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7
17.
17.
얼마 안 있어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문에 적힌 숫자는 분명 1631호.
10층에는 없었던 서른한 번째 방이었다.
“1631호, 있어.”
“그래, 있네.”
모니카는 날카로운 전의를 담아, 그리고 나는 한숨처럼 말했다.
“31호···원래 설계가 이런 건가?”
호텔의 객실은 스위트룸이니 뭐니 해서 방마다 크기가 다르다.
그렇기에 각 층의 방 개수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
그래서 16층만 객실 하나를 더 둘 여유가 생긴 걸 수도 있었지만.
“그건, 아니야.”
내 희망을 모니카는 단숨에 잘라냈다.
그래,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 눈에는 1631호의 문, 아니.
그 문이 박혀 있는 공간 자체가 안개가 새어 나오는 것처럼 이질적으로 보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다른 호텔의 문과 똑같이 보인다.
이건 도대체 뭘까.
공간 자체가 이상을 품고 있다니.
처음 겪는 현상이었다.
그래서 더욱 더 불길했다.
잡몹 하나 없는 필드.
그리고 그런 필드에 떡 하니 선 특별한 문.
게임으로 말하자면···그야말로 보스룸, 그 자체가 아닌가.
“정말 들어가려고?”
“그럼?”
“아니, 뭐랄까. 엄청 위험해 보이잖냐.”
게임에서도 보스룸 앞에서는 자신의 장비와 포션을 정비하는 법.
하지만 모니카는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냐는 듯, 나에게 냉소를 지었다.
“퇴마는 원래, 위험해.”
“그건 그런데.”
“그래서, 겁나?”
“하, 겁나냐고?”
모니카는 건방지게도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겁이라니.
터무니 없는 소리였다.
천하의 상남자인 날 뭘로 보고.
“조금? 그러니까 니가 앞장 서.”
“···따라와.”
한숨을 내쉬며 모니카가 문을 열었다.
나를 보는 시선이 조금 더 차가워진 기분이었다.
***
“뭐라고···?”
“직접 확인해보고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A반의 뒤를 쫓던 조교의 말에 이수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A반의 인원들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그것도 폐쇄된 호텔의 내부에서.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엔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연수원은 정기적으로 이 테마파크에 존재하는 마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교육생들의 실습 공간으로 사용되는 곳이기에, 적당한 수준의 마를 남겨두고.
혹시라도 업을 쌓아 강대해진 령을 퇴마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연수원이 파악한 드시온 호텔에 있는 마는 지하의 황령이 전부.
하지만 그 황령조차 저 둘은 훌륭하게 퇴마하지 않았던가.
“······”
이수연은 생각을 정리했다.
로비를 제외한 지상층에서는 마가 발견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지하와는 달리, 지상에는 CCTV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만큼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 여겼고.
실제로 지난 몇 년 간의 실습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확히 어디서 사라졌지?”
“16층의 복도 끝입니다.”
이수연은 그들이 사라진 장소도 의문이었다.
20층 짜리 건물의 16층.
마를 찾으러 가는 것이었다면, 20층부터 수색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왜 이도저도 아닌 층으로 간 것일까.
마치 그곳에 뭐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이수연은 호텔의 지하 카지노를 비추고 있던 CCTV 영상 기록을 확인했다.
영상을 뒤로 돌려, 아직 모니카와 강진우가 그곳에 있던 시간대를.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했다.
모니카가 황령을 쓰러뜨린 후.
강진우가 카지노 내부에서 무언가를 줍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줍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교육생들의 위치와 안전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설치된 터라 그리 화질이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강진우와 모니카는 저기서 발견한 물건 때문에 16층의 끝으로 향했다는 건가?
그리고 거기서 사라졌고?
의문이 깊어졌다.
그러나 곧 이수연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딱 지금과 같은 현상을 재현할 수 있는 ‘마’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긍정적인 가능성은 아니었다.
그 순간.
“경감님!”
무전기에서 조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해 보이는 그 목소리는 곧 이수연이 떠올렸던 가능성을, 육성으로 내뱉었다.
“단절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단절.
그것은 평소에는 진입은 물론, 관측조차 할 수 없는 공간을 말한다.
하지만 특정 조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관측자가 근처에 있을 경우.
단절은 비로소 존재하기를 시작하며, 마로써의 측면을 드러낸다.
흔한 괴담 중, 밤에만 보이는 교실이 있다던가 하는 것이 그 예.
