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39
139.
“우렁각시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하수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렁각시 설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진 설화 중 하나다.
그 내용은 이렇다.
한 농부가 논에 있던 우렁이를 불쌍히 여겨 집의 항아리에 가져다 놨는데.
다음 날부터 농사일을 하고 돌아오면 밥이 차려져 있다거나, 청소가 되어 있다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를 이상하게 여긴 농부는 어느 날 일을 가는 척하며 집 근처에 숨었고.
곧 집안일을 해준 것이 자신이 구해준 우렁이가 변한 우렁각시임을 깨닫는다.
그 후에는 둘이 결혼하고, 우렁각시를 빼앗으려는 권력자와 싸우게 되는…대충 그런 이야기.
하지만 그런 전승 속의 우렁각시는 귀물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던가.
“정말 우렁각시가 이 안에 있어요?”
“예. 물론… 일반적으로 알려진 전승과는 많이 다르지만요.”
하수정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이 내부는, 일반 가정집의 형태를 하고 있어요. 처음 우렁각시의 항아리를 확보한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건데… 크기는 60 제곱미터에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방 2개로 이루어져 있죠. 여기서 보이는 건 부엌뿐이지만… 다른 방에는 전부 카메라가 배치되어 있어서 내부를 감시할 수 있어요.”
하수정은 자신의 태블릿을 이용해 다른 방을 찍고 있다는 카메라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대로 조금 낡긴 했지만, 그 모습은 평범한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영상 어디에서도 우렁각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렁각시는 어디 있습니까? 안 보이는데.”
“지금은 항아리에 있어요. 부엌 왼쪽 밑에 있는 검은 항아리요. 그게 저희가 보관하고 있는 귀물인 우렁각시의 항아리에요.”
그녀의 말을 듣고 확인하니, 진짜 거기에 항아리가 있긴 했다.
크기는 농구공보다 조금 더 큰 정도.
또한 그 위에는 뚜껑이 덮여있어, 내부가 들여다보이지는 않았다.
“저 안에서 우렁각시가 나오는 겁니까?”
“그렇게… 추측하고 있죠.”
“추측이요?”
“사실… 저희도 우렁각시의 실체를 관측하지는 못했거든요. 일반 카메라나 적외선, 초음파 등… 가용 가능한 어떤 관측기로도 포착은 불가능했죠.”
실체를 보지 못했다니.
뜻밖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하수정의 말이 이어졌다.
“전승 때문이에요. 설화 속에서 우렁각시는 결국 농부에게 자신의 실체를 들켰어요.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농 부 외의 인물에게는 들키지 않았다는 말이니까.”
“그럼, 농부가 아닌 사람들은 우렁각시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겁니까?”
“그런 셈이죠.”
“그럼 어떻게 그게 존재한다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흔적이 남거든요.”
하수정은 태블릿에 몇 개의 자료를 띄웠다.
대충 보니, 그녀가 말한 그 흔적에 대해 정리된 자료였다.
“이건 부엌의 바닥을 모래사장으로 바꿨을 때에요. 모든 관측 수단을 치우면 우렁각시가 비로소 활동을 시작하는데, 그때 남은 발자국이죠.”
그 발자국 자체는… 지극히 평범해 보였다.
모래사장 위에 남은 것이니만큼 정확한 크기나 모습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괴물의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수정의 말이 이어졌다.
“그 외에도 조리 기구가 움직이거나, 더러운 방안이 깨끗해져 있거나 하는 등 우렁각시가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은 명백해요. 단지… 그 순간을 포착하지 못할 뿐.”
“그럼 그게 뭐가 위험해서 이렇게까지 해둔 겁니까?”
우렁각시의 방을 막고 있는 쇠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지 물리적으로 두꺼울 뿐만 아니라, 부적과 각종 주술로 봉인된 문.
그만큼 우렁각시를 경계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저 방에 들어간 남성은 누구든, 그녀의 농부로 받아들여져요. 그리고 우렁각시는…그 농부를 계속해서 죽이고 있죠.”
이어서 그녀는 몇 가지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렁각시의 방에 처음 남자가 투입되면, 우렁각시는 전승에서처럼 관측되지 않는 곳에서 그를 보조한다고 한다.
그냥 방안에만 앉아있어도, 식사 시간이 되면 부엌에서 밥상이 차려지는 것이다.
