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34
134.
문제가 있다는 화인 그룹의 공장 부지로 향하는 길.
가는 길은 이성민 회장이 예고했던 대로, 이현아와 함께였다.
차량은 경찰차가 아닌 화인 그룹의 것으로, 이현아의 비서인 진유나가 운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중.
이현아에게 공장 부지의 문제에 관한 내용을 전해 받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에… 뭐가 있다고요?”
“흰 고라니요.”
이현아는 아무렇지 않게 조금 전의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질문을 이었다.
“하얀 고라니가 거기 있는 게 왜 문제입니까?”
“그냥 알비노 고라니가 아니거든요. 그건 영물로 취급되는 백록이에요.”
백록은 주로 산신령과 연관이 깊은 영물이다.
또한 한라산 정상의 호수를 백록담이라고 칭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특히 제주도 설화에 자주 등장하고.
한때는 그곳에 실존했다고도 알려진 사슴의 일종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백록이 고라니란다.
그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고라니가 백록이요?”
“영물로서의 백록은 어떤 사슴에게도 나타날 수 있어요. 그리고 고라니도… 사슴은 사슴이니까요.”
내 질문에 이현아는 고라니에 대한 설명을 잠깐 늘어놓았다.
고라니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전승이나 설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고라니 고기를 먹으면 3대가 재수 없다든가.
밤에 산을 돌아다니면 이빨 달린 사슴이 잡아간다든가 하는, 노인이나 사냥꾼들 사이의 격언이 전부.
반면 고라니의 상위 개념인 사슴과 관련된 전승은 수도 없이 많다.
이현아는 그런 사슴과 관련된 전승 중 일부가, 고라니에게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에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사슴 중에 가장 번성한 건 누가 뭐라고 해도 고라니죠. 그러니 이 시점에 사슴에 속하는 영물이 등장할 경우, 그 개체가 고라니일 확률이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는 거에요.”
영물이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냥 오래 사는 것이다.
백 년 묵은 여우가 구미호가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렇기에 이현아가 한 말은 이론적으로는 틀리지 않았다.
만약 영물이 될 정도로 오래 살아남은 사슴이 있다면, 현대에서는 그게 고라니일 확률이 분명 가장 높을 테니.
“그래서…영물 고라니가 나타난 게 문제라는 겁니까?”
“괴이는 몰라도 영물은 저희가 쉽게 건드릴 수 없어요.”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물은 특별한 힘과 지능을 가진 짐승이다.
또한, 그 힘은 대체로 인간에게 도움이 되고, 때때로는 닥쳐오는 재앙을 막아주는 영물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영물이 나타났을 경우, 이를 마음대로 해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실제로 과거에는 아무 생각 없이 영물을 퇴치해버렸더니, 갑자기 홍수나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등의 사고 사례도 존재했으니.
따라서 영물은 발견하더라도 그냥 놔두는 게 가장 좋고.
만약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적절한 절차를 밟아 영물을 생포해서 관련 기관에 보내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럼 그 하얀 고라니를 생포하는 게 목적이겠군요.”
“일단은 그래요. 그 영물이 지금 공장 부지 내의 출입을 방해하고 있거든요.”
“방해요?”
“예. 주변의 고라니들을 통솔해서 아예 산으로 오르는 도로부터 막고 있죠. 아마 곧 보일 거예요.”
어느새 공장 부지가 있다는 산 근처까지 온 건지 이현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이 근처부터는 차를 타고 갈 수가 없어요. 꽤 걸어가셔야 할 텐데, 괜찮으신가요?”
이현아는 송구스럽다는 얼굴로 그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걸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네…?”
내 말에 그녀는 산 위를 향하는 도로를 바라보았다.
이현아의 말과는 달리,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는 고라니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이현아는 놀란 눈으로 도로를 살폈다.
하지만 차량이 도로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가는 도중에도 고라니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그럼요. 알고 있습니다.”
고라니가 사라진 이유는 당연히 내가 가진 백호의 분령 때문이었다.
산짐승과 호랑이들을 지배하는 그 신격은, 포식 당하는 처지인 고라니에게 있어서는 복종과 공포의 대상일 테니.
“도로 상태만 봐도 고라니가 있던 건 확실해 보이네요.”
“그… 그렇죠.”
산 속의 도로는 고라니들의 털과 배설물 등으로 지저분한 상태였다.
또한 주변의 나무와 들풀이 이리저리 꺾여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오기 직전에 도로에 있던 고라니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친 것이 훤히 보였다.
그래서일까.
나와 함께 도로를 관찰하던 이현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뭔가 하신 건가요?”
“예. 그쪽과 관련된 전승이 있어서.”
어차피 하얀 고라니를 만나게 되면 나에게 짐승을 다루는 힘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 그렇게 답했다.
