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26
126.
“허…”
나는 황제의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놈은 화려한 황금 옥좌 위에 앉은 채, 턱까지 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거만하던지.
마치 미라라는 괴이가 아니라, 멀쩡히 살아있는 인간을 보는 듯했다.
특히 이세계에서 봤던 왕족들이 떠올랐다.
그놈들도 딱 저 꼬락서니로 나를 바라보다가, 결국 나한테 그 모가지가 다 잘려나갔었는데.
그렇게 옛날 생각을 잠깐 떠올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이따위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
나는 그 미라의 무장을 살폈다.
놈의 모습은 미라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만한, 하얀 붕대로 둘둘 감긴 이집트의 미라와는 사뭇 달랐다.
잉카 황제의 미라는 그 흉한 피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
몸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화려한 황제의 의복을 입고 있었다.
붉은 깃털이 박힌 황금 투구와 복잡한 모양의 튜닉, 그리고 한 손에는 잉카 황제를 상징하는 금빛 도끼 모양 홀까지.
그 모두가 상당한 가치의 유물이자, 신기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이세계의 한 마족이 떠올랐다.
“…리치인가.”
멋들어진 옷을 입은 시체라는 점을 빼고도, 미라의 붉은 안광은 유독 리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렇게 잠시 나와 마주 보던 놈은 돌연 자신의 홀을 위로 치켜들더니, 땅을 가볍게 내리쳤다.
그러자 퍽-하는 소리와 함께 알현실의 바닥을 뚫고 무언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뼈만 남은 손.
이어서 그 손은 땅을 짚고 제 몸을 일으켰고, 곧 무기를 든 해골이 땅속에서 기어나왔다.
그 모습에 송윤주가 소리쳤다.
“저건 잉카 정예병의 갑옷이에요. 황제가 병사들을 불렀나 봐!”
그녀의 말대로 첫 해골을 시작으로 곧 수많은 해골들이 땅속에서 기어나왔다.
순식간에 알현실을 채우는 해골 병사들.
그 병사들의 레벨은 대부분 30 전후였고, 간간이 섞인 장군급 해골들은 50이 넘었다.
게다가 그 숫자는 전부 수십에 이르고 있어, 저것들을 전부 상대하려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리라.
하지만 당연히도, 나는 그걸 전부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황제라도, 왕은 왕이니까.”
놈이 해골 병사를 불러낸 것은, 그가 잉카의 황제이기에 가질 수 있는 권능이다.
그리고 마침 나에게는 그런 황제의 전승을 무효화하는 스킬이 있었다.
바로 .
모든 왕권에 얽힌 전승을 부정하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그 스킬은 발동과 동시에, 놈이 가진 왕의 격을 상실시켰다.
“…!”
뭔가 이상함을 알아챈 걸까.
그 순간, 미라의 붉은 안광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놈이 기껏 불러냈던 해골의 군대는 일제히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뼈가 가루처럼 부서지며, 해골들은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쿵! 쿵!
그 모습에 곧바로 미라는 몇 번이나 자신의 홀로 땅을 두드렸지만, 당연히 해골 병사들이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부하들이 다 사라져서 어쩌나.”
나는 그렇게 이죽거렸다.
하지만 놈은 그럼에도 옥좌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대신 그 황금 도끼 홀이 찬란한 빛을 일으켰다.
왕의 격을 상실했음에도, 놈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전승이 있었다.
그건 바로 황제 본인이 태양신 인티의 후손이라는, 신격에 얽힌 전승.
그리고 그 전승대로 홀은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자 땅이 흔들렸다.
지하 궁전이 무너질 것처럼 떨리더니, 이번에는 해골이 아닌 흙과 모래로 빚어낸 병사들이 서서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또…?”
나는 그 진흙 골렘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잉카 신화의 태양신 인티는 창조신인 비라코차와 바다의 여신인 마마코차의 자식이다.
그리고 그 인티의 후손인 황제는 잉카 신화의 모든 신과 소통하여, 그 권능으로 제국을 다스렸다고 한다.
또한 잉카 신화는 커다란 산이나 바위는 물론, 오래된 물건이나 별자리에도 정령과 신격을 부여하는 다신교.
즉 신과 관련된 전승은 저 황제 미라가 비단 태양만이 아닌, 만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권능을 허락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저 진흙 골렘들은, 인티의 남매이자 대지의 여신인 파차마마의 권능이리라.
그러니까… 나를 앞에 두고서도 끝까지 제 옥좌에서 일어나지는 않겠다는 건가.
“그 꼴은 못 보지.”
나는 검을 들고 튀어 나갔다.
이제 막 완성된 몇몇 진흙 병사들이 내 앞을 막아섰지만, 그것들을 베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순식간에 지근 거리까지 다가온 나를 보며 황제는 황급히 또 다른 권능을 사용했다.
