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61
161.
“아시잖아요? 이 세계는 잘못되었어요.”
“하, 잘못이라.”
“그러면… 강진우 님은 지금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말해. 뭐가 그리 불만인데?”
내 말에 여자의 눈빛이 다소 가라앉았다.
비꼬는 듯한 내 말투에 마음이 상하기라도 했나 싶었지만.
“좋아요, 그럼 말씀드리죠.”
기다렸다는 듯 말을 잇는 그녀의 태도에서, 이내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실수였나.
뒤늦게 후회했다.
내가 지금 한 질문은, 집 문을 두드린 종교인에게 신이 누군지를 묻는 것과 다름이 없었던 모양었다.
“저희가 바꿔야 할 부분은 많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퇴마라고 부르는 힘이에요. 영력과 전승, 그리고 퇴마사 개인의 능력까지.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정작 지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이를 독점하고 있죠.”
“그래서? 퇴마의 비닉을 없애는 게 목적이다?”
“생각해보세요. 그 힘을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면…세상은 분명 크게 변할 거에요. 물론 좋은 쪽으로.”
“재미있네. 그 힘을 얻는 조건이 뭔지 까먹은 건 아니지?”
말이 좋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힘이지, 퇴마의 근원은 결국 인간의 죽음이다.
인간을 죽인 살인자들만이 각성할 수 있는 힘.
다른 사람들이 바보라서 그 비닉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아니에요. 그 각성 방식은 너무나도 잔혹하죠. 하지만 그건 지금의 이야기. 그걸 저희가 바꿀 거에요.”
“……”
“못 믿으시겠어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그럴 힘이 있어요. 원하신다면 증명해 보일 수도 있죠.”
그 말을 하는 여자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눈동자에 담긴 것은 절대적인 확신.
그저 광신도의 환상에서 머물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아마도 저 여자는 정말 그 일을 가능케 하는 수단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세상을 바꾼다는 말도 과장은 아니겠지만.
나는 이를, 철저하게 냉소했다.
불가능하냐, 가능하냐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럴 힘이라고?
그 힘의 원천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
“증명? 이계의 신을 통해서?”
이계라는 단어가 나오자 여성의 표정이 변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잔잔하던 얼굴에 당황이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그걸 어떻게…?”
“어떻게까지는 알 필요 없고. 근데 그 새끼들, 너무 믿지는 않는 게 좋아.”
“……”
“다 사기꾼 새끼들이거든.”
나름대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충고였다.
하지만 여자는 안타깝게도 내 충고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상하네요.”
여자는 화를 내지도, 내 말을 무시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눈에는 깊은 의문만이 담겨, 나를 향한다.
“당신의 말대로, 우리는 외신을 이용할 거예요.”
“이용한다고? 이용당하는 게 아니라?”
“냉정히 말한다면 둘 다겠죠. 이건 거래에요. 당신이 잘 아는 전승 속에서도 신과 인간의 거래는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잖아요?”
“……”
“오히려 이상한 건 따로 있죠. 바로 당신의 그 태도 말이에요. 외신의 존재는 절대 그냥 알 수 없었을 텐데. 무엇보다… 어째서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계시는 건가요?”
여자의 계속되는 물음을 그저 무시로 일관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 멋대로 어떤 추측을 떠올렸다.
“혹시 당신도 신의 은총을 받으신 분이신지?”
“은총은 지랄.”
여자의 얼굴에 가래침을 내뱉듯 말했다.
거리만 조금 가까웠으면, 진짜 뱉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뒷조사는 제대로 안 했나 보네. 그런 개소리를 하는 걸 보니.”
“무슨… 말씀이시죠?”
“내가 지역감정이 좀 있거든. 이계 놈들이랑은 대화 안 한다.”
나는 다시 인검을 뽑아들었다.
혹시나 싶어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역시나였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계의 신에게 의지한다는 헛소리.
이 이상은 들어줄 가치가 없었다.
“안타깝군요.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그 나불대는 입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한순간의 검광이 여자의 목을 지나친다.
하지만.
“쯧…”
좋지 않은 손맛에 나는 혀를 찼다.
베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저건,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형상을 모방한 무언가일 뿐.
그리고 여자의 머리는 목의 절단면에서 절반 정도 미끄러져 내려간 괴상한 상태로 나머지 말을 이었다.
“협상이 결렬될 줄은 몰랐어요.”
“오지도 않은 주제에 협상은 무슨.”
“그건 실례지만, 저는 당신과 이 자리에서 싸우고 싶지는 않았어요. 대화를 하고 싶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리 아쉬우시다면… 대신 이걸 남겨 드리죠.”
여자의 형상을 하고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제 모습을 되찾았다.
그건 탑에서 보았던 이형의 괴물이었다.
