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55
155.
“용의자? 용의자라니, 하…!”
내 말에 바바 야가는 황당함에 기가 막힌 듯한 얼굴이었다.
“나를 체포라도 하겠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
“물론 자기 변호할 기회는 드리겠습니다. 사건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전부 말씀해주시죠.”
내 요구에 마녀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의 얼굴에 있던 황당함은 점차 분노로 변해갔다.
그런 바바 야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무리 레쉬의 숲을 뚫고 온 나라도, 그 레쉬를 부리고 있던 바바 야가의 눈에는 하찮은 퇴마사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애송이가 마녀의 공방이라고 할 수 있는 제집까지 들어와 자신을 심문하려는 꼴이라니.
우스운 걸 넘어 지나치게 건방지다 생각하고 있으리라.
“이국의 베지막. 마녀의 집에서 그런 협박이 얼마나 무례한 행위인지-”
“말씀드렸을 텐데요.”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그녀는 여전히 착각하고 있었다.
“저는 이국의 베지막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그리고 협박을 한 적도 없습니다. 단지 경찰로서, 시민에게 공무 수행 절차를 알려 드린 것뿐이죠.”
“……”
내 말에 바바 야가는 눈을 잠시 감았다.
그리고 다시 그 눈이 떠졌을 때는 이전과 같은 감정은 없었다.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경관님들, 먼저 내 결백을 증명해 보이지.”
그녀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바바 야가가 자신의 집에 있는 문 하나를 열자, 그 뒤에는 커다란 방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제각각 이야기를 나누거나 창밖을 보고 있는 등, 멀쩡히 살아있는 그들은…분명 캠프장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던, 이 사건의 희생자들이었다.
“…살아있었던 겁니까?”
“보면 몰라?”
나는 다시 한 번 그들을 살폈다.
아무리 바바 야가라도 나에게 환상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다, 저들의 머리 위에는 레벨 표시도 분명히 보였다.
죽은 줄 알았던 희생자 중 일부가 정말로 살아있었다는 말.
“그럼 현장의 시체는요?”
“가짜야. 설마 이 바바 야가가 그 정도 일도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속일 필요가 있었어.”
“속이다니, 누구를요?”
“스트리고이. 그리고, 그들의 왕.”
거기까지 말한 바바 야가는 다시 문을 닫았다.
더 이상 저들을 쳐다봐도 나오는 건 없을 거라고 말하는 태도였다.
“저들은 스트리고이의 숙적, 크레스니크들이야. 알고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바바 야가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그들과 계약을 했어. 보호의 계약이지.”
“보호? 바바 야가가 크레스니크를 지킨다고요?”
슬라브 신화 속 바바 야가, 즉 마녀들은 크레스니크보다는 스트리고이와 더 관계가 깊은 세력이었다.
마녀들의 저주를 받고 죽은 이는 스트리고이로 부활한다는 전승이 있을 정도였으니.
그런 내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바바 야가는 실소를 흘렸다.
“물론…웃기는 일이지. 스트리고이와 그 사냥꾼들의 전투는 숙명. 그 자체가 전승이고, 저들의 존재 이유이자 필연. 그러니 그 사이에 우리 마녀들이 끼어들 일은 없어야 했어. 그런데…저들의 왕이 나타난 뒤로 그럴 수 없게 됐지.”
“……”
“불멸의 코셰이.”
스트리고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바바 야가가 돌연 또 다른 존재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본래 흡혈귀의 힘을 갖지 못했던 그가 흡혈귀로 부활했다. 제 전승은 그대로 지닌 채로, 죽지 않는 몸을 가진 그가 괴이인 스트리고이의 왕이 되었지.”
불멸의 코셰이는 그 이름대로 불사의 속성을 지닌 전승 속의 악역이었다.
제 생명을 비밀스러운 곳에 숨기고 다닐 수 있다는, 리치의 원전 같은 존재.
원래 사악한 주술사나 전사로 묘사되는 코셰이지만, 그가 흡혈귀로 되살아났다는 건가.
“그래서 원래 스트리고이의 왕을 사냥해야 할 크레스니크의 담피르는 그를 사냥하지 못했어. 그에게 불사에 대항할 힘은 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반대로 죽임을 당해 스트리고이가 되어 버렸지. 그 이후는 네가 본 그대로야, 이국의 베지막.”
바바 야가의 눈이 나를 떠나 창밖으로 향했다.
“제 왕을 등에 업은 스트리고이들이 이 땅에 숨은 크레스니크들을 찾아 멸절시키려 하고 있어. 크레스니크들에게는 이에 대항할 힘이 없고. 그래서 나는 그들과 보호의 계약을 맺은 거야. 그들의 전승이 균형을 잃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바 야가의 말은 의심할 것도 없었다.
