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60
160.
“…왔군.”
경찰청장실에 들어온 나를 보며 김준성이 반응했다.
그의 얼굴은 평소처럼 생각을 읽기 힘든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시선만큼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한편 청장실에서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정작 오늘을 기다리라고 예고했던 이성민 회장은 자리에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 사람은 대기업 회장이 아닌가.
매번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이리라.
“앉지.”
그는 내 인사를 받고는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그렇게 말했다.
테이블에는 미리 준비해둔 자료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펼쳐보기도 전에 김준성의 말이 이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에 말했던 사교의 신, 그 위치가 특정됐네.”
그냥 듣자면 더없이 완벽한 결론이었다.
사교가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모든 전승을 부정하는 그들의 신 때문이었으니.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수상함을 느꼈다.
그 신은 사교의 핵심과 같다.
또한 사교는 자신의 세력을 넓히는 동안에도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놈들이다.
그런데 그 핵심이 이렇게 쉽게 제 위치를 드러내다니.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미심쩍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빠르네요.”
“그래, 이상할 정도로 빠르지. 하지만 다 이유가 있더군. 그 외에도 알려줄 게 있어. 일단 자료를 보게.”
김준성의 재촉에 나는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 자료에는 내가 지난번에 접촉한 마인의 정보를 기준으로.
화랑의 감시망이 포착한 사교의 움직임이 정리되어 있었다.
다만 그 대부분은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수집된 것이었다.
즉 사교의 세력이 한국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나에게는 그리 놀랄 만한 정보는 아니었다.
이미 바바 야가에게 금서를 모으는 마인이 사교 소속이라는 걸 들은 이후였기에.
“사교가 해외 진출이라도 한 겁니까?”
그럼에도 나는 모르는 척하고 물었다.
그러자 김준성의 말이 이어졌다.
“진출한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외국에서 들어온 건지는 모르는 일이지. 대신 성과는 있네. 해외에서도 놈들이 탑을 세우고 있는 걸 확인했어. 자네가 부쉈던 그 탑 말이야.”
자료를 보니, 발견된 탑은 각각 캐나다와 프랑스에 있었다.
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걸 보면, 사교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건가.
“왜 사교가 이렇게 탑을 쌓으려고 하는 겁니까?”
“정확한 건 알 수 없지. 하지만 추측을 해보자면, 지난번 자네의 보고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네. 이계의 신이라고 했었지?”
그건 사교의 신에 관한 내용이었다.
경찰청장과 이성민 회장은 사교에 의해 인공적인 신이 만들어졌다고 추측했지만.
나는 퀘스트 창을 통해 그것이 이계의 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나는 내가 죽인 마인의 입을 빌려, 그가 죽기 전에 신의 정체를 증언했다고 보고했었다.
“탑은 주술적으로 신에게 닿는 길이자, 하늘로의 문을 의미하지. 성경의 바벨탑 설화는 알고 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에게 닿으려고 하늘을 향해 쌓던 바벨탑.
하지만 결국 인간의 오만함에 분노한 신에 의해 무너진 탑이었다.
“즉 놈들이 섬기는 것이 정말 이계의 신이라면 탑을 쌓는 이유는 명백하네. 놈들이 제 신과 접촉하려는 거야.”
“그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과 접촉하기 위해 탑을 쌓는다면, 지금 놈들이 숨기고 있는 신은 뭐라는 건가.
그리고 그 답은 곧바로 나왔다.
“그래, 우리가 파악한 그 신은 본체가 아닌 모양이야. 아마 신의 형상을 빌린 화신이나, 신의 사자 같은 존재겠지. 물론 그렇다 해도 경시할 수는 없네. 신성을 품고 있는 이상, 위협이 되는 건 변함 없는 일이니.”
그야 신의 정체가 이계의 신이라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본체가 통째로 넘어왔을 리는 없을 테니.
“그런데… 탑은 이게 전부일까요?”
“아니겠지. 하지만 아무리 화랑의 지사를 활용하더도, 전 세계를 뒤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해.”
탑이 발견된 나라들은 모두 국가가 운영하는 퇴마 단체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즉 원래부터 퇴마 관련 치안이 나쁘지 않은 지역들.
