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70
170.
“…위험해.”
모니카가 나에게 접근하며 말했다.
어느새 잔뜩 늘어난 검은 형체, 악마들은 살로메의 옆에서 움직여 우리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흔히 알려진 염소 머리의 악마부터, 아예 인간의 형상이 아닌 연기 같은 놈까지.
악마들의 형체는 그들의 전승대로 제각각 달랐다.
게다가 그 레벨은 70 전후.
결코 낮다고는 할 수 없는 레벨에 나도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본체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나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살로메의 악마들은 어디까지나 식신, 즉 소환수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미카엘이 성물을 통해 대천사의 권능만을 구현하듯.
살로메 역시 대탕녀의 전승과 금서를 통해 72 악마의 권능을 그 모습과 함께 재현한 것이라는 말.
그야 아무리 금서라도, 인간의 상위 존재로 평가되는 악마를 수십 마리나 현현시킬 수는 없었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좋진 않네.”
그렇다고 해도, 냉정히 말해 다행도 뭣도 아니었다.
결국 살로메가 구현한 권능만 72개.
그게 다 신기였다면, 온몸을 두르고 있는 무장에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였다.
게다가 저 정도로 많은 악마를 보유하는 것은 단순히 공격 수단이 많다는 뜻만이 아니다.
하나의 개념을 지배하는 악마의 권능.
그렇기에 사실상 대부분의 공격은 무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저 72 마리의 악마 중 누군가는 불을, 혹은 얼음을, 그것도 아니라면 번개를 지배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마치 나처럼 말이다.
“그럼…시작해볼까?”
살로메의 말에 비로소 악마들이 움직였다.
그 손에 든 것은 검과 창과 활과, 그 외의 온갖 무기들.
그것들이 시야를 뒤덮듯 쏟아져 내렸다.
채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냉병기들이 튕겨져나갔다.
그 뒤를 잇는 것은 화살과 총탄, 그리고 권능이 일으킨 검은 화염과 전격.
하지만 다시 검을 휘두를 새는 없었다.
화살과 총탄은 보이지 않는 벽, 예리코의 방벽에 가로막혔고.
화염과 전격은 주작과 청룡의 전승으로 무효화했다.
그럼에도 끝이 아니었다.
악마 사이에서 검광이 번쩍였다.
유난히 날카롭게 빛나는 그 검을 쳐내자, 겨우 그 주인의 이름이 보였다.
바알.
유명한 악마이자, 검술의 악마, 그리고 힘과 지혜가 뛰어나고 마술까지 쓴다는 어쨌든 대단하다는 대악마였다.
그리고 그 명성대로 놈의 검은 다른 악마들과는 유별났다.
다른 어설픈 참격들을 비집고 들어오는, 혜성과 같은 일격.
물론 그렇다 해도 상대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만약 1대 1이었다면 30초 안에 결판을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다만…지금은 그런 상황과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귀찮네, 진짜!”
그와 함께 닥쳐오는 두 자리 수에 이르는 냉병기와 그 두 배에 달하는 온갖 투사체를 막아내며, 나는 바알의 검을 상대해야 했다.
미처 막아내지 못한 화살이 귓등을 스치고, 피했다고 생각한 창날이 소매를 찢었다.
내가 흩뿌린 화염을 뚫고 검은 돌덩이가 날아왔고, 전격을 무시하는 가시나무가 해일처럼 덮쳐왔다.
이에 나 역시 온갖 전승을 퍼부으며 대응했지만, 그래도 모자랐다.
1초 1초가 아슬아슬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위기감.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성과가 있었다.
새대가리를 한 악마와 해골을 뒤집어쓴 놈이 성화에 휩쓸렸다.
새총 같은 걸 쏘던 노인과 말을 타고 화살을 쏘던 여성형 악마가 얼음 꼬챙이에 꿰여 쓰러졌다.
그런데.
“쯧…!”
그들이 쓰러진 빈 공간을 통해 분명히 보였다.
악마들로 겹겹이 쌓인 벽 뒤에 있는 살로메가, 그 악마들을 다시 소환하고 있었다.
어쩐지 너무 막무가내로 몰아붙이고 있다 생각했더니.
이대로는 끝이 안 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나는 말 없이 모니카를 돌아보았다.
“큭…!”
이 와중에도 모니카는 훌륭히 악마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비록 살로메는 나를 훨씬 더 경계하는 건지, 그녀에게 붙은 악마는 나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수십에 이르는 악마를 상대로 모니카는 물러섬이 없었다.
역시…교회의 수녀인가.
악마는 말할 것도 없이 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적이다.
그들의 대적자인 이단조차 교회의 교리 안에서는 악마에 현혹된 불쌍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의 성물 중 대부분은 대 악마 결전 병기의 특성을 가졌다.
그 성물의 주인이었던 선지자들이 싸워온 모든 적은, 결국 사탄과 악마의 하수인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그리고 그것은 모세의 지팡이 역시 마찬가지다.
모세의 지팡이는 10 가지 재앙을 재현한다.