팔도, 다리도, 얼굴도 어디에 붙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괴마.
이것이 정말 이계와 관련되어 있다면.
여자는 내가 알고 있는 이계만큼이나 질이 나쁜 곳과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불완전하다고 해도 외신이 남긴 파편이랍니다. 모든 전승이 부정된 당신이, 과연 어디까지 버티실 수 있을지-”
그 괴생물에게 유일하게 남긴 입을 통해 여자가 지껄인다.
하지만 잘난 듯 떠들던 그 목소리는 머지않아 스스로 멈췄다.
화륵!
내 검을 휘감은 백색의 화염을 보고서.
“어떻게…?”
여자의 목소리에 경악이 깃들었다.
17%의 힘만 남은 주작의 불꽃은 이전처럼 맹렬하지 못했다.
그저 은은히 빛나는 촛불처럼, 검날 위를 따스하게 흐르고 있을 뿐.
그러나 그 화염 안에 깃든 빛의 힘은 조금의 쇠함도 없었다.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멸하는 그 빛은 전승이 아닌 용사의 힘이었기에.
“외신의 파편이라.”
여자의 말을 곱씹은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겨우 43이라는 레벨을 보니 생각보다 그리 대단치는 않은 놈이었다.
어쩐지 너무 쉽게 모습을 드러냈다 했더니, 신의 화신조차 아닌 그저 그 조각에 불과했나.
뭐, 어쨌건 나에게는 마침 잘 된 일이었다.
저 같잖은 괴물 딱지 같은 게, 신성을 품고 있다는 말이었으니.
“넌 얼마나 올라가려나?”
촤자작!
곧바로 검이 내달렸다.
찰나의 시간 속, 백염을 두른 검이 괴생물의 몸을 몇 번이나 베고 지나간다.
하지만 제 목소리를 여자에게 의탁한 괴물에게서는 비명 한 번이 들리지 않았다.
“당신은… 도대체…?”
내 검에 베여 조각난 괴물의 신체가 무너진다.
그 절단면마다 붙은 백염은 담배를 태우는 불꽃처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놈의 몸을 갉아 먹고 있었다.
그럼에도 놈의 입에서는 그저 의문만이 반복되었다.
“무슨 짓을 한 건가요? 왜 당신에게는 신의 권능이-”
“그 입 좀 닥쳐.”
검이 나불대던 입에 박혔다.
그제야 비로소 조용해진 괴물의 조각조각 난 잔해는 이내 하얀 불꽃에 먹혀 재로 변했다.
그러자, 로그 창이 올라갔다.
신성이 8이나 올랐다.
제대로 된 신도 아니건만, 내가 갖고있는 다른 신들에 비해 부쩍 높은 수치를 준 것이었다.
역시 저 괴물들을 잡는 게 정답이었나.
“흠…”
한편 메인 퀘스트는 그걸로 끝이었다.
저 여자의 헛소리를 들어주는 부분만 제외한다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난 셈.
한편 괴물이 소멸했기 때문일까.
내가 서 있는 이 공간, 즉 외신의 영역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선명하던 풍경이 오래된 사진처럼 빛이 바래고, 흐릿해진다.
그리고 그 사이, 로그는 몇 줄이 더 이어졌다.
“…탑?”
또 다시 등장한 그 단어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물을 새는 없었다.
다음 순간, 붕괴하던 공간은 완전히 무너졌고, 현실이 눈앞에 드러났다.
어느새 나는 폐건물의 3층에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 * *
그로부터 2주일 후.
어느 산속의 동굴에서 나는 오늘도 괴이를 퇴마하고 있었다.
“키이이…”
이번 사건의 목표이자, 이 동굴의 주인이었던 흑구미호.
그놈은 끝까지 독기를 품은 눈을 한 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걸로 오늘 일은 끝인가.
나는 동굴 안을 살펴보았다.
비교적 좁은 입구로 이어지다가 넓은 공동이 나오는 형태의 동굴.
그 안에는 흑구미호의 권속인 여우 요괴들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모두 퇴마된 상태였다.
“끄…끝났, 나요?”
같이 출동한 최은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폰을 살펴보았다.
탑을 정복하라는 메인 퀘스트의 알람이 뜬지 벌써 2주.
하지만 찜찜하게도 그동안 새로운 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었다.
퀘스트에서도 완성된 탑이라고 했으니, 완성되기 전까지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뜻일까.
다소 답답하긴 하지만 탑을 찾겠다고 전 세계를 뒤지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미 발견되었던 외국의 탑에 대해서는 성공적으로 건설을 저지했다는 것.
전승을 부정한다는 마인들을 어떻게 상대하려나 했더니.
그쪽에서는 다소 과격하지만, 확실한 방법을 사용했다.
