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49
149.
“이건…”
차서현이 몸을 숙여 귀불의 잔해를 살폈다.
귀불의 잔해는 여전히 귀기를 간직한 채,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분명 귀물이지만 엉망으로 부서진 탓인지, 거기에 실린 마는 미약했다.
그래서 차서현은 어렵지 않게 부서진 귀불이 조각을 한곳에 모으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군요. 이건 그 절에 있던 귀불이 맞습니다.”
절에 들렀던 방문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귀불은 높이가 성인 남성만 한, 검은 빛깔의 석불이었다.
본래 회색의 암석으로 만들어졌으나, 오랜 시간 바닷속에 있으면서 그 색이 변한 것이라 했던가.
그리고 지금 차서현이 모아놓은 귀불의 조각은 과연, 그 증언 그대로였다.
언뜻 회색의 표면도 보이지만, 마치 이끼가 낀 것처럼 까맣게 변색된 표면이 거슬렸다.
그런데…애초에 멀쩡하던 귀불이 왜 갑자기 이곳에 부서져 있다는 건가.
“……”
나와 똑같은 의문을 품은 것인지, 차서현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물론 떠오르는 가능성은 몇 가지 있었다.
처음부터 이 귀불은 제 몸을 움직여 절 하나를 때려 부수는 등, 평범한 귀불이 아니었다.
어쩌면 귀불이라는 인식부터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귀불로 위장하고 있던 무언가가 이제 그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왔다는 건가?
“흠…”
그 답은 쉽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이놈이 지난 1년간 불상의 흉내를 내며 사람을 잡아먹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불상 안에 숨어 들어가 똑같은 짓을 할 수 있는 괴이가 또 있는 건 아닐 텐데.
그래서 나는 부서진 조각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다소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저 머리는 뭡니까?”
“예?”
“저 머리요. 원래 이 귀불이 대머리였습니까?”
내가 기억하는 불상의 머리는 대부분 울퉁불퉁한 형태로, 분명 머리카락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귀불의 머리는 맨들거리는 대머리.
내가 아는 것과는 다소 다른 형태였다.
이에 차서현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증언은 없었습니다. 방문자들은 그저 오래된 불상이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건 정말로 대머리군요.”
하필 머리 부분이 특히 검게 변색된 탓에, 그것이 대머리라는 걸 차서현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대머리 불상은 없나요?”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지만,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중국의 절에서는 간간이 보이는 형태죠.”
“그럼 이게 중국 불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닐 겁니다. 머리를 제외한 부분에는 분명 조선 시대 불상 특유의 형태가 묻어 있어서-”
그 후 차서현은 그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불상의 표정과 팔의 각도가 어쩌고 하는, 말로만 들어서는 잘 알 수 없는 설명이었지만.
어쨌든 중국의 불상은 아니라는 듯했다.
그럼 결국 불상의 모습 자체가 변했다는 이야기인가.
“흠…”
이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주제로 물음을 이어갔다.
“귀불이 보통 다른 불상으로 옮겨 갈 수도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귀불은 불상에 깃든 마, 그 자체입니다. 지박령이 자신이 속박된 땅을 벗어날 수 없듯, 귀불 역시 마찬가지죠. 하지만…”
차서현은 말끝을 흐렸다.
귀불은 원래 불상을 갈아탈 수 없으나, 이놈까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야 원래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움직여 절 하나를 박살 낸 놈이었으니.
“소멸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차서현이 조심스럽게 그런 의문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걸요?”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눈에는 아직 화살표가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러자 차서현이 물었다.
“이유가 있으십니까?”
“아직 귀불의 영력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어디입니까?”
“그건… 잠시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지도를 통해 내가 보는 화살표 방향에 뭐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남서쪽 방향.
그건 산에서 내려가는 방향임과 동시에, 그 경로 위에는 또 다른 절이 존재하고 있었다.
파계승의 사이비 절이 아닌, 지도에도 나오는 평범한 사찰.
내 말을 들은 차서현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 말씀은…”
“아무래도 놈이 불상을 갈아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이곳은 불교 소속의 사찰로 법당과는 상관없는, 퇴마가 아닌 순수한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라…”
“일반인이 있다고요?”
“저희 쪽에서 산에 들어오는 인원을 통제했으니, 방문객은 없을 겁니다. 다만 본래 거주하던 스님들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잘못하면 일반인 희생자가 더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서둘러야겠네요.”
“바로 이동하시죠.”
우리는 바로 화살표가 가리키는, 또 다른 절로 향했다.
넓은 경내와 커다란 건물 등, 꽤 규모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넓은 사찰의 한복판.
원래 대웅전에 있어야 할 황금색 불상이 밖에 나와 있었다.
“저렇게 대놓고…!”
