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64
164.
“용을 포기해? 너 용 되는 거 접었어?”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도 볼 수 있습죠.”
“왜?”
그 이유는 알 것 같았지만, 예의상 물어보았다.
그러자 이무기… 아니, 뱀의 눈동자가 묘하게 아련해졌다.
“그건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짧게.”
어쩐지 긴 헛소리가 이어질 것 같아 말을 끊었다.
그러자 뱀은 한 번 헛기침까지 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요약하자면… 현타가 왔습니다.”
“하…!”
그 어이없는 말에 헛웃음을 내뱉자 뱀은 눈알을 굴리며 변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게… 이곳에는 다른 영물도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데 그 많은 영물 중 오로지 저만이 용이 되겠다며 아등바등 수행을 쌓고 있더군요.”
“그야 이무기가 너밖에 없으니까.”
고라니가 용이 되겠다며 수행을 쌓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럼에도 이곳에 있는 영물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저 하루하루에 충실할 뿐인데 그들의 일상은 빛이 나는 것처럼 반짝였죠. 사도님, 제가 거기에서 무엇을 본 지 아십니까?”
“……”
“그게 바로 제가 추구하던 용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은 겁니다. 용이 되는 것은 수행이 아니라, 제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러니 저는 용을 포기한 게 아닙니다. 이미 제 마음이 용이 되었는데, 어찌 더 용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제는 용이 아니라 부처가 될 작정인 건지, 뱀은 그렇게 말했다.
하루하루 먹이를 받아먹는 고라니를 보면서 용의 모습을 봤다고?
도대체 이놈은 용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던 걸까.
“…어쩐지 너무 편하게 있는다 했지.”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사실 이무기가 현타가 와서 뱀이 되든 말든, 나와는 크게 상관없었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되면 내 여의주가 사라진다는 것.
“이러면 곤란한데.”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빛을 잃은, 여의주였던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시선을 눈치챈 뱀이 슬쩍 입을 열었다.
“여의주가 필요하신 거라면… 방법을 알려드릴 수는 있습니다요.”
“어떻게?”
“전에 한번 보여 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같은 이무기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당시에 그런 재주를 부리기는 했었다.
이무기에게는 한반도에 있는 모든 괴이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신통력이 있었으니.
다만,
“지금은 그거 못 하는 거 아니냐?”
이 뱀은 이제 이무기도 아니었다.
이무기였던 뱀일 뿐.
그러나 놈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분명 뱀의 미소임에도, 음흉하다기보다는 멍청해 보이는 미소였다.
“물론 못합니다. 하지만 이무기들의 위치는 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용케 그걸 기억하네.”
“전부 타락한 이무기들입니다. 언젠가 제가 용이 되면, 그들을 구원하겠다 마음먹고 있었지요.”
구원은 무슨.
딱 지금처럼, 기회만 되면 동포를 팔아넘길 작정이었으리라.
“그런데 이무기들은 안 움직이냐? 몇 달 전 위치일 거 아니야.”
“그건 괜찮습니다. 못 움직이는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오래전에 봉인을 당하는 바람에.”
“…봉인?”
내가 되묻자 뱀은 그에 대한 설명을 풀어놓았다.
몇백 년 전, 조선 시대에 봉인된 이무기가 하나 있다는 모양이었다.
“조용히 자는 놈까지 건드려야 하나.”
“그것도 다 지금뿐입니다. 봉인이 오래되어, 아마 가만히 놔둬도 놈은 머지않아 깨어날 겁니다. 그러니 먼저 손을 써두시는 게, 사도님께도 좋지 않겠습니까?”
뱀은 넉살 좋게 그리 말했다.
그저 아무렇게나 붙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퇴마했던 두억시니는 오래된 봉인이 파괴되어 뛰쳐나온 놈이 아니었던가.
스스로 일을 늘리는 기분이지만, 놈이 여의주를 갖고 있다면 그나마 가장 좋은 선택지이긴 했다.
“어떤 놈인데?”
“강철이라는 이무기입니다.”
그 이름은 나도 알고 있었다.
강철은 이무기 중에서도 사악한 면모가 두드러지는 괴이.
날씨를 조종하여 우박을 뿌리고, 그저 지나간 것만으로 산을 말려버린다는 이무기로.
이무기가 가진 괴이의 이름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것이었다.
“강철이라…”
“한데, 놈은 굉장한 독룡입니다. 봉인될 때만 해도 조선 팔도에 놈을 모르는 산짐승들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독룡? 화룡이 아니라?”
“예. 그놈이 자고 일어난 자리에는 백 년 동안 잡초 하나 자라지 않을 정도로, 강한 맹독을 품은 이무기입죠. 물론 청룡의 사도께는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겠습니다만…”
산을 말려버린다길래 열기를 다루는 줄 알았는데, 열이 아닌 독이었나.
그런 거라면… 사실 화룡보다는 다소 까다로웠다.