바로 군대를 이용한 것이었다.
아예 발견된 탑 일대를 폭격하고, 거기서 겨우 살아남은 마인 잔당들만 퇴마사들이 상대했다고 했던가.
탑을 파괴한다는 목적과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과연, 그럴듯한 수단이었다.
아무리 전승을 부정하는 놈들이라도 화약을 부정할 수는 없을 테니.
“경감님…?”
그때 최은영이 물었다.
내가 죽은 구미호 앞에 잠시 가만히 서 있었던 걸 이상하게 여긴 듯 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나가자.”
이에 나는 동굴의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로그 창을 확인해 보니, 흑구미호를 퇴마하며 나타난 새로운 로그가 있었다.
또 다시 레시피를 획득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보니, 이 흑구미호도 비틀린 전승의 하나였던가.
이 사건의 시작은 LB 아카데미 소속의 연구원이었다.
그는 구미호를 사역하는 소환 술사였는데, 사냥꾼과 사냥개에게 약하다는 구미호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사역 주술을 개조해 흑호와 구미호의 전승을 엮었으나, 결국 이를 안정화하는 데에 실패.
그 결과물이 세상으로 뛰쳐나오게 된 것이었다.
결국, 나는 어리석은 연구원의 뒤처리를 하게 된 셈이었지만, 그리 화가 나지는 않았다.
이게 내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구미호를 사역하고 있다는 연구원에게는 어느 정도 동질감이 느껴졌으니.
“켕…”
내 옆에 있는 켕켕이가 동족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건지, 힘없는 울음소리를 냈다.
우리를 흑구미호의 동굴로 안내한 켕켕이의 꼬리는 어느새 5개.
이제 하나만 더 늘어나면 인간화 스킬을 배운다던데.
“켕켕이가 사람이 되는 건가…”
“켕?”
강아지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니, 어떤 인간이 될지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겨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새롭게 얻은 레시피를 살펴보았다.
구미호와 흑호가 관련된 몇 가지 장비들과 소모품들.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아이템이 있었다.
– ‘여우’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이를 섭취하면 경험치가 증가한다.
* 1회 한정 제작 가능
내용을 보니, 켕켕이 전용 경험치 물약 같은 것이었다.
재료는… 구미호 관련에 우렁각시 재료 정도인가.
둘 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서 나는 곧바로 그걸 만들어 보았다.
그러자 환단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육포 같은 물건이 튀어나왔다.
“뭐…알약보다는 좋아할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켕켕이를 불러 여우 환단을 주었다.
그러자 예상대로 켕켕이는 기분 좋게 울며, 그걸 받아먹었다.
잘근잘근.
제법 큰 데도 열심히 뜯어먹는 걸 보니 맛은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켕켕이가 여우 환단을 먹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려니.
“음?”
어느새 켕켕이의 뒤로 새로운 꼬리가 자라나고 있었다.
여섯 번째 꼬리인가.
동시에, 퀘스트 버튼이 깜빡였다.
켕켕이와 관련된 서브 퀘스트가 갱신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구미호에게 꼭 필요한 여우구슬을 얻으라는 것.
그냥 꼬리만 늘어나면 되는 게 아니었나.
“…여우구슬이라.”
구미호의 여우구슬은 보통 두 가지의 경우로 나뉜다.
첫 번째는 구미호의 생명력이나 신통력 등이 구슬로 뭉쳐진 것.
설화에 따라서는 이 여우구슬을 사람이 먹고 병이 낫는 등, 어쨌든 대단한 약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퀘스트에서 말하는 것은 그런 약이 아닌, 구미호의 힘을 상징하는 여우구슬이었다.
구미호가 빨아들인 인간의 정기를 모아놓은 힘의 근원.
어찌 보면 용의 권능을 상징하는 여의주와도 관련이 있다.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용의 여의주를 빼앗으려는 구미호의 설화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그런 여우구슬을 찾아서 켕켕이에게 줘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또 다른 구미호를 잡아서 여우구슬을 빼앗는 것이지만.
이번에 흑구미호를 잡으면서도 그 여우구슬을 얻지는 못했다.
여우구슬이 힘의 근원인 만큼, 죽을 때가 되면 여우구슬을 해방하여 반항하기에 이를 온전히 남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냥 다음 구미호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아니면 설화에서처럼, 또 다른 존재의 구슬을 가져와야 하는 걸까.
“또 다른…?”
이를 잠시 생각하던 나는 금방 어떤 이무기를 떠올렸다.
지금쯤 관리부에서 세상 편하게 햄처럼 누워있을 놈.
이무기이긴 하지만, 여의주가 그리 필요하지는 않아 보이는 놈이었다.
그놈한테서 여의주를 가져오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내일에라도 당장, 관리부에 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