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81
181.
도망치던 마인이 쓰러진 후.
나는 연구소로 발길을 옮기기 전에, 놈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내 눈으로 직접 놈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흠…”
사교의 전승은 물론, 시간에 관여하는 전승까지 사용했던 마인이었다.
놈이 다루는 힘은 다른 마인들과는 분명 질이 달랐고, 그럼에도 다소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놈의 심장을 내 화살이 관통했다는 걸 직접 보았음에도, 혹시나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뒤지긴 했는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놈의 사망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심장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뻥 뚫린 상반신은 그의 물리적인 죽음을 증명하고 있었고.
그 마인에게서 수집되는 죽음과 추출되는 영혼 역시 그 판단에 힘을 실어주었다.
죽은 것 자체는… 틀림없는 모양.
그래도 설마 되살아날까 싶어, 주작의 불꽃을 일으켜 놈의 시체를 흔적도 없이 태웠다.
그 후에야 나는 죽은 마인 옆에 떨어져 있던, 하얀 상자 하나에 눈길을 주었다.
“이건…?”
그건 길이가 50cm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납작한 종이 상자였다.
죽은 마인이 도망치면서도 끝까지 제 손에 들고 있던 유일한 물건.
뭔진 몰라도 그냥 여행 가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주워보니, 그 무게는 제법 묵직했다.
이를 열어보니, 안에 있던 것은 푸른 보석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시곗바늘이었다.
이건…사파이어인가?
몸체를 이루는 것은 바다 빛을 담은 사파이어.
그리고 그 주변을 황금이 장식하고 있었으며 드문드문 각종 보석까지 박혀 있었다.
다만 그건 지금 산산조각으로 깨져 있었는데, 이를 노려보자 눈앞에 아이템의 설명 창이 나타났다.
– 제거티의 바늘이 소모되고 남은 흔적. 이렇다 할 가치는 없다.
아이템 판정을 받는 걸 보니, 단순한 호화품은 아닌 모양.
다만 그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원래는 제거티의 바늘이라는 신기였던 것일까.
거기에 소모되고 남은 흔적이라니.
이미 일회용인 이 바늘을 누군가 사용했고, 이건 그 찌꺼기라는 말이 아닌가.
“이놈이 쓴 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그렇게 중얼거린 그때였다.
갑자기 그 부서진 바늘이 흔들리나 싶더니, 이내 빛 무리로 변해 나에게 흡수되었다.
마치 내가 금서를 얻었을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
뜻밖의 일에 나는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상자를 놓아버렸다.
하지만 이미 텅 비어버린 그것은 가벼운 무게 탓에 바람을 타고 흐느적거리다가, 결국 얌전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동시에 시야 한구석에 있던 로그 창이 올라갔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다소 의아했다.
히든 퀘스트?
그런 게 있는 줄 이제 처음 알았다.
거기에 보상이라고 나온 건… 시스템의 제한 완화.
그냥 단어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직후, 이를 직접 보여주겠다는 듯 퀘스트 버튼이 반짝였다.
“음…?”
평소에 보던 퀘스트의 내용과는 과연 사뭇 달랐다.
메인 퀘스트나 서브 퀘스트가 아니라면 내용도 거의 표시되지 않고, 달랑 화살표만 보여주던 게 보통이었건만.
이제는 퀘스트의 목표는 물론, 친절하게도 경고까지 표시해주며 나를 닦달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더 좋아진 것 같기는 한데.
문제는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이 시곗바늘은 도대체 뭐고, 왜 이걸 얻었더니 퀘스트가 달라졌다는 건가.
“……”
하지만 잠깐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퀘스트의 목표에 주목했다.
이 시곗바늘은 원래 저 연구소에 있었다.
그러니 퀘스트에서 회수하라는 저 자료에는, 당연히 이 신기의 정체가 드러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연구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커…억!”
나에게 두 번이나 죽임을 당한 마인들을 뒤로 하고, 연구소의 가장 안쪽 방에 들어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와 PC들이 놓인 테이블.
그 풍경은 내가 처음 봤을 때와 변함이 없었다.
자료는… 여기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는 건가.
분명 그럴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렇다고 여기 있는 자료들을 내가 하나하나 뒤지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퀘스트가 곧바로 회수해야 할 PC 하나를 강조 표시해주었다.
거기에 퀘스트 창에는 하드 디스크만 뽑아가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첨부되어 있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극히 명료했다.
그렇게 나는 그 자료를 금방 손에 넣었다.
다만 이걸 내가 직접 열어보는 것보다는, 경찰에 넘기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다.
GTW 그룹 수준의 대기업이라면 분명 사내 보안 시스템 같은 게 있을 테니.
그런 생각을 하는데, 퀘스트 버튼이 반짝이며 그 내용이 바뀌었다.
“이건 또 뭐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앞에 떠오른 창을 노려보았다.
거기에는 새로운 퀘스트와 함께 제한 시간이 나타나 있었고, 시간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패널티까지 빠짐없이 표시되어 있었다.
다만 내 눈에 띈 것은 바로 그 패널티의 내용.
“…우리가 질 거라고?”
거기에는 이번 작전의 실패가 예정되어 있었다.
* * *
“으아악!”
“끄으으으…”
비명과 신음이 끊이지 않는 GTW 그룹의 본사 27층.
그곳에서 킬러의 대표, 유아연은 탁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본래 깨끗한 사무실이었던 그곳은 지금, 유아연에게서 뻗어나온 검은 진흙에 침식되어 있었다.
벽도, 천장도, 바닥도, 그곳에 있던 각종 가구들도, 어둠에 잡아먹힌 듯했다.
