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28
128.
“영상이 이상하다! 듣고 있나? 영상이 이상하다고!”
“듣고 있으니까, 진정하세요.”
나는 무전기 너머에 있을 최수혁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이상 현상을 보는 것은 처음인지, 꽤 당황한 눈치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입니까?”
나는 그렇게 물으며 무전기를 챙겨 초소 밖으로 나갔다.
현장은 바로 앞이다.
걸어간다고 해도 채 몇 초 걸리지 않아, 영상 속의 철책이 눈에 들어올 터.
“처, 철책 뒤에 검은 사람이 나타났어. 그리고 지금 철창을…”
“응?”
긴급하게 이어지던 최수혁의 목소리가 돌연 끊어졌다.
무전기는 아직 켜져 있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령의 짓인가.
하지만 상관없었다.
현장은 이제 막 시야에 들어오려 하고 있었으니.
“저길 보게.”
권태수가 철책을 가리켰다.
최수혁이 봤다는 검은 사람은, 현장에 있는 우리들의 눈에도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머리 위에 보이는 레벨은 24.
그다지 위협적인 레벨은 아니다.
하지만 그 령은 철책을 잡고 그것을 쥐어뜯을 것처럼 흔들고 있었다.
저래서야… 아군이고 적군이고를 떠나서 그냥 퇴마해 버려야겠는데.
그런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정말로 철창이 뜯겨났다.
“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저렇게 쉽게 뜯겨나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내 그 뜯겨 나간 철책에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철책은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커다랗게 구멍이 났지만, 그 뒤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땅속에 난 쥐구멍처럼.
“허어… 저건 마역의 입구인가?”
권태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마역의 입구라.
듣고 보니 과연,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마역의 입구라는 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건가.
그런데…
“령이 마역을 만들려면, 적령은 돼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나는 그렇게 권태수에게 물었다.
하지만 정말 적령 정도의 존재가 이곳에 있었다면, 카메라 영상 조작보다 훨씬 더 큰 일이 일어났을 터.
내 말에 권태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말을 이었다.
“그 말이 맞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지. 혼자가 아니라면 여럿이서 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여럿이요?”
“마역이란 본래 령이 품은 심상, 혹은 죽음의 순간을 구현한 공간이네. 헌데 같은 심상을 품고, 같이 죽음의 순간을 겪은 령이 여럿 있다면… 굳이 적령이 아니라도 마역이 생겨날 수 있는 게지.”
한 개체의 령이 아니라, 여러 개체의 령이 만들어낸 마역이라는 건가.
그 이야기를 이해한 나는 그 마역의 입구로 다가갔다.
입구를 만들었던, 정확히는 철책을 쥐어뜯었던 인영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그저 허공에 뚫린 구멍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
“이제 어쩔 겐가?”
권태수가 물었다.
하지만 그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들어가야죠, 뭐.”
퀘스트의 화살표가 마역의 안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생각해 볼 것도 없는 결론이었다.
이에 권태수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들어가겠네.”
그렇게 말한 그는 곧바로 마역 안으로 진입했다.
뚫린 철책의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썩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나도 그 뒤를 따랐고, 이내 시야가 반전했다.
한순간 철책과 이를 오르는 계단, 그 위를 비추던 조명이 사라지고.
그 대신, 낯선 지면만이 눈에 들어온다.
“여긴…”
이곳은…여전히 산이었다.
하지만 그 풍경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나무와 풀로 울창한 산이 아닌, 그을린 흙과 정체 모를 여러 파편이 깔려있는 삭막한 황무지.
여기저기 꺾이고 부러진 나뭇가지만이 이곳에 한때 숲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전쟁터인가.”
주변을 둘러본 나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비록 내가 겪었던 전쟁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겠지만.
불과 철, 그리고 살과 뼈의 흔적이 흩어져 있는 이 풍경은 놀라울 정도로 내가 아는 것과 닮아있었다.
“…뭐가 오는구먼.”
권태수가 민둥산의 능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그곳에서는 군인 하나가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분명히 이 마역을 유지하고 있을, 령 중 하나겠지.
그 머리 위에는 분명히 레벨 표시도 보였으나.
놀랍게도 그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평범한 말을 내뱉었다.
“너희는 뭐냐. 왜 여기 있는 거지?”
군인은 총부리를 이쪽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그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가득하다.
입고 있는 것은 진흙과 정체 모를 오물로 더러워진 군복.
척 보기에도 이 전쟁터에서 하루 이틀을 보낸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눈빛은 여간 서늘한 것이 아니었으나.
그런 그가 바로 총을 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 빈손이기 때문이리라.
“……”
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앞에 두고 잠시 대응을 고민했다.
이대로 령을 소멸시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긴 했지만, 이 마역은 일반적인 마역이 아니었다.