공간 자체를 은폐하고 숨기는, 폐쇄성이 짙은 마가 보유한 특성 중 하나였다.
그러나.
흔한 괴담 속 이야기와는 달리, 그 특성을 소유한 마는 결코 평범한 개체가 아니었다.
아무리 마라고 해도 공간 자체를 장악하고 존재를 지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령으로 치면 최소 청령 이상.
혹은 괴이나 괴인이 숨어있을 수도 있는 공간, 그것이 단절이었다.
“내가 가겠다.”
그래서 이수연은 직접 움직였다.
어느 쪽이든 교육생의 수준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이었다.
***
“별 거 없는데?”
방 안을 둘러본 내가 말했다.
문 밖에서는 당장 뭐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되어 있더니, 정작 안에는 낡아빠진 가구들 뿐이었다.
내 눈에 레벨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혼령 감지 스킬도 반응이 없다.
거기에 방의 구조까지 다른 방과 똑같았으니,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모니카 역시 수상쩍은 태도로 방 여기저기를 뒤졌다.
그녀는 부서진 장롱 문을 열며 표정을 찌푸렸다.
“이상해.”
모니카는 찝찝하다는 얼굴로 가구들을 하나 하나 건드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먼지만 날 뿐.
령은 커녕 그 비슷한 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시 들어온 곳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음?”
내가 들어온 문이 닫혀 있었다.
내가 문을 닫고 들어왔던가?
아니, 절대 아니다.
안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탈출구를 스스로 막아두는 멍청한 짓을, 나는 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어떤 불길한 예상이 들어, 퀘스트 창을 열었다.
그러자, 그 예상대로의 내용이 거기에 적혀 있었다.
– 난이도 지정이 완료되었습니다!
– 보상이 크게 증가합니다!
“씨발···”
김다영을 이기는 퀘스트가 D급이었는데.
난데 없이 B급 퀘스트라니.
역시 이곳은 보스룸이었나보다.
“왜 그래?”
“어? 그게, 문이 알아서 닫혔어.”
“착각, 아니야?”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모니카의 시선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녀는 창을 고쳐잡고 문으로 다가갔다.
“문은, 어때?”
마의 힘이 느껴지는가.
그걸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문 자체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즉, 단순한 오브젝트.
“아무 것도 없어.”
“그럼 열어볼게.”
날카로운 기세를 유지한 채, 모니카는 문을 열어젖혔다.
그 너머에 있던 것은.
“···방?”
또 다른 방이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문의 위치는 분명 우리가 들어온 문이었다.
그런데 방과 방이 연결되어 있다는 건, 공간이 왜곡되어 있다는 말.
령이 이런 것도 할 줄 알았나?
“이건 또 뭐냐?”
“···나도 몰라.”
내 질문에 모니카는 자존심 상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너 퇴마 경험 있는 거 아니었어?”
“1년···정도. 이런 건, 본 적 없어.”
하기야, 모니카는 기껏해야 사회 초년생 정도의 나이다.
그런 그녀가 퇴마사를 오래해 봐야 얼마나 해봤겠는가.
그래서 나는 모니카보다는 내 경험에 의지하기로 했다.
“그럼 일단 가보자.”
방문만 열고 멈춰 있던 모니카에게 말했다.
그러나 정작 이번에는 그녀가 전진을 망설이고 있었다.
“기다려.”
모니카는 입을 몇 번 뻥긋거리다가, 안 되겠는지 태블릿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번역기를 이용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여주었다.
“이 앞에 있는 공간 자체가 마의 내부일 수도 있다는 거야?”
모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 이 앞으로 가는 것은 괴물의 체내로 들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런 걸 걱정하려면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했어야지.
“그래도 가야지. 이런 건 말이야. 결국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못 나오는 구조야.”
“그걸, 어떻게 알아?”
“난 본 적이 있거든.”
“정말···?”
모니카가 의아한 시선을 나에게 향했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악마의 환상 궁전, 엘프의 세계수 미궁, 대마법사의 시험 등.
왜곡된 공간과 시간을 활용해서 적들을 묶어놓는 수법은 판타지 세계에서는 흔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것들을 해결했던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그 미로 속에 숨은 술자를 때려잡는 것.
“우리를 여기에 가둔 마를 찾아서 퇴마하면 돼. 그리고 놈은 이 앞에 있겠지.”
“으음···”
내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모니카는 의심을 거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침음을 흘렸다.
“알겠어.”