독성 자체는 나에게 통하지 않을 테지만, 그런 놈들은 대부분 바위도 녹이는 산성을 띄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그렇단 말이지.”
“강철의 여의주라면 신통력이 정순하지는 않아도, 그 힘이 강대하여 여우구슬로 쓰기에는 딱 좋을 겁니다요. ”
그건 뱀의 말대로였다.
강철은 사악한 이무기 중에서는 손으로 꼽힐 정도의 강함을 가진 괴이.
그러니 그 여의주라면 오히려 평범한 구미호가 사용하기에는 과할 정도의 물건이다.
또 괴이로 변하며 그 안에 담긴 힘이 탁해졌겠지만, 내 빛의 속성 스킬은 이를 정화할 수도 있고.
설령 정화하지 않아도 그대로 쓸 수도 있었다.
사실 구미호 역시, 괴이의 한 종류였으니까.
그 정도면… 켕켕이를 주기에 나쁘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판단한 나는 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딘데?”
내 재촉에 뱀은 나에게 어느 해안 동굴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 * *
며칠 후, 토요일.
기껏 찾아온 주말이었지만 나는 집에서 편히 쉬는 대신, 어느 해안 절벽에 와 있었다.
“밖에서는 안 보인다더니…”
하지만 겉으로는 강철이 봉인되어 있다는 동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동굴의 입구가 바다 밑에 있어, 그것이 절벽 안쪽으로 이어지는 형태의 동굴이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의 왕복은 사실상 전혀 없는 상태.
그야말로 무언가를 봉인해두기에는 딱 좋은 곳이었지만, 찾아가는 입장에서는 번거롭기 그지없는 위치였다.
이 앞까지 오려면 차가 아니라, 보트까지 동원해야 했으니.
“후…”
보트에 걸터앉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가 전승 덕분에 수영할 필요는 없다는 것뿐.
보는 눈이 있을지 몰라 보트를 끌고 오긴 했지만, 여기부터는 할 수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미리 나는 주변에 보는 눈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
앞이 훤히 보일 정도로 깨끗한 바다는 아니기에, 나는 바닷속을 지상처럼 걸어가 해수면 밑의 절벽을 더듬었다.
그러자 과연, 딱 알려준 곳 근처에 뻥 뚫린 동굴 하나가 있었다.
나는 지체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났고, 이를 올라가자 동굴은 이내 물 밖으로 이어졌다.
그런 숨겨진 동굴의 끝.
그곳에는 무척 오래된 작은 석관이 있었다.
“저게… 봉인인가.”
뱀이 했던 말처럼 석관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여기저기 금이 가 있는 것은 물론.
석관을 두르고 있던 금줄과 부적들은 이미 다 썩어 떨어져 바닥에 잔해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몇 년 지나지 않아 석관 자체가 부서졌으리라.
역시 오는 것 자체는 좋은 판단이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 석관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인 여의주가 보였다.
하지만 저 여의주는 그대로 쓸 수 없었다.
지금 저 여의주 안에 강철이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즉 주인이 따로 있는 여의주라는 것.
이를 얻기 위해서는, 그 주인을 불러내 처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방법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걸 바다에 넣으면 된다, 이거지?”
* * *
한때 강철은 가장 촉망받던 이무기 중 하나였다.
그의 고향이었던 남해에서는 첫 번째.
그리고 한반도의 바다 전체에서도 두 번째로 신통력이 대단했던 이무기.
그러나 그런 이무기가 수행을 쌓은 지 490년째 되던 날, 그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이무기에게는 그 출신에 따라 수행의 규칙이 있다.
예를 들면 서해의 이무기는 승천할 때, 사람에게 반드시 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용이라 칭하면 용이 되고, 뱀이라 칭하면 영원히 이무기로 살아간다.
또 동해의 이무기는 선한 인간 100명을 구하고, 악한 인간 100명을 잡아먹어야 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철이 속한 남해의 이무기는 500년의 수행 중,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가 있었다.
하지만.
깊은 산 속에서 수행하던 그는 그 완성을 딱 10년 앞두고 어느 사냥꾼에게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한순간에 490년의 수행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무기는 그 억울함을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그 후, 이무기는 더 이상 이무기가 아닌 강철이 되었고.
산을 말리고 강을 불태우며 자신의 억울함을 온 세상에 토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어느 이름도 모를 퇴마사에 봉인 당해 자신의 여의주에 갇히게 되었다.
“크아아아아!”
그런 여의주 속에서, 강철은 수백년째 답답함에 울부짖었다.
“억울하다!”
벌써 몇만 번이나 말했을지 모르는 그 말을 강철은 다시 한 번 내뱉었다.
모든 것이 억울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원통했다.
그래서 그는 강철이었고, 모든 것을 녹여 없애는 독룡이었다.
“그놈! 결코 용서치 않겠다!”
그건 자신의 수행을 방해했던 사냥꾼을 향한 말이었다.
