰의 요청으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 나타난 레벨은 52.
단순한 안내역치고는 상당히 높은 레벨이었다.
지금 보면 그냥 말이 많은 아줌마지만.
원래 퇴마 경찰이었다는 게 허튼 말은 아닌 모양이다.
한편 그녀는 최근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자기 아들 자랑까지 하다가, 문득 손뼉을 쳤다.
“아이고, 내가 말이 너무 많았네. 그보다, 메일은 받았죠? 뭐뭐 챙겨 오라고 내가 그랬잖아.”
그건 송윤주가 페루 날씨나 지역 상황 등을 고려해 옷이나 전자 기기 등.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을 일러준 메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 챙겨 왔습니다.”
“저…저도요!”
나보다 훨씬 커다란 여행 가방을 가져온 최은영 역시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가방 크기부터, 첫 외국 여행에 들뜬 것이 훤히 보였다.
송윤주는 그런 최은영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잘하셨어. 가끔 메일 같은 거 보내도 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다니깐? 아, 고산병 같은 건 없죠? 하긴 다들 퇴마사니까 괜찮겠네.”
퇴마사들은 고산병이 없는 건가?
새로운 지식이었다.
“그럼 이제 갑시다. 비행기 시간 늦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우리는 출국장으로 향했고, 곧 페루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30시간이라는, 만 하루가 넘게 걸리는 지루한 비행시간.
나는 그 사이 송윤주에게 비행기 표에 적힌 목적지에 대해 물었다.
“쿠스코 국제공항이 어딥니까?”
“쿠스코는 마추픽추에서 그나마 가까운 도시에요.”
사건의 현장, 그러니까 최근 발견되었다는 유적지는 마추픽추 근처에 있었다.
물론 근처라고는 해도, 수십 Km 이상 떨어져 있다는 무슨 산꼭대기라고 했었는데.
다행히도 마추픽추 자체가 세계적인 유적지이기 때문인지, 그 근처 도시에 공항이 있다는 듯했다.
“쿠스코에서는 가깝나요?”
“거기서도 멀어요. 호텔까지 가는 데도 차 타고 몇 시간은 가야지. 거기다, 이번에 발견된 유적지 간다면서?”
“예.”
“그런 데는 차도 안 다녀요. 산도 좀 타야 할걸?”
절로 한숨이 나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충고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기다 이번에 가는 곳, 어떻게 발견된 건지는 들었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유적지의 발견 과정까지는 크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기에.
그러자 송윤주는 신나서 말을 이었다.
“글쎄, 거기가 원래는 산봉우리 근처라 만년설에 막혀 있던 동굴이래요. 그런데 지구 온난화 때문에 기온이 높아져서 그 얼음이 몽땅 녹아버리면서 발견됐다네? 그러니 얼마나 높이가 높겠어요? 산봉우리, 그것도 안데스 산맥의 산봉우리인데. 사실 우리 같은 사람 아니면 목숨 걸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야.”
호호-웃으며 송윤주는 말했다.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라.
그렇게 들으니 새삼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떤 곳인지, 이제야 실감이 들었다.
거기…가끔 등산가들이 올라가다가 죽는, 그런 곳 아니었던가.
“……”
지금까지의 산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뜻.
그 때문에 내 표정은 절로 굳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송윤주는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고.
그녀가 겨우 조용해진 것은 기내식이 나오고 나서였다.
그렇게 지루한 30시간 후.
쿠스코 공항에 도착하니 이곳은 딱 점심시간이었다.
“와…”
공항을 나선 최은영이 그런 소리를 냈다.
내 눈에는 그저 짙은 푸른색의 작은 공항 건물만 보였지만.
그녀는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이쪽으로 와요! 우선 호텔부터 들려서 짐 맡기고 움직입시다.”
어느새 차량에 탄 송윤주가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이동해 도착한 호텔.
그런데 이름만 호텔이지, 생긴 건 여관 같이 생긴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공항에 도착한 이후로 스마트폰으로 줄곧 사진만 찍고 있던 최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여기가…호텔인가요?”
“좀 허름하죠? 어쩔 수 없어. 이 산속에서 이 정도면 호텔이지, 뭐.”
그건 송윤주의 말대로였다.
마추픽추 근처에 있다는 호텔은 이미 산맥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만날 사람이 있어요.”
“만날 사람이요?”
“페루의 퇴마사. 아, 마침 저기 오네.”
송윤주가 어떤 남자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아는 척을 하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페루 정부 공인 퇴마사에요. 이름은 카를로스. 이번 사건에서 우리를 지원해 줄 페루 쪽 사람이에요.”
30대 정도로 보이는 카를로스는 쾌활하게 웃으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어차피 말은 통하지 않으니, 나는 그저 웃으며 그 악수를 받았다.
송윤주의 말에 의하면 이 사람이 한국 정부에 의뢰를 요청한 페루 정부의 대리인이며, 이 호텔이나 차량을 제공해준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카를로스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바로 현장으로 출발했다.
