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44
144.
“포기할 줄 모르는군.”
남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는 나처럼 검을 꺼내 들었지만, 그걸 아래로 늘어뜨린 채로 여유를 부렸다.
나는 그 거만한 모습을 보며 물었다.
“실력에 꽤 자신이 있나 봐?”
전승이 사라진 건 나만이 아니건만.
어지간히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그는 자신이 불러낸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가리켰다.
“나보다는 저게 실력이 있지.”
“저 찌그러진 해파리가?”
“직접 당해보면, 그리 우습게 보지는 못할 거다.”
놈은 씩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 괴생명체가 앞으로 기어나왔다.
검을 들고 다시 보니, 놈의 생김새는 찌그러진 해파리라는 말도 과했다.
현미경으로 본 바이러스처럼 굵고 짧은 촉수 같은 게 온몸에 달라붙어 있었고.
모래시계를 뒤틀어 놓은 것 같은 8자 형태의 몸은 땅에 질질 끌리는, 서너 개의 굵은 촉수로 지탱되고 있었다.
“…재미있겠네.”
“@$%#$%$%”
유리가 찢어지는 듯한 괴음을 내며, 괴생명체가 움직였다.
가장 먼저 그것의 몸을 덮고 있던 촉수 중 몇 개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놈의 무기는 촉수였다.
정확히는 액체 형태와 같던 검고 푸른 촉수가 순식간에 고체화되어, 마치 칼날 혹은 둔기나 채찍처럼 그것을 내려치는 방식.
후욱!
그런 촉수 중 하나가 사나운 바람 소리를 내며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
그 궤도는 단순하고 정직했기에.
나는 자세를 살짝 낮추며 그것을 어렵지 않게 회피했다.
그러자 나를 지나친 그것은 그대로 애꿎은 땅바닥을 내리찍었다.
쿵!
그러자 굉음과 함께 흙바닥이 촉수의 궤적 그대로 내려앉았다.
과연,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저런 걸 아무런 전승의 보조가 없이 맞았다가는 단번에 온몸의 뼈가 부서지리라.
“물론, 맞는다면 말이지만.”
그 뒤를 이어 날아오는 놈의 촉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묵직한 무게감이 검에 부딪혔고, 이내 둔한 파열음을 내며 촉수가 튕겨 나갔다.
놈의 일격은 무거웠다.
전승을 잃어, 전체적으로 낮아진 능력치로는 그렇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저 해파리의 힘이 이 정도라면…그리 어려운 상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냉소와 함께 그 외계 해파리를 바라보았다.
쇄액!
놈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치 쏟아져 내리는 폭포처럼 수많은 촉수가 내 사방에서 나타난다.
동시에 움직이는 촉수의 숫자는 10여 개.
그 궤도는 더할 나위 없이 뒤죽박죽이었으나, 그렇기에 빈틈은 없었다.
이에 나는 세 번의 검격으로 다섯의 촉수를 튕겨내며 진로를 열었다.
“아니…!”
그러자 뒤에서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던 남자의 눈빛이 바뀌었다.
예상과 슬슬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아챈 걸까.
하지만 나는 놈에게 그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해파리에 집중했다.
창처럼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온 촉수를 몸을 비틀어 피했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튕겨내고, 곧바로 검을 내려 우측을 베어냈다.
그러자 촉수 여럿이 검에 부딪혔다.
아무런 스킬도, 전승도, 아이템의 효과도 없이 순수한 검과 직감만을 이용한 전투.
그런 싸움이 꽤 오랜만이라서일까.
자연스럽게 옛날 생각이 났다.
이세계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낡은 검과 빛의 검 스킬 하나만 지닌 채, 던전에 던져졌을 때가 있었다.
“쯧…”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린 나는 혀를 찼다.
당시에는 검도 제대로 못 다뤘던 터라, 유령 같은 몬스터인 레이스 하나를 잡는데도 개고생을 했었다.
이 해파리와 비교해도 한없이 약한 몬스터였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한심했던 건지.
후웅!
여기저기서 쉴새 없이 몰아치는 촉수들이 잠깐의 과거 회상을 방해했다.
나는 검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그것들을 쳐냈고, 곧 머릿속에 남은 잔념을 털어냈다.
방해라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이었다.
그딴 과거 따위,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으니.
깡!
또 한 번의 검격에 촉수 여럿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어느새 나는 해파리의 몸 바로 앞에 와 있었다.
이에 놈의 다른 촉수가 반응했지만, 너무 늦었다.
“…뒤져라.”
촤아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내 검이 놈의 몸을 갈랐다.
촉수와는 달리 사선으로 곱게 썰린 해파리.
하지만 검을 따라 느껴지는 절단감이 너무나도 가볍다.
나는 곧바로 이상함을 느끼고 뒤로 후퇴했다.
그러자 역시나.
쿠구궁!
내가 있던 공간을 몇 개의 촉수가 사납게 내리쳤다.