땅에서부터 솟아오른 황금 창 수백 개가 가시나무숲처럼 미라와 내 사이를 가로막는다.
황제가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진.
지하 세계와 광물의 지배자인 수파이의 권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날 상대로는 명백한 오판이었다.
금속을 제어하는 권능은 단지 놈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
“…!”
시야 내의 금속을 조작하는 백호의 권능이 황금 창을 뒤흔들었다.
그러자 창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씩 뽑혀, 공중으로 떠오른다.
잡고 있는 자의 흔적도 보이지 않건만.
이윽고 그 창끝은 무엄하게도 황제를 조준했다.
황제가 스스로 부른 방진은 어느새 자신을 위협하는 수백의 화살이 되어 있었다.
“…이런 느낌인가.”
나는 그 황금 창들을 제어하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실체가 있기 때문일까.
자신의 손을 대지 않고, 동시에 여러 개의 물체를 조작하는 것은 불이나 전기를 제어하는 것과는 그 조작감이 확연히 달랐다.
게임으로 치면 동시에 여러 유닛을 조작하는 느낌으로, 훨씬 더 정신이 없다.
하지만 그것들을 일제히 쏘아내는 것만큼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래도 앉아있을 수 있을지 보자고.”
쐐애애액!
수백의 투창이 허공을 가르며 황제를 향해 날아갔다.
마치 예술품처럼 조각된 황금 창.
그 황금빛 소나기는 그대로 황제의 옥좌와 그 옥좌가 놓여 있던 단상을 기관총처럼 폭격했다.
그러자 한때 황제의 옥체를 가리고 있던 흰 천은 조각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뜯겼고.
주변의 진흙 병사들은 힘없이 꿰뚫려 부서져 내리며 난장판을 연출했다.
그리고 마지막 투창이 옥좌의 한가운데를 꿰뚫었을 때.
“오…?”
그곳에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은 황제의 미라, 단 하나뿐이었다.
그저 냅다 던졌을 뿐인 투창의 폭격.
하지만 그 숫자만큼은 실로 폭력적이었기에 황제 역시 무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설마 놈의 옷깃 하나 상하게 하지 못했을 줄이야.
의외로 무술에 소양이 있는 건가.
그렇게 나는 속으로 황제 미라를 칭찬했다.
그러나 놈은 그 칭찬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
옥좌마저 부서지며 마침내 제 다리로 땅을 밟고 선 그것은 썩어서 없어진 성대 때문에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그 붉은 안광에서만큼은 강렬한 분노가 느껴졌다.
이윽고 그 황금의 창들은 이내 권능이 다한 것인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렇게 장애물이 사라지자,
쾅!
황제의 미라는 바닥을 거칠게 박차고, 예고도 없이 나에게 돌격해왔다.
그 황금 도끼 홀이 번뜩이는 번개처럼 위에서부터 내려왔다.
챙!
검과 홀이 부딪혔다.
홀은 일반적인 무기도 아니건만, 꽤 예리한 일격이었다.
내가 알기로, 잉카 황제에게 직접적인 무도에 관련된 전승은 없는 걸로 아는데.
“조심해요! 잉카는 제국이었어요!”
그때 송윤주가 나에게 힌트를 던졌다.
제국이라.
어찌 생각하면 그저 당연한 소리였지만, 그 뜻을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잉카는 남미 일대를 지배하던 거대한 제국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처음부터 잉카가 제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잉카 역시 그 시작은 여느 제국이 그렇듯, 이 페루 지역의 작은 나라에서부터 시작했을 테고.
그렇기에 잉카의 역대 황제 중에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건 바로 정복 군주.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잉카를, 제국의 위치까지 끌어올렸던 황제.
그런 정복 군주의 미라라면 최소한의 무위는 갖추고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으리라.
하지만.
“흠…”
놈과 몇 합을 주고받은 나는 금방 그 수준을 파악했다.
나름대로 괜찮은 움직임이지만, 그뿐.
무신조차 도달하지 못한 나에게, 정복 군주 수준의 무위는 그저 잘 훈련된 병사 정도로만 보였다.
“그럼 끝을 내자고.”
미라의 홀을 여유롭게 쳐내기만 하던 내 검의 움직임이 일변한다.
그리고 미라가 그 변화를 눈치채기도 전에.
한 줄기의 섬광이 미라의 목을 지나쳤다.
“……”
그러자 홀을 들어 올렸던 황제의 미라는 그 움직임을 멈췄다.
그 상태로 놈의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아직도 그 눈에서 빛나고 있는 붉은 안광은 제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설령 목이 떨어지더라도 자신은 불사라고, 절대 죽지 않는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던 거겠지.