당연히 송윤주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서였다.
잠시 도로를 타고 달리던 그녀는, 곧 도로조차 없는 산길을 운전하기 시작했다.
“좀 흔들릴 거에요.”
그리고 그녀의 경고대로 차는 심하게 흔들리며 산길을 올라갔고.
한참 후 우리를 이름 모를 산봉우리 아래에 도달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해요. 이 앞에는 차가 굴러다닐 만한 곳이 아니거든.”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였다.
호텔 주변만 해도 사방으로 높게 솟은 봉우리가 보였는데.
하지만 여기는 그 이상이었다.
새하얀 봉우리에는 구름이 안개처럼 지나고 있었고, 그 위로 향하는 길에는 만년설이 깔려있다.
퇴마사의 능력이 있으니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지만.
언젠가 북쪽 산맥에서 몬스터의 대군과 싸웠던 기억이 얼핏 지나가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보기 좋죠?”
“…공기는 좋네요.”
“그렇죠? 우리나라 산도 좋지만, 역시 여기는 규모부터가 달라서 경치가 장관이거든.”
송윤주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고, 최은영은 사진 찍기에 바빴다.
“이쪽이에요.”
그리고 송윤주는 우리를 그 위로 안내했다.
싸늘한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한국의 봄 날씨와 비슷했지만, 여기는 완전히 한겨울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걸어가자 비로소 사건 현장이 보였다.
더욱 위로 향하는 절벽 한가운데 나 있는 동굴 입구.
“저긴가.”
아직 동굴 입구의 일부는 눈에 파묻혀 있었다.
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은 모습.
하지만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넓이는 충분했기에 우리는 곧바로 그 안으로 진입했다.
“여긴…”
동굴의 입구는 자연 동굴이었으나 조금 들어가니 유적지의 본색이 드러났다.
내부로 통하는 벽과 천장이 어느 시점부터 돌을 쌓아 고정한 형태의 인공물로 만들어져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조심하세요. 안쪽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 말고는 알아낸 게 없으니까.”
“제, 제가 소환수를 사용할게요.”
진중하게 변한 송윤주의 경고에 최은영이 나섰다.
그녀는 자신의 스케치북에서 둥둥 떠다니는 커다란 눈알 괴물, 와쳐를 소환했다.
와쳐는 내가 알려준 정찰용 몬스터로, 시야를 확보하는데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낼 수도 있어 이런 동굴을 조사하는 데는 딱 좋은 놈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와쳐를 앞세우고 유적지 내부로 진입했다.
작은 입구와는 달리 안쪽으로 이어지는 복도는 상당히 깊었다.
그리고 그런 복도의 양옆에는 제단이 놓인 방이 있었는데.
그 제단 위에는 바짝 말라붙은 제물이 있었다.
“미라…?”
제단마다 하나씩, 작은 체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그걸 본 송윤주는 마치 학자처럼 말했다.
“인신공양의 희생자들이네. 이런 설산의 동굴에서 동사한 채로 발견되는 미라는 주로 잉카 신화에 등장하는 산의 신, 아푸에게 바쳐진 아이들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까?”
“좀 이상해서 그래요. 잉카 유적지 중에 이런 형태의 유적은 거의 없거든.”
그녀는 제단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두꺼운 눈에 파묻혀 그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던 제단에는 아직 과거에 새겨진 글자나 문양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송윤주는 그걸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이 문양도 아푸와는 상관이 없어. 이건 비라코차나 인티도 아니고…”
비라코차는 잉카 신화의 창조신이자 주신, 그리고 인티는 태양신을 칭하는 말이다.
잉카 문명에서는 가장 크게 숭상받는 두 신이기에, 그와 관련된 유물이나 유적지 역시 많은 편.
하지만 송윤주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그 둘과 연관이 없는 듯 보였다.
“아가씨. 여기 와서 이것 좀 찍어 봐요.”
“네…네?”
“왜, 아까 사진 많이 찍었잖아. 아무래도 이건 현지 퇴마사한테 물어봐야겠어.”
최은영은 스마트폰을 들고 송윤주의 지시에 제단 여기저기를 사진으로 찍었다.
그러던 중.
“음?”
내 눈에 무언가 눈에 띄었다.
아직 어둠에 휩싸여 있는 유적지의 더 안쪽.
그곳에서 48이라는 레벨 표시가 보이고 있었다.
“…뭐가 옵니다.”
내 말에 방을 비추고 있던 최은영의 와쳐가 움직였다.
와쳐는 앞장서서 안쪽으로 향하는 복도를 비췄다.
그러자 그곳에 보인 것은, 일그러진 커다란 살점 같은 괴물.
그것은 짧은 네 다리로 땅을 기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으아아앙!”
빛이 비추자,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은 소음을 냈다.
“힉…!”
