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31
131.
“나를 기다렸다고?”
“그래. 그렇게나 위험하다고 호들갑을 떨길래, 얼마나 강한 놈인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이세계에서 12번은 더 들어봤을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꼭 애매하게 강한 놈들이 저런 말을 지껄이던데.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흑연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레벨은 72.
그리 낮지 않은 레벨이었다.
거기에 저 검은 연기는 기체가 아닌, 영체로 보였다.
인간의 신체가 령처럼 변한 것.
그럼에도 바위로 이루어진 신체 역시 그 영체와 공존한다.
아니, 공존하는 수준을 넘어서 지금도 시시각각 몸의 일부는 영체가 되었다가, 바위로 변했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래도 저 마인은 몸의 재질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모양.
그렇다는 건, 상대를 보고 더 효율적인 재질로 육체를 갈아타겠다는 건가.
“……”
과연, 예상대로 애매하게 강한 놈이었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조용히 칼을 뽑았다.
그런데 놈이 올라선 공장 건물 안에서 또 다른 레벨 표시가 보였다.
49 레벨.
흑연보다는 확연히 낮은 레벨의 마인이었다.
그 마인은 계속 제 모습을 숨기지 않고, 얼마 안 있어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건 눈매가 올라간,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30대 정도의 여성.
이 폐공장에 머물고 있었음에도 진한 화장을 하고 있던 여성은 흑연과는 반대로.
내가 아닌, 최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서 언니…”
그러자 최은영이 반응했다.
이름까지 아는 걸 보면, 저 여자가 바로 최은영에 대한 의뢰를 걸었다는 교주 일가인가.
“오랜만이네, 은영아.”
“……”
여자가 최은영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최은영은 그 말에 슬픈 시선만을 보낼 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여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너는 끝까지…!”
“말은 그만하고. 너는 이제 꺼져라.”
흑연의 말에 여자의 미간이 한 번 더 찌그러졌다.
여자는 흑연을 째려보고는, 최은영에게 말했다.
“따라와. 우리 일은, 우리끼리 끝내자고.”
그러면서 여자는 폐공장 뒤쪽으로 이동했다.
나와 최은영을 떼어놓을 생각인가.
하긴, 나를 흑연에게 맡기고.
자신은 최은영을 상대하는 게 저 여자에게는 더 편하긴 하겠지.
그런데… 내가 얌전히 보내줄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하늘 위에 벼락 구름을 모으던 그때였다.
적보다도 먼저 내가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최은영이 입을 열었다.
“가도… 되나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
최은영은 곤란한 듯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마인들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도 최은영에게 내 의도를 강요하기는 껄끄러웠다.
그냥 범죄 사건이면 모를까, 이건… 그녀의 집안 문제이기도 했으니까.
한때 친척이었던 저 여자와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괜히 내 맘대로 저 마인을 벼락으로 증발시켰다가.
실은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던가 하면 난감할 테니.
“가 봐, 그럼.”
그래서 나는 그렇게 답했다.
최은영에게는 최근까지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녀의 소환수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니 상대 마인이 50에 육박하는 레벨이지만, 패배하지는 않을 터였다.
“감사합니다.”
최은영은 그렇게 말하고 여자를 뒤따라갔다.
이내 두 사람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야 방해꾼이 사라졌구만.”
그러자 흑연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마침 준비하고 있던 벼락을,
콰르르릉!
놈에게 떨궜다.
예고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한 줄기의 섬광이 무너져가던 시멘트 공장의 지붕을 직격한다.
그러자 그 원통형의 구조물은 안쪽에서부터 터지며 한쪽으로 기울어지더니, 끝내 파열음과 함께 쓰러졌다.
하지만,
“번개! 진짜 쓸 수 있었나!”
그 전격을 맞고도 흑연은 멀쩡히 제 발로 땅을 밟고 있었다.
그러나… 놀랄 일은 아니었다.
전기는 바위를 상대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행에서 바위, 즉 흙을 꿰뚫는 것은 전기가 아닌 나무.
요는, 상성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이번엔 내가 가지.”
바위처럼 변한 거구가 돌진해왔다.
그야말로 온몸이 검은 암석으로 된 골렘.
하지만 그 한쪽 팔만이 연기 같은 영체로 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연하게 길게 늘어지는가 싶더니.
쌔액!
곧 채찍처럼 변해 번뜩이는 검은 그림자처럼 나에게 쇄도했다.
채찍이라니.
몸을 고체나 영체뿐만 아니라, 유체화 할 수도 있는 건가.
재주도 많은 놈이네.
까가각!
인검이 그것을 쳐냈다.
하지만 검에 걸리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것은 채찍의 표면을 긁어냈을 뿐, 온전히 베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돌덩이가 아니야?”
나는 혀를 찼다.
인검의 날은 평범한 검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다.
그럼에도 거기에 베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어떤 전승에 의해 강화된 바위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전승을 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기까지 마에 먹힌 마인은, 전승의 재현에 그 어떤 절차도 필요하지 않으니.
“표정이 왜 그러나!”
