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4
14.
14.
그 다음주.
아침부터 비가 올듯 말듯 한 우울한 월요일.
하지만 오늘은 이수연이 지난 주에 예고했던, 특별한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은 말씀 드렸던대로, 야외에서의 퇴마 실습이 있습니다.”
야외 퇴마 실습.
이름만 들으면 무슨 소풍이라도 가는 것 같지만.
그 실상은 진짜 령이 출몰하는 지역에서 퇴마를 실행하는 것이었다.
연수원에 들어온지 한 달 만에 비로소 마와 본격적인 전투를 벌인다는 뜻.
그래서 이미 오후 5시가 넘었지만, 오늘 다른 교육은 없었다.
실습이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잠도 자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교육은 2인 1조로 진행될 겁니다. 또한 조별로 실습 지역이 다르니, 저희의 안내를 따라서 이동을-”
A반은 안전을 위해 한 조당 한 명의 조교가 배치되며, 조에 따라 다른 반의 인원과 마주칠 수도 있다.
대충 그런 식의 설명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경고 역시 빼놓지 않았다.
“오늘 교육은 실전입니다. 그러니 충분히 위험하고, 최악의 경우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교육생 분들은 이를 유념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를-”
나에게는 그런 갑다 싶은 경고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빠르게 표정이 굳어갔다.
“그럼 마지막으로 짐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조 편성은 바로 전송하겠습니다.”
2인 1조라.
기왕이면 이현석과 조가 되는 게 가장 좋을 지도 모르겠다.
서로 친한 것도 있고, 이현석이라면 전투력이 부족한 편도 아니니까.
물론 그런 조건이라면 김다영도 해당되지만.
“가···갑자기 배가···”
지금 그녀는 멀미라도 하는 것처럼 낯빛이 창백했다.
유령을 무서워하는 김다영에게 이번 교육은 결코 반길 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엮이지 않는 것이 좋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태블릿으로 조 편성을 확인했다.
그런데 거기에는···내 예상을 벗어나는 인물이 적혀 있었다.
“······”
나는 조용히 그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상대도 편성표를 본 건지,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확, 표정을 구긴다.
“저 레이시스트가···!”
나와 한 조로 묶인 것은 모니카였다.
그녀는 오늘도 수녀복을 입고 있었다.
또 등에는 검은 천으로 둘둘 말린 신기도 보였다.
길고 가는 막대 형태.
그렇다면 창이나 지팡이인가?
그녀는 나와 같은 조가 된 것이 무척이나 불만이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조를 확인하셨으면 바로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와 함께 가는 조교가 그녀인 모양이었다.
“가시죠. 저 차량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이수연의 안내에 따라 강당 앞 주차장에 늘어서 있던 차량 중 하나에 탑승했다.
평범한 승용차였다.
옆으로 보이는 차량 중에는 죄수를 운송하는 창살이 달린 경찰차도 있었지만, 저건 B반이나 C반 전용인 듯 보였다.
내가 타는 차량은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구조의 승용차였으나, 운전석의 옆자리에는 정체불명의 짐이 잔뜩 쌓여있었다.
그래서 나는 챙겨온 가방과 함께 뒷좌석에 탔고.
“모니카 씨도 타시면 됩니다.”
이수연의 재촉에 모니카는 벌레 씹은 얼굴로 내 반대편에 탔다.
물론 그녀의 신기도 함께.
하지만 그 끝이 혹시라도 나에게 닿을까.
모니카는 반대쪽 문에 바짝 붙은 채 자신의 신기를 끌어 안았다.
역시···보면 볼수록 인종 차별 주의자라는 생각 밖에 안 드는 행동 거지였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차는 부드럽게 움직여 연수원을 벗어났다.
한 달 만에 연수원 밖에 나가는 셈이었지만, 연수원에서의 생활이 워낙 자유로워서일까.
별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모니카는 아니었나 보다.
“······”
그녀는 어느새 나에 대한 혐오도 지운 채로 정신 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이 여자, 외국인이었지.
한국 관광 한 번 안 해보고 바로 연수원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무 특징 없는 도로와 도시를 지나고 있었지만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야말로 관광객이 따로 없었다.
“얼마나 가야하나요?”
“두 시간은 가야 합니다.”
오래도 걸리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잠시 눈이라고 붙일까 싶어서.
그런데 그때.
조용하던 퀘스트 아이콘이 번쩍였다.
