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29
129.
서울의 한 고급 주택가.
그곳에서도 특히 크고 세련된 저택의 안에서 돌연, 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고, 형님!”
노인은 그렇게 외치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자신의 침실에서 눈을 뜬 노인은 자신이 조금 전까지 꿈을 꾸고 있었음을 인지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무슨 일인가.”
노인은 허망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가 꿈에서 본 것은 다름 아닌 제 형의 모습이었다.
철이 들기도 전부터 고아였던 노인에게 있어, 단 하나뿐이었던 가족이자.
제 몸을 희생해 동생을 챙겼던,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미안하기만 한 형이었다.
그러나 그런 형이 전쟁통에 불귀의 객이 된 것이 벌써 수십 년 전의 일.
“허어…”
노인의 한숨이 이어졌다.
먹고 사는 것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게다가 항상 자신보다는 동생만 염려했던 형은, 끝내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떠났다.
확실히 죽었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군인으로 전쟁에 참전했고, 이후 복귀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런 형의 얼굴을, 수많은 세월이 지나며 노인은 언젠가부터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오늘 그의 꿈에 나왔던 형은 그의 기억을 되살리게 할 정도로 생생한 모습이었다.
노인은 이번에야말로 그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자신의 기억에 그것을 새겼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시야가 흐리다는 걸 눈치챘다.
노인의 눈에는 어느새 촉촉한 물기가 가득했던 것이다.
“…이제 나도 늙었는가.”
노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자식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돈 귀신으로 불리는 그였다.
그런 그가 고작 꿈을 꾸다 가족이 그리워 울다니.
아마 그 연놈들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리라.
“……”
노인은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거기서 그는 조용한 새벽의 주택가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요동치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을 때쯤에는, 이미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일출을 지켜보던 노인의 머리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헌데… 어째서 형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꿈속에서 그 형이 남긴 말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말도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의 이름.
바로 강진우라는 이름이었다.
“거기서 왜 그놈 이름이…”
강진우라면 노인도 처음 듣는 이름은 아니었다.
그의 손녀인 이현아에게서, 언젠가 언질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다.
퇴마 경찰로 적극적인 영입을 고려할 인재라고는 들었건만.
그렇다 해도 왜 그 이름이 형님의 입에서 나온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우연일 뿐일까.
그렇게 그가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방 안의 전화기가 조용히 울렸다.
이에 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스마트폰이 범람하는 요즘, 꽤나 시대착오적인 생김새의 전화였다.
하지만 그것은 노인이 자신의 사적인 시간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설치한 것이었다.
중요하거나 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만, 자신의 비서에게 유일하게 사용을 허락한 핫라인.
그런 전화가 울렸다는 건 그만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리라.
그래서 노인, 화인 그룹의 이성민 회장은 곧 그 수화기를 들었다.
“이른 시간부터 죄송합니다, 회장님.”
“됐다. 용건이나 말해라.”
어느새 평소의 냉철한 얼굴로 돌아온 이성민은 그저 싸늘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 평정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어제 새벽에 회장님의 형님이신 이성화 님의 인식표가 발견되었습니다.”
“뭐… 뭐라?”
그 뒤로 한동안 비서의 말이 이어졌다.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누가 그것을 찾아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는, 조금 전에 이성민이 들었던 그 이름이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었다.
“인식표가 발견된 곳을 중심으로 유해 발굴 작업이 시작될 겁니다. 철책 주변이긴 하지만, 정부와 협상을 한다면 어렵지 않게-”
비서의 설명은 그 뒤로도 이어졌지만, 이성민은 그 이야기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저 멍하니 조금 전의 꿈만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형님이 남긴 세 글자, 강진우라는 이름.
어째서 그 이름을 말씀하셨나 했더니,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이성민의 눈동자에서 수많은 감정이 일렁거렸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내 잦아들었고, 곧 냉정이 그 속에 깃들었다.
“…회장님?”
어느새 비서는 모든 말을 끝마치고, 이성민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그 일은 그렇게 처리하지.”
“예, 회장님.”
“그리고… 현아를 불러라.”
“예?”
“내 손녀, 이현아 전무! 오늘 출근하자마자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아, 예!”
비서의 대답과 함께 이성민은 그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강진우.
그에게는 당연히 섭섭지 않은 보답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성민의 생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겨우 보답이나 제대로 하라는 뜻으로 형님이 꿈에 나왔을 리는 없다.