이내 그녀는 승낙했고 우리는 문을 나와 새로운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있는 방은 원래 방과 거의 동일했다.
딱 하나.
문이 없어야 할 벽에 또 다른 문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고 그 문을 여니, 또 다른 방이 나온다.
“계속 가. 망설이지 말고.”
어차피 앞으로 통하는 문은 하나였다.
일방통행이나 다름 없는 길.
그렇게 우리가 10개가 넘는 방을 지나고 나니 비로소 풍경이 바뀌었다.
이번에 나온 것은 호텔의 복도.
우리가 방에 들어오기 전에 서 있던 그곳이었다.
“밖으로, 나온 거야?”
“아니, 문에 붙은 숫자를 봐.”
그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었다.
복도를 중심으로 늘어선 호텔의 객실에는 전부 1631호라는 숫자만이 박혀 있었다.
이 역시 왜곡된 공간 중 하나라는 뜻.
그리고 변화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오랜 만에 내 혼령 감지 스킬이 반응하고 있었다.
10여 미터 앞의 좁은 복도.
거기에 15레벨 전후의 령이 셋이나 몰려 있었다.
“앞에 령이 있어. 셋이야.”
“확인, 했어.”
모니카는 바로 앞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앞을 손으로 가로막았다.
모니카의 불만스러운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왜?”
“여긴 놈들의 공간이야. 섣불리 움직이면 안 돼.”
미궁이라는 곳은 항상 그랬다.
눈앞에 보물이 있다는 것은 곧 함정이 있다는 뜻이었고.
적이 등 뒤를 노출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 내 뒤를 노린다는 뜻이었다.
“그럼···?”
“천천히 전진하자. 그럼 알아서 올 거야.”
저기 있는 건 15 레벨의 백령.
백령은 지성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마이기에, 그 행동 패턴은 지극히 단순했다.
그저 인간을 보면 공격해 올 뿐.
저급 스켈레톤과 다를 게 없었다.
“기익!”
거리가 5미터 내외로 줄어들자, 예상대로 놈들이 반응했다.
“끼이이이이!”
귀곡과 함께, 두 팔을 낫과 창처럼 변화시킨 백령 셋이 쏜살 같이 날아왔다.
하지만 이곳은 좁은 복도.
거기다 저들보다 확연한 강자라고 할 수 있는 모니카의 무기는 창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리한 전장.
그래서 나는 스패너를 들고 모니카의 옆에 딱 달라 붙었다.
이 유리한 전황을, 미궁의 주인이 가만히 놔둘 리 없었으니까.
“죽어어어!”
그리고 백령이 모니카와 맞붙는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양옆의 객실 문이 동시에 열렸다.
거기서 나온 것은 또 다른 백령 둘.
일순 모니카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었지만.
“앞만 신경 써!”
나는 백령이 그녀에게 당도하기 전에, 스패너로 한 놈의 허리를 후려쳤다.
“긱!”
짧은 귀곡과 함께 백령 하나가 소멸하고, 나는 곧바로 반대편을 노렸다.
어느새 놈의 손이 모니카에게 다가서고 있었지만.
“-!”
놈보다 내가 더 빨랐다.
멍청하게 노출된 머리를 스패너로 깨부쉈다.
몇 번이나 느끼는 거지만, 이렇다 할 타격감은 거의 없었다.
얇은 막을 때려 부수는 느낌으로.
몬스터를 때릴 때와 비교하면 공기에 몽둥이질을 하는 수준.
하지만 데미지는 확실히 받은 건지, 두 백령은 양쪽에서 소멸했다.
“후우···”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백령이라 우습게 봤건만, 의외로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선을 앞으로 돌려봤더니.
“······”
모니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백령 셋은 꼬치로 만들어 소멸시킨 상태였다.
“왜?”
“문이 열리는 거. 알고 있었어?”
모니카가 양쪽의 열린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열리기 직전에. 내 능력이 뭔지 알잖아.”
모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스킬이 온전히 발휘되었다면 한참 전에 알았어야 했다.
혼령 감지는 20미터의 범위를 갖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곳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한, 그 어떤 혼령도 감지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이곳이 왜곡된 공간이기 때문일까.
“······”
한편 모니카는 내 눈치를 보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러다가 겨우 그 입이 열렸다.
“···고마워.”
“별 말씀을.”
모니카는 어째서인지 힘들게 말했지만, 나는 가볍게 답했다.
“그럼 계속 가자고.”
아직 복도는 이상할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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