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57
157.
“내 너를 불태워 죽이리라!”
코셰이가 칼을 뽑아들며 외쳤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서 화염이 일어났다.
거대한 불꽃의 벽.
단일 개체를 상대하기보다는 광역 공격에 해당하는 주술이었다.
이건… 불의 강인가.
설화 속에서 코셰이가 바바 야가를 만나기 위해 건넜다는 거대한 화염의 강.
그 전승을 재현하는 주술로 보였다.
“위력은 괜찮아 보이는데… 상성이 안 좋네.”
나를 향해 떠밀려오는 불의 파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화염에 대항하는 방법은 한둘이 아니다.
애초에 나는 화염에 면역인데다, 주작의 힘을 사용해 저 권능을 뺏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쉬운 길로 가지는 않았다.
기왕이면 새롭게 얻은 현무의 힘을 확인해보고 싶었으니까.
쩌저저적!
섬뜩할 정도의 냉기가 돌 바닥을 하얗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냉기는 닥쳐오는 화염에 맞서 가로로 넓게 퍼졌다.
덮쳐오는 화염의 해일과 이를 막아서는 새하얀 서리의 방파제 같은 구도.
후우웅!
이윽고 화염과 냉기가 부딪혔고, 그 사이에서는 사납게 돌풍이 휘몰아쳤다.
“호오…”
코셰이의 화염은 그 기세가 제법 강했다.
하지만 장소가 좋지 않았다.
이곳은 태음을 주관하는 현무의 신역.
설령 그 전승과 전혀 상관없는 코셰이라고 해도, 놈의 화염은 이곳에서 온전히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화염의 기세가 가파르게 꺾여갔다.
이를 아는 건지.
“네놈! 더 참지 않겠다!”
코셰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아예 제 몸에 화염을 휘감고 달려왔다.
게다가 어느새 놈은 말을 타고 있었다.
설화 속에서 바바 야가에게 얻어냈다는 준마.
하지만 그 말도 제 주인의 영향을 받은 건지, 붉은 망토를 두른 해골마가 되어 있었다.
“……”
놈은 그대로 냉기의 벽과 부딪혔다.
그러자 사납게 타오르던 화염이 순식간에 식고, 그 위로 서리가 꼈지만.
그 정도의 피해만으로 놈은 그 냉기의 벽을 돌파했다.
해골마가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그 직후.
콰아아앙!
아직 남아 있던 나하정의 지뢰가 폭발했다.
소위 발목 지뢰라고 불리는 그것은 그 이름대로 해골마의 한쪽 다리를 절반 이상 날려버렸다.
그럼에도 용케 쓰러지지 않은 해골마가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그러나 당연히 그 사이 놈의 돌진은 멈췄고, 내 뒤에서 코셰이의 진격을 지켜보던 나하정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투타타타타!
다시 한 번 중기관총이 맹렬한 총격을 퍼부었다. 이어서 몇 발의 유탄이 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남은 기관총탄을 전부 쏟아부은 최후의 일격.
그러나 코셰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이어졌다.
“끄덕하지 않는다!”
코셰이가 타고 있던 해골마는 형태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그 위에 타고 있던 화염의 거인, 불멸의 코셰이는 그 이름값을 했다.
평범한 인간, 아니 평범한 스트리고이라도 한 줌의 고깃덩이가 되었을 총격이었지만.
그 바짝 마른 노인의 거구는 현대 무기의 화력 앞에서도 그 정도로 손상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기껏해야 총탄에 꿰뚫린 구멍이 몇 개.
거기에 유탄에 직격당한 팔 한 짝이 날아간 수준인가.
하지만 그조차도 영상을 역재생한 것처럼 순식간에 복구되고 있었다.
“나는 죽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코셰이가 또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이, 나는 놈에게 달려갔다.
이미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나는 검을 들었다.
코셰이의 검은 눈이 나를, 그리고 내 검을 향했다.
놈의 입가가 비틀렸다.
내 일검이 그를 향해 떨어졌다.
그 참격을 피하려고도 하지 않고, 코셰이는 하려던 말을 이었다.
“나는 불멸이다!”
그건 놈에게는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나에게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추태였다.
그렇기에 코셰이에게는 화염도, 번개도 필요 없었다.
그저 은은하게 빛나는 이 일검이라면, 저놈도 제 주제를 깨달을 테니.
서걱!
검날이 공간을 지나친다.
썩은 시체를 베었다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절삭음이 들렸다
그러자 코셰이의 머리가 기우뚱하고 옆으로 기울더니.
그대로 몸에서 끊어져, 바닥으로 추락한다.
“허어…?”
그제야 노인의 탁한 눈동자에 의문이 깃들었다.
목이 잘리고도 죽지 않은 놈은 이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듯.
운 좋게 나를 향한 얼굴 위로 뒤룩뒤룩 눈동자만 굴렸다.
그렇게 말이 많던 입조차 뻥긋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입이 열리길 기다릴 마음은 없었다.