과거의 전쟁터, 즉. 령을 남긴 인간이 죽었던 그 순간을 재현한 마역.
그렇기에 내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 죽음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지켜보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전쟁터에서 군인이었던 령들의 죽음이라면, 당연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넓을지도 모르는 마역을 돌아다니며 령을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그 전투를 기다렸다가, 그 한복판에서 모여든 령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잘 생각했네. 국군의 군복이 아닌가. 그럼 우선 상황을 지켜봐야지.”
하지만 내 의도를 오해한 권태수는 그렇게 말했다.
저게 국군 군복이었나.
“너희는 뭐냐. 왜 여기 있는 거지?”
한편 우리가 대답이 없자, 군인은 반복해서 우리에게 물었다.
조금 전과 목소리의 높낮이조차 다르지 않은, 녹음된 목소리를 다시 틀어놓은 것 같은 물음.
역시 진짜 사람과는 달랐다.
이곳이 현실이 아니듯, 저 군인 역시 령이 자신의 한에 담긴 한 줌의 기억만을 가지고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일 테니.
그래서 나는 적당히 답했다.
“지원군입니다.”
“……”
여기가 진짜 전쟁터였다면, 씨도 안 먹힐 대답이었다.
하지만 표정이 사라진 채 잠시 멈춰있던 군인은 곧 총을 치우고 입을 열었다.
“…따라와라.”
그는 우리를 데리고 민둥산의 능선 너머로 이동했다.
그 너머에는 산의 경사를 따라 몇 개의 참호가 파져있었고.
그 중 몇 개의 참호에는 군인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다 합쳐서 10명은 될까.
군인은 우리를 그 참호 중 하나로 데려갔다.
가장 위쪽에 있는 참호에는 두 명의 군인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계급은…각각 대위와 중사였다.
“중대장님.”
“상병?”
“정찰 중 수상한 놈들을 발견했습니다.”
중대장이라 불린 대위가 비로소 이쪽을 보았다.
그의 시선이 나와 권태수를 스쳤다.
“자네들은 누군가.”
“지원군입니다.”
“뭐하러 왔지.”
“싸우러 왔죠.”
“……”
대위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는 건가?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그 옆에 있던 중사가 입을 열었다.
“아, 보급이 이제야 왔나 보군요.”
“그게 정말입니까, 소대장님?”
“이제야 왔다고? 개새끼들, 이번에도 탄만 보내줬나?”
“아닙니다. 먹을 것도 좀 있네요.”
중사의 그 한 마디에 상병과 대위 역시 곧바로 반응하며 저들끼리 떠들었다.
어느새 내 뒤에는 정말로 보급품 상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걸 잠시 살펴보던 대위는 곧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포위를 뚫고 여기까지 온 건가. 하지만 자네들도 운이 참 없군.”
“왜요?”
“이 고지에 들어온 이상, 나가는 건 불가능하니까.”
대위는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뒤에 있던 중사는 상병과 함께 보급품 상자를 들고 다른 참호로 이동했다.
보급품을 분배하려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대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을 사수한 것도 벌써 한 달 째야.”
대위의 목소리는 어느새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원래는 100명이 넘어가는 중대였지. 그런데 지금 남은 인원들이 보이나? 소대는커녕, 분대 규모도 남지 않았어.”
보급품, 그중에서도 식량을 받고 좋아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위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보급품 좀 보내준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대위는 체념한 듯 그렇게 말했다.
마치 자신의, 아니 자신들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이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라는 질 겁니다.”
아마도 이들은 이 마역에서 끝없이 자신들의 죽음을 반복했을 것이다.
이들의 원천이 된 한은, 죽음의 기억 밖에는 갖지 못하기에.
그래서일까.
대위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부디…그랬으면 좋겠군.”
그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쿵-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포격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러자 군인들은 일제히 참호 안으로 몸을 숨긴다.
포탄이 고지에 내리꽂힌 것은 그 직후였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포탄이 땅을 뒤집는다.
밑동 밖에 남지 않은 나무가 뿌리째 갈려나갔고, 사람의 몸을 찢는 섬뜩한 파편들이 사방에서 비산했다.
하지만, 나와 권태수는 이를 피할 필요가 없었다.
전부 환상이었으니까.
이 죽음의 재현은 령들에게도 악몽에 불과했다.
겨우 20 레벨 전후의 이들에게는 겨우 마역을 구축했을 뿐.
그 실체까지 재현할 힘이 허락되지 않은 탓이었다.
“적들이 몰려온다!”
포격이 잠잠해지자 비로소 그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수백에 이르는, 갈색 군복을 입은 군대였다.
그리고 고지를 지키고 있던 10명의 군인들은 이윽고 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마역의 원인은 저건가.”
