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78
178.
“흠…”
화인 그룹의 본사 건물에 올라가던 나는 침음을 삼켰다.
전투 자체는 순조로웠다.
적은 비록 높은 격을 가진 전승으로 무장한 수십이 넘는 마인이었지만.
놈들은 능력을 사용하는데 그리 익숙하지도 않아 보였다.
그야 탑에서 전승을 얻었다면 시간이 많이 지나지는 않았을 테니, 당연한 이야기.
그래서 놈들은 상대하는 것은 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공격은 단단한 백호의 분신이 받아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누비며 서연의 발톱이 마인들을 찢었고.
이를 가까스로 버텨낸 남은 찌꺼기들은 허공을 춤추는 신기들에 갈려나갔다.
그것도 모자라 이글거리는 주작의 화염이 일어나 건물 내부를 쓸어버렸으며, 사납게 날뛰는 청룡의 전격은 마인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
그렇게 몇 개의 층이 금방 정리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쓰러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깨끗하던 사무실은 폐허로 변했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화랑의 퇴마사들도 대부분 전투로 사망한 상태였다.
척 보기에도…화랑의 피해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전부 진입해라!”
나는 그렇게 길을 뚫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대기 중이던 나머지 경찰 병력들이 건물 안으로 밀어닥쳤다.
경찰에서 급한 와중에도 확실한 실력을 갖춘 자들만 뽑은 정예였다.
나머지는…저들에게 맡겨둘까.
어차피 남은 적은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대로 혹시 몰라, 그쪽으로 백호와 서연만을 보냈다.
대신 나는 나에게 연락을 취했던 이현아를 찾아 움직였다.
그렇게 도착한 본사 31층.
이현아는 전무실, 즉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진유나도 보였다.
다만,
“죽어라!”
그곳에서는 두 여자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니었다.
같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다섯 명의 마인들.
놈들은 이현아와 진유나를 포위한 채, 그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진우 씨…!”
그 앞에서 세검을 들고 힘겹게 저항하던 이현아가 나를 발견했다.
그녀의 왼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현아는 초조함이 담겨 있던 시선으로 마인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나를 발견하고 대번에 밝아졌다.
그리고 그건 이현아의 옆을 지키던 진유나 역시 마찬가지.
비서인 제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였는지, 진유나의 부상은 이현아보다 훨씬 심했다.
항상 깨끗하던 정장은 엉망으로 찢겨 나갔고, 온몸은 피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오른쪽 다리의 부상이 심각했다. 무릎 바로 아래가 맹수에게 뜯어먹힌 것처럼 뼈까지 드러나 있었다.
그럼에도 진유나는 여전히 이현아의 옆을 지키고 서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마인들 중 하나가 그 시선을 눈치챘다.
놈들이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경찰…? 저 새끼들이 벌써-”
내 제복을 본 마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어서 그들은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슈우욱!
놈들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허공을 날아든 신기였다.
백호의 권능으로 쏘아진 검과 창, 도끼가 순식간에 세 마인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참살당한 제 동료를 보고 남은 두 놈 중 한 놈은 경악했고.
“저 자식! 강진우다!”
다른 한 놈은 나를 알고 있었는지 그렇게 소리쳤다.
“그래, 내가 강진우 경정이다.”
하지만 빠진 단어가 있어 굳이 추가해주었다.
승진하고 나면 남는 건 계급장밖엔 없다는 서인나의 말을 가슴에 새긴 것이었다.
그러자 놈이 제 손에서 화염을 일으켰다.
시뻘건 불꽃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제법 거셌다.
또한 그 화염의 제어권은 주작의 권능으로도 뺏어올 수 없었다.
저건 주작과 동격, 혹은 그 이상의 격을 가진 전승이라는 말.
“쯧…”
나는 혀를 차며 땅을 박차고 나섰다.
전승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것들이 그 격만 높아져서, 은근히 귀찮아지기만 했다.
“온다!”
“죽여!”
이에 놈들은 각자의 무기를 쥐고 나를 맞았다.
화염을 두른 참격과 독액으로 보이는 검은 액체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하지만 놈들의 공격은, 내 일검에 그들의 몸뚱이와 함께 분쇄되었다.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머리 두 개가 땅으로 떨어져 굴렀다.
마인들을 전부 처리한 나는 그 뒤에 있던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와…주셨군요.”
그러자 진유나가 고맙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화랑까지 온 이유는 내 선의나 배려가 아닌, 직업 상의 의무였으니까.
“그야 신고받았으니까요. 그보다 부상이 심해 보이는데.”