하지만 그 형태는 파리, 메뚜기, 병, 어둠, 죽음 등, 신의 신성한 심판이 아닌 마치 악마가 부른 천벌과 같다.
이는 악마가 휘두르는 권능조차 신의 통제하에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그 상징성을 가진 모세의 지팡이는 악마가 가진 권능 자체를 부정한다.
그래서 모니카의 저 성물이라면, 분명 이 사태를 돌파할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그 명제에는, 한 가지의 조건이 더 필요했지만.
“놀라워. 너희 둘 다, 여기까지 버틸 줄은 몰랐는데.”
바로 저 여자, 살로메가 없어야 했다.
교회의 가장 큰 적인 악마는, 역설적이게도 교회에게 가장 약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살로메에게는 당연히 그 대책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살로메가 가진 세 가지 전승.
이세벨, 살로메, 그리고 신도와 순교자의 피를 담아 마신다는 금잔을 가진 대탕녀.
모두 하나 같이 교회를 저격하고 있는 전승이었으니까.
그러니 설령 이 악마들을 뚫고 살로메에게 갈 수 있다 해도, 그 앞에서 모세의 지팡이는 힘을 잃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모니카!”
내 외침에 모니카가 힘겹게 나를 한 번 바라보았다.
“내가 말하면 이것들, 움직이지 못하게 해. 최대한 길게.”
모니카의 눈동자에 순간 당황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했고, 그것이 가진 능력을 알고 있던 나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모니카라면 한순간이나마 이 모든 악마의 발을 묶을 수 있다.
그 정도의 권능이 저 성물에는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채 몇 초를 멈추는 데에도 내 모든 영력을 투자해야 할 정도로 그 효율은 좋지 않았다.
그러니 그걸 내가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여기서는 모니카를 믿는 수밖에는 없었다.
“우오오오오-”
나는 검에 령을 휘감았다.
보유하고 있던 죽음을 전부 투자했다.
수십의 청령이 귀곡을 흘리며 검날 위에서 울부짖었다.
“지금!”
내 신호에 맞춰 모니카의 창이 땅을 내리찍는다.
그러자 사막의 모래바닥에 지진이 난 것처럼 균열이 생겼고.
그곳에서는 영력을 뜯어먹는, 수많은 메뚜기 떼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메뚜기에 휩싸인 악마들은 일시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만약 악마의 본체가 강림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들은 전부 소환수였기에, 에너지 그 자체를 먹어치우는 메뚜기의 재앙 앞에서는 잠시나마 멈춰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래 봐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건 겨우 몇 초 정도.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아수라의 전승을 사용해 검에 실린 모든 령을 폭탄으로 바꿨고.
쿠과과과과과!
그것은 언젠가 보았던 병기 클레이모어처럼, 나와 살로메 사이를 채우고 있던 악마들을 부채꼴로 쓸어버렸다.
“하, 하하하하! 이렇게까지 해?”
그걸 보며 살로메가 웃었다.
아직 그녀의 얼굴에는 일말의 위기감도 없다.
당연했다.
내가 만든 폭발은 악마들에게 막혀 그녀에게까지는 닿지 않았고.
그 대신 터져나간 악마들은 그저 소환수에 불과했으니.
그러나 분명 그 덕분에 길은 만들어졌다.
나는 그 위를 내달렸다.
방어조차 생각지 않은 일방적인 질주.
아직 살아있는 악마는 많았다.
비율로 따지면, 지금 터져나간 것은 1/3에 불과하다.
그러나 남아있는 놈들은 아직 메뚜기의 재앙에 묶여 나를 방해할 수 없었다.
이에 살로메의 미소가 진해졌다.
그녀의 시선이 내가 든 검에 꽂혔다.
벌써부터 살로메의 금잔은 기울어져, 그 검은 액체는 이미 새로운 악마의 형상을 빚고 있었다.
시간은 촉박했다.
모니카도 나도, 모든 걸 때려 부어 겨우 만들어낸 기회였지만 그것이 허락하는 것은 기껏해야 딱 한 번의 검격.
그렇기에 나는 인검을 바로 세워, 그녀의 심장을 겨눴고.
“-!”
챙!
다음 순간, 날카로운 파열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살로메의 심장을 겨누고 있던 내 검이 그녀가 든 처형자의 낫칼에 튕겨 나가는 소리였다.
이에 그녀의 얼굴에 승리의 예감이 깃든다.
이미 악마는 완성되어 있었다.
바알의 검이 나와 살로메 사이를 파고들며 제 주인을 보호하려 했다.
이래서야 나에게 다음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반대쪽 손을 바알의 검이 닿지 않은, 텅 빈 공간으로 내뻗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살로메가 기울이고 있던 금잔.
내가 이를 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뭐…?”
바알은 물론 살로메조차 이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던 그것을 허무하게 내 손에 넘겨주었다.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악마들을 피해, 그것을 들고 재빨리 물러났다.
그런 나를 살로메는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너 지금…뭐하는 거야?”
