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30
130.
“저요…?”
서인나의 말에 최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서인나의 말이 이어졌다.
“의뢰 내용 자체는 대단치 않아. 너에 대한 감시와 동향 파악. 그러니 그런 작은 조직에 의뢰가 할당된 거겠지. 하지만 그런 의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야.”
마치 스토커 같은 의뢰였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서도 최은영의 표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른 경찰도 아니고. 너를 콕 집어서 지정했다는 건, 그 이유가 뻔하지 않니?”
“제 친족들… 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
친족이라.
다른 사람에게는 모르겠지만, 최은영에게 친족이라는 존재는 그리 도움이 되는 놈들이 아니었다.
그녀의 친족이란, 한때 마의 힘을 빌려 섬 하나를 지배하던 사이비 교주 일가.
그리고 최은영은 교주의 손녀이면서도, 자신의 손으로 그 교주 일가를 무너뜨린 장본인이었으니.
그렇다는 건, 그 의뢰를 내건 것이 그 당시 살아남았던 교주 일가 중 하나라는 건가.
“그래서 우리 팀에 떨어진 사건은 이쪽이야. 이 의뢰의 뒤를 캐고, 숨어있는 놈들을 뿌리 뽑는 거지.”
그다지 복잡할 건 없어 보이는 사건.
하지만 최은영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저 때문에…”
최은영은 민폐를 끼쳤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서인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할 건 없어. 교주 일가의 생존자가 안 그래도 위험한 놈과 함께 있는 것 같거든.”
“위험한 놈이요?”
“강 경감이 생포한 놈의 증언으로는 그래.”
어제 생포한 마인에 대한 조사는 대부분 다른 경찰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나라도 휴일에 하루종일 그놈과 대화할 시간은 없었으니, 적당한 범죄 내용만 듣고 바로 신고해서 다른 경찰에게 넘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인나는 그 뒤에 알아낸 정보를 나에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놈이 의뢰를 수락할 때 딱 한 번, 그들과 접촉한 적이 있다나 봐. 그런데 그때 괴물을 봤대. 확인 결과, 그건 2년 전에 경찰을 살해한 수배범인 걸로 결론이 났어.”
“수배범? 그게 그냥 증언만으로 확인이 된 겁니까?”
“워낙에 외모가 눈에 띄는 놈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서인나는 테이블에 사진 하나를 올렸다.
거기에 있는 건… 그녀의 말대로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가명은 흑연. 생긴 게 이래서, 밝혀진 건 가명뿐이야.”
생긴 게 얼마나 이상하기에 모든 성인의 지문을 다 떠놓는 대한민국에서 본명조차 밝혀지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과 함께 사진을 보았다.
그러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거 사람은 맞아요?”
사진에 있는 것은 애초에 인간이 아니었다.
그 피부는 현무암처럼 검고 딱딱해 보였다.
게다가 그 위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서, 흑연이라는 가명이 왜 지어진 건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모습이었다.
또한, 얼굴은 완전히 형체를 잃어,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두 개의 눈동자가 빛날 뿐이었다.
이래서야… 얼굴을 알아보는 건 고사하고 지문도 못 뜨겠구만.
왜 본명이 밝혀지지 않은 건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마인이야. 특히 이놈은 마인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놈 중 하나지.”
그저 범죄를 저지른 퇴마사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마를 받아들인 놈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대부분의 마인들은 피부색이 변하거나 몸 위에 뭔가 돋아나거나 하는 정도지.
이렇게까지 신체 자체가 변형되는 경우는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설마 아예 실체를 잃을 정도라니.
“이놈의 몸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야. 그러니 인간의 사고를 하는 괴이에 가깝지.”
“원래 이런 게 가능합니까?”
몸이 여기까지 마에 침식된 놈이라면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대부분은 여기까지 가기 전에 이성을 잃는 것이 정상일 정도.
하지만 이놈은 이 상태임에도 최소한의 이성은 가진 듯 했다.
그러니 지금까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일 테니.
“물론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있어. 그리고 그런 마인은 특히 위험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거든.”
서인나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람은 마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각종 전승과 신기, 주술 등을 동원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마에 침식된 마인들은, 그 힘을 훨씬 더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전승을 구현하고, 술식도 없이 주술을 쓴다.
실제 령과 괴이가 그렇듯, 마 그 자체를 다루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쨌든 은영이에 대한 의뢰를 건 교주 일가의 일원은 이놈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해. 물론 조직의 규모는 크지 않을 거야. 그랬다면 이렇게 오랜 기간 도주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어쩌면 이 둘이 전부일 수도 있어. 그렇다 해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겠지만…”
서인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왜인지 모르게 살짝 굳어 있던 그녀의 표정이 힘 없이 풀렸다.
