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36
136.
“……”
성화의 빛이 어둠 속을 환히 밝혔다.
하지만 그 앞에서도 두억시니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두억시니의 레벨을 확인했다.
78.
80에 육박하는, 자신감을 가질 정도로 높은 레벨이었지만.
내 앞에서만큼은 무모한 자신감이었다.
아무리 강한 음기를 가진 악귀라도 내 검에 깃든 것은 주작의 화염이다.
사특한 것을 태우는 그 신조는 사방신 중에서도 가장 강한 양기를 가졌으니.
분명 한 대만 맞아보면, 저놈도 생각이 달라질 테지.
그러나 나는 여전히 비웃음을 지우고 있지 않은 놈을 보며, 괜한 고집이 생겼다.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고.”
인검에 깃든 하얀 화염 위로 스파크가 튀었다.
섬뜩하게 날이 선 검을 따라 화염과 전격이 서로 얽히듯 흘렀다.
그리고 하늘은 검게 변했다.
어디선가 몰려온 거대한 벼락 구름들이 순식간에 천지를 까맣게 물들였고.
원래 있던 흉가의 어둠은 그중 일부가 되어 버렸다.
이어서 그 검은 하늘은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당장에라도 벼락을 퍼부을 것처럼 요동쳤다.
“……”
또 하나의 사방신이 가진 권능.
이에 두억시니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드드득!
썩은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두억시니 뒤쪽에 있던 흉가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거기서 튀어나온 것은 몇 개의 쇠붙이.
백호의 권능이 흉가의 일부였던 금속을 억지로 뜯어내, 기어코 그것을 꺼내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쇠붙이들은 하늘을 나는 벌떼처럼 두억시니의 사방을 맴돌았다.
전부 흉가에 있던 금속이기에 결코 무기로 적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위에 성화가 씌워지고, 푸른 전격이 번뜩이기 시작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그 보잘것없던 쇠붙이 하나하나가 이 순간, 귀신의 명맥을 끊는 탄환이 된 것이었다.
“……”
세 번째 사방신의 권능.
거기까지 가자, 비로소 두억시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그러나 그조차도 끝이 아니었다.
화염과 전격으로 번뜩이던 인검과 쇠붙이 위로 이번에는 보라색의 기운이 더해졌다.
먼 타국의 신인 나가가 사용하는, 뱀신의 맹독.
어쩌면 놈이 알아볼 수도 있었다.
두억시니의 유래 중 하나인 야차 역시, 나가와 함께 인도 신화에서 불교로 넘어온 존재.
몇 다리를 건너서이긴 해도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 맹독은 아침 이슬처럼 검을 따라 또르르 굴러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지면은 염산을 퍼부은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 주먹만 한 구멍을 남겼다.
그 모습이 꽤 위협적이었던 걸까.
“……”
팔짱을 낀 채 꼼짝도 않던 놈이 겨우 그 팔을 풀었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고 자신을 향하고 있는 쇠붙이들을 노려보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제야 겨우 제 주제를 깨닫고 겸손해진 것이었다.
“그래, 그래야지.”
이제 남은 것은 아직 땅에서 떨어지지 않은 두 발을 움직이게 하는 것뿐.
하지만 그건 내가 움직일 것도 없었다.
콰르릉!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벼락이 허공을 찢고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두억시니의 사방을 맴돌던 쇠붙이가 놈의 머리를 부수기 위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그러자 역시나 다음 순간.
벼락은 애꿎은 지면을 내리치며 굉음만을 남겼고, 쇠붙이는 두억시니의 미간에 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두억시니가 제 몸을 움직여,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이었다.
어느새 흉가 안쪽으로 피신해 있는 놈.
게다가 상당히 급하게 피한 건지, 미처 자세를 정비하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있었다.
“이걸 쫄아서 튀네.”
나는 자신이 가진 전승조차 재현하지 못한 두억시니에게 비아냥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놈의 얼굴이 굳는다.
그 안에는 아직 체면을 차린 근엄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러나…두억시니가 겪을 굴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인검을 들어 두억시니를 가리켰다.
“이제 니 차례다.”
나는 조금 전의 놈보다도 더욱 거만하게 말했다.
“이번엔 네가 날 움직이게 해 봐.”
그 말에, 두억시니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어느새 핏빛 몽둥이를 손에 든 야차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 * *
“……”
이현아는 입을 벌린 채 눈앞의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쉴새 없이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의 정체를, 이현아는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강진우의 검과 두억시니의 몽둥이가 부딪치는 파열음인지.
