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79
179.
각 기관의 간부들이 경찰청에서 한창 떠들고 있을 시각.
나는 하룻밤 사이 처참하게 파괴된 화인 그룹 본사에 와 있었다.
싸움은 끝났지만, 사망자의 시신을 회수하거나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를 찾는 등.
어제 있었던 습격의 뒷수습을 위해서였다.
“…여긴 끝났고.”
그렇게 아래층부터 하나씩 정리하며, 거의 모든 층이 정리되었을 때.
경찰이 통제하고 있던 현장 내부로 잘 아는 얼굴이 들어왔다.
“강진우 씨?”
화랑의 주인인 이현아였다.
그녀가 이곳에 온다는 연락을 받은 적은 없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어떻게 오긴요. 저희 건물인데.”
“아, 그건 그렇네요.”
“농담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사건 현장인데, 좀 무리해서 들어오긴 했죠. 그냥 멍하니 있을 수는 없어서요.”
이현아는 그렇게 말하며 콘크리트 가루가 떨어진 책상 위를 손으로 쓸었다.
잠시 쓸쓸한 감정이 그녀의 눈동자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보니 강 경정님께는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요.”
“그런 말은 됐습니다. 그냥 할 일 한 건데요, 뭐.”
“…그러신가요.”
“그보다 진유나 씨는 괜찮습니까?”
“덕분에요. 코셰이의 약물이라고 했던가요? 정말 좋은 전승이더군요. 벌써 멀쩡하다며 고집을 피우는 걸, 겨우 달래서 병원에 집어넣고 오느라 고생했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미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로감이 가득한, 겨우 만들어낸 억지 미소였다.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는 곧 천천히 말을 이었다.
“혹시… 생존자는 있었나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죽은 시체라면 모를까.
생존자가 건물 어딘가에 있었다면, 내가 놓쳤을 리는 없었다.
“하아…”
그러자 이현아에게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무래도 그녀는 이 처참한 광경을 보며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었다.
사망자들이라고는 해도, 나에게는 그저 얼굴도 모르는 화랑의 퇴마사들이지만.
그녀에게는 그들 하나하나가, 자신과 함께 일하던 부하 직원이었다.
또한, 참혹하게 파괴된 이 사무실은 그녀의 직장이었고.
그러니 지금 이 풍경을 바라보는 그 심정은, 결코 나와 같을 수는 없으리라.
“……”
그렇게 이현아는 한동안 부서진 책상만을 노려보았다.
그동안 그녀는 이를 악물기도 했고,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그러면서 눈가는 점점 촉촉해졌지만… 끝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조금 전보다 결연함이 깃든 눈동자로 이현아는 입을 열었다.
“저는, 복수할 거예요.”
“……”
“백산… 아니, 그 사교라 불리는 인간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어요.”
그 자신을 향한 선언과 같은 말을, 나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겨우 이 난장판에서 시선을 뗀 그녀는 손을 털고 나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이현아는 평소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런데 강 경정님이 여기 계셔도 되는 건가요?”
“안 될 이유가 있습니까?”
“할아버지께 들었어요. 이번 일에 대해 각 기관이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있다고요.”
그건 나 역시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아는 의아하다는 듯 물음을 이었다.
“참석하지 않으셔도 되는 건가요?”
“제가 거기 있어봐야 뭐하겠습니까.”
“그래도 사교에 관해서는…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신데.”
“그런 건 아마 별 의미 없을 걸요?”
그 회의의 결과는 보나 마나 뻔했다.
상대는 이미 전면전을 걸어왔다.
그러니 그 대책이라고 해봐야, 결국은 힘 싸움으로 가겠지.
결국, 모든 기관은 각자 병력을 투입할 테고, 거기서조차 알량한 알력 다툼이나 하며 적당히 시간을 낭비할 것이다.
나는 그저 그 꼴이 보기 싫었을 뿐이었다.
내가 이를 설명하자 이현아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 경정님은 그런 자리가 익숙하신가 보네요?”
“익숙까지는 아니고, 그냥 몇 번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을 뿐입니다. 그보다…”
나는 문득 이현아에게 물어볼 만한 물음이 떠올랐다.
그건 어제 내가 처리한 백산과 화랑의 지사를 공격했다는 GTW 그룹에 대한 것이었다.
“백산이 그리스 신화의 전승을 썼다고 하셨죠?”
“예.”
듣기로는 제우스의 전승을 가진 놈을 만복 사무소의 한시예가 쫓아갔다고 하던데, 결국은 놓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놈을 중심으로 백산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12신의 전승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역량에 비해 너무 격이 높은 전승.
하지만 지사를 쳤다는 GTW 그룹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럼 GTW는요?”