“놀라운 건 저 안에는 음식 재료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럼에도 완벽한 한식 밥상이 차려지고, 그렇게 차려진 음식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또 이를 먹어본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 맛도 훌륭하다고 하죠. 다만… 식사를 마친 직후, 우렁각시는 그 음식을 먹은 농부를 죽여요.”
“죽인다니, 어떤 식으로요?”
“순간적으로 모든 관측기를 무력화하고 대상을 참살하죠. 놀라운 일은 아니에요. 어떤 관측기에도 포착되지 않는다는 건, 역으로 모든 관측기를 인지하고 있다는 거니까.”
“그럼… 안 먹으면요?”
“그래도 결과는 비슷해요. 농부로 지정된 남성은 식사를 마치지 않고 저 방을 떠날 수도 있는데, 그 경우에는 저주를 통한 주살을 감행해요. 아직 해주가 불가능한 강력한 저주라, 지금까지 살아남은 실험 대상은 없어요.”
나는 침음을 흘리며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했다.
내가 아는 우렁각시와는 너무나도 다른 내용이었다.
“전승과는 많이 다르네요.”
“맞아요. 그래서 저희는 전승 자체가 비틀렸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왜냐하면…이번 대의 우렁각시에게는 사고가 있었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하수정은 사건 파일을 태블릿에 띄웠다.
“본래 우렁각시의 전승은 직접 목격된 경우는 적지만,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던 전승 중 하나에요. 이번에 고라니가 백록이 된 것처럼…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는 긴 세월 동안 누군가의 우렁각시가 나타나고 있었다는 말이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전승이라.
그야 우렁각시라면 그럴 만도 한 전승이었다.
우렁각시는 그 존재가 재현된다고 해도, 그리 문제가 될 것도 없고 위험하지도 않다.
그 정체를 알아채는 건 남편 뿐인데다, 남편 역시 우렁각시의 정체를 폭로할 이유가 없으니.
“그런데 저희가 저 우렁각시의 항아리를 발견한 건, 12년 전의 어떤 살인 현장이었어요. 그리고 그 현장에서 발견된 건, 두 아이와 그 아버지의 시체였죠.”
“강도 사건… 같은 겁니까?”
내 말에 하수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만약 그랬다면 전승이 비틀리지는 않았을 거에요. 우렁각시의 전승은 외부 개입에 의해 비극적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죠. 조사 결과, 그 두 아이를 죽인 것은 바로 그 아버지였거든요.”
“……”
“아버지였던 그 남자는 원래부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사람이었어요. 이웃주민의 말로는 평소에도 가정 폭력을 일삼았다는 듯 해요. 즉…”
하수정의 시선이 육중한 철문 쪽으로 향했다.
그 안에는 미약하게 동정의 기색이 담겨 있었다.
“이번에 현실에 나타난 우렁각시는 농부 역할을 맡은 제 남편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거에요. 다른 누구도 아닌 농부 본인에게 자식과 자신이 죽는다. 이건 그 어떤 판본에도 없는 결말로… 전승이 비틀리기에는 충분한 사고죠.”
“흠…”
그렇게 된 건가.
결국 전승이 비틀린 우렁각시가 폭주했다는 말.
나는 대충 앞뒤 상황을 파악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그럼 제가 해야 할 일은 뭡니까?”
“당연히… 우렁각시의 제거에요. 가능하실까요?”
역시나.
예상했던 바였기에 나는 담담히 긍정을 표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쉽게 답한 건지, 오히려 하수정이 말을 덧붙였다.
“위험하실 텐데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능력은 아시잖아요?”
내 말에 하수정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레벨을 볼 수 있으시다고 하셨죠…”
그녀의 말대로 우렁각시의 항아리 위에는 68이라는 레벨이 보였다.
흑령 직전의 적령에 해당하는 레벨로, 평범한 퇴마사들에게는 위험한 수준이었지만.
당연히 내가 상대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우렁각시와 싸울 필요조차 없을 테니.
“참고로… 저 항아리 역시 부서지지 않아요. 물론 아까처럼 합성하시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럴 경우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저희도 알 수 없어요. 예측하지 못한 반응이 나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셔야 할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우렁각시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개의 잠금장치와 봉인이 잠시 풀리고.
마침내 육중한 문이 열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엌에 놓인 우렁각시의 항아리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부엌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닫을게요. 관측 장비는 모두 끌 거에요. 그러지 않으면…우렁각시가 나오지 않으니까. 일이 끝나시면 이 문을 두드려주세요. 그때 다시 카메라를 켜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녀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이 다시 닫혔다.