하지만 내 검에 의해 끊어진 불사와 함께, 그 안광은 몇 번 점멸하더니 그대로 사그라졌다.
이어서 서 있던 몸마저 그대로 고꾸라져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그렇게 조용해진 황제의 알현실.
짧은 침묵 뒤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잘 싸운대? 진짜 경감 맞아요? 나는 어디 청장님이 싸우는 줄 알았네!”
역시나 송윤주였다.
그녀는 호들갑을 떨며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알현실의 상태를 살폈다.
“괘…괜찮으세요?”
그 사이.
소환수를 불러 송윤주를 지키고 있던 최은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현실을 살피는 송윤주를 바라보았다.
알현실의 상태는 대체로 양호했다.
다만…정작 가장 중요한 왕의 옥좌가 있던 곳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파괴된 상태였다.
여기도 나름 유적지인데, 좀 조심할 걸 그랬나.
“너무 부쉈나요?”
“응? 이거? 괜찮아요, 괜찮아. 이 정도 괴이면 자기네들은 손도 못 쓰고 당했을 텐데, 퇴마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거에요.”
하지만 내 질문에 송윤주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렇다면야 내가 신경 쓸 일은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인검을 살폈다.
미라라는 괴이를 벤 덕분에 이미 로그 창은 반복 퀘스트 완료를 알려오고 있었다.
나는 인검의 아이템 설명 창을 열었다.
추가된 스킬은 두 개.
– 태양신의 후예 : 태양과 관련된 모든 전승의 효과 증폭.
– 황금 제국의 황제 : 금맥을 탐지한다. 시야 내에 보이는 금의 순도를 인지할 수 있다.
“흠…”
태양신의 후예는 나쁘지 않았다.
당장 태양과 관련된 전승은 없지만, 언젠가 얻게 되거나 적이 가진 기술을 강탈할 경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으니.
그런데 그 밑에 있는 황금 관련 스킬은 전투에는 쓸모가 없었다.
금맥을 찾고 순도를 인지한다라.
나는 시험 삼아 알현실에 널린 황금 장신구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말로 장신구들의 순도가 그 위에 작게 나타났다.
대부분 80%가 조금 넘는 수준의 순도.
의외로 순금이 아니었나.
하긴, 과거에는 금을 정제하는 기술도 부족했을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건…금 살 때 사기는 안 당해서 좋겠네.
미묘하게 실생활에 도움이 될 스킬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닫았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였다.
* * *
그로부터 10일 후에야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황제 미라를 퇴마한 직후 페루에서는 본격적인 유적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나와 최은영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거기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일.
그래서 힘들 것은 없었으나 그 사이 휴일이 없어, 거의 2주를 지루하게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래도 얻은 것이 있었다.
“휴가라…”
페루 출장이 무사히 끝난 보상으로 휴가가 나온 것이었다.
서인나 팀장의 말에 의하면 공식 지침이 내려왔다고 한다.
나에게는 마침 반가운 말이었다.
외국 출장은 이번이 끝이 아니라, 또 갈 일이 있을 테니.
그래서 나는 며칠을 더 쉬고 파출소로 출근했다.
그런데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왔니?”
사람들의 인상이 꽤 피곤해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일이 뭐가 있겠어. 그냥 사건이 터진 거지.”
서인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와 최은영이 출장을 가 있던 사이.
한국에서는 한강 다리에 적령이 출몰하거나, 도심 한복판에 마역이 생겨나는 등.
상당히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던 모양이었다.
내가 페루 출장을 가게 된 게 오히려 다행이었나.
“그래서 요 1, 2주는 진짜 고생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출장을 갈걸.”
“팀장님이 가시면 저희 팀은 누가 관리합니까.”
“당연히 강 경감이 해야지. 이제 슬슬 팀장 자리를 노릴 때 아니니?”
“전혀 아닙니다. 제가 무슨.”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내가 승진을 마다하게 된 건, 다 서인나 때문이었으니.
“그보다… 요즘 들어 큰 사건이 너무 터지는 거 같아. 이래서야 수습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데.”
서인나는 한숨처럼 그렇게 말했다.
“수습이요?”
“그래. 우리가 하는 일이야, 령이나 괴이를 퇴마하면 끝이지만 그걸 덮는 사람들도 있잖니. 특히 이번에는 번화가 근처 건물에서 마역이 터졌잖아. 그거 정보 통제하랴, 사고 난 거 수습하랴, 담당 부서는 꽤 고생했을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서인나의 말을 들어보니, 큰일은 다 끝난 것 같은데.
“그럼 남은 일은 없는 겁니까?”
“설마. 안 그래도 급한 일 처리하느라, 사건 몇 개가 밀려 있어.”
그래, 그랬겠지.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내미는 사건 파일을 받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