황당하다는 듯 차서현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불상을 옮겨탄 귀불은 너무나 당당했다.
놈은 제 정체를 숨길 생각도 안 했다.
원래 앉아 있어야 할 불상은 두 발을 딛고 지상에 서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뒷짐까지 지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주변에는 그런 불상을 향해 절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건 아마도… 이 절에 살고 있다는 일반인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는 듯 보였지만, 귀불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놈의 권능이 강해졌나 보네요.”
그 광경을 본 나는 그렇게 말했다.
놈이 이 절에 들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일방적으로 사람을 조종하다니.
아무리 사람을 현혹하는 귀불이라고 해도 잠식력이 너무 빨랐다.
사건 현장이었던 절에서는 파계승의 도움 아래에서 1년 이상이나 머무르지 않았던가.
분명 인간을 먹고, 귀불의 권능이 강해진 것이었다.
“그래서 제 모습을 숨기지 않고 있던 거군요. 이제는 굳이 부처님의 흉내를 낼 필요도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디에 꼭꼭 숨어 있는 것보다야 저러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되었다.
눈에 보이기만 한다면, 그대로 가서 퇴마하는 일만 남은 셈이었으니까.
“빨리 처리하죠,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귀불은 제가 맡죠. 서현 씨는 사람들 쪽을 부탁 드립니다.”
“하지만…”
차서현이 염려를 표했다.
그야 저 귀불이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건, 확실한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녀의 염려를 단번에 끊어냈다.
“전 괜찮습니다. 아시잖아요?”
“…알겠습니다.”
내 말에 차서현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고,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나는 귀불을 보았다.
68 레벨.
이번에도 적당히 위험한 놈이었다.
나는 곧바로 인검을 뽑아들고 귀불에게 달려갔다.
“……”
그러자 이내 황금의 불상이 나를 인식했다.
귀불의 눈이 나를 향한다.
그 키는 약 2.5미터.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커다란 크기였다.
그런데 먼저 움직인 것은 놈이 아니었다.
“으으…”
그건 귀불 주변에 있던 승려들.
나름대로 교활한 면모를 가진 괴이이기 때문일까.
놈은 직접 나서는 대신, 주변의 사람들을 활용하려 했다.
귀불 주변에 모여 있던 승려들이 비척거리며 내 앞을 막아섰다.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이, 제대로 된 의식도 없는 듯 보였다.
물론 전부 일반인이기에 전력적인 위협을 되지 않았지만.
귀불이 이를 방패막이로 이용하려 한다면 번거로울 것이 뻔했다.
그걸 아는 것일까.
“물러서세요!”
차서현이 내 앞을 치고 나갔다.
그녀는 이어서 무기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승려들을 상대하며 그들을 밀어냈다.
처음에는 그 숫자가 많아 언뜻 버거워 보이기는 했으나,
“가십시오!”
생각보다 길은 금방 뚫렸다.
차서현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법당에서는 맨손 무술도 가르치는 건지, 차서현은 기본적으로 괜찮은 체술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밀려 들어오는 승려들을 피해 귀불에게 접근했다.
“……”
그러자 귀불의 표정이 변했다.
평범한 불상의 얼굴이던 그것의 미간이 찌그러진다.
목소리는 내지 못했지만, 쓸모없는 자식들-뭐 그런 말을 하고 싶은 눈치.
그리고 그 순간, 로그 한 줄이 추가되었다.
그건 디버프 하나가 무효화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설마 저놈, 나에게도 정신 지배가 통할 거라 생각했던 건가.
“나한테는 안 통해, 이 새끼야.”
그러자 결국 놈이 움직였다.
귀불은 그 커다랗고 무거운 몸집에도 불구하고.
후욱!
상당히 날렵한 펀치를 나에게 날렸다.
그러자 사나운 파열음과 함께 놈의 주먹과 내 검이 부딪혔다.
“흠…”
그 안에 실린 힘을 가늠한 나는 침음을 흘렸다.
사람을 현혹해 잡아먹는 괴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괴력이었다.
하지만 귀불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놈은 제 주먹과 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나를 짓이기기 위해 움직였다.
까가강!
이어서 산사태와도 같은 연격이 몰아쳤다.
사람 얼굴보다 큰 금빛 주먹을 쳐내자, 옆에서 번쩍이는 발바닥이 날아온다.
“하…!”
그 모습에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4배속으로 움직이는 골렘과 싸우는 느낌이었다.
공격에 담긴 무게는 상당했지만 그 속에는 그에 어울리는 둔중함이 없었다.
게다가 귀불의 공격은 그 움직임이 심히 요란했다.
킥복싱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지를 전부 사용하고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
이를 곁눈질로 지켜보던 차서현은 혀를 차고 있었다.
