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76
176.
신의 옥체를 둘로 쪼개고 나자, 비로소 그런 로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뒤로 줄줄이 이어지는 또 다른 로그들.
대충 보니 메인 퀘스트의 보상은 물론, 외신을 사냥해서 얻은 신성 등 여러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먼저 감각을 날카롭게 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
아까 심문했던 사교의 말에 의하면, 이 고깃덩어리는 탑의 핵과 같은 역할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역이 그렇듯, 나는 제 주인을 잃은 탑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실재하는 건물이라서일까.
탑이 당장 무너질 기미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탑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기에, 검을 거둔 나는 먼저 탑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럼…”
그 동안 로그를 살폈다.
뭔가 많이 준 것 같기는 한데.
첫 번째는 메인 퀘스트의 보상이었다.
보상은 일종의 아이템이었는데, 이제 보니 똑같은 아이템을 20개나 준 것 같았다.
그 아이템의 이름은 .
“……”
그건 탑이 보상으로 내걸었던 전승과 생김새는 물론 그 용도도 똑같았다.
탑의 보상이 그대로 퀘스트 보상으로 나온 것.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20개나 되는 전승을 얻어 큰 이득을 본 것 같았지만.
자세히 그 내용을 확인하니, 내 기대와는 많이 어긋나 있었다.
“나쁜 건 아닌데…”
자신이 든 창에 전격의 힘과 자동 회수 기능을 부여하는 궁그닐에 대한 전승.
그리고 자신의 선 성향에 비례해 빛의 힘을 부여하는 발두르의 전승 등.
그 자체로는 괜찮았지만, 정작 나에게는 쓸모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에게 필요한 전승이 딱 하나 있긴 했다.
– 우르의 궁술
자신이 직접 쏜 화살의 궤도를 제어.
바로 활의 신, 우르에 대한 전승이었다.
평소라면 이 역시 무시해버렸겠지만, 지금이라면 마침 괜찮은 화살이 있었으니까.
다만 자신이 직접 쏜 화살이라는 조건이 있으니, 이를 사용하려면 쓸만한 활을 구해야겠지.
활이라.
직접 쏘게 된다면, 꽤 오랜만의 일인가.
나 역시 검이 주무장이긴 해도 활을 사용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당연히 용사일 때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쐈다.
그야 그럴듯한 원거리 공격이 마법말고는 활밖에 없는 시대였으니.
그래서 나는 곧바로 그 우르의 궁술이 담긴 두루마리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이건 써도 되냐?”
혹시 몰라 퀘스트 창을 보며 말했다.
탑이 주는 전승과 똑같이 생겼길래 물어본 거였는데.
아무 반응도 없는 걸 보니 마음대로 하라는 듯 보였다.
하긴 이건 퀘스트의 보상인데, 설마 못 쓰는 걸 줬겠는가.
그래서 나는 곧바로 두루마리를 펼쳤고, 전승을 얻을 수 있었다.
“간단하네.”
그 과정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쉬웠다.
그보다 남은 건 어쩌지?
두루마리는 이것 말고도 19개나 더 남았지만, 이것들은 사용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럼 합성 재료로 써야 하나.
“쯧…”
나는 혀를 한번 차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신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번에 얻은 신성은 무려 20.
그 덕분에 신성은 총 45가 되었고, 이는 침식 저항 역시 그만큼 올라갔다는 의미였다.
이제는 탑에 들어와도 기존 전승들이 절반 정도의 출력은 낼 수 있다는 말.
그 정도면… 겨우 실전에 쓸 수 있을 정도일까.
그리고 이런 로그도 있었다.
저번에는 최하급에서 하급으로 올라갔다더니, 이번에는 중급이란다.
그리고 그 중급 신성이 가진 효과는 이랬다.
– 중급 신성
신격을 가지지 못한 권능을 부정할 수 있다. 또한, 자신보다 낮은 신격의 전승은 가진 격을 떨어뜨린다.
신격을 가지지 못한 권능.