그런 그녀가 가장 먼저 내비친 감정은 낭패도 뭣도 아닌 냉소였다.
“그거 가져가서 뭐 어쩌겠다고?”
살로메의 지적은 지극히 합당했다.
이 금잔은 진짜 신기나 성물이 아니다.
단지 살로메가 구현한 전승의 일종으로, 그것이 물건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이다.
빼앗을 수도, 빼앗길 수도 없는 살로메와 금서가 만들어낸 주술의 일부.
그러니 그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이 금잔은 다시 그녀의 손으로 돌아갈 터.
그것이…지극히 상식적인 퇴마사들의 인식이었다.
“그걸 빼앗는다고 악마들이 너…에게…”
그러나 살로메의 얼굴은 곧 믿을 수 없다는 눈빛과 함께 서서히 굳었다.
그야 당연했다.
그렇게나 믿고 있던 자신의 상식이 지금 이 순간 부정되고 있었으니.
“뭐야…?”
살로메가 자신의 텅 빈손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다시 금잔을 부르려고 해도, 그것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나를 돌아본다.
거기에는 전에 없던 경계와, 공포마저 서려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별거 아니야. 이건 이제 내꺼거든.”
선택 받은 자.
모든 무구와 아이템의 사용 조건을 무시하는 그 스킬은, 제 주술과 권능을 형상화한 이 금잔의 사용 권한마저 완벽히 찬탈해 내 손에 쥐여주고 있었다.
이는 퇴마의 근본마저 무시하는 일이었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용사 스킬이었다.
면역, 무시, 무조건 등.
세계의 구원을 목적으로 설계된 그 스킬들은 사기라 해도 할 말이 없는, 절대적인 효과로 떡칠된 것들 뿐이었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살로메가 제 손을 휘저었다.
스스로 전승을 해제하려 한 모양이었지만…그조차 소용없었다.
이 대탕녀의 금잔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게서 영력을 빨아먹으며, 나로 인해 현현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듯, 이제 이 금잔은 명실상부한 내 것이었다.
그 사실을 겨우 깨달은 걸까.
“……”
그제야 살로메는 제 앞의 악마를 바라보았다.
바알.
조금 전 살로메를 보호했던 그것은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아군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에야말로.
“커흑…”
바알의 검을 빌려 살로메의 심장에 그것을 찔러넣었다.
남자의 검을 막는다는 처형자의 검조차 성별이 없는 악마의 검에는 반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제 가슴이 뚫린 살로메의 얼굴이 고통과 분노에 일그러졌다.
“너…너, 너!”
그녀는 죽어가면서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그 자리에 고꾸라져, 그대로 즉사했다.
그와 함께 사막의 모습을 하고 있던 주변의 풍경이 급격히 흔들렸다.
이윽고 그것은 멀끔한 사무실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밖을 향하는 창을 내다보니 이곳은 빌딩의 최상층으로 보였다.
이 빌딩을 침식하고 있던 공간도 이 여자의 짓이었나.
“……”
나는 살로메에게 다가가 그녀의 죽음을 직접 확인했다.
죽어서도 굉장히 억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보니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가 있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단번에 심장이 꿰뚫린 탓에, 첫 번째 단계인 부정을 벗어날 시간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가 가지고 있던 기독교의 금서도 손에 넣었다.
옅은 빛 무리가 나에게 스며들며, 로그가 정신없이 올라갔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살로메의 죽음을 확인한 나는 이어서 손에 들고 있던 금잔을 던져버렸다.
굉장히 유용한 물건이긴 하지만, 항상 들고 있어야 하는데다 실시간으로 영력을 빨아먹으니 진짜 내 물건처럼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러자 금잔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그것이 부르고 있던 악마들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다.
“후…”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모니카에게로 다가갔다.
내 말대로 자신이 가진 모든 영력을 퍼부어 악마들의 움직임을 멈췄던 그녀는.
지금 땅에 박아넣었던 창을 지팡이처럼 짚고 겨우 서 있었다.
“…수고했다. 걸을 수는 있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모니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평소라면 절대로 안 할 짓이었지만, 오늘만은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를 믿었다.
이렇게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내 요청을 충실히 수행했다.
만약 내가 실패하기라도 했다면.
모든 힘을 잃은 그녀가 무력하게 악마들에게 죽임당할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닐 텐데.
“응, 이 정도…괜찮아.”
하지만 모니카는 그저 제 할 일을 했다는 듯, 비틀거리면서도 혼자 앞으로 걸어갔다.
흔들거리던 발걸음은 이내 균형을 되찾고, 그녀는 다시 제 발로 섰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할 일, 남았어?”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조금 전, 생사가 오고 가는 전투를 치렀다기에는 더없이 태평한 목소리였다.
마치 처음부터, 질 거라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듯한 말투.
“아니, 그런 거 없어.”
그래서 나는 애써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 그녀의 옆을 걸었다.
아래쪽에서 들려오던 전투의 소음.
어느새 그 요란한 소란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