최은영이 그걸 보며 숨을 삼켰다.
이세계에서 본 살점 골렘이 생각날 정도로 괴상하게 생긴 생김새 때문이었다.
“저건…”
“뭔지 아세요?”
“페루의 괴이 중 하나에요. 악마가 갓난아이를 집어삼키면 태어난다는 괴물인데. 아이고, 여기에는 저렇게 어린 것도 바쳐졌었나 보네.”
송윤주는 한숨처럼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머리가 비대하게 커진 아기의 모습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빼 들었다.
“저건 어떤 식으로 공격합니까?”
“육탄 공격이 특기에요. 저래 보여도 힘이 꽤 세거든. 그리고 울음소리도 조심해야 하고, 저 커다란 머리는 함정이에요. 진짜 약점은 그 뒤통수에 있는 커다란 벌레고. 또-”
이어서 그녀는 괴이에 대한 정보를 쏟아냈다.
과연 남미의 전문가답게 그 내용은 충분히 도움이 될 정도로 상세했다.
“이, 이건 제가…”
“됐어. 여기서는 깨끗하게 처리해야지.”
나는 나서려는 최은영을 뒤로 물렸다.
그녀의 소환수라면 능력치가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그 어떤 소환수를 쓰던, 이곳에서의 전투에 적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은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 유적지.
그래서 최대한 깔끔하게 놈을 잡아내는 것이 중요했고, 그런 일이라면 역시 내 몫이었다.
저 정도의 괴이라면 그저 칼질 몇 번에 끝낼 수 있을 테니.
“최 순경은 불이나 잘 밝혀줘.”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하며 괴이에게 돌진했다.
그러자 괴이는 요란하게 울어 재끼며 나를 향해 아귀처럼 달려왔다.
피둥피둥 살찐, 짧지만 커다란 손.
그것이 나를 짓누르기 위해 위에서부터 떨어졌다.
쾅!
놈의 공격은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지만, 송윤주의 말대로 괴이의 힘은 상당했다.
단번에 땅바닥이 일부 내려앉고, 동굴의 천장이 흔들릴 정도.
이대로 계속 괴이가 날뛰게 두었다가는 유적지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기세였다.
“쯧…!”
나는 혀를 차며 검을 내뻗었다.
화염도, 전격도 깃들지 않은 순수한 검격.
그것이 괴이의 짧은 두 팔을 동시에 베어냈다.
“으아아아앙!”
그러자 괴이는 그 커다란 몸뚱이에서 시뻘건 피를 쏟아내며 울부짖었다.
놈은 발작하며, 이번에는 몸 전체를 굴려 나를 짓누르려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나의 두 번째 검광은,
촤악!
단번에 그 두꺼운 몸뚱이를 통째로 베어 갈랐다.
지름만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살덩이가 양옆으로 갈라진다.
그러자 비로소, 송윤주가 약점이라고 지목했던 뒤통수의 벌레가 보였다.
그것은 기생충처럼 생겨서는, 저 두꺼운 살점 안을 파고들어 비대한 몸을 조종하고 있었다.
“기분 나쁘게도 생겼네.”
나는 바로 검을 뻗어 그 기생충을 조각냈다.
그러자 겨우 살점 괴물은 움직임을 멈추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금방 조용해진 동굴 속에서 송윤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이고, 강진우 경감이라고 했죠? 실력이 대단하시네!”
그녀는 손뼉까지 치며 괴이를 쓰러뜨린 나를 향해 말했다.
“이거 원래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게 아닌데. 진짜 수고했어요.”
“수, 수고하셨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최은영과 송윤주의 말에 나는 손을 내저었다.
쓰러진 괴이의 뒤쪽.
또 다른 레벨 표시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직 안 끝났어요.”
그 뒤로는 한동안 전투의 연속이었다.
예상대로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수백 년 동안 묻혀 있던 이 유적지에는 그만큼 많은 령과 괴이가 들끓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미로와 같은 구조 때문에, 순간순간 마역에 들어온 게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대신 그리 강한 적은 없었기에,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전진할 수 있었고.
마침내 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문?”
그건 아래를 향해 45도 정도의 각도로 박혀 있는 문이었다.
크기는 높이가 2미터, 폭은 그 절반 정도 되는 석문.
불길한 검은색의 돌로 만들어진 그것은 그 위에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런 문은 처음 보는데…?”
“그거, 만지지 마세요.”
나는 그 문으로 다가가려는 송윤주를 말렸다.
그러자 송윤주가 나를 바라보았다.
“왜요, 뭐가 있어요?”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평범한 유물이 아니었다.
내 눈에 보이는 그 석문은 사방으로 검은빛을 내뿜고 있었다.
즉 저 문이 통째로 귀물이라는 뜻.
그리고 이를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거 저주받은 상태입니다.”
“뭐라고요?”
내 말에 송윤주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 저주받은 문을 가만히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