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80
180.
백산의 본사 근처.
높은 빌딩 사이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사제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바닥에 새기고 있는 것은 히브리어.
정확히는 히브리어로 된 성경의 구절이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은폐와 적막, 또 신을 모시는 성막.
이어서 그 새겨진 글자는 옅은 빛을 발하며 성물과 이어졌다.
“곧 장막의 준비가 끝난다고 합니다.”
“음…”
누군가의 보고에 이를 지켜보고 있던 경찰청장, 김준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이 백산 공략에 투입된 것은 경찰청장과 한시예, 그리고 경찰 병력이다.
그리고 GTW 그룹에는 킬러의 유아연과 교회와 법당의 전투 병력이.
마지막으로 지방의 지사들을 습격하는 데에는 LB 아카데미의 주선아 이사장과 그 병력들이 포함되었다.
전력의 균형은 물론, 사교의 특성을 고려한 배치였다.
한시예와 유아연은 강력하면서도 전승보다는 자신의 이능을 주로 사용하는 퇴마사다.
그래서 전승을 부정하는 사교의 힘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기에.
그 둘을 각각 본사에 하나씩 배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전력을 구성한 것이었다.
“그럼 다들, 준비를.”
김준성은 자신의 옆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그의 복장은 평소와 같은 경찰 제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빌딩 숲의 풍경과는 상당한 이질감이 있는 고대 한국의 갑옷.
정확히는 해모수라 불리는 위인이자, 신의 무장이었다.
“…예.”
한편 그의 말에 교회의 수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 옆에 있던 한시예 역시 자신의 능력을 발현했다.
평상복을 입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빛 무리와 함께 변했다.
잠시 후 그곳에 나타난 것은 새하얀 갑옷을 입은 백기사.
거기에 그 손에는 성검이라 불리는 최상급 신기, 아론나이트가 들려 있었다.
그걸 보며 김준성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한시예가 들고 있는 저 검은 진짜 아론나이트가 아니다.
영국에서도 국보급으로 취급되는 그 보물은 영국의 저명한 퇴마사가 여왕에게 직접 하사받아 보유하고 있다.
즉 저것은 한시예가 자신의 능력만으로 재현한 성검.
그러나 그 능력은 분명 아론나이트 본체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걸, 그 성검을 직접 본 적이 있는 김준성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능력이군요.”
한시예의 능력에 대해서는 경찰청장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변신이라고 했던가.
자신의 이상을 육체에 투영한다는, 다소 모호한 개념의 능력이었다.
“후후, 그래도 청장님만 하겠어요?”
김준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능력은 신기하다기보다는 특수하다.
수많은 위인의 전승 중에서도, 오직 해모수의 전승에 한해 그 효과를 크게 증폭시킨다는 능력이었으니.
마치 해모수가 그의 전생이라도 되는 것 같은 능력이었지만, 처음에는 그 때문에 꽤 고생했었다.
그야 해모수의 전승이나 그 신기를 얻지 못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능력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아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현존하는 모든 해모수의 신기와 전승을 수집했고.
그 모든 효과가 능력으로 강화되어, 이제 그는 해모수의 본신이 현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다.
그 강함을 인정받아, 경찰의 우두머리인 이 자리까지 올라올 정도였으니.
그때.
백산의 건물이 깜빡이듯 딱 한 번 점멸했다.
모세의 성막이라 불리는, 강력한 결계를 지닌 교회의 성물이 활성화되었다는 뜻이었다.
“…좋아. 그럼 시작하지.”
이에 김준성은 곧바로 작전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가장 먼저 백산의 본사 건물로 달려간 이가 있었다.
그건 인천경찰청장인 최덕철.
이어서 그의 주변에서 해태와 뇌수, 인면조와 신록 등.
십수 마리의 영물과 신수를 비롯한 환상종이 나타났다.
처음은 식신을 사용해 입구를 연다는, 경찰의 작전대로였다.
“식신의 숫자가 늘어난 건 물론 영력도 더 짙어진 것 같네요. 얼마 전까지는 은퇴하시겠다던 분이.”
그것을 보며 한시예가 말했다.
어느새 훨씬 더 발전해 있다는 말이었지만, 김준성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씀을. 저놈은 아직 멀었습니다. 주선아 이사장님의 발끝이라도 따라갔으면 좋겠는데.”
“그분은…규격 외가 아닐까요?”
한시예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도교 최고신, 원시천존의 전승을 사용하는 주선아.
그녀는 팔괘와 태극을 사용한 자체적인 주술을 사용하여 그 본신의 힘도 뛰어나지만.
그녀가 진정 인정받고 있는 것은 소환술이었다.
36천강 72지살로 불리는 도교의 108 흉성.
그 불길한 별들에는 각각의 신이 깃들어 있고, 도교의 세계를 지배하는 원시천존의 전승은 그 신들을 불러내 부리는 것이 가능했다.
신수나 영물도 아니고 식신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108 별의 신을 부르는 능력.
