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75
175.
“이건 왜 이래.”
나는 무너지는 풍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설산의 모습이 부서진 TV 화면처럼 일그러지고, 추락했다.
다행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면까지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공간 자체가 허물어지는 듯한 이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래.
딱 마역이 무너질 때의 모습이 이랬던가.
하지만 사실 나도 왜 이렇게 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화살표를 따라가서 강조 표시가 된 곳을 공격했을 뿐이었는데.
부실공사인가?
“흠…”
한편 그렇게 무너진 풍경 뒤로는 삭막한 돌바닥과 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현실에 존재하는 탑의 내부였다.
또한, 거기에는 반쯤 깨져버린 묘한 돌이 놓여 있었다.
평범한 돌과는 확연히 분위기가 다른,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진 비석.
주술과 관련이 있는 물건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마역이 그 주인을 촉매로 존재하듯, 이 시련의 공간 역시 이 비석을 촉매로 존재하는… 뭐 그런 것일까.
당연히 나에게는 이 탑의 구조나 작동 메커니즘에 관한 지식은 전혀 없다.
그러니 그런 적당한 가능성을 추측해보는 것이 전부였고.
그러자 자연스럽게 간단한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럼 이거 다 박살 내면 되는 거 아니야?”
굳이 탑의 시련을 곧이곧대로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나에게는 시련을 통과하는 의미가 없다.
그야 시련의 보상으로 탑이 내주는 전승조차 나는 받을 의도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두 번째 시련에서 이미 오딘을 만나서 쓰러뜨리지 않았던가.
그러니 다음 시련에서 뭐가 나올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었다.
탑은 오딘으로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으니 이제 1대 1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라그나로크의 재현이 어쩌고 하며, 북유럽 신화의 신들을 모조리 등장시켜 나를 죽이려 들겠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나도 좋을 게 없었다.
북유럽 신화에는 오딘 외에도 토르나 발두르 같은 강한 신들이 많았으니.
더군다나 전승이 제한된 지금에서는 아무리 환영이라도 다수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되도록 피하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의견에 찬동하듯.
퀘스트의 화살표가 곧바로 나타나 다음 목표를 알려주었다.
그 방향에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너도 탑이 싫긴 싫나 보구나.”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퀘스트는 평범한 사건을 해결할 때도 곧바로 범인을 지목해주지 않는다.
그 대신 이를 추적할 단서를 알려주며, 정석적인 해결을 요구한다.
그게 퀘스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였다.
탑이 제공하는 정석, 시련을 차례차례 통과해 꼭대기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
꼼수를 써서라도 탑의 구조 자체를 무너뜨리며, 그냥 탑을 안에서부터 쳐부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뭐, 나야 좋지.”
그렇게 나는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드러난 풍경은 스산한 냉기가 흐르는, 어둠 속의 폐허였다.
그 어둠 속에서는 여기저기서 옅은 녹색의 불꽃이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을 반복했다.
이 분위기는… 혹시 헬하임인가.
북유럽 신화 속에서 죽은 자들이 간다는 세계.
하지만 나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마침 바로 가까운 곳에 목표가 보이고 있었으니.
“시이이이-”
사방에서 유령 무리가 달려들었다.
평소에 보던 령과는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생김새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무시했다.
곧 사라질 것들을 굳이 상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 대신 나는 내 앞에 있는 허공, 그 강조 표시된 공간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리고,
콰드드득!
바위가 부서지는 파열음과 함께 또 하나의 세계가 무너졌다.
그렇게 무너진 세계의 뒤쪽으로는 역시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얼마 후.
찬란한 신의 도시, 아스가르드의 절경이 그 빛을 잃었다.
과연 신화 속에 나오는 천상계라서일까.
그 풍경은 나도 잠시 넋 놓고 구경을 하고 싶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비록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날아드는 발키리가 수백이 넘어서, 정작 그럴 여유는 없었지만.
“음?”
그런데 무너진 아스가르드의 세계가 숨기고 있던 것은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아니었다.