“…아닙니다. 이 정도는-”
“유나 너, 가만히 있어.”
진유나는 멀쩡한 척을 하려 했지만, 이를 이현아가 만류했다.
그러자 진유나는 약간 기가 죽은 듯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적당한 부상이라면 일단 이들을 대피시켰겠지만.
진유나의 상태를 보아하니,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그 대처를 고민하다가, 곧 내가 가진 전승을 떠올렸다.
코셰이의 약물.
평범한 물을 치유 효과가 있는 약물로 변환한다는 전승이었다.
그걸 여기서 쓸 줄은 몰랐으나, 마침 그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볼 딱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나는 먼저 전무실에 있을 법한 정수기를 찾았으나…워낙 화려하게 부서진 탓에 정수기는 그 형상조차 남기지 못한 듯 보였다.
“혹시 물 있습니까?”
“물이요…?”
“예. 뭐든 상관없습니다.”
내 말에 이현아는 전무실 바깥에 있다는 비품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생수 한 통을 찾아 돌아왔다.
“팔 좀 내밀어 보세요.”
나는 먼저 이현아의 팔을 치료해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강한 고통이 동반된다면, 뼈까지 드러난 진유나를 상대로 쓰기에는 그리 적절하지 않았으니까.
“…네.”
내 말에 의아함을 표하면서도 이현아는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나는 거기에 전승을 적용한 물을 뿌렸다.
하지만 제 상처에 스며드는 물을 보고도 이현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안 아프세요?”
“네. 꽤 깊게 베였는데, 따갑지도 않아요. 어떻게 된 건가요?”
고통이 아니라, 반대로 마취 효과 같은 게 있는 건가.
게다가 그 치유 효과는 제법 빨랐다.
순식간에 상처가 사라지는 이세계의 포션 정도는 아니지만.
마치 죽순이 자라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치유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나는 이현아에게 내가 가진 코셰이의 전승을 설명했다.
“그런 전승까지 갖고 계셨군요.”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나는 남은 약물을 몽땅 진유나에게 부었다.
진유나 역시 별다른 고통 없이 제 다리에 스며드는 약물을 바라보았다.
“치료가…된 건가요?”
“그러길 바라야죠. 응급처치 한 것뿐이니까, 나중에 병원은 가보시고.”
이걸로 완치될지는 모르겠으나, 당장은 진유나가 스스로 걸어 다닐 정도만 회복하면 충분했다.
“일단 지금은 여길 빠져나갑시다.”
* * *
다음날.
경찰청의 대회의실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행색은 제각각이었다.
오늘 있을 회의에는 지방 경찰청장들은 물론 정식 기관과 외인 기관의 간부까지.
다양한 분야의 참석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회의를 주관하는 김준성 경찰청장은 곧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이곳에 모이게 된 이유가 뭔지는,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 말에 참석자들은 모두 침묵으로 동의했다.
첫 번째는 바로 어젯밤에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백산이 화인 그룹의 본사를, 그리고 GTW는 화랑의 지사를 일제히 습격한 것.
“백산과 GTW가 화랑을 공격했다니, 이게 사실입니까?”
“당연히 사실일세. 자네는 뉴스도 안 보나?”
LB 아카데미 간부의 물음에, 화인 그룹의 회장인 이성민이 답했다.
어제 있었던 습격의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화랑은 경찰의 도움으로 겨우 그들의 공세를 몰아내기는 했지만.
파괴된 건물과 사망한 수많은 사람의 신원까지는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파괴된 본사 건물의 처참한 풍경은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그나마 세간에서는 미상의 테러 단체 소행이라는 경찰의 발표를 크게 의심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이 순간 퇴마의 비닉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가 보더라도 자명한 것이리라.
“그 피해가 말도 못하네. 죽은 직원들에게는 내가 다 면목이 없어!”
“허…”
이성민의 호령에 LB 아카데미의 간부는 한숨을 흘렸다.
그만큼 믿기 힘든 일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라 한국에서, 그것도 두 곳의 대기업계 외인 기관이 국가 자체를 적으로 돌려 버리다니.
하지만 믿기 힘든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교가 자신들의 존재를 정식으로 공표했다고 들었습니다.”
교회의 지파장, 에스더가 말했다.
이에 김준성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교는 오늘 새벽, 자신들을 해방자라고 칭하며 전 세계의 정부와 조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탑을 세웠고, 이번 공격을 주도했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실제 테러 단체처럼 그런 자신들의 행위를 자랑하듯 발표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누구도 그들을 단순한 테러 단체로 규정할 수는 없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거기에 지원하는 세력이 한둘이 아니라지요?”