즉, 그 신화 속 전승이 아니라면 그 힘을 부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급 신성까지는 별 효과가 없어 기대도 안하고 있었는데.
“흠…”
물론 이 중급 신성의 효과도 냉정히 말해 그렇게 유용한 것은 아니다.
이 탑을 세운 사교는 온갖 신화의 전승 중에서도 격이 높고 강력한 것만을 사용하고 있을 테니.
하지만 미래를 보면 달랐다.
만약 중급 신성이 아니라 더 높은 등급, 아니 아예 가장 높은 신성에 도달한다면.
사실상 다른 모든 전승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
그렇게 이해한 나는 남은 로그를 넘겼다.
그 외에는… 레시피 정도인가.
이번에 새로 얻은 레시피는 5개로, 전부 같은 종류의 세트 아이템이었다.
항마의 갑주라는 이름의 세트 아이템으로, 그 효과는 무려 침식 저항력 자체를 올려주는 것이었다.
나조차도 처음 보는 효과를 가진 신기.
그러나.
– 항마의 힘
신성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침식 저항력을 한 단계 올린다.
그 효과를 읽어보니 정작 나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신성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라.
그래서 나는 이 레시피의 의도를 금세 깨달았다.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줘라, 이건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로그는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마침 탑의 출구에 도착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서 보니, 하늘까지 닿아 있던 탑은 어느새 평범한 10층 건물이 되어 있었다.
* * *
어느 하얀 공간에 여자가 있었다.
사교들에게는 사제라고 불리는, 짙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
그녀는 새롭게 들려온 어떤 소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유럽의 탑이, 무너졌다고요?”
여자의 눈에는 미약한 경악이 담겨 있었다.
북유럽의 탑은 그 이름대로 북유럽 신화가 가진 전승을 통제하는 탑이다.
그리고 북유럽 신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전투와 전쟁으로 가득한, 투쟁의 신화였고 그렇기에 그 전승은 신화 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탑이, 겨우 며칠 만에 무너지다니.
이어서 어떤 목소리가 그 자세한 정황을 그녀에게 알려왔다.
그 내용은 허무하리만치 단순했다.
그저 한 남자가 탑으로 들어왔고, 탑을 박살 낸 후에 유유히 다시 떠났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 허무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녀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또 그 남자가…”
여자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강진우.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외신의 권능으로도 전승이 완전히 부정되지 않는 인간이었다.
여자는 그와 직접 만난 적도 있었다.
또 그가 신의 화신까지 쓰러뜨린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했다.
그래서 여자는 그 남자의 전투력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 대처가 부족했군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탑을 무너뜨렸던 남자는 더 이상 제 검에만 의지하고 있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건지.
여자가 모르고 있던 전승들을 활용하며 탑을 농락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자는 약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파악하지 못한 기술들이 있다고 한들.
설마 혼자서 탑 하나를 하루 만에 정복하리라고는,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어지는 목소리가 여자의 결정을 종용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나요?”
“…예.”
“그렇다면…”
이에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대로 강진우를 그냥 놔두면, 그는 다시 또 다른 탑을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탑을 전쟁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그녀는 탑으로 쏠리는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곳의 준비는 끝났겠죠?”
“그렇습니다.”
“그럼 일정을 조금 앞당겨야겠군요.”
여자는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이제 벌어질 전쟁은, 모두 계획되어 있는 일.
그래서 그녀는 그 개전을 명했고.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어지는 목소리는 그저 그녀의 명령에 충성을 표할 뿐이었다.
* * *
탑을 정복하고 2주일 후.
“…강 경정, 왔나?”
한국으로 돌아와 경정으로 승진한 나는 김준성의 부름에 경찰청장실에 와 있었다.
벌써 시간은 밤 10시가 넘은 시간.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에는 미약한 피곤함이 감돌고 있었다.
“이 시간에 불러서 미안하네.”
그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탑에 관한 정보를 갖고 온 이후, 그는 정부를 설득하거나 회의를 주최하는 등.