조용해진 부엌.
나는 거기에서 항아리를 빤히 노려보았다.
왜인지 항아리가 긴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 우렁각시는 꽤 긴장하고 있을 터였다.
나만큼은… 결코 그녀의 농부 역할을 맡을 수 없을 테니.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우렁각시에게 뭘 할 생각은 없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6시.
딱 저녁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아리를 보며 말했다.
“밥 줘.”
나는 그대로 부엌을 지나쳐,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잠시 후, 정말로 부엌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릇이 부딪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칼이 도마를 내려치는 딱딱거리는 소리 등.
정말로 누군가가 요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그리고 나는 느긋하게 그 식사 준비가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
그렇게 약 10분 후.
갑자기 소리가 멎었다.
내가 일어나서 방문을 열어보니, 하수정의 말대로 그곳에는 훌륭한 7첩 반상이 차려져 있었다.
나는 그걸 방안으로 옮겨,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맛은,
“오, 진짜 맛집이네.”
과연 훌륭했다.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렁각시의 솜씨다웠다.
이윽고 나는 금방 식사를 끝내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 직후 공격해 온다는 우렁각시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아무리 전승이 비틀렸다고 한들 우렁각시의 근본은 바꿀 수 없을 테니.
그래서 나는 직접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꾹 닫힌 항아리를 보며 말했다.
“나와.”
내 말에 항아리가 움찔했다.
하지만 쉽게 그 입구가 열리지는 않았고, 나는 그걸 인검으로 툭툭 건드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오라고.”
나는 그저 말만 한마디 더 했을 뿐이었지만 항아리는 이내 심하게 요동쳤다.
원래 설화 속의 우렁각시는 용왕의 딸로 묘사된다.
용왕의 딸이 잘못을 저질러, 우렁이가 되는 벌을 받았고 이를 농부가 발견하는 것이 우렁각시 설화의 시작.
그렇기에 우렁각시에게 있어 용왕은 아버지이자, 자신을 우렁이로 만든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로.
아무리 전승이 비틀린다 해도 그 권능 아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내가 가진 청룡의 분령이었다.
청룡은 용왕 중 가장 계급이 높다는 사해 용왕 중에서도 맏형인, 동쪽 바다를 담당하는 동방청룡 광덕왕의 상징.
따라서 우렁각시의 입장에서는 지금 난데없이 친정아버지가 찾아온 것과 다름이 없었다.
“……”
그래서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히 닫혀 있던 항아리의 뚜껑이 천천히 움직였다.
이윽고 거기에서는 한 여인이 기어나왔다.
하지만 그 모습은 우렁각시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흉측했다.
머리는 산발에,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옷을 입은 것이 그야말로 귀신에 가까웠으니.
또한 붉게 물든 눈동자에는 적지 않은 한이 맺혀 있었다.
이 정도면… 단지 우렁각시의 전승이 비틀린 것을 넘어, 아예 다른 귀신의 전승이 뒤섞여 들어간 수준이었다.
“그러게 남자 좀 잘 만나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인검을 들어 올렸다.
하얗게 타오르는 불꽃이 담긴 칼날.
하지만 그걸 보고도 우렁각시는 그저 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설화 속에서 용왕은, 그저 우렁각시에게 벌을 주기만 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녀가 농부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는 그 결혼을 축복했고.
그녀의 죄를 용서하여 우렁이의 모습을 완전히 벗게 해준 축복자이기도 했다.
그러니 우렁각시의 입장에서는 그런 제 아버지를 차마 볼 면목이 없을 터.
나는 그런 우렁각시를 보며, 그대로 들어 올린 인검을 내려쳤다.
“……”
우렁각시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이에 베였다.
그녀의 눈에서 한 줄기 피눈물이 흘렀다.
동시에 검고 붉게 물들어 있던 그녀의 몸은 서서히 연기처럼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내 텅 빈 항아리 하나만 남긴 채 우렁각시는 이곳에서 자취를 감췄다.
“끝났나.”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더 이상 눈에 보이는 레벨 표시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항아리를 챙기고, 밖으로 향하는 문을 두드렸다.
한때 귀물이었던 물건이니 최소한의 조사는 필요할 테지.
그런데.
“…응?”
그냥 비어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항아리 입구 부근에 무언가 붙어 있었다.
그건 손톱보다도 작은 우렁이.
저건… 새끼인가?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그것은 이윽고 작은 빛 무리로 변해 나에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로그 창에는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