“역시… 그러셨군요.”
그러자 이현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도착했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진유나의 말을 듣고, 나는 공장 부지에 세워진 차량에서 내렸다.
아직 기초 공사조차 끝나지 않아, 지상에 세워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땅.
하지만 부지 자체에는 아무런 특이점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마역의 입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잠깐 부지를 둘러보던 나는 이현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화랑 쪽에서 고라니와 접촉한 적은 있습니까?”
“시도는 해봤지만, 못했어요.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필사적으로 저희를 쫓아내려고만 하고, 접촉조차 거부하거든요.”
“음, 어쨌든 이 산속에 있다는 거네요.”
이현아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굳이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켕켕이를 불렀다.
솜털같이 하얀 털 뭉치가 내 앞에 나타났다.
최근 들어 꼬리 하나가 더 늘어난 네 꼬리 여우.
그 여우가 나를 보며 울었다.
“켕!”
“아, 이 아이가…”
이현아가 켕켕이를 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내 기억에 이현아가 켕켕이를 본 적은 없을 텐데.
“알고 계셨습니까?”
“유나… 진 대리에게 들었어요. 귀여운 식신이 있으시다고.”
“……”
자신의 이야기가 나왔음에도 이현아의 뒤에 선 진유나는 무표정하게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 눈동자만이 내 옆에 있는 켕켕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
“먼저 식신을 보내 탐색을 하실 생각이신가 봐요?”
“탐색이라기보다는 아예 여기로 불러올 겁니다. 제가 직접 가봐야 부담만 줄 것 같아서.”
“불러온다고요…?”
나에게 깃든 것은 백호의 분령이다.
그 앞에서는 아무리 평범한 고라니가 아니라 영물의 힘을 이어받은 백록이라 해도 두렵기는 마찬가지.
그러니 내가 직접 고라니를 찾아다니기보다는, 켕켕이를 보내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물론 켕켕이 역시 구미호의 힘을 갖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우가 가진 산짐승 사이에서의 격은,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었다.
호랑이는 고사하고, 늑대나 들개에게도 밀리는 처지였으니.
그에 비해 백록은 산신령의 신수 같은 존재로, 여우와는 뚜렷한 상하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곳은 그 백록의 권속인 고라니가 다수 서식하고 있는 백록의 영역.
그러니 구미호 수준의 격이라면, 백록 역시 그리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놈보고 직접 오라고 해. 알았지?”
“켕!”
그래서 나는 켕켕이를 사절로 보내기로 했다.
비록 여우와 고라니 사이에 말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다못해 백호가 너를 부르고 있다는 메시지 정도는 어떻게든 전달이 되겠지.
“이렇게 작은데, 괜찮을까요?”
이현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야 지금은 작은 강아지 수준이라, 평범한 고라니가 지나가기만 해도 그 발에 밟힐 정도로 작았으니.
하지만 켕켕이에게는 새로운 기술이 있었다.
“이제 커질 겁니다.”
요물화.
켕켕이에게 깃든 구미호의 격을 깨우는 스킬이었다.
먼저 하얀 꼬리가 커지며 켕켕이의 몸을 뒤덮었다.
그렇게 꼬리에 휩싸여 하얀 털 뭉치로 변한 켕켕이는 그 상태에서 마치 풍선처럼 순식간에 몸집을 불렸다.
그리고 켕켕이가 다시 꼬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더 이상 작은 새끼 여우가 아닌 수려하고 상서로운 외모의 백여우가 되어 있었다.
몸집은 어느새 사람보다도 커져 있었다.
크기만 본다면 호랑이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
“그럼 가 봐.”
“켕!”
하지만 그 울음소리만은 여전했다.
그렇게 거대해진 켕켕이가 숲 속으로 사라졌고, 그 뒤를 이현아와 진유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현아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입을 열었다.
“정말 저 여우만 보내실 건가요?”
“예. 저렇게 커졌는데, 아직도 불안하세요?”
“그게 아니라… 백록의 성향 때문에 그래요. 원본이 고라니라서인지, 성격이 안 좋거든요. 저희 퇴마사들이 접촉하려 했을 때도 꽤 애를 먹었어요.”
성격 더러운 고라니라.
그건 나도 군대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가 갔다.
아무리 구미호라도 말로만 하는 설득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지금 그 구미호, 켕켕이의 뒤에 있는 것은 바로 모든 산짐승의 왕이자, 태산의 제왕인 백호다.
그리고 백록 역시 내가 구미호를 보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터.
그러니 놈은 켕켕이를 쉽게 볼 수만은 없었다.
켕켕이의 전언은 곧 백호가 백록에게 보내는 명령일 테니.
켕켕이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호가호위인 셈이었다.
“걱정할 건 없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했고, 이현아는 마지못해 의문이 남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후.
