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33
133.
그리고 며칠 후 아침.
사무실로 출근한 나에게 서인나 팀장이 뜻밖의 말을 전했다.
“10시까지 경찰청으로 가라고요?”
“그래. 청장님 호출이야.”
경찰청에 가는 것 자체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특수본이라는 게 어차피 경찰청 직속이다 보니 분석팀의 소피아를 찾아가는 등, 갈 만한 일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경찰청장의 호출은 지난번, 유괴 사건을 해결한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갑자기 청장님이 저를 왜…”
“그건 나도 모르지. 이유는 못 들었거든.”
서인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잠깐 그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경찰청장, 김준성 그 아저씨가 나를 부를 용건이 있던가.
최근에 맡은 사건 중 그리 큰 사건은 없었을 텐데.
“혹시 짐작 가시는 부분은 없으십니까?”
당장 짚이는 바가 없었기에,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서인나는 흐음-하고 침음을 흘리더니 곧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에는 말이야. 너에게 사건을 맡기시고 싶은 게 아닐까 싶어.”
“사건이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국 일이라는 건데, 그럼 나를 경찰청까지 부르는 대신 그냥 서인나 팀장에게 명령을 내리면 되는 게 아닌가.
“그걸 굳이 불러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까?”
“당연히 평범한 사건이 아니겠지. 기밀이 얽혀있다거나, 그런 식으로.”
보안이 중요한 사건이라, 나에게 직통으로 맡기려 한다는 건가.
그렇다면 말은 되는 이야기였지만.
“그런 걸 저한테 맡겨요?”
그 대상이 나라는 게 이상했다.
물론 내가 경찰 조직 내에서 인정받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능력적인 측면일 뿐.
아직 서인나 팀장조차 알지 못하는, 보안이 중요한 사건을 맡을 정도로 깊은 신뢰를 쌓은 기억은 없었다.
애초에 내가 경찰이 된 지는 기껏해야 이제 1년이 될까 말까 한 정도가 아니던가.
평범한 회사라도 신입 사원에게 회사 기밀을 맡기지는 않을 텐데.
“강 경감 정도면 못 맡길 건 없지.”
그러나 서인나는 그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무슨 일이든 맡길 수 있다는, 부담스러운 시선이 함께였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시선을 피했다.
“뭐, 어찌 되었든 그냥 추측일 뿐이니까. 정확한 건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니?”
“그렇겠네요.”
그래서 약속 시간에 맞춰 경찰청장실로 방문했다.
오랜만에 발을 딛는 청장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해보니, 경찰청장 말고도 두 명의 손님이 더 있었다.
“시간에 맞춰 왔군, 강 경감.”
나는 김준성 경찰청장에게 인사를 하고 손님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 두 명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나를 보며 그렇게 인사한 것은 이현아.
화인 그룹 소속의 퇴마사 단체인, 화랑의 전무 이사였다.
한편.
“……”
그 옆에 앉은 거친 인상의 노인은 나를 유심히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나는 저 노인을 알고 있었다.
TV에서도 몇 번이나 봤던 80대가 넘는 나이의 노인.
하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큰 키와 든든한 체격을 가져, 늙은 곰을 연상시키는 그 사람은.
이현아의 할아버지이자, 화인 그룹의 회장인 이성민이었다.
“강진우 경감이라고 합니다.”
“이성민이다. 만나게 되어 반갑군.”
내 말에 그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에게 관심이 있는 듯하면서도, 그리 나쁜 인상은 아니었는지 이성민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머리 위에 뜬 레벨 표시를 확인했다.
72 레벨.
이성민 회장 역시 퇴마사 출신이었던 걸까.
게다가 서인나 팀장을 넘어설 정도로, 상당히 높은 레벨이었다.
저 나이면 퇴마사로 활동하지는 않겠지만… 과거에는 꽤 실력이 있던 퇴마사였으리라.
“강 경감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 불렀네. 이분들에 관한 이야기니, 일단 앉지.”
이어진 김준성의 말에 나는 그들이 둘러앉아 있던 테이블의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그러자 나를 관찰하던 이성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청장 양반. 사정 설명은 내가 직접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그래, 강 경감. 자네가 왜 이 자리에 오게 됐는지, 혹시 짐작 가는 게 있나?”
이성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짐작이라.
화인 그룹의 회장이 나를 직접 찾을 일이라면… 역시 화랑에 관련된 일인가.
그런 생각에 나는 옆에 앉은 이현아를 슬쩍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부드럽게 웃고 있을 뿐, 이렇다 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깔끔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흠… 그럴 테지.”