가히 단독으로 군단을 형성할 수 있는 그 능력 덕분에, 이번 작전에서도 주선아는 지방에 퍼진 백여 개의 지사를 동시에 공격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니 아무리 최덕철이라고 해도, 그런 주선아와 비교하는 것은 너무한 일이었다.
콰아아아앙!
한편 최덕철의 식신은 이제 막 백산의 정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견고한 성문의 안쪽에서는 번개와 화염이 날아들었지만.
번개를 먹는 뇌수와 화염을 먹는 해태가 그 앞을 막아서며 적절히 대응했다.
이대로라면 입구를 여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터.
“실전은 꽤 오랜만인데.”
그것을 직감한 김준성은 전투태세를 갖추고 전진했다.
용이 내뿜는 빛을 담았다는 해모수의 용광검이 그의 손에 들렸다.
그 시각.
30분 거리에 떨어진 GTW 그룹의 본사에서는 그와 비슷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퇴마사들이 마인과 부딪힌다.
빌딩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블록은 전부 전장이 되었고, 그 속에서는 신기한 환수들과 온갖 주술이 난무했다.
그리고 그런 정신 없는 전장 위로, 은은하게 빛나는 창을 든 금발의 수녀가 있었다.
모니카였다.
“크억…!”
그녀의 창에 꿰뚫린 마인 하나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사이, 모니카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원수를 찾기 위해서였다.
과거, 모니카의 가족을 폭사시키고 비극의 씨앗이 된 마인.
그가 이 GTW 그룹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 정보의 출처는 바로 강진우였다.
바로 어제 경찰에는 각 기업에 소속된 퇴마사와 마인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었고.
거기에 과거 도플갱어라고 불렸던 마인이 포함되어 있음을, 그가 모니카에게 직접 알려준 것이었다.
정작 여기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모니카는 괘념치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이기에.
그 누구에게 의지해서도 안 되고, 의지하고 싶지도 않았다.
“……”
하지만 그래도…같은 전장에 있었다면 마음만은 편하지 않았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하던 모니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잡념을 털어낸 그녀는 다시 살기가 번뜩이는 눈으로 자신의 원수를 찾아 움직였다.
* * *
“생각보다 엄청 많네.”
GTW의 연구소에 들어선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주변에는 수십에 이르는 마인이 널브러져 있었다.
당연히 나와 서연이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흠…”
나는 꽤 유용하게 사용한 새로운 무기, 월광비도를 회수했다.
생각보다 이 비수는 다대일 전투에서 유용했다.
서연과 내가 놈들의 진영을 휘젓는 사이.
잘 보이지도 않는 검이 뒤에서부터 날아오니, 웬만한 마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점이라면 스스로 의지를 갖고 있는 건 아니라 계속 움직임을 신경써줘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이 정도의 효과라면 충분히 그 정신력을 투자할만했다.
“이제 남은 건…”
나는 연구소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아직 움직이지 않은 레벨 표시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레벨은 60 정도로,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그리 편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GTW가 얻었다는 발트 신화의 전승.
그 전승이 예상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웠기 때문이었다.
발트 신화에는 다른 신화가 으레 그렇듯 원소를 지배하는 신들이 있다.
불의 여신 가비야나 대지의 여신 제미나, 번개의 신 페르쿠나스처럼.
그런 신들의 전승은 전투에 동원하기에 가장 직관적이고, 또 강력하기에.
나는 당연히 여기에 있는 놈들 역시 그런 전승을 보유하고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
이곳에 모인 마인들은 운명의 여신 달리아나 망자의 여신인 벨리오나 등.
다소 특수한 전승을 사용하는 놈들이었다.
달리아의 전승은 내가 보는 앞에서 내 인검의 검로를 휘게 했고.
벨리오나의 힘은 그럼에도 끝내 내 검에 맞아 죽은 제 동료의 몸을 다시 일으켰다.
나름대로 내 의표를 찌르고 들어온 전승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움직이지 않는 저 한 명이 마음에 걸렸다.
이번에는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저리 혼자서 숨어 있는 걸까.
“…가보면 알겠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연구소 안쪽의 커다란 방으로 향했다.
만약을 대비해, 일단 서연은 소환 해제했다.
지잉-
연구소의 문은 자동으로 열렸다.
그곳은 흔한 연구실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기계들과 컴퓨터, 그리고 종이 쪼가리로 가득 채워져 있는 방.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안경을 쓴 한 남자였다.
“……”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공포도, 절망도 없었다.
자신의 동료가 모두 나에게 참살되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극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누군가 했더니, 너였군.”
“너?”
“그래, 강진우. 네가 이곳에 올 줄은.”
역시 남자는 나를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최근 마인…특히 사교에게는 내가 꽤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으니.
“그래서, 뭐하자는 거냐?”
“뭘 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단지, 침입자의 정체를 알고 싶었을 뿐.”
남자는 여유 있게 웃었다.
그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곧바로 검을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그 직전, 남자의 말이 먼저 들려왔다.
“그러니 이제 돌아가라.”
“뭐…?”
내가 되물은 그 순간이었다.
부지불식 간에 시야가 뒤바뀌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치 TV 채널을 돌린 것처럼 순식간에 눈에 보이던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여긴…연구소의 바깥인가.