검을 역수로 쥐고 놈의 머리를 겨눴다.
푸악!
불사를 끊는 칼날이 코셰이의 머리를 꿰뚫는다.
그러자 비로소 검은 피가 줄줄 흐르더니, 그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놈의 죽음은 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레벨은 한 단계가 더 올라서 53이 되었고.
인검에는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었다.
코셰이의 약물 : 평범한 물을 강화, 혹은 치유 효과가 있는 약물로 변환한다.
“이건…”
불멸이나 화염과 관련된 스킬이려나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포션을 만들어내는 스킬이었다.
코셰이 설화의 시작 부분.
감옥에 쇠사슬로 묶여 있던 그가 물만 세 양동이를 마시고는 사슬을 끊어내고 탈출했다는 전승을 기반으로 한 듯 보였다.
어찌 되었건, 다른 건 몰라도 치유 효과가 있는 스킬은 처음이었기에 나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어설픈 공격 스킬보다는 훨씬 사용처가 많을 테니.
나는 스킬 창에 잠시 머물러 있던 시선을 옮겨,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신역에는 스트리고이들이 몇 마리 더 남아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나를 공격해오기는커녕, 죽은 자신들의 왕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저것들은… 굳이 내가 나설 필요도 없다.
나는 검을 집어넣고 나하정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녀는 평소에 사용하던 권총을 들고 남은 잔당에게 다가갔다.
사건이 일단락된 것은 몇 번의 총성이 들린 이후의 일이었다.
다음날.
나는 금서를 받기 위해 바바 야가에게로 돌아갔다.
숲 속 공터에 있는 과자 집의 마당.
그곳에서 시간상으로는 하루 만에 되돌아온 나를 보며 바바 야가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벌써 왔어?”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태도는 여간 능청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스트리고이들의 거점을 격파하는 것을, 이 마녀가 지켜보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슬라브 신화의 전승을 사용하는 마녀에게 코셰이나 스트리고이의 유해는 썩 괜찮은 주술의 도구일 테니까.
반면 나에게는 그리 쓸 곳이 없는 것이었기에, 바바 야가는 내가 놈들을 처리하는 걸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리고 내가 현장을 떠나자마자 바바 야가는 그 마을을 이 잡듯 뒤졌을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알면서도 현장을 그대로 방치했다.
겸사겸사 뒷수습도 마녀들에게 맡겨 두고, 대신 그 대가를 따로 챙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받을 게 있지 않습니까.”
바바 야가는 묘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단, 오늘 초대하는 건 베지막 너뿐이다.”
바바 야가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같이 온 나하정과 민동훈을 두고 마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번과 똑같이 테이블로 나를 안내한 바바 야가는 곧 어떤 책을 들고 나왔다.
저주를 의미하는 검은빛이 흘러넘치는 책.
분명 금서 중 하나였다.
“이게 네가 요구한 슬라브 종교의 금서야. 다만…”
마녀는 그걸 테이블에 올려두고 나를 보았다.
“넘겨주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
“……”
나는 침묵으로 불만과 긍정을 동시에 표했다.
그러자 곧 그 질문이 이어졌다.
“너는 왜 금서를 모으는 거지?”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당연히 강해지기 위해서죠.”
“하지만 여기에는 강력한 저주가 담겨 있어. 역대 바바 야가의 손을 타고 내려온 고대의 저주. 바바 야가가 아닌 자가 이걸 열어 보면… 그대로 즉사할 테지.”
“됐으니까, 그냥 주시면 됩니다.”
“자신만만하네, 베지막. 하지만… 나는 분명 마녀로서 경고했다. 그 뒷감당은 네 몫이야.”
거기까지 말한 바바 야가는 망설임 없이 금서를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걸 그대로 낚아챘고, 이어서 금서는 빛 무리로 변해 나에게 흡수되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13개의 금서 중 하나.
슬라브 종교와 관련된 금지된 술법이 적혀 있다.
마녀들의 수장, 바바 야가만이 금서를 열람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자가 금서를 읽거나 만지면 저주받아 죽는다.
그러자 성공적으로 금서 퀘스트 목록에 새로운 금서가 추가되었다.
또한 이로 인해 새롭게 얻은 스킬은 역시 마녀와 관련되어 있었다.
제작 가능한 레시피의 제작 수량 증가.
직접 제작한 일부 소모품의 효과가 1회 한정으로 영구 적용.
그건 제작 기능을 강화하는 스킬이었다.
다른 것보다도 소모품의 효과가 영구 적용된다는 게 눈에 띄었다.
소모품 중에는 일정 시간 능력치를 올리거나, 심지어는 스킬을 부여하는 것도 있다.
일부 소모품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의반만 적용되더라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한편 금서가 사라지는 모습을 본 마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미있네. 금서를 먹는 베지막이라니.”
“먹은 적은 없습니다. 흡수한 거지.”
“그게 그거다.”
바바 야가는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더니 살짝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다른 금서의 행방은 아나?”
“몇몇 수배범이 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분명 몇 달 전, 모니카에게 들은 바로는 그랬다.
