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51
151.
“……”
잠시 후, 내 의식이 눈을 뜬 곳은 어둠 속이었다.
조금 전의 현무의 신역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곳의 어둠은 그보다 훨씬 더 짙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옅은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바로 눈앞에 손을 펼쳐 흔들어 보아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라기보다는, 아예 시각 자체가 차단된 듯한 느낌이 이럴까.
“흠…”
게다가 분명 땅을 밟고 서 있음에도, 부유하는 듯한 감각이 정확한 인지를 방해했다.
내가 서 있는 지면이 얇은 종이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멀미라도 날 것 같은데.
이래서야… 이런저런 디버프를 온몸에 둘둘 감고 있는 꼴이었다.
그래서, 결국 이곳에서 뭘 하라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은 순간이었다.
마치 거기에 대답을 하는 것처럼, 현무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엄청난 추위가 찾아왔다.
순식간에 살가죽을 뚫고 뼈까지 시리는 맹렬한 냉기.
그 비현실적인 추위는 결코 현실의 겨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윽고 그것은 고통으로 변했다.
그저 서 있을 뿐인데도 온몸을 칼로 써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이 정도의 냉기라면 몸이 얼어붙어 감각이 마비될 법도 하건만.
환상이라서 그런지,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그러니까 이걸 버티는 게… 현무의 시험이라는 건가.
“빌어먹을…”
나도 모르게 욕을 중얼거렸다.
고통이 짜증 나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또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한때, 진짜 냉기에 손과 발이 떨어져 나간 적이 있었다.
겨울을 지배하는 고룡의 브레스를 맨몸으로 뚫고 나갔을 때였다.
그 극한의 냉기를 담은 용의 권능은 온몸을 찌르는 고통을 넘어서서, 신체를 말 그대로 얼려 깨뜨렸다.
그리고 그에 맞서던 나는 당시 냉기 면역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 브레스를 피하지도 못하고, 가장 무식한 방법으로 놈과 싸웠다.
그냥 초 단위로 박살 나는 몸을 쉴새 없이 치유하며, 브레스를 정면으로 뚫고 나갔던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해서 그 빌어 처먹을 도마뱀의 대가리를 반으로 쪼개 주긴 했지만.
솔직히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 시험은 나의 그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있었다.
“……”
그러고도 추위와 아픔은 소리도 없이 이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쉽게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춥긴 해도 냉기가 그리 대단치도 않은 것 같은데, 이대로 시간만 끌 셈인가?
“거, 그냥 대충하고 넘어갑시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살짝 어둠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뒤로 추위가 더욱 거세지긴 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내가 이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일까.
“시이이이-”
갑자기 그런 소리가 났다.
시험이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었다.
이어서 느껴지는 것은 공포.
거대한 두려움이 제멋대로 머릿속을 휘젓는다.
그 두려움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공포를 주입하는 것과 같은 감각이었다.
거기에 추위와 고통은 여전해서, 나도 모르게 손끝이 떨려왔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역시 추위와 마찬가지였다.
“쯧…”
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무기로 사용하는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제 이름에 데스가 어쩌고 하는 놈들이나 리치가 붙는 놈들은 다 그랬다.
죽음의 기운을 마나에 담아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언데드 놈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에게 최고의 두려움을 선사했던 것은… 다름 아닌 신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한 세계의 창조주인 신 앞에 섰다.
그것도 모자라 그에 대적하고 싸웠다.
그 간단한 사실에서 오는 원초적인 두려움은 그 신과의 전투에서 계속 내 발목을 붙잡았었다.
거기다 그 미친년에게는 면역 스킬도 먹히지 않아서, 최후의 전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개고생을 했었지.
그렇기에, 그때 내가 느꼈던 두려움은 말로 할 수도 없었다.
그것이 어찌나 끔찍하던지, 그날의 악몽을 꾸더라도 꿈에서조차 당시의 공포를 재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걸 이겨냈다.
공포도, 추위도, 아픔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나도 인간이기에, 그것들을 모르는 게 아니다.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들을 모두 겪어보았고, 극복해보았을 뿐.
“……”
어느새 내 손끝의 떨림은 진정되어 차분해져 있었다.
여전히 공포가 내 의식을 휘젓고 있었지만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단지 두려움보다도 거대한 내 자아가 그것을 짓눌렀다.
그러자 공포는 바위에 눌린 바퀴벌레처럼 찌그러져, 겨우 그 다리만 꿈틀거리는 꼴이 되었다.