한편 잠깐 검에 베였던 놈의 몸은 꿀렁거리며 다시 달라붙고 있었다.
생긴 것 그대로, 그저 액체가 다시 합쳐지듯이.
“그건 검에 베이지 않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남자가 말했다.
“검만이 아니라 창에 찔려도, 총에 맞아도 쓰러지지 않지.”
“참나, 그래서 그렇게 자신이 있었냐?”
나는 해파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쉽게 말해 물리 공격에 면역이 있다는 말.
그게 저놈이 가진 자신감의 근거였나.
“그렇다면 어쩔 거지?”
그가 의기양양하게 되물었다.
어디서 반칙을 쓰고도 저리 당당한지.
그래서 나도 똑같이 되돌려주었다.
“어쩌긴. 그럼 나도 기술을 쓰는 수밖에.”
그 순간 내 검이 빛났다.
갖고 있던 전승이 부정되어, 그저 멋들어진 검에 불과하던 인검이 스스로 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남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떻게…?”
“이건 전승이 아니거든.”
당연하게도 내가 가진 용사 스킬은, 어떤 존재에 의존한 전승이 아니다.
따지자면 퇴마사마다 가진 이능과 같은 힘.
그러나 남자에게는, 그다지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인 듯했다.
“말도 안 된다! 신의 힘은 분명 모든 것을 정화하는데…”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저 해파리는 전승뿐만 아니라, 퇴마사가 가진 능력조차 지워버리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내가 가진 용사 스킬의 효과는 지우지 못했다는 건가.
뭐…그 이유는, 알 것도 같았다.
“느그 신보다 내 격이 더 높은 모양이지.”
“무슨 개소리를…!”
내 말에 남자가 이를 갈았고, 이에 화답하듯 해파리가 들이닥쳤다.
어느새 완전히 수복을 끝낸 놈은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겠다는 듯 저돌적으로 공격해왔다.
내 검이 자신을 벨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러나… 과연 내 검이 이전과 같을까.
빛의 검은 말 그대로 검에 빛 속성을 부여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빛 속성은 일반적으로 언데드 몬스터에게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속성.
그렇다면 어째서 빛 속성이 언데드 몬스터에게 강한 효력을 발휘할까.
그 답은 이세계에 있던, 어느 빌어먹을 사제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빛 속성은 본래 존재하지 않아야 할 모든 것을 거부하는 힘.
그렇기에 빛은 언데드를 거부한다.
그들은 이미 한참 전에 죽어 없어져야 할 이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외계 해파리는 어떨까.
촤아악!
빛을 두른 검이 촉수들을 튕겨내는 대신, 단번에 베어냈다.
잘려나간 촉수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지고.
위풍당당하게 돌격하던 해파리의 움직임이 주춤거렸다.
빛은 역시 저놈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러면 쉽지.”
이렇게 된 이상 볼 것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해파리에게 튀어 나갔다.
그러자 곧장 수많은 촉수가 쏟아졌지만, 이전과 달리 도토리묵처럼 썰려나가는 그것들은 더 이상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푸악-하는 소리와 함께 내 검이 해파리를 다시 한 번 베어 갈랐다.
빛의 검에 두 동강 난 해파리.
하지만 이번에 베인 상처는 수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졌다.
이윽고 검고 푸른 액체 같던 몸은 급격히 회색으로 물들더니,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
그렇게 해파리는 귀에 거슬리는 괴음을 마지막으로 현실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깨진 검은 구슬뿐.
나는 해파리의 소멸을 확인하고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는 이쪽을 경악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 더 남은 거 있냐?”
“……”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남자는 검을 움직이려 했으나, 해파리가 사라지며 다시 돌아온 백호의 권능이 그것을 막았다.
나는 남자에게 다가가 인검을 그 목 앞에 내밀었다.
“……”
이미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는 건지.
그는 낭패라는 얼굴로 도망조차 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박성덕이라고 아냐?”
“뭐…?”
내 질문에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왜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오냐는 듯.
“이미 죽은 놈 이야기는 왜 하는 거지?”
“죽어?”
“그래, 죽었다.”
“어떤 식으로?”
“가치 있게 죽었지.”
“인신 공양이라도 했어?”
“눈치가 빠르군. 그야 신의 힘을 키우는 데는, 효율적인 방법이 아닌가.”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로 화랑의 스파이였던 박성덕은 죽었다는 뜻.
결국 이성민 회장의 의뢰는 달성할 수 없다는 말이었지만, 실망할 것은 없었다.
이놈은 사교의 전승을 사용하는, 사교의 일원이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박성덕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을 거물.
놈에게서 뜯어낼 수 있는 정보는 명백히 그 이상이리라.
“왜 그런 걸 묻지? 놈의 동료라도 되나?”
“동료는 무슨.”
나는 냉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보다, 여기에서 뭐하고 있었냐? 이 탑은 뭐지?”
