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77
177.
‘탑’의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유독 경찰만이 아니었다.
탑은 퇴마의 비닉에 영향을 끼칠 존재다.
그렇기에 그 존재는 모든 퇴마 업계에 단순한 건축물 이상의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눈치챈 몇 개의 기관 중에서도, 화랑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특히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는 외인 기관 중 하나였다.
그건 단순히 미래에 있을 이득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핵심적인 이유는 그들의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업계 외인 기관.
즉 백산과 GTW 그룹이 사교와 연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화랑을 품고 있는 화인 그룹에도 사교의 접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마인 놈들과의 협력은 없다.”
그 시도는 제대로 된 대화가 오고 가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화인 그룹을 이끄는 이성민 회장의 강력한 의지 덕분이었다.
그래서 결국 화랑은 정부, 즉 경찰과 정식 기관의 편에 섰다.
이성민 회장의 손녀, 이현아 역시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교의 정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그들은 마인과 다를 게 하나 없었으니.
하지만 그렇다 해도 확실한 대비는 필요했다.
사교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다른 두 기업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이현아는 무엇보다 화랑과 연이 있는 중소 규모의 외인 기관과 접촉했다.
탑의 전승을 앞세운 사교에 대비하여, 아군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화랑의 시도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설마 절반도 응하지 않을 줄은…”
화랑이 접촉한 곳은 평소 그들과의 계약 관계에 있던 외인 기관임에도 벌써 그 대부분을 백산과 GTW 그룹이 포섭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정보를 얻자마자 움직였음에도, 명백히 한발 늦은 것이었다.
그나마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외인 기관은 모두 그들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러나 이현아에게도 남은 희망은 있었다.
바로 ‘만복 사무소’.
그곳의 직원은 대표를 포함해도 겨우 두 명이다.
그래서 사실상 기관이라는 명칭조차 어울리지 않는 구멍가게 같은 곳이지만.
그 만복 사무소의 대표는 이현아는 물론, 이성민 회장조차 쉽게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한시예.
그녀는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였다.
정식 기관인 교회의 장로인 미카엘보다도 강하다고 평가받으며.
이 나라에서 그녀와 비견되는 것은 경찰청장인 김준성과 LB 아카데미의 이사장인 주선아, 마지막으로 킬러의 수장인 유아연 정도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한시예는 결코 사교와 손을 잡을 위인이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정의에 대한 집착과 신념은 이성민 회장이 품은 상처, 그 이상이기에.
그래서 이현아는 그 만복 사무소의 대표 한시예와 먼저 접촉했다.
이어서 정보가 부족한 그녀에게 사교의 탑에 관해 화랑이 수집한 모든 정보를 공개했고.
바로 내일, 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 한시예와 직접 만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전날인 오늘.
이번에도 사교는 화랑보다 먼저 움직였다.
화랑의 본부가 있는, 화인 그룹의 본사.
콰르르르릉!
그곳에 난데없이 거대한 빛의 화살이 날아와 건물 한 층을 통째로 관통했다.
“전무님!”
화인 그룹 본사의 31층.
사방에서 번뜩이는, 건물 전체를 뒤덮은 뇌기 속에서 진유나가 전무실의 문을 열었다.
이현아가 머물고 있던 전무실의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유리창은 산산조각으로 깨져 있었고, 이현아가 업무를 처리하던 책상은 반 이상이 불타 없어졌다.
벽을 장식하고 있던 책장과 장식장 위에도 멀쩡한 물건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예고도 없이 밖에서부터 날아온 전격의 폭풍이 전무실을 직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반파된 방안에는 이현아만이 우뚝 서 있었다.
“나는 괜찮아.”
그녀는 반지 하나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며 말했다.
번개를 먹어치우는 반지.
그건 끝나지 않는 폭풍을 멈추기 위해 제물로 바쳐진 아이가 번개를 타고 올라갔다는, 일본 신토의 전승을 바탕으로 하는 신기로.
이런 일을 대비해 이현아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방어 수단 중 하나였다.
다만 아쉽게도 일회용 물품이었기에, 더 이상 쓸 일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제 목숨을 구해준 그 도구를 바닥에 버려두고 시선을 돌렸다.
이현아와 눈이 마주친 진유나는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현아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자 진유나는 다시 평상시의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전무님…다행입니다.”
“그보다, 상황은?”
“아직 제대로 파악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당장 이곳을 피하셔야 합니다.”
화인 그룹의 본사는 화랑의 본거지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여길 버려두고 피하다니, 어디로?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이현아는 이를 끝내 참아냈다.
지금 상황으로는 진유나의 판단이 백번 옳았다.
이 단 한 번의 초격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적은 이상할 정도로 강했다.
도대체 어떤 전승을 가졌길래.
지상에서 31층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 전체를 저격할 정도의 화력을 구사한다는 건가.
“…안내해.”
그래서 이현아는 자신의 무기, 레이피어를 꺼내들고 그렇게 말했다.