“허면…”
이성민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마침 최근, 이성민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그는 물론이고 화인 그룹 전체가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큰 위험성을 내재한 고민.
정확히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믿을만한 경찰이 필요했는데.
“그게 이놈이라는 겁니까?”
이성민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물론 꿈만을 믿을 수는 없다.
그래서 최소한의 조사는 할 셈으로, 그는 강진우의 이름을 처음 꺼냈던 이현아를 보자고 한 것이다.
“……”
노인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느새 창문에서는 기분 좋은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 * *
“감사합니다.”
밋밋한 알바생의 인사, 그리고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나는 편의점을 나섰다.
손에 든 것은 몇 가지 음료와 군것질거리.
휴일을 맞아 집에서 뒹굴거리던 나는 기분 전환 겸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잠시 산책이라도 하고 들어갈까 싶은 찰나.
“음…?”
내 눈에 31이라는 레벨 표시가 보였다.
그냥 길거리를 지나다니던 사람의 머리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건 어떤 남자였다.
퇴마사인가?
그럴 수도 있다.
정규 기관은 물론, 외인 기관이나 기업 출신의 퇴마사라면 겉으로는 다른 사람과 구별이 가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가 퇴마사가 아닐 경우가 문제였다.
퇴마사가 아니라면 마인이라는 말이었으니.
“……”
잠깐 나는 대응을 고민했다.
저 사람이 마인인지, 확인해봐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마인인지 확인하는 방법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내 신분만 밝히면 된다.
마인이라면 당연히 퇴마 경찰인 나에게 적대 감정을 가질 테고.
그럼 ‘인간 사냥꾼’의 특성 효과로 그 레벨 표시가 붉게 변할 테니.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말을 걸 수는 없었다.
여기는 평범한 길 한복판.
만약 저게 마인이고, 그런 마인이 미친 척하고 공격을 해올 경우.
주변의 피해가 가는 건 물론이고 퇴마의 비닉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렇기에 내가 취할 방법은 굳이 저 남자의 뒤를 조용히 따라간 뒤.
인적이 드문 곳에 도달했을 때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귀찮은데.”
그건 이 황금 같은 휴일에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그냥 못 본 척하기로 했다.
그래, 휴일이지 않은가.
분명 어디 기관 소속의 퇴마사가 나처럼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믿고 돌아서려는데.
“쯧…!”
불현듯 퀘스트 버튼이 번쩍였다.
그걸 보며 나는 혀를 찼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퀘스트라니.
저 남자가 마인이라고, 퀘스트 버튼이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퀘스트 창을 열어 확인해보니 그것은 조금 뜻밖의 퀘스트였다.
대상 : 최은영
최은영의 두 번째 캐릭터 퀘스트.
하지만 정작 최은영은 지금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는 건… 저 마인이 최은영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나는 곧바로 퀘스트의 내비게이션 기능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조금 앞을 걸어가는 마인의 몸이 곧바로 강조 표시가 되었다.
“후…”
휴일에 기대도 안 하던 업무가 생긴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왕이면 내일 출근길에나 나오지.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놈의 목을 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조용히 마인의 뒤를 따라갔다.
놈은 나를 만난 곳에서 한참을 걸어서, 어느 건물에 도착했다.
그건 낡은 주택가 사이에 있는 작은 상가 건물.
마인은 그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몇 장의 부적이 붙어 있었다.
“결계 같은 건가?”
부적만 보고 주술의 정체까지 파악하지는 못했기에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일반인의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겠지.
나는 그것을 가뿐히 무시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실의 문은 그 사이 잠겨 있었지만.
쾅!
나는 그것을 발로 차서 단숨에 부숴버렸다.
그러자 굉음과 함께 경첩이 뜯겨나가며 문은 안쪽으로 쓰러졌고, 지하실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렇다 할 인테리어도 없이 바닥과 벽의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지하실에는 다섯 명의 사람과 레벨 표시가 보였다.
개인이 아니라…마인 조직이었나.
“뭐야, 이 새끼는!”
놈들 중 하나가 문을 부수고 들어온 나를 보며 말했다.
만에 하나, 마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기에 나는 굳이 내 소속을 입에 담았다.
“경찰청 특수본 소속의 강진우 경감이다.”
그러자 귀신같이 놈들의 레벨 표시가 일제히 붉게 물들었다.
서로 긴급하게 눈빛이 오고 가더니 곧바로 놈들은 무기를 꺼내 들었다.