그 뒤에 있는 것은 다른 방으로 통하는 문.
게다가 그 문 뒤로는… 시뻘건 레벨 표시가 여럿 보였다.
저 붉은 레벨 표시는 나에게 적의를 가진 인간을 의미한다.
즉, 지긋지긋한 환영 따위가 아닌 진짜 인간이라는 뜻.
“어디에 다 숨어있나 했더니…”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나에게 적의를 갖고, 이 문을 열고 들어간 나를 요격하기 위해 포위망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 두 가지 단서 덕분에, 놈들의 정체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바로 이 탑을 건설한 장본인인 사교였다.
다 지어놓은 탑만을 놔두고 깨끗이 사라진 척하더니, 결국 전부 탑 안에 있었나.
놈들의 레벨은 60 전후의 수준으로 그리 높지는 않았다.
다만, 이곳에서 레벨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저 새끼들은… 전승을 쓰겠지?”
탑에서 얻은 전승만큼은 탑에서 부정되지 않는다.
그것이 이 탑의 규칙이었다.
“……”
그래서 나는 그런 문에서 잠시 물러선 채 고민했다.
이대로 문으로 돌격하는 것은, 시련을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했다.
이 탑은 북유럽 신화의 전승을 제멋대로 인간들에게 나눠준다.
그러니 그런 탑을 지배하고 있는 사교들이라면.
분명 탑이 줄 수 있는 모든 전승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들을 골라 무장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즉 나에게는 라그나로크가 바로 저 문 뒤에 있다는 것.
그렇다면…
“딱 하나만 더 쓸까.”
나는 두 번 남은, 나예네즈가니의 전승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이걸 사용하면 남은 횟수는 한 번뿐이었지만.
그래도 내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저 앞을 뚫기 위해서는 지금의 전력으로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으니.
한편 남은 스킬 후보는 둘이었다.
태양과 관련된 전승을 증폭하는 ‘태양신의 후예’와, 금맥을 찾는다는 ‘황금 제국의 황제’.
나는 그 둘 중, 금맥을 탐지한다는 ‘황금 제국의 황제’에 스킬을 사용하기로 했다.
마침 두 스킬 모두 태양신의 후예라는 페루의 황제가 지니고 있던 전승이 아닌가.
그러니 만약 이 스킬이 나예네즈가니의 아버지인 태양신, 초하노아이의 전승으로 변화한다면.
그걸 다시 태양신의 후예로 추가 강화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잘 좀 떠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예네즈가니의 전승을 사용했다.
그 횟수가 하나 줄어들며, 새롭게 변화한 스킬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 초하노아이의 황금 담뱃대
맹독을 품은 화려한 담뱃대. 이를 들이킨 존재에게 내성을 무시한 치명적인 독 상태를 부여한다.
그런데… 그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이건 초하노아이가 자신을 찾아온 두 아들에게 독이 든 담배를 흡입하라고 시험했던 전승 속에 등장하는 담뱃대였다.
하지만 그 효과는 쓸모가 없었다.
독이 걸리는 건 좋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적이 이 담뱃대에 스스로 입을 갖다 대야 했으니.
“…이러면 곤란한데.”
이건 최소한 전투에서는 못 쓰는 전승이었다.
그래서 나는 혀를 차며 대책을 고민했다.
결국 딱 하나 남은 횟수를 소모해야 하나.
나는 우선 25% 확률로 살아남은 전승들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그런데 그중에, 마침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 비틀린 전승의 흔적 : 하나의 존재에 깃든 또 다른 전승을 개화하여 고유 스킬을 변경한다. 사용 시 소모됨.
그건 꽤 오래전에 레비아탄을 잡고 얻은 스킬이었다.
쉽게 말해 전승을 바꿀 수 있는 스킬로, 그 후에 딱히 사용할 곳이 없어 보관만 하고 있었는데.