이에 진유나 역시 검은 장갑을 착용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두 여자의 뒤쪽.
완전히 깨져나간 유리창 바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가려고 그러시나, 이현아 전무님.”
40대 중반의 남자 하나가 창 밖의 허공에 서 있었다.
그리고는 마치 보이지 않는 바닥을 밟듯, 뻥 뚫린 창문을 통해 전무실 안으로 유유히 걸어들어왔다.
“당신은…!”
남자의 얼굴을 본 이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이름은 최학운.
그는 백산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퇴마사로.
원래는 신기 중 하나인 방천화극을 다루며, 중국 무술과 전승의 전문가로 알려진 남자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온몸을 휘감고 있는 것은, 그와는 거리가 먼 강렬한 전격.
이현아는 조금 전의 폭격이 이 남자의 짓이라는 걸 간파하고 표정을 잔뜩 찡그렸다.
“설마 백산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미친 건가요?”
이현아는 백산과 GTW 그룹이 언젠가는 제 본색을 드러내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오늘, 그것도 이런 식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해가 졌다고 한들 이제 막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이다.
거기에 대도시의 빌딩 숲 중앙에 위치한 화인 그룹의 본사를 이런 식으로 습격하다니.
퇴마의 비닉은 물론, 국가의 공권력 자체를 깨끗이 무시한 처사였다.
그 때문에 아마 밖에서는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을 터.
그럼에도 최학운은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답했다.
“좀 급한 감이 있지. 우리도 천천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위쪽에서 자꾸 재촉하지 뭔가. 나야 뭐, 까라면 까야 하는 신세고.”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러게, 왜 좋은 제안을 거부해서 이런 참사를 만드나.”
쯧쯧-하고 혀를 찬 최학운의 몸에서 전격이 일었다.
그 샛노란 번개는 실타래처럼 엮여, 하나의 창을 만들었다.
“…!”
이에 진유나가 곧바로 이현아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진유나는 육체 계열 강화 이능을 중심으로, 무투 계열의 전승을 사용하는 퇴마사다.
그렇기에 그녀는 비서이면서도, 경호원과 같은 존재였지만.
그런 그녀라도 저 전격의 창 앞에서는 버틸 수 없을 거라고, 이현아는 판단했다.
저 전격의 창은 건물조차 반파시킬 수준의 화력을 가졌다.
그러니 아직 성숙하지 못한 퇴마사인 진유나에게는 막아내기 버거운 공격이리라.
그래서 이현아는 그 창이 움직이기 전에 입을 열었다.
“그건…새로운 전승이라도 얻으신 겁니까?”
“아, 이거?”
최학운은 짐짓 평정을 가장했지만, 입가는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고심 끝에 새로 장만한 차량을 누가 칭찬이라도 해 준 것 같은 얼굴이었다.
“탑에서 얻었지. 제우스의 전승이라고 하더군.”
“…제우스?”
너무나도 널리 알려진 신의 이름에 이현아는 그렇게 되물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신화지만.
정작 그 전승은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크게 쇠락하여, 지금은 그 맥이 끊긴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몇 개 안 되는 신기들로, 그조차 파편밖에 남아있지 않았을 텐데.
“놀란 얼굴이군.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설마 그리스 신화의 주신이 가진 힘을 얻을 줄이야. 하지만 자네도 봤으니 알겠지. 이건 진짜야. 진짜로…그 제우스의 힘을 내가 얻은 거라고.”
쿠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주변으로 스파크가 튀었다.
그저 변덕처럼 흩뿌린 전격에도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단단한 외벽이 마치 눈 녹듯 힘없이 쓸려나갔다.
“정말 대단해. 그렇지 않나?”
“……”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는 마. 운 나쁘게 령이나 괴이에게 죽는 것보다는 낫지.”
번개의 창이 번뜩였다.
이제 다음 순간이면, 저 섬광은 자신의 심장을 꿰뚫으리라.
그걸 알면서도 이현아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쇄도하는 벼락을 막아서는, 누군가의 인영을.
콰아아아아아-
맹렬한 전격이 그 인영에 가로막혀 분쇄되었다.
제 갈 길을 뚫어내지 못한 번개는 마치 소용돌이처럼 사방으로 갈라지며 발작했지만.
그중 단 하나의 불꽃도 이현아는 물론 그 앞에 선 진유나에게조차 닿지 않았다.
그렇게 번개의 창은 애꿎은 건물만 다시 한 번 박살 내고 그 빛을 잃는다.
그 섬광이 지나고 나서야, 이현아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그것은 어떤 여인.
이윽고 그 여인은 이현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시예 대표님…?”
“탑의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돼서 와봤어. 아무래도 급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그런데…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네.”
제우스의 전승이 구현한 번개를 막아선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기조차 착용하지 않은 맨손으로 그 엄청난 번개를 막아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에 이현아는 놀라지 않았다.