“……”
내 질문의 방향성이 바뀌자, 놈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얼굴로 놈은 답했다.
“그 멍청한 놈에 대한 게 아니라면, 나에게서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거다.”
“목숨을 바쳐서 비밀을 지키시겠다?”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지.”
죽어서도 사교의 비밀을 털어놓지는 않겠다는 말.
그 각오는 훌륭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사히 뒤졌을 때의 이야기였다.
죽지 못해 살아있는 상태가 되어도 저런 말을 지껄일 수 있을까?
그 지경까지 가면 여간해서는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토해내는 법이었다.
“그럼 죽여서는 안 되겠네. 새로운 방식의 목숨 구걸인가? 머리가 꽤 좋아.”
“…웃기는군. 그게 네 마음대로 될 것 같나?”
남자의 얼굴이 바뀌었다.
그것은 텅 빈, 비릿한 미소.
그때였다.
불현듯 놈의 품속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다음 순간, 그것은 시뻘건 불꽃이 되어 풍선처럼 부풀었고.
그건 찰나의 시간 속에서 순식간에 제 몸집을 키웠다.
그리고-
콰아아앙!
바로 이어지는 것은 거대한 폭발이었다.
코앞에서 뿜어져 나온 맹렬한 화염이 시야를 가린다.
미리 준비해 놓은 자살용 주술로 보였다.
게다가 그 화력은 주변 일대를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본인뿐만 아니라, 나까지 길동무로 데려가겠다는 의지가 진하게 느껴졌다.
사교의 기밀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는 그리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지만…뭐랄까.
“너무 뻔하단 말이지.”
남자가 제 목숨을 포기할 각오로 터뜨린 폭발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 화염에 휩싸였던 남자는…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째서…!”
남자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는 그에게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게 네 마음대로 될 줄 알았냐?”
화염을 제어하는 주작의 권능.
그건 단지 화염을 내 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넘어, 태울 것과 태우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자살 폭탄 테러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은 그의 명치에 나는 주먹을 꽂아 넣었다.
“커헉…!”
그리고 곧바로 검의 손잡이로 뒤통수를 찍어 놈을 기절시켰다.
의식이 있는 것보다는 괜히 엄한 짓을 벌일 수도 있으니, 재워 두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남자가 땅바닥 위로 엎어졌다.
여전히 놈에게는 강조 표시가 남아 있었다.
또한 탑의 잔해 속.
그 외에도 강조 표시가 된 것들이 몇 개 보였다.
이를 확인해보니 마인들이 갖고 있던 폰이나 문서 등이었다.
모두 사교에 대한 정보와 단서를 담고 있는 소중한 자료라는 뜻.
하지만 그걸 굳이 내가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귀찮기도 했고.
“…예, 청장님. 끝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을 경찰청장에게 맡기기로 했다.
잔해 속에 널린 자료의 분석도, 저 마인의 심문도 알아서 해줄 테니.
한편 내 보고를 들은 김준성은 반색했다.
화랑의 스파이를 잡지는 못했어도, 그 이상의 수확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고를 마치자, 어느새 퀘스트 버튼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 메인 퀘스트도 무사히 완료된 모양.
나는 곧바로 완료 버튼을 선택해서 보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보상은…
아예 내 상태 창에 새로운 스테이터스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이름은 침식 저항.
% 단위로 적힌 그것은 현재 0%였다.
0인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름만 봐서는 도저히 뭐하는 능력치인지 알 수가 없는데.
“뭐야, 이게.”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친절하게도 도움말이 출력되었다.
“……”
나는 그 3줄의 도움말을 몇 번이고 읽어보았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계라고…?”
어느새 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야 이제 와서, 그런 단어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그래서일까.
이계라는 말에 순식간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아까 그 해파리가 이계의 생물이었나?
그럼 사교가 자신들의 신을 만든 게 아니라, 이계의 신을 불러왔다는 말인가?
그러나 나는 이세계에서 그 해파리 같은 것은 본 적도 없었다.
그럼 여기에서 말하는 이계는, 내가 갔던 곳과는 또 다른 곳이라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수의 이계가 있다는 거지?
“……”
그렇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을 멈춘 나는, 완료된 퀘스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메인 퀘스트.
처음에는 왜 사교에 관련된 사건에 메인 퀘스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아놨나 했더니만.
그 의문이 조금은 해소가 되는 느낌이었다.
“일단은 저놈을 조져야 하나.”
나는 바닥에 엎어진 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로 나 혼자 생각해도 아무런 답도 낼 수 없다.
단서는… 저놈.
아니, 분명 저놈에게서 이어지는 이다음 메인 퀘스트가 쥐고 있으리라.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조용히 경찰청장이 보낼 인력을 기다렸고.
그렇게 그날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다음날.
믿을 만한 인력만을 동원하느라 자료 조사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나는 일단 지원 2팀으로 복귀했다.
그런 내 앞에는, 또 다른 사건이 배당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