“……”
“실은 내가 자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오게 됐다.”
감사?
내가 대기업 회장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일을 했던가?
하지만 거기에서 이성민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얼마 전에 마역을 해치우며 발견했던 군번줄 중에 이성민 형의 것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것을 단서로 그 철책 주변에서 유골 발굴 작업도 시작되어, 이성민은 그 유족의 대표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자네 덕분에 내 평생에 짊어지던 한을 하나 덜었어.”
고개를 숙인 것은 그 옆에 있던 이현아도 함께였다.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
그래도 나쁠 건 없었다.
이렇게 나를 찾아오기까지 했다는 건, 뭐라도 주겠다는 뜻이었으니.
그래서 나는 먼저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는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흥, 제 할 일도 못하는 것들이 이 천지에 얼마나 많이 널려있는 줄 아나? 할 일을 했다면 칭찬받아 마땅하지. 안 그런가, 김 청장?”
“하하,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성민은 다시 자리에 앉았고, 김준성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단지 이성민 쪽이 나이가 많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듯 보였다.
하긴 이성민 역시 과거에 퇴마사였다면, 서로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으리라.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혹시 나에게 원하는 게 있나?”
이성민은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대기업 회장을 상대로 원하는 걸 말하라니.
이렇게만 생각하면 마치 엄청난 걸 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바로 옆에 경찰청장이 앉아있지 않는가.
굳이 그런 자리에서 이런 물음을 던진 것은,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만 말하라는 뜻.
그렇다면… 기껏해야 신기 정도인가.
화랑의 신기 창고는 이미 본 적이 있었다.
거길 뒤진다면야 쓸만한 게 있긴 하겠지만 당장 뭔가를 달라고 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대답을 미루려 했지만.
“…글쎄요”
“뭔가를 받는 것에 신중하다더니, 그 말대로군. 현명한 처사야.”
이성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미리 준비를 해왔지.”
“준비요?”
“내 손녀에게 들었다만, 금서를 모으고 있다지?”
그 말에 이현아가 고급스러운 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테이블 위로 꺼냈다.
그건 평범한 천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금서가 내재한 저주를 막아주는, 신기의 일종.
하지만 그럼에도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검은 빛을 보면… 그건 정말로 금서인 듯 보였다.
“이걸 주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마음에 안 드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금서라면 나에게는 웬만한 신기보다 가치가 높았다.
새로운 스킬은 물론, 퀘스트와도 연관이 있으니.
게다가 금서는 신기와는 달리, 전 세계에 퍼져 있어 당장 얻고 싶어도 얻을 수가 없는 물건이다.
그중 하나를 거저 얻을 수 있다면, 나에게는 바라지도 않던 일이었다.
“아닙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다행이군. 그런데 이 불길한 건 왜 모으고 있는 건가? 갖고 있어봐야 좋은 물건이 아닌데.”
“그 대답은 나도 듣고 싶군.”
금서라는 말에 가만히 있던 김준성까지 끼어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경찰청장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저 이성민의 부탁을 받아 여기에 있는 줄 알았더니.
그도 내심 내가 가진 능력에 의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서인나 팀장의 말에 의하면, 경찰 내부에서 내가 가진 수많은 전승에 대해 말이 나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 논란을 덮어준 것이 바로 경찰청장인 김준성이었다.
하지만 그도 경찰이라는 조직의 장인 이상, 최소한의 확인은 직접 하고 싶다는 건가.
그렇다면 나도 피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한번은 납득시키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인데다.
이 정도면 붙잡고 심문하는 것보다야 훨씬 신사적이었으니.
“파괴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 세상에 있어 봐야 좋은 물건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나는 그 모습을 아예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나는 이현아의 앞에 있던 금서의 천을 벗겼다.
금서가 가진 저주를 막아주고 있던 신기가 벗겨지자, 비로소 금서의 설명이 눈앞에 나타났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13개의 금서 중 하나.
자이나 교와 관련된 금지된 술법이 적혀있다.
자이나 교의 고행을 수행한 자만이 금서를 열람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자가 금서를 읽거나 만지면 저주받아 죽는다.
“어떤 종교의 금서인지, 알아보겠나?”
“자이나 교의 금서네요.”
“호오…”
단번에 금서의 정체를 알아본 나를 보며 김준성이 눈을 빛냈다.
자이나 교는 인도의 종교 중 하나로, 고행을 통한 깨달음에 중점을 둔 종교다.