결국 손이 닿는 곳까지만 가까스로 파악할 수 있던 셈인가.
“그래도 이 탑이 놈들에게 의미가 있는 건 확실하네. 그래서 탑의 건축을 저지하기 위해, 이미 각국 정부에 첩보는 보내뒀네. ”
“처리는 그쪽에 맡기는 겁니까?”
“다른 방법이 있나?”
그건 김준성의 말대로였다.
외국 땅에 세워진 사교의 탑을 상대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당연히 그 땅의 주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할 것 같아 자네를 부른 거야. 그게 화신인지, 신의 껍데기만 쓴 것인지는 몰라도 이를 치워버리면 사교에는 타격이 있을 테니까.”
“……”
“하지만 마침 놈이 위험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괜찮겠나?”
마지막으로 사교의 가짜 신이 목격된 것은 어느 마역의 입구였다.
외부에서 안쪽을 관측할 수 없는 그곳은, 놈들이 일을 꾸미기에는 딱 좋은 장소다.
운이 좋다면 그곳이 사교의 중요 거점일 수도 있었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잘 만들어둔 함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방치할 수도 없는 일.
때마침 퀘스트 버튼도 깜빡이고 있었다.
새로운 메인 퀘스트가 갱신되었다는 말이었다.
“물론입니다.”
그래서 나는 김준성의 물음에 그렇게 답했다.
그러자 그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감이 있어서 좋군. 하지만 단독으로 행동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마지막이요?”
“이번 일로 사교의 존재가 너무 많이 알려졌어. 그러니 곧 놈들도 제 몸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거고. 그렇게 된다면…오히려 제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하겠지.”
즉 그때가 되면 경찰에서도 기밀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
사교가 본격적으로 설치기 시작할 거라는 말인가.
일거리가 더 늘어날 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나는 자료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그래, 한 번 더 수고해주게.”
곧바로 경찰청장실을 나와 사교의 은거지가 있다는 마역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마역의 입구가 있다는 경기도의 한 폐건물에 도착했다.
겉보기에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의 3층.
거기에 주변에는 온통 산뿐이라, 오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과감한 건지, 안일한 건지.
사교가 숨어들었다는 마역에는 그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
검게 뚫린 구멍 같은 마역의 입구 아래, 무언가 숨어 있었다.
저건… 괴이인가?
레벨은 34로 그리 높지는 않았다.
게다가 내가 입구 근처까지 다가가도 놈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역의 입구에 쥐 죽은 듯 숨어 사는 괴이.
그런 특이한 속성을 가지는 놈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거…”
바로 공충이라는 놈이었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거대한 벌레로.
스스로가 마역의 입구가 되기도 하는 그 괴이는 마역에 들어가려는 사람을 엉뚱한 공간으로 이동시켜버린다고 하던가.
그래서 나는 슬쩍 인검에 손을 갖다 댔다.
입구 아래에 숨은 놈을 단번에 갈라버리기 위해서.
하지만 그 직전, 폐건물 벽에 새겨진 한 문장이 내 이목을 끌었다.
‘우리는 너와 대화를 원한다.’
그건 잘 보니, 지극히 최근에 새겨진 듯했다.
그렇다는 건… 내가 오는 걸 대비하고 있었다는 뜻인가.
나는 폐건물의 아래쪽을 보았다.
그러자 산 아래에서부터 내가 타고 온 도로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어쩐지 경비가 없다 싶었더니, 이런 식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대화라.”
그래서 나는 이를 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저 공충은 사교가 배치한 것이 분명했다.
이를 베어버리는 건 간단하지만, 그래서는 의미가 없다.
아마 눈에 보이는 저 마역은 그냥 괴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인, 평범한 마역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작 사교 놈들은 저 공충이 데려다 주는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즉 사교와 접촉을 위해서는 함정인 걸 알면서도, 스스로 그 함정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었기에, 나는 그대로 입구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익숙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반전하고, 주변의 풍경이 일변한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마역만큼이나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뭐야, 여긴.”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하늘부터가 짙은 보라색의 하늘이다.