그야 저렇게 설치는 놈의 겉모습이 불상이다 보니, 신성모독이라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리라.
그녀를 위해서라도, 길게 끌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검에 성화를 휘감았다.
석불이라면 모를까.
지금 놈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황금색 불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그 몸은 분명 화염에 약할 터.
후욱!
그때 마침 귀불의 주먹이 정면에서 날아왔다.
나는 그것을 옆으로 피하며 여유롭게 놈의 손목을 향해 검을 날렸다.
그러자 화염을 두른 인검은 부드럽게 귀불의 한쪽 손을 베어 갈랐고.
“우오오오오!”
갑자기 그런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건 귀불이 내지른 소리였다.
이놈, 말 못하는 게 아니었나?
그런데 잘 보니, 소리의 출처는 놈의 입이 아니라 잘린 손목의 절단면이었다.
게다가,
“음?”
그 손목의 절단면에서는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귀불에게서 저런 게 흘러나온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는데.
또한 귀불의 변화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어어어어-”
이윽고 그 검은 연기는 황금색의 불상을 잠식해갔다.
불상은 점점 까맣게 변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점점 거대해졌다.
그렇게 잠시 후.
내 앞에 선 것은 1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그림자였다.
“…뭐야, 이게.”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놈의 레벨은 변한 게 없었다.
그러니 갑자기 위험해졌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귀불이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거대한 그림자 괴물.
이건 또 뭘까.
“괜찮으십니까?”
차서현이 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녀가 맡고 있던 승려들은 어느새 전부 쓰러져 있었다.
“그새 다 기절시키셨어요?”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귀불이 저렇게 변하더니 모두 의식을 잃었습니다.”
귀불, 아니 귀불이었던 것이 갑자기 승려들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는 말이었다.
나는 아직도 꾸물거리며 제 몸집을 키우는 그림자 괴물을 경계하며 물음을 이어갔다.
“저게 뭔지 아십니까?”
“귀불은… 아닌 것 같군요.”
당연한 소리였다.
커다랗게 변한 그림자는 이제 불상의 형상도 잃어버린 상태였으니.
보이는 것은 그저 거인의 상반신을 그려놓은 듯한 인영뿐이었다.
그리고 차서현은 그 검은 그림자를 잠깐 올려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건 우미보즈…같습니다.”
우미보즈는 일본의 괴이 중 하나였다.
우미는 바다, 보즈는 승려를 뜻하는 말로 쉽게 말해 바다의 승려라는 뜻.
또한 그것은 바다에서 한밤중에 나타나 배를 침몰시킨다는 괴이로.
거대한 대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전승을 가진 존재였다.
거대한 대머리라.
과연, 이제보니 그림자의 머리는 마치 동전처럼 반듯한 생김새였다.
“하지만 이상하군요. 우미보즈가 여기에 왜…?”
차서현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우미보즈의 거대한 팔이 휘둘러졌다.
쾅!
막대한 완력이 절의 바닥을 짓눌렀다.
그 경로에 있던 석등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파괴된다.
완력은 여전한 모양.
하지만 놈의 크기가 커지며, 공격 범위가 크게 늘었다.
이대로 우미보즈가 날뛰게 했다가는 쓰러져 있는 승려들이 위험했다.
그래서 나는 벼락 구름을 모으며, 차서현에게 말했다.
“전승이 비틀린 모양입니다.”
“전승이… 말입니까?”
“예.”
내 말에도 차서현은 이해하지 못한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전승이 비틀리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나만 해도 지난번, 우렁각시를 본 게 전부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때의 경험 덕분에 나는 우미보즈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비로소 저 괴이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귀불을 싣고 바다를 건너고 있던 일본군의 배.
그 배가 가라앉은 이유는 아마도 우미보즈에 의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미보즈는 가라앉은 사람들을 잡아먹다가, 귀불과 접촉했겠지.
절대 자연스럽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한쪽은 산, 한쪽은 바다에 사는 괴이였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저 둘 사이에는 연관점이 있었다.
바로 불교와 관련이 깊다는 것.
그래서 그 뒤에 귀불이 우미보즈를 잡아먹은 건지, 아니면 그 반대가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어느 쪽도 서로를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그 두 전승이 얽히고 비틀려 버렸다.
즉 저놈은 마치 한 몸 속에서 싸우는 이중인격처럼 귀불이자 우미보즈로 남게 된 것.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편 차서현은 내 말을 이해하기보다는 먼저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대책은 별거 없었다.
전승이 비틀렸든 어쨌든, 여전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냥 있으시면 됩니다.”
내 말과 동시에,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꽂혔다.
바다를 지배하는 청룡의 권능.
그 권능을 담은 하얀 섬광은 거대한 대머리 거인의 인영을 무참히 찢어발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