특히 카르마, 즉 업을 중요시하는 종교이기에 그 어떤 것도 죽이지 않는 불살을 가장 첫 번째 가르침으로 두는 종교.
나는 그런 자이나 교의 금서에 직접 손을 댔다.
그러자, 자이나 교의 금서는 빛으로 변하며 내 손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이걸로 네 권째.
나쁘지 않았다.
“이건…”
“허…!”
한편 그 모습에 이성민은 물론 김준성까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먼저 나에게 물음을 던진 것은 이현아였다.
“어떻게 하신 건가요?”
“제 능력입니다.”
나는 이어서 파괴한 금서와 관련된 전승의 일부를 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준성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건 안 좋은 게 아닌가?”
그의 염려는 알 법도 했다.
금서가 가진 전승이라고는 금지된 술법뿐이었으니.
그리고 실제로 부두술의 금서는 영혼을 추출하고, 조로아스터교의 금서는 죽음을 수집한다는 등.
음험한 스킬이 추가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지금 새롭게 얻은 스킬이,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상식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스킬 활성화 시, 상대의 말에서 참과 거짓을 꿰뚫어 본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를 들면… 지금 자이나 교의 금서로 제가 얻게 된 전승은 ‘불망어’입니다.”
“자이나 교의 5대 서약 중 하나로군.”
이성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이나 교의 종교 의무인 5대 서약은 다음과 같다.
죽이지 않을 것.
소유하지 않을 것.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
남의 것을 훔치지 않을 것.
음란하지 않을 것.
그중에서도 불망어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을 뜻했다.
“그 말은… 자네가 거짓말을 구분할 수 있다는 건가?”
“한 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좋지.”
곧바로 이성민은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지난주 일요일 자신이 먹었던 저녁 메뉴가 중식이었다는 둥.
전부 내 능력을 가늠하기 위한, 그냥은 결코 진실을 알 수 없는 시험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서 전부 참과 거짓을 확실히 분별해냈고.
“이번에도 맞았다. 아무래도 그 말이 사실인가 보구만.”
이성민은 얼마 안 가 내가 가진 전승의 효과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헛웃음을 짓다가 금방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참과 거짓을 분별한다라. 경찰에게는 딱 좋은 능력이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 제가 다 부러운 능력이군요.”
김준성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럼 금서를 얻을 때마다 새로운 전승을 얻게 된다는 건가?”
“그런 셈입니다. 일부 귀물에서도 가능하고요.”
“귀물까지? 흠, 그랬군. 그래서…”
이제야 그는 내가 어떻게 수많은 전승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 내막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무언의 신호가 된 것인지.
이성민이 갑자기 이야기의 화제를 바꿨다.
“그럼 이야기가 정리된 것 같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지.”
“다음이요?”
“그래. 자네에게 감사를 전하러 온 것도 사실이지만, 실은 용건이 하나 더 있어. 내가 자네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다. 물론 김 청장에게도 동의를 받았지.”
이게 본론이라는 듯 이성민이 말했다.
맡기고 싶은 사건이라.
역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더니.
서인나의 예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중요한 사건입니까?”
“중요하다고 할 만한 건수는 아니야. 우리 공장 부지에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힘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번거로운 일이지.”
이성민의 말에 김준성 역시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저 번거로운 일이라는 건가.
그런데 거기에서 퀘스트 버튼이 번쩍였다.
나는 재빨리 퀘스트 창을 열었다.
– 이성민 회장의 시험을 통과하세요.
퀘스트 내용은 짧고 간결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첫 번째는 그가 나에게 맡기려는 이 사건이 시험이라는 것.
사건 자체는 큰일이 아닐 수 있어도, 이를 통해 이성민이 내 기량을 엿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것이 메인 퀘스트라는 점.
메인 퀘스트라면 높은 확률로 사교와 관련이 있다.
그럼 이성민이 나를 시험하려는 이유도, 그와 연관이 있는 것일까.
“어떻게, 맡아주겠는가?”
퀘스트도 퀘스트고, 경찰청장이 허락했다는 부분에서 이미 거절의 여지는 없었다.
굳이 거절할 필요도 없었고.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고맙군. 사건에는 현아가 동행하게 하지. 아무리 경찰이 나서준다고 해도, 화랑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
그렇게 말하며 이성민은 자연스럽게 이현아를 나에게 붙였다.
하지만 시험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던 나에게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
그들과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경찰청을 나온 나는 곧바로 이현아의 안내에 따라 공장 부지가 있다는 충청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