“켕!”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숲 속에서 켕켕이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는 척 보기에도 풀이 팍 죽은 하얀 고라니가 수풀을 헤집고 뒤따라 나왔다.
“……”
백록이라서일까.
그 크기는 일반 고라니보다 부쩍 컸다.
그렇다 해도 순록 정도는 아니지만, 말보다 조금 작은 수준으로 고라니로 볼 수만은 없을 정도.
또한 그 입 아래로 튀어나온 이빨은 마치 검치호랑이처럼 굵고 길다.
보통 백록은 뿔이 크던데, 뿔이 없어서 이빨이 커진 건가.
그럼에도 나름대로 묘하게 어울린다는 점이 어이가 없었다.
“정말로… 왔네요.”
한편 그렇게 찾아도 만나지 못했던 하얀 고라니가 제 발로 얌전히 걸어온 것을 보고 이현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문득 정신을 차린 그녀는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이대로 생포를 하실 건가요?”
여기까지 와서는 나에게 하얀 고라니의 생포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내 앞에 선 백록은 지금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다.
이 정도로 백호의 기세에 짓눌려 있다면, 내가 명령만 내려도 그대로 따르겠지.
하지만 아직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잠시만요.”
그냥 정신 나간 고라니라면 모를까.
백록에 이른 고라니가 이 공장 부지를 점거하고 있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퀘스트의 내비게이션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퀘스트의 화살표는 백록이 아닌, 백록이 걸어나온 숲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역시나 무언가 더 있다는 말.
“너, 내 말 알아듣냐?”
나는 그 하얀 고라니에게 슬쩍 말을 걸어봤다.
지난번에 이무기가 그랬듯, 혹시 말이 통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끼… 끼에엑…!”
백록은 잔뜩 얼어붙은 채로 기괴한 울음소리만을 슬쩍 흘렸다.
이래서야 대화는 불가능하겠군.
그래서 나는 그저 퀘스트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백록의 눈이 껌뻑거리며 반응했다.
“안내해.”
“끼… 끼엑?”
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백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옆에 있던 켕켕이가 나섰다.
“켕!”
“끼에에엑!”
놀랍게도 켕켕이의 말은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하긴, 퀘스트에서 켕켕이는 선도성모의 신수라고 하지 않았던가.
선도성모는 신선이자 산신령이기도 했던 존재.
그러니 켕켕이가 백록을 포함한, 산짐승과 소통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끼엑!”
한편 백록은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곧장 화살표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고라니의 모습에 이현아가 입을 열었다.
“뭘 하신 건가요?”
“대화를 시도해 봤는데, 잘 안 되네요.”
내 말에 이현아가 나를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고라니랑 대화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
그래서 나는 바로 화제를 바꿨다.
“다만 백록이 이곳에서 출입을 막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그래서 일단 뒤를 따라가 보려고요.”
“안내를… 해준다는 건가요? 저 백록이?”
이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백록의 뒤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산길을 올랐지만, 뜻밖에도 산은 꽤 깊었다.
작은 오솔길조차 나 있지 않아,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이 거의 없는 산.
그래서 나는 이현아를 돌아보았다.
“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네. 이 근방은 대부분 미개발된 산지뿐이에요. 땅값이 싸다는 것 말고는 딱히 메리트가 없는 위치라.”
그래서 고라니만 넘쳐났던 건가.
나는 앞서 가는 백록을 바라보았다.
저 고라니, 백록은 사람들이 이 산에 출입하는 것 자체를 차단했다.
그렇다는 건 인적 드문 숲속에 무언가 있고.
백록은 사람에게서 그걸 보호하려 했다는 건가?
“흠…”
나는 그렇게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며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백록은 그 걸음을 멈췄다.
“끼…엑.”
이곳이라는 듯 백록이 바라본 것은… 어떤 바위였다.
아니, 바위라기보다는 비석인가.
그 비석의 양옆에는 장승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장승은 얼마나 오래됐는지, 새겨진 한자조차 거의 지워져 있었다.
또한 그 몸체도 성하지는 않아서 모두 머리 부분이 부러져, 어딘가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목 없는 장승 한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비석은 역시 반으로 쪼개져 있었는데.
본래 높이는 2미터, 폭은 1미터에 달하는 것이었다.
“이건…”
나는 그 비석을 바라보았다.
근처에는 비석을 휘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밧줄 같은 것도 보였으나 역시 세월이 흐르며 썩어 끊어진 것 같았다.
이 정도면…10년이나 20년 정도 묵은 게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조선 시대 물건인가.
내가 그런 추측을 하던 찰나.
비석 위에 새겨진 글자를 노려보던 이현아가 입을 열었다.
“이거, 봉인석이에요.”
반으로 쪼개진 봉인석이라.
그리 반가운 말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