그 효과가 워낙 특이해서인지, 출력이 25%로 떨어지는 탑 안에서도 그 효과에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즉… 전승을 바꿀 수 있다.
지금 1이 나온 주사위를 다시 한 번 던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고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바로 그 스킬까지 소모하여, 다시 한 번 주사위를 던졌다.
그러자,
– 초하노아이의 태양 화살
태양 빛을 담은 화살의 원격 공격. 화살에 자신의 영력을 담을 수 있다.
담긴 영력에 비례해 위력이 늘어난다.
비로소 쓸만한 게 튀어나왔다.
이는 외신을 사냥하는 나예네즈가니에게 초하노아이가 내어준 4개의 화살 중 하나로.
거대한 독수리의 형상을 했다는 외신 체나할레를 떨어뜨렸다는, 신속의 화살이었다.
“…좋네.”
태양 화살이라면 인디언 전승 속의 4개의 화살 중, 메인 무기인 무지개 화살보다는 못하지만 두 번째로 괜찮다고 할 수 있는 화살이었다.
그 속도는 빛처럼 빠른 데다 적을 날카롭게 관통하는 것도, 태양 빛을 폭발시켜 광역 공격을 하는 것도 가능했으니.
나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허공에 빛을 엮어 만든 활과 화살이 나타났다.
나는 거기에 내가 가진 영력의 절반… 아니, 70% 가량을 망설임 없이 쏟아 부었다.
그것도 모자라 용사 스킬로 빛 속성을 추가로 부여했다.
놈들은 분명 여기까지 올라온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탑에서 사용한 전승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비를 하고 있을 터.
그래서 나는 이 첫발에 놈들을 압도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외신의 권능 때문에 이렇게 영력을 투자해도 제법 위력적인 공격밖에는 안 되겠다만.
“쯧…”
새삼스럽게 모든 전승을 부정하고 약화시키는 그 권능이 거슬렸다.
빨리 신성을 올리든가 해야지.
그런 생각과 함께 내 손에서 화살이 떠났다.
그런데,
“음?”
그 태양을 머금은 화살에서 느껴지는 섬광이, 내 예상보다 제법 거셌다.
찬란하다 못해 나조차 눈이 부실 정도의 빛.
그리고 그 빛을 머금은 화살은 제 앞을 가로막는 문을 벽째로 부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찰나의 시간 속에 당황하는 사교 놈들의 모습이 시야에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태양 화살은 그대로 허공에서 빛을 두른 채 폭발했고.
콰아아아앙!
그와 함께 놈들은 물론 내 시야 전체가 새하얀 섬광 속에 파묻혔다.
“……”
그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빛이 사라졌다.
또 태양의 화살이 폭발했던 문 뒤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려올 뿐.
살아남은 사교의 세력이 곧바로 튀어나와 나를 공격해 오는 일은… 아무리 기다려도 없었다.
그래서 직접 놈들이 대기하고 있던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복잡한 제어실 같은 게 있었다.
다만 지금은 그 전부가 산산조각으로 파괴되어, 제 형상을 갖추고 있지는 못했다.
또 그 폐허 속에서 내 눈에 보이는 레벨 표시는 겨우 하나뿐이었다.
나머지는… 자세히 보고 싶지 않은, 바짝 구워진 생선구이 같은 모습으로 전부 죽어 있었다.
“허…”
설마 1/4의 위력인데 이렇게까지 될 줄이야.
영력을 너무 많이 썼나?
70%면 분명 많이 쓰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상상 이상의 결과였다.
그 기분 좋은 예외에 나는 빙긋 웃으며, 아직 살아있는 한 명에게 다가갔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빛의 신인 발두르의 가호라도 두르고 있던 건지.
“끄으으으…”
그곳에는 반신만 타버린 한 여자가 바닥을 구르며 신음했다.
저 정도면…오래 살기는 힘들겠지만, 반대로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저 화상의 고통은 상상하는 그 이상이겠지.
그야 나도 한때 느껴봐서 잘 알고 있었다.
“주…죽여줘…!”