그렇게 두려움이 소멸 직전까지 가자, 어둠이 다시 한 번 요동쳤다.
다소 다급해 보이는 울림이었다.
이제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나는 가만히 다음 시험을 기다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 앞에 어떤 형상이 만들어졌다.
어둠보다는 조금 옅은, 회색의 어둠으로 빚어지는 인영.
그건…바로 나였다.
이윽고 그 그림자는 터벅터벅 걸어 내 앞에 섰다.
“하…!”
그걸 보며 나는 웃었다.
그래, 보통 이런 시험의 마지막은 나와의 싸움이지.
그런데 그 직후, 내 손에 검이 잡혔다.
이 환상이 나에게 준 것이었다.
설마-하는 생각도 잠시.
내 앞에 선 그림자 역시 그 손에 검이 들렸다.
검을 들고 싸우라고?
한데…이걸 어쩌나.
“…안될 텐데?”
그저 내 모습만을 흉내 내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어쩌면 거기에 더해, 나처럼 말하고 나와 같은 기억을 갖는 것까지도 괜찮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 그림자가 나를 온전히 흉내 내려고 했다면, 결코 검만은 들어서는 안 됐다.
“……”
자연스럽게 움직이던 그림자가 멈췄다.
제 손에 들린 검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그러자 어둠이 요동쳤다.
왜 그러냐는 듯, 그림자에게 호통이라도 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림자는 움직이지 못했다.
당연했다.
검을 든 나를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존재는… 단연코 이 세상에는 없었으니.
그래서일까.
그 순간.
어둠에 금이 갔다.
그리고 그 한 줄기의 균열은 이내 거미줄처럼 퍼져, 내 의식을 감싸고 있던 어둠을 산산조각으로 부숴, 흩뜨렸다.
그렇게 깨진 어둠 너머로 다시 신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내 앞에 있는 것은 밝게 빛나는 위령.
현무의 사자라고 했던가.
그는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과 마찬가지로, 내 머리에 손을 대고 있었으나.
어느새 그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
위령은 그저 흐릿한 인영만을 그리고 있어, 얼굴도 눈동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다는 듯.
마치 발표회장에서 폭발한 자신의 발명품을 바라보는 과학자처럼 동요하고 있었다.
그야 마지막 시험으로 보였던 그림자와의 싸움이 버그가 난 프로그램처럼 갑자기 종료되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오오…!”
하지만 그런 사정은 모르는 다른 흑령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거대한 제 몸을 오만하게 세우고 있던 그들은.
현무의 시험을 통과하다 못해 이를 박살 내고 나온 나를 향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이에 한 박자 늦게, 위령 역시 손을 거두고 나를 향해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그는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신하처럼.
자신 역시 무릎을 꿇고 검게 빛나는 구체를 제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현무의 분령이었다.
아무래도 시험은… 이걸로 끝난 모양.
나는 그걸 집어들려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결국… 이거 필요 없었잖아.”
여기에 올 때 가져왔던 얼어붙은 갑각.
그게 전부 잉여 물품이 되어 버렸다.
다섯 개나 만들었는데.
그뿐인가.
현무를 대비해 냉기 대책을 세운답시고 여기를 가장 마지막에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알고 보니 냉기 대책 자체가 필요가 없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 올걸.
“쯧…”
나는 작게 혀를 차며, 현무의 분령을 습득했다.
그러자 몇 개의 로그가 어지럽게 올라갔다.
무슨 스킬을 습득했느니, 무슨 퀘스트가 완료됐느니 하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의 내용도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나는 먼저 현무가 가진 스킬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4. 현무
– 음기를 꿰뚫어 보는 눈 : 령의 실체를 간파한다.
– 냉기를 관장하는 거북 : 시야 내의 모든 냉기를 제어
– 차가운 것들의 왕 : 모든 령 특성 적에게 위압 효과
– 영역 구축 (현무) : 자신이 있는 필드 위에 현무의 신역을 구현. 현무의 신역에서 모든 공격에 냉기 속성 부여, 냉기 제어 능력 강화.
대부분 다른 사방신과 비슷한 느낌의 스킬.
하지만 눈에 띄는 것 한 가지는 네 번째, 영역 구축 스킬이었다.
필드 위에 신역을 구현한다니.
즉 주변 환경 자체를 개변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신역을 구현하면 그 위에서는 추가 효과도 있었다.
나에게 불리한 지형 자체를 유리한 지형으로 바꿀 수 있는 스킬.
과연…겹치는 스킬도 없었기에 이 정도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거기서, 로그가 이어졌다.