탑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있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단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바쁘신 거 다 압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래. 오늘 회담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탑은 당장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퇴마의 비닉을 위협한다.
그렇다면 퇴마사들은 그 탑의 존재를 인정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이에 관해 퇴마사 단체는 물론 각국의 정부까지 참여하는 회담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그러나 그 회담에 참여하고 온 김준성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설득이 잘 안 됐나 보네요.”
“그런 셈이지. 정식 기관들은 전부 탑에 대해 부정적이지만…정작 대부분의 정부가 탑을 통제하되 붕괴시키지는 않기로 결정했네.”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
탑이 보상으로 뿌리는 전승은 그만큼 매력적인 무기다.
국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탑 자체가 하나의 무기가 되는 셈.
그러니 설령 그 안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들.
정부는 제 땅에 있는 탑을 스스로 부수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들어가는 인원만 통제하여 퇴마의 비닉은 해치지 않으면서도, 안전성이 판별될 때까지는 이를 제 손에 보존하고 싶다는 건가.
나에게는 안일하기 짝이 없는 대처로 보였지만…당장 그들에게 내밀 만한 증거가 없는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오지에 있는 것들은요?”
탑 중 일부는 사막 한가운데나 이름 모를 섬 등, 극히 오지에 세워진 것도 있었다.
전부 그곳을 통제하는 정부가 없거나, 있다고 한들 그 통제력이 약해 반쯤 방치되어 있는 땅들이었다.
“그나마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탑에 대해서는 제거하기로 합의했네. 그런데 그쪽도 상황이 좋지는 않아. 마인들이 벌써 냄새를 맡았네. 아니, 아마 사교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렸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리고 그런 오지의 탑에는 지금, 마인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거기서 강력한 전승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고서, 일반인까지 조직원으로 받아 단체로 탑에 들어간다고 했던가.
전부 탑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었다.
탑은 실패해도 다시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실력이 없어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가장 쉬운 1단계 시련만 반복해서 완료한다면.
끝내 전승이 여러 개 쌓이며, 언젠가는 탑을 클리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임 장르로 치면… 로그라이크 게임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결국 시간만 있으면 마인이든 뭐든 누구나 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러니 이를 이대로 방치해뒀다가는 좋은 꼴은 못 볼 게 뻔했다.
“그럼 역시 그 오지의 탑부터 처리해야겠네요.”
“일단은 그래야겠지. 그리고 자네 팀에 대한 것 말인데…”
김준성이 그런 말을 꺼냈다.
나는 경정으로 승진한 이후, 아직 팀을 배정받지 못했다.
사교에 대처하기 위한 특별한 팀을 만들어주겠다는 김준성이 사전에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며, 잠시 그 배정을 미뤄둔 것이었다.
“이번에 합의가 끝났네.”
“합의요?”
“그래. 자네가 맡게 될 팀은 경찰만 포함되는 게 아니야.”
“그 말씀은…”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이상, 사교에 대한 대처는 우리 경찰만으로는 부족하겠지. 그래서 각 정식 기관에서 1명씩 차출해서, 팀을 만들기로 했네.”
그건 나로서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정식 기관마다 한 명씩 뽑아 팀을 만들다니.
“기한은 1년이니까, 일종의 TF 팀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팀의 물론 인원은 자네가 직접 선별하게. 기관들 사이에서도 자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으니 웬만하면 협조해 줄 거야. 다만 그리 여유가 없는 상황이니 서두르는 게 좋겠지.”
“…예.”
팀원을 내가 알아서 뽑으라는 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얼굴도 모르던 사람을 갑자기 팀원으로 받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으니.
“그리고-”
김준성이 이어서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였다.
“음…?”
난데없이 내 스마트 폰이 진동했다.
나는 잠시 김준성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그는 받아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에 뜬 번호는 화랑의 이현아였다.
이 여자가 왜?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그 전화를 받았다.
“강진우 씨?”
그러자 폰에서는 다급한 이현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화랑이 공격을 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