거짓을 꿰뚫는 불망어의 전승이 그녀의 말을 진실이라 판정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나는 그저 조용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는 못해. 곧 겨울이 온다. 그 혹한의 계절이 오면 숲의 정령은 겨울잠에 들 거고, 그렇게 되면 숲이 숨겨두던 크레스니크들은 하얀 설원 위에 놓이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비로소 저들의 전승은 끝장이 날 거야.”
스트리고이와 대항하는 크레스니크의 전멸.
그건 당연하게도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숙적을 제거한 그 흡혈귀들이 그저 가만히 어둠 속에 처박혀 있지는 않을 테니.
“그렇다고 당신이 나서기는 힘든 모양이군요.”
나는 바바 야가에게 말했다.
이 마녀는 코셰이와 스트리고이를 적대하는 듯하면서도, 그 방법은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그저 스트리고이에게 습격당한 크레스니크들을 숨겨줄 뿐이었으니.
“물론. 나는 바바 야가니까.”
그 이유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의 코셰이는 이반 왕자라는 주인공에게 격퇴되는 설화 속의 악역인데.
그런 코셰이의 강력한 조력자로 나오는 것이 바로 바바 야가였다.
그러니 바바 야가의 이름을 잇고 있는 그녀가 코셰이를 적대한다는 것은, 자신의 전승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꼴.
“……”
그래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바바 야가의 말에 거짓은 없다.
그러니 결론은 간단했다.
그 코셰이인지 뭔지를 작살 내면, 사건 해결인가.
다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당신이 크레스니크의 전승을 신경 쓰는 이유가 뭡니까? 설령 코셰이가 스트리고이와 날뛰더라도 마녀들과는 상관이 없을 텐데요.”
불멸의 코셰이와 바바 야가는 설화 속에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 협력 관계였다.
그렇기에 바바 야가가 코셰이를 적대할 수 없다면, 이는 그 반대도 성립한다는 말.
그래서 마녀들은 굳이 코셰이를 막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짧았다.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바바 야가는 차분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네 말대로 마녀들이 나설 일은 아니지. 하지만 그렇게 치면 우리는 정부를 따를 필요도, 법을 지킬 필요도 없어. 안 그래?”
“……”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나선 건 미래를 위해서야.”
“미래요?”
“지금이야 우리 멋대로 할 수도 있겠지. 스트리고이가 아무리 날뛰고 사람을 죽이더라도 무시할 수도 있어.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베지막, 넌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
난데없이 그녀는 내 출신에 대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곳은 잘 알아. 온갖 괴이들의 무덤이자 마인들의 처형장. 그 작은 땅에서 수십 개의 퇴마 단체가 설치고, 공권력까지 나서서 숨어있던 마조차 끄집어내 그 전승을 끝장내는 죽음의 땅.”
그렇게 들으니 한국이 무슨 생지옥 같은 곳인 것처럼 묘사됐지만.
잘 따져보면 결국 치안이 좋다는 이야기였다.
“언젠가는 이곳도 그렇게 될 거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가 종식될 날이 머지않았지. 그러니 마녀도 그때를 준비해야 해. 이유는 그것뿐이야.”
“흠…현명하시네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녀들의 수장인 바바 야가는 생각보다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결국 이 에스토니아에서도 퇴마에 대한 공권력의 적극적인 개입이 시작된다면.
그전까지 멋모르고 날뛰던 것들은 전부 괴이나 마인 판정을 받고 몰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예 지금부터 정부 친화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한국의 정식 기관과 같은 위치를 얻어내려는 속셈일까.
그렇다면…나에게는 마침 잘 된 일이었다.
“그럼 저와 계약 하나만 하시겠습니까?”
그녀에게는 이번 스트리고이 사태를 해결해야 할 명분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받아야 할 것이 있었고.
“계약?”
“제가 코셰이와 스트리고이를 치워 드리죠. 물론 정부 쪽에도 바바 야가의 협력에 대해 잘 전달 드릴 거고요.”
그 말에 바바 야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대가는?”
“먼저 정보입니다. 그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는, 바바 야가라면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성공 보수로 갖고 계신 금서를 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피식하고 그녀가 실소를 내뱉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라고 말하고 싶네. 이 슬라브의 금서는 결코 이국의 베지막 따위가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그런데…너는 아니야.”
금세 표정에서 웃음기를 지운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눈이 아닌, 그 속에 있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시선.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그게 착각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보여. 베지막, 너는 벌써 몇 개나 되는 금서를 모은 거지? 게다가 그 저주받은 주술들을 전부-”
“헛소리는 그만하시고. 그래서 하실 겁니까, 말 겁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 바바 야가를 제지하며 대답을 요구했다.
그러자 바바 야가는 제 시선을 거두더니 얼굴에는 다시 웃음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예상대로였다.
* * *
“……”
바바 야가는 집을 떠나는 손님들을 눈으로만 배웅했다.
곧 그들의 모습이 작은 공터를 떠나 나무와 숲 뒤로 사라질 때까지도 그녀는 그들이 떠난 방향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그녀의 고동은 미약하게 흥분해 있었다.