아니면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벼락의 울림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하얀 화염이 만들어내는 폭발음인지, 전혀 구분되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이런…”
이현아는 그 화려한 전투를 보며 숨을 삼켰다.
강진우의 실력은 이현아 역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의 비서인 진유나는 이전에 이미 마인 사브리나와 강진우의 전투를 목격했고.
그 이후로도 이현아는 지속적으로 강진우의 정보를 수집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두억시니와 싸우겠다는 강진우를, 이현아는 걱정했었다.
그가 사용하는 수많은 전승들.
그걸 전부 동원해도 두억시니를 상대로는 쉽지 않을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그런 그녀의 걱정과는 너무나도 크게 동떨어져 있었다.
그의 전승은 하나하나가 두억시니에게 위협적이었던 것이다.
“—-!”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두억시니가 분노에 휩싸인다.
쾅!
그런 두억시니의 분노를 고스란히 담아낸 핏빛 몽둥이가 강진우의 검과 부딪힌다.
거기에는 분명 어마어마한 힘이 실려있을 테지만, 그것을 강진우는 너무나도 유려하게 밀어냈다.
그러자 공이 굴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두억시니의 균형이 무너졌고.
그 사이로 쇠붙이가 날아들었다.
기껏해야 흉가에 붙어 있던 경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인의 검과 같이 화염과 전격과 독기를 두른 그것은 두억시니의 이마를 사정없이 긁고 지나갔다.
그러자 두억시니의 이마에는 깊은 검상과 함께, 화상 자국이 새겨지며 그 살을 썩게 했다.
“——!”
제 머리가 상한 것이 그리도 분한 것일까.
마침내 두억시니가 제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던 놈의 허물이 벗겨진다.
그 껍질을 깨고 나온 것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거대한 도깨비의 형상.
눈에 띄는 모든 것을 패 죽인다는 야차이자, 도깨비들의 왕이라고 불린 두억시니의 본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앞에서도 강진우는 의연했다.
아니, 의연하다기보다는 오만했다.
그는 여전히 자기가 서 있던 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준비를 끝낸 두억시니가 자신에게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여기까지 와서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이현아도 알 수 있었다.
강진우는 앞으로도 제 발로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겠지.
그저 그 자리에 서서, 공격해오는 두억시니를 베어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상대인 두억시니는 설화 자체가 지나가는 재해에 가까운 괴이다.
화랑의 최고 실력자를 이 자리에 갖다놔도, 저렇게는 싸우지 못할 텐데.
“—–!”
괴성과 함께 두억시니가 뛰어올랐다.
놈이 발을 구른 그 충격만으로, 땅은 이현아가 서 있는 곳까지 뒤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공중에 뜬 두억시니의 두 손은 제 몽둥이를 꼭 잡고 그걸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이대로 강진우의 머리 위로 떨어져, 온 힘을 다해 그를 내려치겠다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
“……”
이에 이현아의 눈이 빛났다.
두억시니의 저 공격은 막을 수는 없지만, 피하기는 쉽다.
그리고 그만큼 빈틈도 많은 공격이니 회피 후 곧바로 반격을 날린다면, 상당히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었다.
결국 두억시니는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강진우를 움직이게 하는 데에만 집중해 실책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순간, 이현아는 강진우의 승리를 확신하면서도 그가 자신의 고집을 포기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짓을…!”
그는 결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두억시니의 몽둥이를 보면서 새롭게 검격을 준비했다.
마치 정면에서 두억시니를 그 몽둥이째로 베어내겠다는 것처럼.
그래서 이현아는 당황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모했다.
아니, 무모를 넘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 몽둥이는 단순한 금속이 아니다.
두억시니의 상징과도 같은 저 핏빛 둔기는 이미 그 자체가 귀물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아무리 강진우의 검이 뛰어난 신기라도 그와 동급인 귀물을 벨 수는 없다.
없을 터인데.
어째서 저 남자는 저렇게나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때였다.
소름 끼치는 예기가 공간을 잠식했다.
아직 그는 검을 뽑지도 않았건만, 당장에라도 목이 잘려나갈 것만 같은 예기였다.
이에 분노에 미쳐 있던 두억시니마저 순간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의 검이 빛났다.
“-!”
그것이 움직이는 순간은 너무 빨라, 이현아조차 포착하지 못했다.
의식을 집중해 길게 늘어진 시간 속에서도 그녀가 겨우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잔상처럼 남은, 한 줄기의 서늘한 검광뿐.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낸 참상은 곧바로 나타났다.
두억시니의 핏빛 둔기가 가래떡처럼 잘려나갔다.
그것도 모자라 그 뒤에 있던 두억시니의 머리가 눈 위부터 깨끗하게 가로로 베어졌다.