어느새 새로운 퀘스트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런데 난이도를 뜻하는 부분이 물음표다.
물음표는 뭔데?
친절하게 로그에 설명이 출력되었다.
난이도를 모른다니.
혹시 퀘스트를 주는 놈도 내가 어떤 령을 만나게 될 지는 모른다는 건가?
전에는 미래를 잘만 읽어내더니, 의외의 구석에서 무능하구만.
나는 계속해서 이 창, 저 창을 열어보며 게임 화면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변한 것이라고는 퀘스트가 추가된 것 뿐.
금방 흥미를 잃은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고.
내가 깨어난 것은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였다.
“···여긴 뭡니까?”
차에서 내린 내가 눈앞에 선 풍경을 보며 말했다.
그것은 커다란 무언가의 입구였다.
칠이 벗겨진 벽, 녹슨 손잡이, 그리고 반쯤 부서진 커다란 토끼 캐릭터의 조형.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을씨년스러움을 온 사방에 흩뿌리고 있었다.
공포 영화의 도입부 같은 느낌이다.
“여긴 어떤 테마파크의 입구입니다. 경영난으로 약 24년 전에 폐쇄된 곳이죠.”
“테마파크···?”
령을 찾으러 가는 곳이니 처음부터 멀쩡한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설마 이런 곳에 데려올 줄이야.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황혼 속.
주변을 둘러보니 깊은 산 속에는 이 테마파크 하나만이 달랑 있었다.
“무슨 사고라도 있었나요?”
아무리 으스스하게 생긴 곳이라도 그냥 망해서 방치된 거라면 령이 출현할 리가 없었다.
마는 죽음에서부터 비롯되니까.
그래서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놀이기구에 의한 사고였다.
격렬해 보이는 놀이기구에서 사람이 어떻게 죽었다더라 하는 소문은 흔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수연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사고라···비슷합니다. 하지만 운영 당시에 있던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폐쇄된 후였죠.”
이수연은 담담히 설명을 시작했다.
“테마파크가 폐쇄된 건 순전히 그 운영사가 파산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철거가 진행되지 않아 방치된 테마파크의 건물에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죠.”
“이런 곳에 사람들이요?”
“처음엔 노숙자 같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중간부터 질 나쁜 범죄자들이 발을 들이게 되었고 그로 인해 몇 번, 노숙자 단체나 범죄 조직 간의 항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마가 싹트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 입니다. 항쟁으로 인한 죽음은 물론, 노숙자가 동사하거나 자살, 혹은 살해당하는 등 각종 의문사가 만연했었습니다.”
나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이야기였다.
세상에는 별 일이 다 있었구나.
“오늘 밤부터 내일 새벽까지 여러분은 이 테마파크에서 령을 발견하고, 퇴마하시면 됩니다. 이곳에는 B반과 C반에서도 각각 한 팀씩 배치될 예정이며, 저는 감독역으로써 여러분들과 거리를 두고-”
쉽게 말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
대충 알아들은 나는 모니카를 바라보았다.
“들었죠? 갑시다.”
“······”
내 말에 모니카는 대답 대신, 살짝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니카와 나는 다 쓰러져 가는 입구를 통과해 테마파크의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바로 앞에 탁 트인 광장 너머로 몇 개의 건물들이 있었다.
그 10년 이상 방치된 흉물들은 이미 하나의 마처럼 보이기도 했다.
“꽤 넓겠는데, 이거.”
광장과 그 너머를 둘러보며 말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을 지나서 상당히 먼 곳에도 뾰족한 첨탑이나 놀이기구의 일부가 보였다.
최소한 저기까지는 테마파크가 이어져 있다는 뜻.
저 정도면···직선 거리만 해도 Km 단위였다.
이 산 속에 이렇게 큰 테마파크를 건설해 놓다니.
운영사가 왜 파산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어디부터 가보실래요?”
나는 다시 모니카를 돌아보았다.
테마파크는 너무 넓었다.
그렇기에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닌다고 해도 령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니카는 연수원에 들어오기 전에도 퇴마사로 활동했었다고 했다.
그러니 나로서는 경험자의 조언을 구한 것과 다름이 없었지만.
“······”
모니카는 말 없이 나를 째려보기만 했다.
혹시 말을 못 알아 들은 건가?
한국어에 익숙치 않았던 게 떠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모니카 씨?”
“······”
하지만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눈을 돌려,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무시하는 건가?
기왕이면 아무 말 없이 지나가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퀘스트를 못 깨잖아.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저기요,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무슨 말?”