그건 법당에서 나온 사람의 말이었다.
사교는 자기 혼자 무대에 올라서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과 뒤에서 손잡고 있던 다른 세력들을 같이 수면 위로 부각시켰다.
거기에는 백산과 GTW 그룹을 포함해서, 전 세계의 기업계 퇴마 단체는 물론.
심지어는 개발도상국의 정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전승으로 포섭했을 겁니다.”
“그렇겠죠. 전부 퇴마에 있어서는 뒤처져 있던 세력뿐이지 않습니까.”
“그럼…이 기회에 아예 사교와 손을 잡고 판을 뒤집을 생각이라는 겁니까?”
정식 기관에서 나온 셋이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들의 말대로 사교와 그 동조 세력의 의도는 명확했다.
탑의 강력한 전승을 이용해 퇴마의 비닉을 개방하는 것은 물론.
그렇게 변화한 세상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잡겠다는 것이었다.
“…건방지군요.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노골적인 에스더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김준성의 말이 이어졌다.
“어쨌든…이로써 이번 화랑과 다른 두 기업 간의 사건은 가볍게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건 그들이 준비한 시험대입니다.”
그 말에 몇몇 참가자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김준성의 말뜻을 곧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사교라고 모든 세력을 포섭한 건 아닐 겁니다. 그들은 전승을 손에 쥐고 있지만, 그 위력을 증명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번 화랑 사건은 놈들이 탑의 전승이라는 무기를 선보일 실전 테스트라는 거죠. 퇴마에 대한 억제력이 강한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 사교를 등에 업은 두 외인 기관의 반란이 성공한다면…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클 테니까요.”
“……”
잠시 회의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의 말대로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이는 기존의 퇴마사들이 사교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에 회의실의 분위기는 한층 더 무겁게 변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최소한 여기 계신 분들은 퇴마의 비닉에 동의하며, 사교에 협력하지 않으실 분들입니다.”
그 말에 에스더는 새삼스럽게 동석한 자들의 면면을 바라보았다.
경찰과 정식 기관은 어차피 사교와 적대할 것이니 패스.
그녀가 주의 깊게 본 것은 외인 기관의 대표였다.
그들 중에는 분명 적으로 돌리면 안 되는 거물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정작 외인 기관의 거물이라고 할만한 두 명의 얼굴은 이곳에 모두 있었다.
그건 어제 화랑과 함께 싸웠다던 만복 사무소의 한시예와.
“저분이 여기 계실 줄은 몰랐군요.”
킬러의 대표, 유아연이었다.
에스더의 시선을 받은 유아연은 야릇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어머, 너무하네. 내가 어때서?”
“…몰라서 물으시는 건지?”
차갑게 내뱉듯 말한 에스더는 시선을 김준성에게 옮겼다.
“이 중에 배신자가 있을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대놓고 유아연을 저격하는 말에 김준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단지 에스더의 고집이 아니었다.
다른 참가자들조차도 유아연에게 향하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야 유아연은 어떤 면에서는 마인보다도 믿을 수 없는 자였으니.
하지만 김준성은 유아연이 이곳에 있는 까닭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정 대표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녀…아니, 킬러에게는 사교를 적대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이유?”
“퇴마의 비닉이 사라진 세상에서 킬러가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
그 말에 에스더는 입을 다물었다.
킬러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생각하면…과연 그 말대로였으니까.
그리고 이에 못 박듯, 유아연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청장님 말처럼 바퀴벌레 같은 우리는 양지에서는 못 살아. 그래서 우리는 언제까지고 퇴마가 음지에 처박혀 있기를 원하지. 그래야 우리가 그 어둠 속에서 시체를 뜯어먹으며 살 수 있지 않겠어?”
정말 퇴마의 비닉이 벗겨지고, 모든 사람의 퇴마의 존재를 알고 그 힘을 사용하는 날이 온다면.
더 이상 킬러가 외인 기관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유아연은 직시하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마인은 특수한 위협이 아닌, 그저 평범한 범죄자에 불과해질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지금처럼 마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처럼 폐쇄된 사회가 아닌 완전히 개방된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사람이 킬러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으리라.
“후우…”
그것을 이해한 에스더는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처음 의심을 드러냈던 그녀조차 이 사교와 얽힌 일에서만큼은 킬러의 진정성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곳의 누구보다도 저들에게는 퇴마의 비닉이 절실했다.
이어서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별다른 불만이 나오지 않자, 김준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본격적으로 대책을 논의하겠습니다.”
그 말에 참가자들의 눈에 진지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날 회의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