거기에 바닥은 검은 유리를 깨뜨려 흩뿌려놓은 듯, 날카롭고 반짝이는 조각들로 가득했다.
그런 바닥 위에는 꽈배기처럼 뒤틀린 형상의 기둥들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여러모로 평범하지는 않은 공간.
또한 공간 자체가 마역도, 그 비슷한 것도 아니었다.
“이제 오셨나요?”
그런 기괴한 공간 속에서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기둥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떤 여성.
나이는 나와 비슷한 정도일까.
거기에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에 얼굴은 무척이나 선한 인상을 가진, 생전 처음 보는 인간.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강진우 님.”
“…넌 뭐냐.”
“저는…당신들이 사교라고 말하는 단체의 사절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제 이름조차 말하지 않은 여성은 자신이 무해하다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입가에 가득 담았다.
그렇게 착한 척하며 말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는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오히려 여자는 당황했다는 듯 반응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시나요?”
“기분 나빠서.”
“그건 이해가 되지 않네요.”
“뭔 소리냐?”
“그야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송구스럽지만, 저희에게 피해를 준 건 강진우 님이니까요. 저희의 동료를 죽이고, 사찰을 파괴하고, 심지어는… 탑까지 무너뜨렸죠.”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역시 탑을 무너뜨렸던 게 결정적이었나.
아무래도 그 이후, 사교는 나를 자신들의 적으로 여기고 철저하게 조사를 해 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를 여기로 유인한 건가.
놈들의 속셈을 짐작한 나는 이내 태연하게 답했다.
“…그래서?”
“물론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어요. 아직은 말이에요.”
“아직은?”
“메시지를 남겼잖아요? 대화를 하자고.”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여자는 정말로 나와 대화를 나눌 셈이었나 보다.
피차간에 그렇게 할 말이 많은 줄은 몰랐는데.
“대화가 하고 싶으면 어디 한번 해 봐.”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러자 여자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은 좀 격을 차리고 하고 싶었는데…어쩔 수 없네요. 사실 저희는 강진우 님의 능력을 인정하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특별히 저희와 함께 하실 기회를 드릴까 해요.”
“…뭐?”
개소리를 들은 것 같아 다시 한 번 생각해봤지만, 역시 개소리였다.
이 와중에 스카우트라니.
어이가 없는 이야기였다.
“웃기라고 한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대로 인검을 뽑았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소용없어요. 이 공간에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 전승은 부정되었을 테니까.”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대부분의 전승은 힘을 잃어, 무력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최하급 신성을 얻으며 올라간 침식 저항 수치.
지금 그 수치의 의미가 로그 창 위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스킬 창 위로 보이는 수많은 전승들이 대부분 회색으로 빛나며 그 힘을 잃었다.
17%라는 수치답게 부정되지 않은 전승은 1/5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남아있다 해도 그 전승의 격이 낮아지며, 출력은 크게 떨어진 상태.
“흠…”
과연, 이게 이런 식으로 적용된다면 침식 저항을 올리기는 해야 하는 모양이다.
이대로는 전승이 남아 있어도 제대로 된 전력으로 써먹을 수 없으니.
물론 그렇다 해도 싸울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의 머리 위에 뜬 레벨은 43.
저 정도라면 당장에라도 저 여자의 목을 치는 건…어렵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저희의 목소리도, 한번은 들어보실 필요는 있지 않으신가요?”
“…쯧.”
이세계에서의 경험 때문일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달라고 하는 여자의 청을 거절하기가 껄끄러웠다.
어쩌면…사교가 나쁘지 않은 놈들일 수도 있다.
그런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혀를 차며, 다시 인검을 집어넣었다.
이야기를 듣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아무리 가해자라도 자기 변론할 기회는 줘봐야겠지.
그렇게 같잖은 합리화를 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럼 묻는 말에 대답해봐. 너희의 목적은 뭐지?”
“세상을 새롭게 바꾸는 거에요.”
“세상을 바꿔?”
그런데 시작부터 헛소리가 작렬했다.
무슨 대기업 광고 문구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더없이 광신도 같은 그 말에, 나는 곧바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