하늘을 나는 두억시니의 두개골.
그렇게 두억시니는 허공에서 머리가 열린 채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여전히 강진우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
그걸 보며 이현아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놀라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그녀는 문득 자신의 임무를 깨달았다.
그녀가 이번에 맡은 일은 강진우의 실력을 파악해서 이성민 회장에게 이를 설명하는 것.
하지만 이래서야 뭘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현아는 옆에 있던 진유나를 바라보았다.
“…찍었어요?”
“예? 아… 예!”
이현아와 같이 경악에 잠겨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진유나는 그렇게 답했다.
진유나는 아까부터 강진우와 두억시니의 전투를 영상으로 남기고 있었다.
촬영 자체는 이미 이곳에 오는 길에, 강진우에게 허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다소 불편해했지만, 이성민 회장의 요청이라고 하니 그는 마음대로 하라고 답했다.
그때는 그저 만약을 위한 일이었지만.
지금 와서는 그 판단이 다행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말뿐이었다면 이런 싸움 따위, 그 의심 많은 노인네는 제 손녀의 증언이라도 믿지 못했을 터였다.
“음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진유나가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산골짜기를 가득 채우던 두억시니의 음기는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 * *
“…이게 되네.”
나는 인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잘려나간 두억시니의 몽둥이를 살폈다.
그 몽둥이의 절단면 중 대부분은, 베인 것이 아니라 녹은 상태.
이는 나에게 있는 소화액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전에 흑연 놈을 잡았을 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소화액은 땅에 속하는 바위는 물론 금속 역시 자유자재로 녹일 수 있었고, 그 속도 역시 생각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나는 이를 이용해 두억시니의 몽둥이를 녹여버리려 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금속을 잘 녹인다고 해도, 두억시니의 무기는 그냥 금속이 아니었으니.
그래서 나는 놈과 여러 번 공방을 주고받으며 놈의 무기에 흠집부터 냈다.
그리고 그 흠집을 집요하게 노리며 그 안으로 소화액을 주입했고.
전투를 지속하며 그 양을 늘려, 몽둥이의 안쪽부터 천천히 균열을 키웠다.
그렇게 마지막에는 안쪽부터 깊은 균열이 생긴 몽둥이를 믿고 달려드는 놈을 그 무기와 한 번에 베어버린 것이었다.
“흠…”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귀찮은 짓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두억시니를 두 발을 땅에서 떼지 않은 채로 베어내기가 조금 곤란했으니.
“끝난 건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흉가는 원래 이곳에 있던 건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괴이나 령은 존재하지 않았고.
어둡던 골짜기 안으로는 서서히 온기와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괴이인 두억시니를 벤 것으로 인검과 관련된 보상도 들어왔다.
이걸로 내 레벨은… 딱 50.
100 레벨이 넘는 존재는 본 적이 없으니, 그 정도가 만렙이라고 쳤을 때 딱 중간까지 온 것이었다.
또한,
이성민 회장의 시험을 통과하라는 메인 퀘스트 역시 깔끔하게 완료되어 있었다.
그럼 이다음은… 나를 인정한 이성민 회장의 의뢰가 이어지는 건가.
분위기로 봐서는 역시 그렇겠지.
이에 나는 을씨년스러운 흉가를 떠나, 이현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현아와 진유나가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요?”
“아니, 아니에요.”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그렇게 물었지만, 이현아는 고개를 저었다.
진유나 역시 아무 말도 없이 시선만을 돌렸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너무 화려하게 싸웠나.
하지만 그건 반쯤은 의도된 것이었다.
이성민의 시험을 통과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려면 역시 두억시니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싸운 거였는데.
혹시 역효과였나?
그런 의문을 떠올린 찰나.
“끼에에엑!”
갑자기 옆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고라니, 백록이었다.
두억시니가 사라져서인지, 제 발로 기어온 놈은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는 내 신발을 핥았다.
“뭐야,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래?”
“끼…끼에!”
내가 신발을 털자, 백록은 화들짝 놀라다가도 몇 걸음 물러나 그곳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다지 나쁜 뜻은 없어 보이는데.
“…자길 데려가라는 건가?”
하긴 두억시니에게서 사람을 지키고 있던 놈이 아닌가.
이제 두억시니가 사라졌으니, 백록이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기도 했다.
또 나야 어차피 백록을 데려가려 했으니 거부할 이유도 없었고.
영물은 영물인지, 제 살 길은 잘 찾는 것 같다.
“그럼 너도 따라와라.”
나는 그렇게 백록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가 세워져 있을 공장 부지로 이동했다.
어느새 하늘에서는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