한시예는 신기나 전승에 크게 의지하지 않는, 이능 위주의 퇴마사였다.
또한 그녀의 능력은 변신.
자신이 생각한다는 영웅의 이미지로 변화한다는 그 능력은, 이현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미지의 이능이었다.
“한시예…라고?”
한편 그 이름을 들은 최학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곧바로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계산이 스치고 지나갔다.
설령 제우스의 전승을 얻은 최학운이라고 해도, 한시예는 궤를 넘어서는 강함을 가진 퇴마사다.
결코 쉽게 이기지는 못할 것이고, 그 증거는 바로 조금 전에 분쇄된 그의 공격이었다.
그래서일까.
최학운의 판단은 빨랐다.
그의 몸은 한 줄기의 섬광이 되더니, 곧바로 이 공간에서 도망치듯 자취를 감췄다.
“…후우”
그의 기척이 사라지자, 가장 먼저 진유나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거에요.”
“그런 말은 나중에. 나는 저자를 쫓을게.”
한시예의 말에 이현아는 문득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건 분명 전투의 소음이었다.
“저 남자 혼자 온 게 아니었군요.”
“맞아. 그러니 이 전무는 지원을 요청해줘.”
“지원이요?”
“동원된 퇴마사만 최소 수십이야.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어?”
한시예는 그렇게만 말하고, 곧바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의 말대로 최학운을 쫓으러 간 것이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정작 이현아를 덩그러니 방치한 것이었지만.
이현아는 그것을 그리 서운해하지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한시예의 성향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나치게 정의롭다.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 어떤 조직에도 몸을 담고 있지 못할 정도로.
“…전무님.”
그렇게 조용해진 전무실 안에서 진유나가 그녀를 재촉했다.
전투의 소리는 점점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저들의 목표가 이 화랑을 이끄는 이현아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현아는 폰을 꺼내 들었다.
지원을 부를 곳은 많지 않았다.
이미 외인 기관의 대부분은 사교에게 넘어갔기에.
그리고 다른 정식 기관들 역시 외인 기관에 불과한 화랑에게 쉽게 손을 내밀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 유일한 선택지는…경찰.
하지만 이현아는 경찰이라는 조직보다도, 그 경찰에 속해있는 한 명의 경찰관을 먼저 떠올렸다.
조금 전 그녀를 죽일 뻔했던 번개보다도, 훨씬 더 섬뜩한 검을 벼려냈던 남자.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의 귓가에서는 그 남자를 향한 신호음이 울리고 있었다.
* * *
“하…진짜네.”
화인 그룹의 본사를 올려다본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현아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야 아무리 사교라도, 이렇게 대놓고 전면전을 걸어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모양이었다.
건물은 거의 반파되다시피 파괴되어 있었다.
또한 주변에는 퇴마의 비닉을 위한 아주 기초적인 결계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빌딩 주변의 사람들은 순간순간 들려오는 폭발음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그 혼란 속에 벌써 기자까지 온 건지, 커다란 카메라의 모습마저 보였다.
“물러서십시오! 위험합니다!”
나와 함께 급파된 경찰 인원들이 그런 인파들을 밖으로 몰아냈다.
잠깐 동안은 그 혼란이 계속됐지만, 사람을 물리는 주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자, 일반인에 불과한 그들은 곧 뭐에 홀린 것처럼 금방 물러났다.
그 후 겨우 눈을 속이는 결계를 치기 시작한 경찰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그곳에서는 퇴마사들 간의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으아악!”
“크윽…”
건물 로비부터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이 보였다.
대부분이 화랑의 퇴마사였다.
그리고 위쪽을 바라보자, 다 세기 어려울 정도의 레벨 표시가 보였다.
그 숫자는…최소 50 이상.
나 혼자 전부 쓰러뜨리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백호의 분신과 구미호인 서연을 불렀다
“켕!”
부서진 철근을 다듬어 만들어진 강철의 호랑이와, 새하얀 여우가 눈앞에 나타났다.
다행히 사교처럼 기존의 전승을 부정하지는 않는 모양.
그렇다는 건, 사교의 전승은 없이 백산 소속의 퇴마사들이 탑의 전승만을 골라 사용했다는 건가.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지만, 물론 그렇다 해도 만만한 전력은 아니었다.
전승은 퇴마사에게 있어서 무기와 같다.
즉 그런 전승을 제멋대로 얻을 수 있다는 건, 군대로 치자면 최고급 무기로 무장했다는 뜻.
하지만.
“이러면 나도 할 만 하지.”
그건 동시에 나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서연과 백호가 계단 위로 바람처럼 올라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쓰러진 화랑의 퇴마사들이 사용하던 몇 자루의 무기가 허공을 날았다.
이내 구미호와 호랑이가 침입자들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백호의 권능으로 조종되는 신기들이 날뛰는 맹수들 사이를 오고가며 백산의 퇴마사.
아니, 이제는 마인이라고 불러야 할 놈들은 조각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