채찍을 거둔 놈은 이번에는 제 주먹을 들이밀며 접근해왔다.
영체가 휘감은 놈의 주먹 위로 권투 글러브처럼 바위가 만들어졌다.
그 위로 돋아난 가시가 제법 위협적이었다.
내가 자신의 피부, 즉 바위를 베지 못하는 걸 확인하고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내보이는 건가.
흑연의 외모만 보고 그저 저돌적인 멧돼지 같은 놈이 아닐까 했는데.
나름대로 교활한 면도 갖추고 있던 모양이었다.
까각!
검과 주먹이 부딪혔다.
채찍 이상의 강도를 가진 놈의 주먹은 역시나 쉽게 베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검에서 화염을 일으켰다.
성화.
그 하얀 불꽃이 검은 주먹을 타고 올라가 마인의 몸을 집어삼켰다.
“크아악!”
그러자 흑연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지만, 그것도 잠시.
곧 성화의 불꽃을 꺼뜨린 놈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영체를 태우는 불꽃이라, 재미있는 놈이구나.”
흑연은 몸 전체를 바위로 바꾼 상태였다.
그의 말대로 성화가 확실히 태울 수 있는 것은 놈이 영체로 변했을 때뿐.
전기가 그렇듯, 화염 역시 바위를 상대로는 그리 좋은 수단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스킬 목록을 대충 살폈다.
평소 자주 쓰던 스킬 중에 놈에게 효과적인 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의외의 스킬이 눈에 띄었다.
“이거…”
그건 소화액.
영력을 소모하여 산성 용액을 생성한다는 스킬.
내용만 봐서는 뭐 이딴 걸 주나 싶었지만.
그 소화액이라는 스킬을 준 괴이가 가진 특성은 이 순간 마침 딱 필요한 것이었다.
“이제 불은 안 통한다!”
거대한 검은 바위 덩어리가 움직였다.
동시에 사방에서는 검은 채찍이 날아왔다.
촉수처럼 놈의 몸에서 튀어나온 그것들의 숫자는 총 여섯 개.
검으로 막아낼 틈도 없이 사방에서 덮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앞에서 다시 검을 들었다.
검의 표면에 진득한 액체가 묻어 나온다.
그리고 그 액체, 소화액을 머금은 인검은,
촤아악!
이전과는 달리 검은 바위로 만들어진 채찍들을 썩은 나뭇가지처럼 베어냈다.
“뭐-”
그 모습에 흑연이 경악을 토해냈다.
과연, 예상대로의 위력이었다.
올고이 호르호이.
사막에 산다는 그 괴이는 땅을 자유자재로 파고들며, 그 지면 자체를 포식하는 거대 지렁이다.
그러니 그 소화액은 땅에 속하는 바위에 있어, 더없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을 터.
“이젠 내 차례네.”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나는 내뻗어진 주먹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전과 같은 파열음은 더 이상 없었다.
단지 깨끗하고 깔끔한 절삭음과 함께, 그 주먹은 통째로 잘려나간다.
“으아아악!”
놈이 잘린 손목을 감싸 쥐며 물러났다.
바위를 베었지만, 그 절단면에서 쏟아지는 것은 시뻘건 붉은 피였다.
생긴 건 저 꼴이지만, 피 색깔은 여전히 빨간 건가.
계속해서 내 검은 움직였다.
잘린 손목을 감싼, 다른 팔을 통째로 자르려고 했다.
하지만 내 검이 지나가기 직전 그 팔이 연기처럼 변한다.
영체화였다.
연기처럼 변한 팔을 인검이 허무하게 스쳤다.
설마 화염 공격일 때는 바위로, 소화액을 쓸 때는 영체로 몸을 바꾸며 대응하겠다는 건가.
나름대로 어설프나마 자구책을 강구한 모양이지만.
“그런 잔재주는 안 통할 텐데?”
나는 냉소와 함께 말했다.
인검에 빛이 깃들었다.
검 자체에 빛 속성을 부여하는 빛의 검 스킬이었다.
그리고 영체를 특히 잘 베어내는 그 찬란한 섬광은,
“어억!”
이번에야말로 연기처럼 변한 흑연의 팔을 잘라냈다.
다시 놈의 등 뒤에서 나타난 채찍이 고통 때문인지, 잠시 머뭇거린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검광이 번쩍였다.
벼락이 역행하듯, 땅에서 하늘로 솟은 내 검은 양팔이 사라져 무방비 상태가 된 놈의 뱃가죽을 세로로 찢었다.
“컥!”
그러자 피를 토한 흑연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 신체는 바위와 유체, 그리고 영체 사이에서 고장 난 TV 화면처럼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하…하하하…”
온몸에서 피를 쏟으면서도 그는 낮게 웃었다.
흑연의 탁한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진짜… 였구만.”
“뭐가?”
“소문.”
나는 검을 든 채 놈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흑연은 더 이상의 저항조차 포기한 듯, 그저 말을 이었다.
“마인도, 괴물도 아니면서… 수많은 전승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미친놈이 있다고 들었거든.”
“도대체 어떤 새끼가 그런 소문을 퍼뜨려?”