령에게 위압 효과를 준다는 스킬이, 각각 부두교와 조로아스터교의 금서로 강화되었단다.
강화라니.
서로 죽음과 연관된 전승이기 때문일까.
나는 곧바로 그 내용을 확인했다.
– 차가운 것들의 왕 : 모든 령 특성 적에게 위압 및 공포 효과. 아군 령을 소환 및 사역, 지배 가능.
스킬로 저장된 죽음 하나당 하나의 령을 소환.
소환한 령이 소멸하지 않는 한, 죽음이 소모되지 않음.
현재 소환 가능한 령의 레벨 : 35
금서의 해석률이 높아질수록, 소환 가능한 령의 레벨이 증가.
“소환을 한다고…?”
령을 소환해, 이를 부리다니.
LB 아카데미의 숙적인 역천도당들이나 쓰던 방법이 아닌가.
그리고 죽음을 모으는 자라는 스킬은…
시체의 죽음을 수집하여 저장한다.
수집한 죽음 : 183
확인해보니 그건 조로아스터교의 금서를 해석하고 얻은 스킬이었다.
지금까지는 죽음을 저장만 하지, 쓸 곳이 없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 스킬로 수집한 죽음을 재료로, 령을 소환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 숫자는 183.
지금까지 내가 그 정도의 마인을 죽였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령이 183마리나 소환이 된다고?
그래서 나는 시험 삼아 스킬을 발동해보았다.
그러자 현무의 신역 위로, 정말 백 마리가 넘는 청령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이건 뭔 네크로맨서도 아니고…”
비록 령들의 레벨은 전부 35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숫자면 상당한 전력이다.
게다가 금서와 연동되어 더 강해질 가능성도 있었고, 마인들을 죽여 죽음을 수집하면 그 숫자까지 늘어난다.
생각할 것도 없이 강력한 스킬.
그저 현무를 얻은 것만 해도 이 정도인가.
“……”
나는 령들의 소환을 해제하고, 이번에는 퀘스트를 바라보았다.
사방신 서브 퀘스트는 완료 버튼만 누르면 이제 보상이 드러날 터.
하지만 나는 그 전에 내 앞에 선 위령이 걸렸다.
현무의 음기를 꿰뚫어 보는 눈.
그 스킬로 인해 그저 흐릿한 인영으로 보이던 위령의 모습이 훨씬 선명하게 보였고.
심지어 내 눈은 그의 실명까지도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의 머리 위에는 레벨뿐만 아니라 이름도 함께였다.
온달.
그는 평강공주와의 설화로 잘 알려진, 고구려 시대의 무사였다.
“……”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에 나도 별생각 없이 그를 바라봤는데, 난데없이 로그가 출력되었다.
“계약…?”
나중에는 위령이랑 계약도 할 수 있는 건가.
어째 점점 더 네크로맨서 같아지는데.
물론 온달을 만난 지금 당장 계약하지 못하는 건 다소 아쉽긴 하지만, 그 아쉬움이 크지는 않았다.
온달은 결국 전쟁 영웅으로 이름을 날렸던 무인.
그가 가진 전승은 많은 부분에서 나와 겹칠 테니, 만약 계약에 제한이 있다면 아예 다른 방면의 위령을 찾는 게 나에게는 효율적이었다.
“그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검은 안개로만 보이던 흑령들도, 제각각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아니, 저들이 변했다기보다는 내가 그 실체를 꿰뚫어보고 있다는 게 맞겠지.
다만 이름까지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아마도 제 이름을 후대에 남기지는 못했기 때문인듯했다.
“일단 돌아갈까.”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내 뜻을 알았다는 듯 온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내 앞에 익숙한 구멍이 나타났다.
청두더지의 비서로 만들었던 그 통로였다.
원래 입구에 있을 그 통로를 친절하게도 여기까지 가져와 준 모양.
“감사요.”
이에 나는 그 배려를 거부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그 통로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시야가 잠시 어두워지더니, 딱 3초 후 나는 어느새 내 방에 서 있었다.
따뜻해진 공기와 밝고 익숙한 실내.
그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좋네.”
나는 코트를 벗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른 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마치 퇴근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집에 도착한 것 같은 이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엎어졌다.
“후우…”
순식간에 어두컴컴한 신역에 처박혀 있다가 여유로운 주말로 되돌아온 일상.
그렇게 침대에 눕고 나서야, 나는 사방신 서브 퀘스트의 완료 버튼을 눌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