나는 몰려오는 적군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놈들이 쏘는 총알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포탄도 환상에 불과했지만.
저기에서 몰려오는 적군만은 환상이 아니었다.
수백에 이르는 놈들의 그 머리 위에는 전부 레벨 표시가 붙어있다.
저 정도의 숫자라면…마역이 만들어지는 것도 과연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죽어!!”
그때 군인 중 하나가 참호 위에 설치된 기관총을 난사했다.
그러자 능선을 오르던 적군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전투의 향방을 보니, 국군들은 저들 대부분을 죽이고 자신들 역시 전멸한 모양이었다.
“허어…”
권태수는 그런 전쟁터를 한숨과 함께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씁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할아버지이긴 해도 전쟁을 겪을 나이는 아니었으니.
하지만 나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고, 그렇기에 이 지긋지긋한 전투를 계속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마침 령들은 모두 한 곳, 바로 이 전장에 모여 있지 않던가.
이제는 퇴마를 할 때였다.
“…빨리 끝내자고.”
콰르릉!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불현듯 벼락이 내리꽂혔다.
인간들의 화약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 굉음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포격보다도 크게 고지 위를 호령했다.
그렇게 지면을 후려친 벼락은 그대로 땅속으로 흩어지지도 않았다.
마치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용이 그렇듯.
벼락은 번뜩이는 백룡의 형상으로 변해, 지면 위를 횡단했다.
그 순수한 전격의 용이 지나간 자리에는 잿더미만이 남았다.
거기에 휩싸인 령들은 흔적도 없이 소멸해 사라진다.
“……”
참혹한 전쟁 영화에 끼어든 난데없는 괴수처럼, 그 청룡의 권능은 순식간에 적군을 쓸어담았다.
그것도 모자라 흰색의 화염과 땅속에서 튀어나온 금속이 번개가 미처 태우지 못한 나머지 령들을 사방에서 덮쳤다.
그러니 놈들이 전멸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러자 전장에는 비로소 고요함이 찾아왔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필사적으로 싸우던 군인들의 얼굴에서는 표정이 사라졌다.
그렇게나 열심히 싸우던 그들은 승리의 함성도 지르지 않았다.
또 하늘에서 떨어진 전격의 용과 스스로 움직이는 불꽃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건 그들이 가진 기억이 아니었으므로.
단지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난 대위는 조금 전의 질문을 반복했다.
“자네들은 누군가.”
“퇴마사요.”
“뭐하러 왔지.”
“퇴마사가 퇴마하러 오지, 뭐하러 오나.”
그에게 대충 답하며, 나는 검을 꺼냈다.
선명하던 민둥산의 경치가 흐려지고, 카메라의 노이즈처럼 균열이 발생했다.
령들의 숫자로 구축되었던 마역이 대량의 령이 한번에 퇴마되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헌데 거기서,
“전쟁은… 끝났나.”
대위의 질문이 바뀌었다.
그건 그가 생전에 품은 물음일까.
아니면 이제 생각난 물음일까.
그건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또한, 그 대답 역시 몇 가지 선택이 있었으나.
내가 해야 할 말은 한마디 뿐이었다.
“당신들이 할 일은 끝났습니다.”
“…그렇군.”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침묵했다.
그러다 돌연 자신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그건…그의 인식표가 매달린 군번줄.
그는 그것을 내밀며, 나에게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나는 인식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것이, 이 대위의 매개체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어느새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군인들 역시 나에게 군번줄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그것들을 하나하나 챙기며, 입을 열었다.
“강진우인데요.”
내 대답을 들은 대위, 이성화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끝내 마역이 무너졌다.
시야가 점멸하는 것처럼 깜빡이더니 곧 나는 원래 마역의 입구가 있던, 철책 앞에 나와 있었다.
다행히 철책은 멀쩡한 상태.
사건 현장이었던 이곳을 샅샅이 훑어봐도 변한 것은 없었다.
조금 전과 달라진 것이라고는… 내 손에 들린 잔뜩 녹슨 군번줄 뿐.
“끝났구먼.”
권태수가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형님! 들리십니까? 형님!”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무전기에서 최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무전기를 권태수에게 건넸다.
“들리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아이고, 살아계시네. 말도 마십쇼. 갑자기 무전도 안 되지, 카메라도 나갔지.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마역의 입구가 등장하고, 그것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아예 카메라의 영상조차 찍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최수혁은 현장에 와볼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무전만을 확인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극히도, 현명한 판단이었다.
“잘했네. 그보다, 줄 게 있네만.”
권태수는 내가 가진 인식표를 보며 말했다.
이미 매개체의 기능을 잃은 그것은 이제 평범한 유품에 불과했다.
나는 그것들을 최수혁에게 넘겼고, 사건은 그대로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