하지만 변한 것은 풍경만이 아니었다.
연구소의 결계는 여전히 견고했고, 그 안으로는 레벨 표시가 보였다.
내가 죽였던 마인들이 전부 되살아난 것이었다.
“뭐야, 이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환상 따위는 아니었다.
그런 종류의 디버프는 나에게 통하지 않으니.
그래서 나는 차분히 다른 단서를 살폈다.
어느새 검을 쥐고 있던 내 손은 텅 비어 있었다.
그 손에 있어야 할 인검은…다시 검집 안에 있다.
검을 집어넣은 기억은 없는데.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인들을 죽일 때마다 쌓이는 의 개수가 확 줄어 있었다.
딱 연구소에 진입하기 전의 숫자로.
설령 죽은 놈들을 다 부활시켰다고 해도 내가 수집한 죽음이 줄어들 이유는 없다.
이래서야…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과 같지 않은가.
“음…?”
시간.
시간이라.
그러자 떠오르는 여신의 이름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제거티.
제거티는 발트 신화 속 시간의 여신이다.
현실과 과거, 미래를 오고 간다는 그 여신의 전승이라면…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만.
“쉽지 않을 텐데?”
시간에 관여하는 전승은 그 재현이 극히 힘든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실상 미래시나 과거시 등, 겨우 보는 것만 가능할 뿐.
시간을 돌리는 짓거리 따위는, 아예 그 성공 사례가 없다.
그런데…이놈들은 그 전승을 끝내 구현했다는 건가?
“…보면 알겠지.”
나는 시선을 다시 연구소 안쪽으로 돌렸다.
다른 마인들의 움직임은 이전과 같았다.
나에게 죽었다는 기억조차 남지 않은 건지, 그저 조용할 뿐.
그래서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만약 정말 놈이 시간을 되돌렸다면, 조금 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터이니.
그리고 그 예상대로.
“저 새끼…!”
60 레벨의 레벨 표시 하나가, 갑자기 연구소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놈이 도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보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연구소에 들어가는 대신 바로 그쪽으로 따라붙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박스를 들고 뛰는 놈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딜 도망가려고.”
어두운 밤하늘 위로 벼락 구름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구름은 하늘 위에서 놈을 저격하듯, 새하얀 섬광을 총알처럼 격발했다.
콰르르르릉!
사나운 천둥소리와 함께, 섬뜩한 전격이 놈에게 내려꽂히는 그 순간.
“음…?”
갑자기 그 벼락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전승이 부정된 것이었다.
“사교의 힘까지 쓰고 있었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아무리 전승을 부정해봐야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내 검으로 썰어버리면 되는 일이니.
“네가 왜 여기에…”
그때 남자가 나를 발견했다.
그는 곤란하게 됐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방향을 잘못 잡았나!”
“잘못 잡긴. 내가 놓칠 거라 생각했냐?”
“뭐…?”
그 말에 이번에야말로 그의 눈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나를 기억하나?”
“방금 전에 봐놓고는 뭔 소리야.”
나는 그 말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이 놈의 목젖에 닿기 직전.
갑자기 시커먼 어둠이 남자의 몸을 휘감았다.
훙!
그 직후 인검의 날이 그 어둠을 베어 갈랐으나, 손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없었다.
모종의 전승을 사용하여 내 검을 피한 것이었다.
“쯧…!”
이를 눈치챈 내가 혀를 찬 그 찰나.
풍경이 다시 뒤바뀌었다.
내가 서게 된 곳은 연구소의 외벽.
나는 곧바로 놈이 또 시간을 되돌렸음을 인지했다.
“이 새끼가 진짜…”
두 번이나 눈앞에서 도망간 놈을 향해, 나는 짜증을 담아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로써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먼저 그놈이 사용하는 전승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이미 첫 번째 도주 시도가 실패했음에도, 내가 다시 이 시점으로 돌아온 것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다음은 놈이 사교의 전승을 사용한다는 것.
“그렇다면…굳이 가줄 필요도 없지.”
나는 괴유의 활을 꺼냈다.
그리고 거기에 태양의 화살을 실어, 활시위를 당겼다.
다른 마인은 몰라도.
사교의 전승을 사용한 놈에게만큼은 이 외신을 죽이는 화살이 그 힘을 발휘할 터.
“저기 있구만.”
또 다시 놈의 레벨 표시가 움직였다.
이번에는 조금 전에 움직였던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는 놈.
하지만 내 활 끝은 곧바로 그를 정조준했다.
목표와 나 사이의 거리는 Km 단위였지만, 괴유의 활에게 그 정도의 사정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곧이어 외신의 흔적을 발견한 태양의 화살이 먹이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맹수처럼 사납게 섬광을 내뿜었다.
나는 그 시위를 놓아, 맹수를 풀었다.
그러자 태양의 화살은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쏘아졌고.
퍼억!
그 태양의 이빨은 그대로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시간을 되돌릴 틈도 없이 터져나간 상반신과 함께, 놈의 시체가 바닥을 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