나는 불쾌한 표정으로 흑연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는 다 죽어가면서도 잘난 얼굴을 해 보였다.
“왜… 그렇게나 설치고 다녔으면서… 아무도 모르고 있었을 것 같나?”
“아니,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지. 내가 그 전승인지 나발인지 얻을 때마다 얼마나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내 말에 그는 헛웃음과 함께 피를 토했다.
나는 놈의 목을 베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다.
“그 힘을 노리는 놈들이 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나?”
“지겨운 새끼들. 어째 그런 놈들은 여기나 저기나 다를 게 없냐.”
내 한탄에 흑연은 오히려 의아한 시선을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그와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내가 놈의 목을 베자, 불안정한 변화를 지속하던 신체는 곧 검은 젤리처럼 무너져 오물과 같이 변했다.
“그럼…”
나는 검을 적당히 털어 검집에 넣고, 흑연의 영혼까지 추출한 뒤 고개를 들었다.
흑연 쪽은 정리됐으니, 이제 최은영이 잘하고 있을지 확인해 봐야 했다.
지원 2팀에서는 그리 체감하기 힘든 원칙이지만.
사실 최은영을 포함한 죄수들은 나와 서인나의 감독 아래 있는 것이었으니.
그래서 나는 최은영이 여자와 사라졌던, 폐공장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폐공장 근방의 산속 공터.
그곳에서 최은서는 자신의 사촌 동생인 최은영과 마주 보고 있었다.
“내가 널 만나면… 정말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말이야.”
최은서의 허리에는 장검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대를 죽일 듯 노려보면서도, 그걸 뽑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날, 도대체 왜 그랬어?”
최은서는 최은영을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최은영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최은서의 말이 이어졌다.
“왜 모두를 죽인 거야? 나는 몰라도 너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아꼈잖아.”
최은서는 그 당시, 최은영을 질투하고 있었다.
둘 다 같은 손녀였지만, 할아버지는 지극히 옛날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딸이 아닌, 자신의 아들에게서 태어난 최은영만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다른 손자나 손녀와는 명확히 구별될 정도로 차별을 했다.
그래서 최은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차별을 당했던 자신도, 할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나 사랑받으며 자란 최은영이… 어떻게 모든 걸 무너뜨릴 생각을 했던 걸까.
“그걸… 몰라서 물어요?”
하지만 최은영은 오히려 최은서가 이상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 섬이 어떻게 지배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잖아요.”
그 말에 최은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겨우 그런 것 때문에…?”
“겨우 그런 게 아니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나갔는데.”
“아니, 아니야.”
최은영의 말에 최은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자기 가족을 죽일 이유가 된다고? 심지어는 겨우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을, 제 손으로 끝장내기 위해 따라다니면서?”
“……”
“넌 그냥 미친년이야. 그저 우리를 죽이고 싶을 뿐이잖아!”
최은서는 그렇게 단정 지었다.
이에 그 앞에 선 최은영의 눈동자는 잠시 내리깔렸지만, 금방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아니래요.”
“뭐야…?”
“부모님도 친척들도… 다른 사람에게 죽는 걸 지켜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제 손으로 죽이는 게… 더 나은 일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최은영이 자신의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러자 두 사람 사이에서 괴물이 나타났다.
“이 미친년…! 끝까지…”
그건 최은영의 소환수 중에서도 트롤이라 불리는 괴물이었다.
본래 북유럽 신화나 민담에 나오는 괴이.
그러나 지금 그 트롤의 형태는 최은서가 알고 있던 원전과는 크게 달랐다.
트롤은 짙은 갈색의 피부와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몸집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 흉측한 얼굴은 징그럽기까지 했고, 그 몸에서는 불쾌한 냄새까지 풍겼다.
신화나 전승이 아닌,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된 판타지 소설의 몬스터가 그대로 나타난 모습.
“크아아아아!”
그런 트롤이 육중한 몽둥이를 들고 최은서를 노려왔다.
그러자 최은서는 곧바로 검을 뽑았다.
그러자 그녀의 눈동자에 또 다른 빛이 깃들었다.
챙!
검으로 제 몸을 보호하며, 트롤의 몽둥이를 피한 최은서가 역으로 돌진했다.
지금 최은서가 들고 있는 것은 고려 시대의 한 무신이 사용했다는 검이다.
그리고 그 검에는 무신의 영혼이 담겨 있어, 최은서는 자신의 몸에 그 영혼의 일부를 빙의시키고 있었다.
본래 영웅들의 영혼을 이용하는 LB 아카데미의 빙의 주술.
그것이 역천도당들에 의해 빼돌려져, 최은서에게까지 흘러간 것이었다.
“……”
한편 최은영은 급격히 변한 최은서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무신의 영혼, 거기에 담긴 경험과 전승을 계승 받은 최은서는 현란한 검술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최은영의 눈에는 그것이 너무나도 어설프게만 보였다.
저것보다 훨씬 뛰어난 검술을 그녀는 이미 몇 번이나 목도했기에.
그래서 최은영은 금방 눈치챘다.
이 싸움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