“저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이미 생존자들에게서 보고는 올라왔어요. 분명… 발트 신화의 전승을 사용한다더군요.”
발트 신화?
소위 발트 3국이라 불리는 지역의 신화로, 그리스 신화에 비하면 다소 마이너한 전승이었다.
그래서 의외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백산이 그리스 신화라는, 인지도와 세계관 면에서 유명하고 강력한 전승을 사용하는 만큼.
GTW 역시 이에 필적하는 인도나 이집트 전승을 사용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저희 쪽으로 올라온 정보라도 필요하시다면 전부 드릴게요.”
“아, 그럼 부탁 드립니다.”
어차피 잠시 후면 경찰에서도 공유되겠지만, 빨리 볼 수 있다면 나야 좋았다.
이현아는 곧바로 폰을 통해 나에게 그 데이터를 넘겼다.
그리고 그게 전송되는 사이,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강 경정님.”
“예?”
“혹시 신기가 더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갑자기 날아든 묘한 질문에 나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이현아를 바라보았다.
“왜요?”
“놈들이 지하에 있던 신기 보관실을 건드리지 않았거든요. 몰랐다기보다는, 알면서도 안 건드렸을 거예요. 그들에게는 이미 좋은 무기가 있으니까. 그래서 드리려고요. 이제 사용할 사람도 별로 없어서.”
이현아는 쓰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대답이 되지 못했다.
쓸 사람이 없어서 그냥 주겠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러자 이현아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냥… 강 경정님을 돕고 싶어요.”
“그러니까, 왜요?”
“당신은 사교의 가장 큰 적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이현아에게서는 평소와 같은 가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으나, 그 목소리만큼은 미약한 열기를 띄고 있었다.
분노에 이성을 잃은 것은… 아닌가.
이현아의 눈빛은 지금도 냉철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절 복수에 이용하겠다는 겁니까?”
“이용이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내 직설적인 말에도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은 하지 않을게요. 저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해진 강진우 씨가, 사교를 박살 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한심하게도 말이죠.”
이현아는 옅은 냉소를 지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하는 비웃음.
기세 좋게 복수하겠다고 떠들어놓고서는, 차마 자기 손으로 놈들을 쳐부수겠다고는 말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그러나 그런 이현아의 분위기는 그 직후 반전되었다.
자조하던 표정 위로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 단단한 가면처럼 씌워진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이번 일로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소중한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나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러니 너무 노여워하지 말아 주세요.”
이현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딱히 화를 낸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갑작스러운 친절의 의도를 알고 싶었고.
그렇게 알게 된 그녀의 의도는… 내 생각보다 순수했다.
그녀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복수를 위해서 적의 적을 돕겠다니.
나로서도 거절할 필요가 없는 친절이었다.
“그럼 좀 있다 한번 들러볼게요.”
내 말에 이현아는 텅 빈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지지부진하던 경찰과 기관장들의 회의가 결국 결론을 내놓았다.
예상대로 그들은 사교와 이에 협력한 모든 세력을 마인으로 규정했으며.
그중 이번 사건을 일으킨 백산과 GTW 그룹을 상대로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결행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그 토벌 작전은 전례가 없을 정도의 대규모 공습으로.
놈들의 본사는 물론, 지방 곳곳에 퍼진 지사와 연구소 등을 동시에 타격하는 전면전이었다.
이에 따라 모든 정식 기관이 동원되었고, 작전에 참여하는 퇴마사의 수만 네 자릿수에 이르렀다.
경찰에서는 그야말로 전쟁이 따로 없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 와중에도 정작 내가 할 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켕!”
경찰차 안, 적적해서 옆자리에 불러놓은 서연이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기분 좋게 울었다.
꼬리는 어느새 한 개가 더 늘어나 일곱 개가 된 서연의 레벨은 이제 70.
웬만한 퇴마사나 마인은 물론, 괴이까지도 압도하는 레벨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흰여우와 함께, 전라북도에 있는 GTW 그룹의 연구소를 향하고 있었다.
산속에 위치한데다 모든 인력을 다 통틀어도 100여 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는, 본사에 비하면 극히 소규모의 연구 단지였다.
그래서 사실 이번 작전에서도 그리 중요하게 여겨진 요충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굳이 오늘 이곳에 오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퀘스트의 화살표가 여기를 가리키고 있었을 뿐.
“저건가.”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린 산등성이 위로 달빛을 반사하는 하얀 돔형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는 나도 백산이든, GTW 그룹이든 그 본사 공략에 동원될 계획이었다.
지금 그 두 기업의 전력은 각자의 본사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그것은 일종의 도전장이었다.
대놓고 본사에 대규모의 병력을 집중했음을 드러내고, 경찰을 부른 것이다.