그녀의 입에서 겨우 짧은 한국어가 새어나왔다.
내 말을 알아듣고 있긴 한가 보다.
“묻는 말에 대답도 안하고, 인상만 쓰고. 나한테 시비 걸고 있잖아요.”
“······”
“또 대답 안 하시네. 나 싫어요?”
“응.”
그 질문에만 모니카는 귀신 같이 대답했다.
이에 내가 가진 의혹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래, 싫어할 수도 있지. 그런데 왜요?”
“······”
“혹시 말 못 할 이유라도 있으신가?”
이번에도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에 나는 확신을 가졌다.
이유 없는 혐오.
역시 답은 하나 밖에 없었다.
“하! 그래, 어디서 아시안 따위가 말을 걸어서 불쾌하시다는 거겠지.”
“···뭐?”
“아, 지금 옐로우 몽키가 위대한 백인 앞에서 짖어대는 게 싫다는 거잖아. 이 뻑킹 레이시스트가.”
레이시스트라는 말에 차갑게 굳어 있던 모니카의 얼굴이 변했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레이시스트는 아니지만 아시안은 싫다고? 바로 그게 레이시스트야. 수녀복 입고 인종 차별이라니, 말세구만.”
“아니야! 나 레이시스트, 아니야!”
“스탑 아시안 헤이트. 플리즈.”
“아니야!”
모니카는 결국 빽 소리를 질렀다.
새빨개진 얼굴로 그녀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럼 날 왜 싫어하는 건데?”
“······”
“역시 레이시스트-”
“아니야! 기다려!”
모니카는 주섬주섬 연수원 지급용 태블릿을 꺼냈다.
뭘 하는 건가 슬쩍 보니, 번역기였다.
모니카는 엄청난 속도로 번역기에 문장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장을 그대로 나에게 읊었다.
“난 김다영과 너의 결투를 보았다. 너희들의 결투는 훌륭했다. 너희들은 실력이 있었다.”
왠일로 그 시작은 칭찬이었다.
하지만 금방 그 어조는 사납게 바뀌었다.
“그런데 네가 결투를 망쳤다. 너는 비겁했다.”
“······”
“김다영은 유령을 무서워한다. 그건 그녀의 약점이다. 너는 친구의 약점을 이용했다. 친구를 배신했다. 비겁한 배신자. 나는 그런 사람을 싫어한다.”
신랄한 비판.
그렇게 들으니 내가 엄청난 개새끼처럼 들리는군.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오해를 풀고 싶지 않았다.
“날 싫어하는 이유는 알겠는데,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지.”
“공과 사?”
“네가 날 싫어하는 게 이 실습을 망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냐?”
“······”
모니카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적대적인 시선은 여전했기에 나는 몇 마디를 더 거들었다.
“물론 네가 레이시스트라면 상관이 있겠지. 그저 아시안이 고통받는 걸 원한다면 말이야.”
“나 레이시스트, 아니야!”
“그럼 협조 좀 하지?”
그제서야 모니카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시콜콜한 협상이 끝나자 나는 겨우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린 령을 찾아야 돼. 어디로 가는 게 좋겠냐?”
어느새 모니카를 향한 반말이 익숙해진 나는 그렇게 물었다.
“마는, 죽음이 있는 곳에 있어.”
“그거야 그렇겠지. 근데 그게 어디냐고.”
“너가 사람을 죽인다면, 어디가 좋을까?”
모니카의 물음에 나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깨달았다.
이곳에서 살인이 있을 만한 곳.
혹은 누군가가 자살할 만한 곳에 령이 있을 거라는 말.
“이 근처는 아니겠네.”
여기는 입구 근처의 광장이다.
탁 트인 이곳과 주변의 건물은 살인에도 자살에도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럼 저기는 어떠냐?”
광장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커다란 갈색의 폐건물이 있었다.
테마파크의 다른 건물과는 달리, 네모반듯하게 지어져 바둑판처럼 일정하게 유리창이 박혀 있는 건물.
겉보기에는 호텔 같은 용도로 지어진 것 같았다.
즉 건물 내부에는 수많은 객실이 있을 거고, 그곳이라면 살인에도 자살에도 안성맞춤이지 않을까.
“너. 바보는 아니네.”
그리고 모니카는 내 말에 그렇게 답했다.
우리는 곧바로 건물 쪽으로 이동했다.
어느새 해는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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