“강 경감 정도면 괜찮겠지.”
그건 언뜻 듣기에는 나를 믿는다는 듯이 들렸지만, 묘하게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이에 대해 뭔가를 따지기도 전에, 나를 향해 이야기하던 서인나의 눈은 최은영에게로 돌아갔다.
“은영아. 이번에도 네가 직접 갈 거니?”
서인나는 최은영에게 확인하듯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최은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힘은 없었지만, 단호한 대답이었다.
서인나는 잠깐 착잡하다는 얼굴을 내보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이번 일은 너희 둘에게 맡길게. 놈들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곳은 찾았어. 수사는 여기부터 시작해 봐.”
그렇게 말하며 서인나는 우리에게 주소 하나를 던져 주었다.
그건… 경기도 구석에 있는 어떤 폐공장의 주소였다.
* * *
그곳은 산속의 폐허였다.
회색의 커다란 원형통과 그 주변에 탑처럼 올라간 철제 구조물은 귀신이 낙서라도 한 것처럼 크게 녹이 슬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것은 녹슨 원통과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은 한 줄기 다리로 연결된 사각형의 탑.
하지만 그마저 외장이 뜯겨 나간 채 안쪽의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그 풍경은 대낮임에도 기분 나쁠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그것은 그나마 몇 년 전까지 가동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시멘트 공장의 잔해.
그곳에서,
“…알겠어.”
30대 초반의 어떤 여성이 차갑게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녀, 최은서의 미간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늘에 가려진 공장 건물 안을 보며, 짜증스럽게 뇌까렸다.
“놈들이 올 거래.”
“그래, 그럴 줄 알았지.”
그러자 그 그늘 안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은서와는 달리 너무나도 여유가 넘치는 목소리.
그래서일까, 최은서는 그 남자를 향해 대번에 소리를 내질렀다.
“그래-가 아니야! 당장 이동해야 한다고!”
“그건 잘 됐군.”
“뭔 헛소리야? 잘 되긴 뭐가 잘 돼?”
“넌 여길 싫어했잖나.”
그 말에 최은서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물론 한때 부유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녀에게, 이 폐공장은 결코 마음에 드는 장소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여기에 반년이나 머물렀던 이유는, 당연히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반대로 말해 반년이나 경찰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는 은신처는 그리 흔한 게 아니었으니.
“싫지. 지금도 싫어. 그런데 여길 떠나면 어디로 갈 건데? 넌 여기가 아니면! 그 빌어먹을 면상 덕분에 나보다 더 곤란한 거 아니었어?”
최은서는 공장 안쪽의 그늘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 검은 그늘은 울렁거리며 한동안 느긋한 웃음소리를 만들어냈다.
“흐흐흐흐… 그렇지. 나라고 갈 곳은 없다. 그리고 네 말대로 이런 얼굴이면 도망치는 것도 곤란하겠지.”
“그럼 꾸물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그래서 난 여기를 떠나지 않을 거다.”
남자의 말에 최은서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드디어 미쳤어?”
“미치긴. 나는 아주 냉정하다. 그래서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고 있는 너보다 훨씬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지.”
“여기서 경찰이랑 싸우다 뒤지는 게, 현명이라고?”
“싸우는 건 맞다. 하지만 꼭 뒤지라는 법은 없지.”
남자의 의도를 이해한 최은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정말 경찰들이 이곳에 밀어닥친 후에 벌어질 전투를.
분명 저 남자는 강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국가의 공권력을 상대로 승리할 정도일까?
“불가능해. 놈들이 얼마나 올 줄 알고…”
“얼마 못 올 거다.”
남자는 단언했다.
그리고 그 근거에 대해서는 최은서 역시 알고 있었다.
경찰에게 검거당했다는 작은 마인 집단.
굳이 그 별것도 아닌 놈들에게 그녀가 의뢰를 맡긴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놈들은 최은서나 이 남자보다도 훨씬 큰 마인 조직과 커넥션이 있었다.
그래서 최은서는 놈들이 검거되었을 경우.
자신들보다는 그쪽에 경찰 수사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노리고 그들에게 의뢰를 맡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도는 지금 정확히 먹혀들었을 터.
“게다가… 너는 누가 오는지도 알고 있지 않나.”
“……”
그 말 역시 사실이었다.
이미 그 의뢰 때문에 최은서의 존재, 즉 교주 일가의 존재는 경찰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누가 올지는 안 봐도 뻔하다.
최은영.