그만큼, 저 이국의 베지막이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해. 분명 인간일 텐데…”
바바 야가는 그가 머물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걸어간 바닥과 그의 손이 닿았던 문의 손잡이까지도 차례차례 훑었다.
거기에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바바 야가인 그녀만은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다름 아닌 신의 잔향이었다.
“어떻게…살아있는 신격을 품고 있는 거지?”
그저 다른 신의 전승을 품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안에는 몇몇 신들의 흔적이 있었으나, 놀라운 것은 그가 자신만의 신격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 신격은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약했지만 새로운 신화의 전승이 사라진 지금, 이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
또한 그 정체는 마녀들의 수장인 바바 야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바바 야가가 그들을 집으로 초대한 이유였다.
물론 그 이후의 대화는…완전히 예상 밖이었지만.
“그럼…”
바바 야가는 책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거기에 아무렇지 않게 꽂혀 있던 책 중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두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원하던 금서였다.
이걸 넘기는 것은 아깝지 않았다.
자신이 마인 취급을 받는 이유 중에는 이 금서의 존재도 한몫했기에.
이를 안전하게 처분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여기에 적힌 주술들을 이미 모두 이해하고 있기도 하고.
“……”
이미 바바 야가의 머릿속에서 코셰이에 대한 염려는 지워져 있었다.
그런 존재가 직접 나선다면, 걱정할 것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그저 조용히 금서를 떠나보낼 준비만을 하고 있었다.
* * *
“그럼, 저는 돌아가 보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 주시고요.”
그렇게 말한 민동훈은 곧 차를 몰아 멀어졌다.
그가 나와 나하정을 내려준 곳은 스트리고이의 거점으로 알려준, 국경 근처의 한 마을이었다.
한쪽은 숲으로, 또 다른 한쪽은 호수로 둘러싸인 곳으로.
원래 버려져 있던 마을이었는데 이를 최근 스트리고이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모양이었다.
“갑시다.”
나는 마을로 향하는 길을 보며 나하정에게 말했다.
나하정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제 짐을 챙겼다.
온갖 화기가 든 배낭을 멘 그녀는 몇 걸음을 걷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역시 내일 아침에 오는 게…”
지금 시각은 오후의 해 질 녘으로 하늘은 붉은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또한 스트리고이는 햇빛 아래를 걸을 수 없는 저주를 짊어진 존재.
따라서 스트리고이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아침이나 낮에 움직이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논리였기에 스트리고이 역시도 상당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놈들 마을 생긴 거 보셨잖아요. 어차피 언제 가나 비슷할 겁니다.”
원래는 가운데에 높은 첨탑이 세워지고, 그 첨탑을 기준으로 주변에 20여 가구의 목제 건물이 있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를 스트리고이들이 점거한 후, 그 마을 위는 햇빛을 가리는 지붕으로 뒤덮여 있었다.
설령 낮에 쳐들어가더라도 큰 이득이 없다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놈들의 거점인 그 마을에서 얌전히 싸워줄 생각도 없었고.
“저기에요.”
그렇게 한동안 마을을 향해 걷던 우리의 시야에 마침내 그 입구가 들어왔다.
마을을 통째로 뒤덮은 철제 지붕에 가려져, 마치 동굴의 입구처럼 보이는 곳.
그리고 그 앞에는 지금 한 마리의 스트리고이가 서 있었다.
“저건…”
검은 피부를 가진 일반적인 스트리고이와는 달리 하얀 털을 가진 놈이었다.
그 크기는 3미터 가까이 되어, 스트리고이치고는 거구에 속했다.
또한 노을이 지고 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 햇볕을 받아내고 있는 괴이.
그렇기에 그 정체는 분명했다.
저게 코셰이에게 죽었다는, 크레스니크의 담피르였다.
담피르는 원래 흡혈귀와 인간의 혼혈이다.
그래서 담피르는 흡혈귀의 힘을 지녔지만 동시에 인간이기도 해서, 인간의 마음을 가졌고 햇빛을 받아도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담피르는 스트리고이에 대항하는 크레스니크의 수장이기도 했지만.
그런 담피르조차도 결국 코셰이에게 죽고, 흡혈귀가 된 것이었다.
햇볕에 면역이 있는 흡혈귀이기에, 이 대낮에 입구를 지키고 있는 역할을 맡은 건가.
“…저건 제가 처리하죠.”
마침 나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담피르라면 일반적인 스트리고이보다는 훨씬 강한 난적으로, 저 흡혈귀 집단에서는 이인자에 해당하는 괴이.
그러니 그런 놈을 초장부터 처리하고 갈 수 있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지는 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검을 뽑아들고 놈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크르르…”
놈이 반응했다.
나를 보자마자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던 담피르는 흰 털이 뒤덮인 두꺼운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해골을 뒤집어쓴 얼굴이 이내 괴성을 토해냈다.
“크아아아아!”
이어서 놈이 미친 황소처럼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