그 얼굴은 차마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수많은, 똑같이 생긴 인간들을 잡아먹었지만 그 한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놈! 반드시 찢어 죽이겠다!”
이번에는 자신을 이 동굴 속에 가둔 퇴마사를 향한 것이었다.
그건 사냥꾼과 똑같이 생긴 놈이었다.
긴 머리에 활을 들고 있던 그 인간은, 자신의 남편을 죽인 원수라며 강철의 머리에 화살을 박아 넣었다.
그 순간을 떠올린 강철은 분노에 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화를 내도 주변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마치 아무도 없는 동굴 속에 혼자 있는 것처럼.
“크아아아아아!”
그 고요함조차 너무 억울해서, 강철은 더욱더 날뛰었다.
분노에 미친 짐승처럼, 지난 수백 년 동안 그랬듯이.
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강철조차 최근 체감한 것이 있었다.
자신을 묶어두던 이 동굴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강철은 희열에 있지도 않은 몸이 떨리는 것만 같았다.
“반드시 복수하리라!”
드디어 자신을 강철로 만든 인간을 죽일 수 있었다.
드디어 자신을 이곳에 가둔 인간을 찢어발길 수 있었다.
그래서 강철은 더욱 분노했다.
결코. 이 원한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강철이 그렇게 광분하던 어느 날.
해방의 때는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
자신을 가두고 있던 동굴의 천장이 갑자기 열렸다.
오랜 세월 속에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직접 그 손으로 이 저주받은 석관을 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천장을 연 이는 망설임 없이 강철이 갇힌 여의주를 제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제야 강철은 석관을 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인간이었다.
사냥꾼과 자신을 봉인한 퇴마사와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인간과 똑같이 생긴 인간.
“나를 꺼내라!”
이에 강철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여의주 밖의 저 인간에게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바다로 보내라!”
강철은 찢어질 듯한 괴성으로 소리쳤다.
그 원념이 통한 것일까.
“하하하하하! 그래! 그거다!”
그 인간은 정말로 여의주를 바다를 향해 들고 가기 시작했다.
강철은 크게 웃었다.
지난 수백 년 간 분노했던 만큼, 이 순간이 너무나도 짜릿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자신이 바다로 나가게 된다면, 누구보다 먼저 저 인간을 잡아 먹어주리라.
“드디어! 드디어…!”
그리고 바다가 보였다.
거리로 따지면 겨우 몇 발자국 떨어진, 동굴 밖으로 이어지는 작은 호수 같은 바다.
하지만 그 바다는 지난 수백 년간 강철이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여의주를 들고 그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어리석게도, 정말 강철을 다시 이 바다에 풀어놓았다.
“크하하하하하!”
여의주가 바닷물에 닿은 그 순간.
강철의 웃음소리는 더 이상 여의주 속에서 울리지 않았다.
부글부글!
해안 절벽의 앞바다, 그 바닥이 사납게 들끓었다.
그 아래에서 눈을 뜬 것은 길이만 수십 미터에 이르는 보라색의 독룡.
마침내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강철이 바다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하하하…”
발작할 것 같이 웃던 강철의 웃음은 곧 실없이 끝났다.
그리고 바짝 얼어붙은 눈동자가 주변을 살폈다.
어느새 강철의 얼굴에 더 이상 웃음기는 없었다.
그 대신 표정을 점령한 것은 당혹감.
마침내 긴 속박에서 자유로워졌건만.
그 해방감은 바닷물에 쓸려 내려간 지 오래였다.
그 이유는,
“어, 째서…”
바로 근처에서 용들의 신, 청룡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영락하고 타락했어도 강철은 이무기였다.
그리고 이무기에게 청룡은 가장 위대한 용이자, 자신들의 이상, 그리고 절대적인 존재 그 자체.
설령 용이 되지 않아 미쳐버린 강철일지라도, 그 위세 앞에서는 이성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그 청룡의 실체를 확인한 강철은 숨이 막혔다.
“컥…”
겨우 되찾은 몸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그건 인간이었다.
자신의 여의주를 들어 올렸던, 그리고 자신을 해방했던 어리석은 인간.
그런데 그 안에 청룡이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의도는 읽어낼 수 있었다.
청룡이 인간을 통해 자신을 벌하러 온 것이었다.
용이 되지 못하고, 결국 강철로 영락해 버린 자신을 처단하러 온 것이었다.
“너 뭐하냐?”
바짝 굳은 강철에게 인간이 물었다.
하지만 강철은 거기에 대답할 생각도 못 했다.
다만 어떻게든 이 처벌에 반항하고 싶었다.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하지 못했다.
그 어떤 이무기가 가장 위대한 용 앞에서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다는 건가.
그게 가능한 이무기는 더 이상 이무기도 아니리라.
“…이상한 새끼네.”
하지만 청룡을 품은 인간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검은 바닷속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강철을 스쳤다.
그렇게 수백 년 만에 해방된 강철의 목은, 그것만으로 비스듬히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