그래서일까.
여자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평소라면 그대로 목을 쳤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내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이 탑의 정보를 캐기 위해서였기에.
“곱게 죽고 싶으면, 묻는 말에 대답해.”
그렇게 잠시, 나는 그녀를 심문했다.
죽음조차 바라게 되는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는 고문조차 필요가 없었다.
비명과 신음이 섞인 문답이 한동안 이어진다.
“…그렇게 된 건가.”
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완벽한 답은 아니었다.
이 여자조차도 이 탑과 외신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그래도 이 탑의 목적은 대충 알 수 있었고, 그렇기에 방침을 정할 수 있었다.
역시 이 탑은 파괴되어야 했다.
탑을 적대하는 퀘스트를 따랐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너무, 아파! 이…이제…!”
“그래, 수고했다.”
한 쪽만 남은 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여자의 심장에 칼을 박았다.
그제야 그녀는 고통에 찬 신음을 멈추고 편안히 잠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퀘스트는 완료되지 않았다.
그건 아직 이 탑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고.
그 이유를 나는 조금 전에 들어 알고 있었다.
“진짜는 이 뒤에 있다는 거지?”
사교 놈들이 모여 있던 이곳의 이름은 관리실이었다.
그건 탑에 들어온 사람들을 감시하는 곳임과 동시에, 이 탑 안에 있는 또 다른 무언가를 돌보기 위한 시설.
그리고 그 무언가가 바로 이 탑의 핵심이었다.
“……”
나는 곧바로 화살표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태양 화살로 찌그러진 철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공동이었다.
그리고 그런 공동의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에는 수많은 주술의 술식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복잡한 술식.
또한, 그런 술식이 감싸고 있는 중심에는.
“저건가.”
직경 3미터 가량의 붉은 구체가 허공에 떠 있었다.
그건 말하자면… 살덩이였다.
마치 도축하자마자 해체한 소의 근육처럼, 시뻘건 색의 고깃덩어리가 경련하듯 움직인다.
비록 생물로 갖춰야 할 그 어떤 기관조차 보이지 않지만, 명백히 그 살덩이는 살아있었다.
“……”
나는 그 기분 나쁜 구체를 보며 여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사교의 목적은 퇴마의 비닉을 벗겨 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계의 신과 거래를 해서 이 탑을 세웠다.
이 탑이 있다면 더 이상 퇴마는 비닉을 유지할 수 없을 테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들의 목적대로 세상은 변화할 테니까.
하지만 당연히 이계의 신은 그 대가를 요구했고, 그게 바로 이것이었다.
신의 옥체.
언젠가 이계의 신이 현실에서 수육하기 위한 그릇.
이계의 신은 이를 사교에 요구했고, 사교는 그 요구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북유럽 신화 속의 오딘이나 토르처럼.
수많은 전승 속에서 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사교는 이계의 신이 강림한다고 한들, 그저 또 다른 전승이 추가될 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하지만… 과연 그럴까.
“……”
내가 알고 있는 이계의 신은 현실에 존재하는, 전승 속의 신과는 명백히 달랐다.
온갖 문화권과 신화가 수백, 수천 갈래로 쪼개져 내려오는 현실과는 달리 단 하나의 전승, 단 하나의 신화만이 이어져 내려오는 세계라서인지.
아니면 그냥 신의 개념이 다른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내가 죽인 유일한 신이 가졌던 힘은 실로 초월적이었다는 것이다.
그저 번개를 쏘고, 화염을 다스리는 정도가 아니다.
그 여신의 권능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세계 자체를 지워버릴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 붉은 구체를 바라보았지만.
“……”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야 나를 볼 눈도, 내 말을 들을 귀도, 목소리를 돌려줄 입도 없었으니.
촤악!
나는 검으로 그 붉은 구체를 베었다.
그러자 시뻘건 피가 터져 나오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철퍽-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게 끝이었다.
어느새 경련하듯 움직이던 고깃덩어리는 더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