“경찰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게 뭔 상관이냐! 일단 죽여!”
그리고 놈들이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마인인 건 확실한 모양.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나도 무기를 들어야 했으나.
지금 내 손에 들린 건, 커피랑 과자가 담긴 편의점 봉투가 전부였다.
하지만…
“저 정도면 칼도 필요 없지.”
마인들의 레벨은 대부분 30에서 40 정도였다.
그리고 놈들의 손에 들린 것은 모두 창과 칼, 도끼 등의 냉병기.
당연히… 전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
마인들 중 한 명이 그런 멍청한 소리를 냈다.
자신이 들고 있던 창이 공중에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기에.
하지만 움직임이 멈춘 건 놈의 무기만이 아니었다.
마인들의 손에 들린 모든 무기가 이 순간 정지했다.
이에 놈들이 당황하는 것도 잠시.
“뭐야, 이거! 어, 어억!”
나는 다음 순간, 무기를 놈들의 손에서 빼앗았다.
백호의 권능은 내 완력과 비슷한 출력으로 모든 금속을 조종한다.
그렇기에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진 괴이나 7, 80 레벨에 이르는 마인들에게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해도.
고작해야 40 레벨의 적들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무장 해제를 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
무기를 보이지 않는 힘에 탈취당한 놈들은 순식간에 빈손이 되었다.
마인들은 어쩔 줄 모르는 눈동자로, 허공에 뜬 제 무기를 바라보았다.
그 날카로운 날은 지금 주인의 목을 향하고 있다.
나는 그대로 끝을 낼까 했지만.
“아니지.”
조금 생각을 바꿨다.
사실 마인이 그냥 길 가다 눈에 보여서 따라온 게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놈들이 정확히 여기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적어도 정보를 캐낼 한 놈 정도는, 살려두는 게 일을 처리하기가 쉽겠지.
“선착순 한 명.”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마인들은 미간을 찌푸리거나 아예 무시하는 등,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눈치 빠른 한 놈.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남자가 손을 들었다.
“저… 저요.”
그 대답과 함께,
촤아악!
다른 4명을 겨누고 있던 무기가 주인을 꿰뚫었다.
삭막하던 지하실 바닥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명의 마인이 그 모습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만약 자신의 대답이 늦었다면… 뭐, 그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켕켕이의 사료로 쓰일, 죽은 마인들의 영혼을 추출하며 그에게 물었다.
“니들 여기서 뭐했냐?”
내 말에 한순간 남자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걸 왜 지금 묻냐는 듯.
하지만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4개의 무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그는 입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 *
다음날, 월요일 오후.
서인나는 나와 최은영을 회의실로 따로 불렀다.
“어, 왔어? 이리 앉아. 자, 여기 커피.”
서인나는 우리 앞에 캔커피를 놓았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싱긋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 강 경감은 능력도 좋아. 주말에 또 사건을 해결했다며?”
“…놀리시는 겁니까?”
“놀리다니. 진짜 대단해서 그렇지. 나도 편의점 가다가 마인 잡은 적은 한 번도 없거든. 그야말로 경찰의 귀감이야. 안 그러니, 은영아?”
“예? 아, 그… 그렇네요…”
놀랍게도, 서인나에게는 나를 비꼬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그저 주말에도 일하는 부하 직원의 열정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딴 열정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어째서인지 비꼬는 것처럼 들려왔다.
“어쨌든 이번에 부른 건, 강 경감이 어제 해결한 사건 때문이야. 마인 하나를 생포했다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어제 그놈은, 마인 중에서는 흔치 않게 경찰에 의해 생포된 상태였다.
그 이유는 놈이 가진 정보가 은근히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인의 증언에 따르면 놈이 있던 조직 자체는 규모가 작은, 별 볼 일 없는 조직이야.”
내가 어제 찾아갔던 놈들은 마인들의 범죄 조직 사회에서도 가장 아래층에 속하는 조직이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 게 아닌, 더 큰 범죄 조직의 일을 돕거나 그 의뢰를 처리하는, 범죄 조직 중에서도 하청에 속하는 놈들.
“그런데 거기가 의외로 꽤 거물급 마인과 연결이 되어 있더라고. 그래서 위쪽에서는 그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야. 다만… 우리에게 떨어진 일은 그쪽이 아니라, 따로 있어.”
서인나의 시선이 나에게서 떨어져, 최은영을 향했다.
“그놈들이 받은 의뢰 중 하나에 은영아, 너에 관한 게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