최은서의 사촌 동생이자, 자신의 일가를 파멸시켰던 가문의 원수.
“그 미친년…!”
그것만으로도 최은서에게 최은영은 반드시 죽여야 할 존재였다.
하지만 최은영은 그것도 모자라 경찰이 되어, 교주 일가의 일원이 수사 선상에 오를 때마다 제 손으로 친족을 죽이기 위해 나타나고 있었다.
최은서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짓거리였다.
교주였던 할아버지는 물론 그 부모와 친척, 심지어는 최은서 본인까지.
도대체 최은영에게 못 해준 게 뭐였길래,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가.
“좋아, 나야 그렇다쳐도 너는 왜 싸우려는 건데?”
그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최은서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을 텐데.
그러나 남자는 가볍게 답했다.
“왜겠나. 화풀이지.”
“화풀이?”
“설마 나라고 이 폐공장에 박혀 있는 게 기분 좋을 거라 생각하나?”
공장의 그늘 속에서 남자, 흑연이 걸어 나왔다.
그 괴물 같은 생김새에도 최은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도 멀쩡히 거리를 걷고 싶어. 번화가가 어땠는지, 불 켜진 백화점 안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아. 그런데 그게… 전부 그놈들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화풀이를 하겠다고? 그게 냉정한 판단이야?”
“스트레스는 쌓이면 풀어줘야 하는 법이니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흑연의 말에 최은서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녀라고 그의 신세와 다를 것은 없었으니.
“하지만 그놈들은 만만치 않아. 누가 오든, 너무 위험해.”
최은서는 최은영이 속한 지원 2팀의 정보도 빠짐없이 확인하고 있었다.
그 팀에는 팀장인 서인나를 시작으로, 도술이나 장거리 저격 등.
상대하기 힘든 특기를 가진 경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것은… 강진우 경감이라는 남자.
처음에는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최근 그가 보인 행보는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가 해결한 사건만 벌써 백이 넘는단다.
아직 임용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은서가 그에 대해서 알아낸 건 아직 별로 없었다.
확실한 건 검을 쓴다는 것뿐.
나머지는 그가 벼락을 내리고 불을 쏘며, 강철을 조종하고 물 위를 걷는 것도 모자라 법당의 전승까지 사용한다는 등.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 퍼져 있어, 가진 특기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경찰에서는 그런 같잖은 블러핑까지 하며 놈의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특히 강진우인가 하는 그놈은 위험해. 걔가 오면 어쩌려고?”
“나는 오히려 그쪽이 기대된다. 아무리 화풀이라도 상대가 어느 정도 어울려줘야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흑연은 걱정 따위는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어쨌든… 나머지는 내가 다 죽이겠다. 만약 너도 남겠다면, 네 몫은 건드리지 않기로 하지.”
“돌겠네, 진짜.”
최은서는 한 손을 이마에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정말로 다른 경찰은 배제된 채 지원 2팀의 일부가 이곳에 온다면.
승산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저 정신 나간 놈, 흑연이 갖춘 실력만큼은 진짜였으니.
게다가 지금 도망간다 해도, 최은서는 아직 확실한 도주로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흑연의 말대로 여기서 경찰의 추격을 한번 저지하며, 시간을 버는 것도 충분히 유효한 선택지가 아닐까.
그렇게 한동안 고민하던 그녀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네 뜻대로 해보자고.”
* * *
“…여긴가.”
그 날 오후 5시.
나는 서인나에게 받은 주소의 폐공장 주변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나와 함께 온 것은 당연히 최은영이었다.
그녀는 평소보다도 더 주눅이 든 얼굴로 스케치북만을 꼭 쥐고 있었다.
다소 불편해 보이는 최은영의 얼굴을 보며 나는 곧장 떠올린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근데… 굳이 최 순경이 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
지난 번, 이매망량을 처리했을 때와는 경우가 달랐다.
그때는 최은영 본인이 과거에 불러냈던 괴이를 처단하는, 일종의 뒤처리였지만.
지금 상대해야 하는 교주 일가는 결국 전부 최은영의 가족이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목을 자신의 손으로 쳐내려 하다니.
보통은…피하는 게 정석이 아니던가?
“아니요. 제가… 해야 해요.”
하지만 최은영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왜?”
“제가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니까요.”
마무리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나?
하지만 다른 질문을 할 시간은 없었다.
이미 낡은 시멘트 공장의 잔해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 시멘트 공장의 지붕 위에는 누군가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연기와 돌덩이로 뒤덮인 괴상한 인영.
“…기다리고 있었다.”
그 상태로 식상한 대사를 내뱉은 것은, 바로 흑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