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53
153.
“후…”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있는 공항에 도착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12 시간의 비행.
전에 갔던 페루보다는 짧았지만, 여전히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
함께 온 나하정의 얼굴에는 나와 같은 피로감은 흔적도 없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지만, 그 눈만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던 최은영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외국은 처음이세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나하정은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검사 시절엔 중국이나 일본에는 가봤거든요. 그래도…이렇게 먼 곳에 온 건 처음이네요.”
먼 곳이라.
그야 멀긴 하지.
그래서 먼 외국은 더욱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그래 봐야 이세계만큼은 아니지만.
“두 분 다 짐은 다 챙기셨죠?”
그때 옆으로 한 청년이 다가오며 물었다.
안경을 쓰고 살짝 작은 키를 가진 남성.
나보다 두 살이 더 어리다는 그는 이번 출장의 가이드인 민동훈이었다.
나이가 어려서인지, 퇴마사로서의 레벨은 14로 낮은 편이었지만.
진짜 여행 가이드로 아르바이트까지 해본 적이 있다는 그는 능숙하고 밝은 분위기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예.”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하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에는 택시 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다음 일정 설명해 드릴게요. 여기에서 우선 무스트베라는 도시로 가야 하거든요? 거기가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라서. 거기서 호텔을 잡고-”
택시에 올라타자, 민동훈은 우리에게 짧은 일정을 전달했다.
결국 도시에 잠깐 들렀다가 현장으로 이동한다는 말.
그리고 현장은 에스토니아의 동쪽 끝에 있는 러시아 국경이 닿고 있는 페이푸스라는 호수 근처였다.
“그럼… 얼마나 걸립니까?”
“두세 시간 정도? 보시면 될 거 같은데요.”
국경 근처라길래 오래 걸릴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였다.
하긴, 에스토니아는 크기가 한국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제 무기는요?”
나하정의 물음이었다.
지금은 나 역시 인검을 갖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야 그 정도 크기의 검을 아무렇지 않게 비행기에 갖고 탈 수는 없었기에.
내 검은 보통 특수 화물로 취급되어, 같은 비행기의 화물 중에서도 따로 관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나하정의 무기는 그것조차 힘들었다.
총은 물론 거기에 수류탄 같은 치명적인 폭탄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그래서 나하정의 무장은 아예 다른 비행기에 실려 보내졌고, 이번에는 거기에 내 검까지 딸려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무기들은 이미 이동 중이라고 보고받았어요. 호텔에 도착하면 받아 보실 수 있을 걸요?”
민동훈의 대답에 나하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수도임에도 크게 북적이지 않는 도로 위를 택시는 유유히 달렸다.
나는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나쁘지 않았다.
도시 안은 깨끗하면서도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로워 보였고.
도시를 벗어나자 보이는 숲은 초원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산도 거의 없어서, 아무리 도로를 달려도 탁 트인 평지가 숲과 함께 이어진다.
과연, 북유럽다운 광경.
그게 어지간히도 마음에 드는 건지.
“……”
나하정은 그런 풍광을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감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처럼 편하게 경치를 감상할 수는 없었다.
저 평지와 숲을 보다 보면…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렇지 않게 그 나무 뒤에서 오크나 고블린이 기어나올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몇 시간 후.
호텔에서 무기를 챙기고 현장 근처까지 도착한 우리는 차량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디뎠다.
현장은 슬라브 신화의 흡혈종, 스트리고이에 의해 전멸했다는 숲 속의 마을이라고 했던가.
그 정보대로 주변에는 온통 숲뿐이었고, 마을로 통하는 길은 얇은 산길 하나가 전부였다.
“이 길을 따라가면 금방 보일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민동훈이 길을 가리켰다.
나는 앞장서서 그 길을 걸었고, 민동훈이 중간에, 권총을 든 나하정이 가장 뒤에서 따라왔다.
그렇게 그 마을로 향하는 길을 조금 걸어가자, 표지판이 나왔다.
거기에 쓰인 글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같이 그려진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집과 그 앞에서 불을 피우고 있는 귀여운 토끼 그림.
“이건 뭡니까?”
“아… 이건 캠프장에서 설치한 거 같은데요?”
그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을은 그저 숲 속에 고립된 마을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적 드문 숲에 캠프장을 만들어, 이를 통해 생활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사실 마을이라기보다는, 숙식이 가능한 작은 사업체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캠프장에 살고 있던 사람은 총 10명.
전부 캠프장의 관련자들로 주인과 그의 가족, 그리고 고용인들이었다.