이는 놈들이 그만큼 정면승부에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였고.
또 그렇게 정면승부를 벌여 승리한 후,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사교의 계산이 깔려있었다.
그래서 그 자신감을 깨부수기 위해 경찰은 강력한 퇴마사들의 힘을 집중했다.
듣기로는 경찰청장을 비롯한 90 레벨이 넘는 퇴마사 셋이 본사 공략에 투입되었다던가.
굳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파격적인 전력이었다.
그러니 분명 오늘 밤에 있을 최고의 격전지는 아마 그 두 곳이겠지.
“그런데도… 화살표는 저기를 가리켰단 말이지.”
나는 말없이 전방을 가리키고 있는 하얀 화살표를 보며 말했다.
퀘스트의 의도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격전지에는 충분한 병력이 있으니 내가 없어도 이길 수 있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저곳에 뭔가가 있다는 의미인지.
“아저씨! 무슨 고민 있어?”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바로 옆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연이 어느새 여우가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꼬리가 하나 늘어나며 조금 더 성장한 서연은 지금 중학생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뭐, 성장한 건 좋은데.
사람이 그렇듯, 서연 역시 점점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있었다.
“내 허락 없이는 사람으로 변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 그랬어.”
“근데?”
“하지만 아저씨가 아저씨랑 둘만 있을 때는 그래도 된다고 했어.”
“……”
그리고 보니,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살짝 뻘쭘해진 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저기에 갈 거야.”
“저기?”
“그래, 저기. 오늘도 싸워야 할 텐데, 괜찮겠어?”
이제는 말 못하는 짐승의 수준을 벗어났기에.
나는 서연이 싫어한다면, 굳이 전투에 동원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 근본이 구미호이기 때문일까.
“응, 괜찮아! 싸우는 거 재미있어!”
그녀는 웬만한 사람 이상으로, 유난히 호전적인 기질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선녀인데다 곧 신선이 될 아이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런 걱정도 들었지만, 본인이 좋아한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도 없었다.
“그래, 곧 도착한다. 잠깐 자고 있어.”
“응~”
경찰차는 연구소 근방에 멈춰 섰고, 서연의 소환은 해제되었다.
높은 벽과 시야를 차단하고 접근을 막는 결계로 둘러싸인 연구소.
하지만 결계의 시야 왜곡은 나에게 통하지 않았기에 내게는 그 안이 훤히 보였다.
늦은 밤이지만 아직 연구소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연구소 안에는 수많은 레벨 표시 역시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좀 많네?”
레벨 표시는 마인 밖에 보이지 않는다.
즉 지금 연구소에는 정작 연구원이 없고, 마인들만 득실대고 있다는 뜻.
경찰의 대대적인 진압 작전이 목전에 왔다는 것은 저놈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 정도의 병력을 굳이 이곳에 빼놨다는 건.
“여기에 뭐가 있긴 한가 보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무장을 확인했다.
나에게는 지금 두 자루의 검과 하나의 활이 있었다.
먼저 항상 갖고 다니는 인검과 그 반대편에 차고 있는 단검.
그건 화랑의 이현아가 내준 레어 등급의 신기였다.
언뜻 보기에는 은장도처럼 생긴 단검으로 사실 무기로서의 성능은 평범한 편이었다.
하지만 어둠 속은 물론, 투척 되었을 경우 제 모습을 은폐한다는 능력이 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 단검에게 바라는 역할은 비수였기에.
매번 땅에 떨어진 신기를 주워 날리는 것보다 백호의 권능을 요긴하기 쓰기 위해, 마침 적당한 신기를 가져온 것이었다.
거기에.
내 등에는 활도 있었다.
단검보다 한 단계 높은 에픽 등급의 활로, 화랑이 갖고 있던 신기 중에서도 특히 좋은 물건이었다.
이 신기에 실린 전승은, 고구려 시대의 장수였던 괴유.
큰 키에 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는 그의 기록대로 화살의 파괴력을 더욱 끌어올리고, 사정거리를 크게 늘려주는 활이었다.
물론 이 활에 실려야 할 태양의 화살은 외신 전용의 전승이기에, 저놈들을 상대로 사용할 일은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교와도 연이 있는 놈들이었으니, 만약을 대비한 것이었다.
“그럼…”
나는 그런 무기 중에 먼저 단검을 손에 들었다.
평범한 단검이지만 그것은 백호의 권능을 받아 내 손에서 화살처럼 쏘아졌고.
곧 맹렬한 파열음과 함께, 연구소를 뒤덮고 있던 결계를 깨뜨렸다.
그러자 수많은 레벨 표시들이 일제히 시뻘겋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