그러나 내 말에 바바 야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얼마 전까지의 이야기야, 이국의 베지막.”
“얼마 전까지…?”
“그래. 최근에 나타났거든. 너처럼 금서를 모으는 마인이.”
“……”
처음 듣는 말에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금서를 모으는 마인이라고?
겨우 13권밖에 안 되는 걸, 나 빼고 다른 놈도 모으고 있다는 건가.
“고작 한 달 만에 금서를 갖고 있던 수배범 셋이 시체가 됐다더군. 그리 만만한 괴물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정체불명의 전승을 쓴다고도 하고.”
“그놈을 잘 아십니까?”
“나도 아는 건 별로 없어. 단지 나 역시 금서의 소유자였으니 그 소문을 들은 것뿐이지. 최근 들어 발생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 베지막, 너도 금서를 모으다 보면 그들과 마주치게 될 테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원래 금서는 여러 권을 갖고 있어봐야 크게 효용성이 없다.
금서라고는 해도 결국 각기 다른 문화권의 전승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러 개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금서를 모으는 놈이 있고.
한발 더 나아가 그놈이 정체불명의 전승을 사용한다라.
“……”
이에 내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가능성만이 스쳤다.
바로 사교.
바바 야가조차 정체불명이라고 말할 정도의 전승은 그놈들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것들이 이제는 금서까지 모으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바바 야가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갑자기 왜 하시는 겁니까?”
“나도 챙긴 게 있으니까.”
이게 어제 남긴 코셰이의 유해에 대한 대가라는 말.
그런 거라면 나도 불만은 없었다.
충분히 유용한 정보였으니.
“좋습니다. 대신, 저도 한 가지만 더.”
“……”
그러자 바바 야가는 조금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불만과 긍정을 침묵으로 대신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이었다.
“혹시 금서를 해석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그 저주받은 책을 해독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하지만… 베지막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릴 만한 걸 찾고 있는 거겠지?”
“……”
“그럼 기독교의 금서를 찾아. 그들의 금서는 신이 숨긴 종말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만든 것. 그래서 그 자체가 숨겨진 것을 보는 전승을 가졌지.”
바바 야가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퀘스트 버튼이 반짝였다.
이를 확인해 보니 금서 관련 서브 퀘스트에 변화가 있었다.
그 내용은 바바 야가의 말 그대로였다.
여덟 번째 금서인 기독교의 금서를 찾으면, 금서 스킬에 영향을 주는 스킬의 레벨이 올라간단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이국의 베지막.”
더 이상의 질문은 없다는 듯 바바 야가가 못을 박았다.
이에 나도 불만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거래였으니.
나는 그대로 마녀의 집을 나오려 했다.
그러자 바바 야가가 나를 붙잡았다.
“가기 전에, 내가 빌려줬던 건 돌려줘야지.”
“아… 이거.”
나는 그녀에게 받았던 단검을 꺼냈다.
그걸 넘기자 바바 야가가 나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통역의 주술 효과가 사라져 당연히 알아듣지 못한 그 말은… 아마도 작별 인사였으리라.
나는 바바 야가의 집을 떠났고, 에스토니아에서의 사건은 거기까지였다.
에스토니아 정부에 관련 처리 내용을 보고하고, 그 사실을 확인받은 후.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코셰이를 처리한 날로부터 4일이 더 지나서였다.
* * *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주.
여느 때처럼 사건을 처리하고 있던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를 보니 이현아에게서 온 것이었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전에 경감님이 부탁하셨던 거 있잖아요. 다행히도 물건을 찾았어요.”
내가 부탁했던 거?
잠시 기억을 더듬던 나는 그게 뭔지 금방 떠올렸다.
나찰의 창.
불교 관련 전승을 증폭시킨다는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제작 재료로.
이현아에게는 이를 구입해달라고 맡겨 놓은 상태였다.
“아, 그래요?”
“예. 운 좋게도 이번에 열리는 경매장에서 물건이 나온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경매라.
그런 것도 경매로 파는 건가.
아니… 오히려 그런 물건이라서 경매로 파는 걸지도 모르겠다.
수량은 한정되어 있고, 사고 싶은 사람은 많을 테니.
“그렇군요. 그거 알려주시려고 전화하신 겁니까?”
“그것도 있지만… 한 가지 제안하고 싶어서요.”
“제안이요?”
“혹시 저와 경매장에 같이 가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경매장에 같이 가자고?
뜻밖의 질문에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자 이현아의 말이 이어졌다.
“경매는 서울에서 이번 주 금요일 오후에 있어요. 물론 경감님의 일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그날은 출장 처리가 되게 할아버지께 부탁을-”
결국, 그날 경매장에 간다면, 합법적으로 출근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
더군다나 경매장이라면 여러 가지 아이템들이 있을 터였다.
안 그래도 ‘마녀의 제조법’ 스킬을 얻은 후 여러 아이템을 만들어야 하는 나로서는 한번 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뭐, 그러죠.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