“나름대로 인기는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때마침 캠프장이 휴일이라 다행이었죠.”
내가 원래 한가한 캠프장이었냐고 물으니, 민동훈은 그리 답했다.
그런데 딱 그 지점부터, 묘하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평범하던 숲의 분위기가 스산해지고, 밝은 대낮임에도 어두침침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딱히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다.
그저 높은 나무들이 살짝 허리를 숙인 것처럼 그 그림자가 깊어졌을 뿐.
“이 근처에, 뭔가 있습니까?”
그래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민동훈은 이제 막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숲이 좀 어둡죠? 그거 바바 야가 때문입니다.”
“바바 야가요?”
“그 마녀가 지나간 숲은 한동안 이렇게 바뀐다고 합니다. 말로는 정령이 깃든다고 하던데…”
정령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얼마 안 가 오두막집이 보였다.
짙은 갈색의 통나무로 만든, 1층짜리 건물이었다.
그 모습은 딱 봐도 캠프장의 안내소 같았다.
“여기에 있던 게… 잠시만요.”
민동훈은 자신이 가진 자료를 펄럭거리며 뭔가를 찾았다.
“아, 여기서 살해당한 건 1명이네요. 캠프장 주인의 아들이라는데, 당시에는 입구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민동훈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그 안내소의 창문 안쪽을 바라보았다.
조용한 안내소 안에는 똑같이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와 그 위를 덮은 선명하고 거대한 핏자국이 보였다.
거기에 사방으로 튄 피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거기서 민동훈의 말이 이어졌다.
“현장은 딱 시체만 치워뒀다고 들었습니다. 치우기 전 현장은 사진으로 남겨뒀는데, 보여 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서 사진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이곳에서 사망했다는 남자의 참혹한 최후가 눈에 들어왔다.
강력한 힘에 사지가 뜯겨 죽은 남자.
“드라큘라와는… 확실히 다르네요.”
그걸 보며 나하정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스트리고이는 흡혈종이지만 익히 알려진 뱀파이어와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생긴 것부터가 박쥐를 의인화시킨 뱀파이어와는 달리.
스트리고이는 검은 털이 덮인 괴력의 팔과 해골 같은 얼굴, 그리고 안개와 같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박쥐보다는, 악령이나 늑대인간에 가까운 존재.
하지만.
“왜 이렇게 죽인 거지?”
그렇다 해도 이 참상은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지 보기에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그야 이렇게 온몸을 찢어놓으면, 피를 마시기 힘들지 않은가.
하지만 민동훈이 가진 자료에도 이에 관한 내용은 언급이 되지 않았다.
겨우 현장을 정리하고, 사람들을 통제했을 뿐.
조사는 거의 진행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를 기억만 해두기로 하고 시선을 돌렸다.
“다음은 어디입니까?”
이어서 향한 곳은 캠프장의 중앙이었다.
캠프장을 관리하는 관리실이 있는 곳으로, 역시 나무로 만들어진 산장이었지만 규모는 안내소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해당한 것은 총 3명.
이 관리실의 안쪽에 있는 작은 방 몇 개를 침실로 사용하던 직원들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침실의 상태도 전부 안내소와 비슷했다.
그 작은 방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흠…”
나는 침음을 흘리며 방들을 확인했다.
그런데 두 번째 침실에 강조 표시된 단서가 있었다.
그건 벽에 난 자국.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긁고 지나간 그 자국은 일견, 그저 참상의 일부로만 보일 뿐이었지만.
제대로 의식하고 보니 곧 그 단서가 의미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혹시 이 캠프장에 퇴마사가 있었습니까?”
“네?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왜 그러십니까?”
“전투의 흔적이 있어서요.”
그것은 전흔이었다.
그저 이곳이 스트리고이가 일반인을 학살한 현장이라면, 저런 흔적이 남을 이유가 없었다.
분명 이 침실의 주인이 스트리고이에게 반격을 했고, 이 좁은 침실에서 잠깐의 난투가 이어졌다는 말.
다만 그리 대단치 않은 전투였던 건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민동훈의 눈이 크게 뜨였다.
“듣고 보니…”
“분명… 일반인의 대처 같지는 않네요.”
나하정 역시 그 흔적들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스트리고이가 이곳을 습격한 것은 한밤중.
거기에 이런 침실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건, 이곳에 머물던 사람이 습격 직전까지는 자고 있었다는 말인데.
그 상황에서는 평범한 일반인이 무기를 갖고 있는 것조차 특이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무기를 들고 괴이와 전투를 벌였다니.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마녀들이 그렇듯, 이 나라는 비공식 퇴마사들이 간혹 있는 곳이라.”
그 의문에 민동훈은 그렇게 답했다.
하지만 이곳에 그 이상의 단서는 없었기에, 나는 다음 현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 후, 캠프장 서쪽에 있는 산장을 지나, 마지막으로 가장 끝에 있는 주인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는 집까지 도달했다.
산장과 집에서도 각각 희생자가 있었고, 그런 현장의 모습은 전부 비슷했다.
도대체 몇 마리의 스트리고이가 이곳을 습격한 건지.
간혹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현장도 있었지만, 대부분 제대로 된 반항도 못해보고 사망한 듯 보였다.
“여기입니다.”
그중 하나는 캠프장 주인의 침실이었다.
역시 피투성이가 된 방 내부.
거기에는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가구와 집기들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난장판이 된 방보다도, 피가 튄 벽만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한쪽 벽 일부가 강조 표시가 되어 있었다.
마치 저 벽 뒤에, 무언가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
그래서 나는 그 벽으로 다가가, 손을 대고 밀어 보았다.
그러자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벽의 일부가 흔들렸다.
마치 안쪽으로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문처럼.
“어?”
그걸 보며 민동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자신이 들고 있는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없을 테니.
이어서 나는 그 비밀 문을 냅다 찼다.
그러자 잠금장치가 부서지며 문이 열렸고 그 뒤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아니… 어떻게 찾으신 겁니까?”
“다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내려가 보죠.”
민동훈의 물음에 적당히 답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의 끝에는 지하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지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머…”
그 내부를 보고 나하정이 먼저 반응했다.
지하실에 있던 것은 총과 폭탄을 포함한 수많은 무기.
그런 무기들이 마치 박물관처럼 벽에 걸려 있었다.
그중 몇몇 칸이 비어 있는 걸 봐서는 가져다 쓰기도 했던 모양.
아무래도… 여기에 살던 사람이 퇴마사 비슷한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다만, 그런 지하실의 한쪽 벽을 거대한 식물의 뿌리가 뚫고 나와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부자연스러운 형태.
“……”
저 뿌리 역시 바바 야가의 짓일까.
더 없이 수상했다.
무엇보다 그 뿌리가 강조 표시된 단서를 깔아뭉개고 있었기에.
나는 그 뿌리를 베어내 바닥에 있는 단서를 끄집어냈다.
그건 원래 부서진 벽에 붙어 있던 건지, 천에 그려진 어떤 문양이었다.
투박하게 그려진 흰색의 십자가.
각 선의 끝에 반원형의 장식이 그려져 있는 것만 빼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십자가였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던걸까.
“……”
내 옆에 선 민동훈은 그 문양을 빤히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게 뭔지 아세요?”
“이거…아무래도 크레스니크의 상징 같습니다.”
크레스니크.
슬라브 신화에서 스트리고이를 사냥하는, 놈들의 숙적이자 사냥꾼들로.
굳이 분류를 따지자면 퇴마사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캠프장 주인이 크레스니크였다는 겁니까?”
“아마 은둔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크레스니크는 자신이 원해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거기에 혈통 유전이 되기도 하죠. 가족 전체가 이곳에 있었다는 걸 보면 아마도…”
그의 말을 들으니 대충 사건의 전개는 이해가 갔다.
이 캠프장은 크레스니크의 피를 타고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면.
왜 스트리고이가 이곳을 습격했고, 그럼에도 흡혈을 하지 않았던 건지.
대충 의문이 풀리기는 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질문을 이어가려는 그때였다.
그 순간, 갑자기 조용히 있던 나무의 뿌리가 움직였다.
나는 곧바로 민동훈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뿌득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뿌리는 먼저 마치 알처럼 커다랗게 부풀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이 두 개로 쪼개져, 그 안에서 나무 하나가 걸어 나왔다.
놈은 처음에는 1미터 정도의 크기였으나, 겨우 두세 걸음을 움직이더니 지하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졌다.
그 기괴한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엔트?”
이세계의 나무 정령의 이름.
하지만 이내 민동훈이 내 정보를 정정해주었다.
“아니요. 저건 숲의 정령… 레쉬입니다.”
레쉬라.
그래, 슬라브 신화에서는 그런 이름이었지.
그렇게 민동훈의 말에 수긍하는 것도 잠시, 나는 곧바로 검을 꺼냈다.
금세 몸집을 키운 놈이 이쪽으로 제 줄기를 뻗으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