마치 낯선 외계 행성과 같은 풍경.
거기에 그 진흙 위로는 손바닥만 한, 뒤틀린 다리가 수도 없이 달려 끔찍하게 생긴 벌레들이 수도 없이 기어 다녔다.
“역겨운 년…!”
그냥 보기에도 혐오감을 일으키는 광경에 유아연과 마주 선 마인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곧바로 그 마인을 화염을 일으켰다.
강철조차 단숨에 녹여버릴 정도의 열기가 좁은 사무실에서 열풍을 불러왔다.
마인은 그대로 그 화염을 폭발하듯 터뜨리며, 검은 진흙을 불태우려 했지만.
그 순간, 사방에서 도사리고 있던 진흙이 갑자기 해일처럼 일어났다.
그제야 마인은 눈치챘다.
자신이 진흙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검정이, 전부 작은 벌레들이었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마인의 화염보다도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린 그 검은 벌레의 군체가 마인에게 쏟아졌다.
“으아악!”
그렇게 또 한 명의 마인이 벌레에 뒤덮여 시야에서 사라졌고, 이를 유아연은 무감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가진 능력은, 공간 침식.
무한히 생성되는 벌레들이 공간 자체를 먹어치우며 그녀만의 영역을 생성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폐쇄된 건물 내부에서의 전투는 그녀의 특기였다.
하지만.
“…이상하네?”
유아연은 맥없이 쓰러지는 GTW의 마인들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두 대기업과의 전쟁이 시작된 지도 벌써 몇 시간 째.
하지만 그 전투의 구도는 일방적이었다.
탑의 전승을 얻은 백산과 GTW 소속의 퇴마사들은 분명 강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외인 기관의 퇴마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교회와 법당의 퇴마사와 비교해도 우월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퇴마사들 간의 이야기였다.
유아연 본인을 비롯하여, 경찰 측에는 겨우 강한 전승을 얻은 정도로는 결코 역전할 수 없는 상식 외의 강자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그 강자들에 의해, 두 기업의 퇴마사 세력은 사실상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나쁠 게 없었지만.
유아연은 이런 상황 자체가 수상하게 느껴졌다.
이 전쟁을 시작한 것은 기업, 그리고 사교 쪽이었으니까.
그런데 사교도 기업도, 경찰이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하지 못했을까?
“절대로… 아니지.”
유아연은 그렇게 확신했다.
사교는 킬러에게도 협력을 요청해 왔었다.
그들이 내민 카드는 탑의 전승과 새롭게 바뀔 세상에서의 권력.
하지만 유아연은 그들을 믿지 못했고.
그래서 그 포섭에 넘어갈 듯 말듯 줄을 타며, 그들에게서 정보만을 뜯어냈다.
결국 그 의도가 들통 나서 사교의 접촉이 끊어지기는 했지만.
대신 유아연은 그만큼 사교에 관한 많은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아연에게는 지금 이 구도가 너무나도 수상쩍게 느껴졌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놈들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제 모습을 세상에 공개한 이 첫 무대를, 이렇게 허무하게 망친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무언가 있었다.
그래서 유아연은 아직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꼭대기 층을 바라보았다.
“30층이었지?”
유아연이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그녀의 의식 속에 문득,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쪽으로 시선을 향할 필요도 없었다.
유아연이 집어삼킨 공간은 그 전체가 그녀의 의식과 다를 게 없기에.
또한 지금 그녀가 침식한 공간은 27층만이 아닌 25층부터 29층까지다.
그리고 이제 막 25층에 발을 올린 인기척의 주인은 유아연도 어렴풋이 아는 얼굴이었다.
“수녀?”
그건 교회의 수녀, 모니카였다.
이에 유아연은 잠시 의아함을 품었다.
유아연이 공격하고 있는 이곳은 다른 퇴마사들의 접근이 제한된다.
그녀가 가진 능력의 특성상, 어설픈 자들의 도움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기에.
미리 각 조직에 경고와 같은 언질을 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모니카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유아연의 영역에 발을 딛고 있었다.
이 검은 진흙에서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꿋꿋이 유아연이 서 있는 이곳을 향해서.
“……”
모니카는 최근 교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다 금발 벽안의 외모로 주변에서는 꽤 이목을 끄는 퇴마사였지만.
유아연에게는 쓸만한 인물, 그 정도의 인식밖에는 없다.
그래서 유아연은 금세 모니카에게서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때마침.
그녀의 벌레들이 마침내 꼭대기인 30층에 진입했다.
이내 그 벌레들은 유아연의 눈과 귀가 되어, 그 안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먼저 들려온 것은 어떤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유아연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홍민승 회장.
이 GTW 그룹을 이끄는, 40대의 비교적 젋은 회장이었다.
그는 앞을 향해 계속해서 고함을 내질렀다.
“사제님! 당신들이 절대 패배할 리는 없다고 장담하지 않았습니까!”
회장 앞에 있는 것은 두 명의 남녀였다.
여자 쪽은 유아연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남자 쪽은 잘 알고 있었다.
도플갱어.
자신이 죽인 시체의 껍질을 쓰고 살아갈 수 있다는, 기분 나쁜 능력을 가진 마인.
그는 회장의 호통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만.
대신 이름 모를 여자가 먼저 회장에게 다가갔다.
“너무 걱정할 건 없습니다. 회장님.”
“일이 이렇게 됐는데 걱정할 게 없다니? 그 미친년이 바로 아래까지 왔는데!”
그 대화에 유아연은 소리 없이 웃음을 흘렸다.
그 미친년보다 더 미친 짓을 벌인 게 누구인데,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그런데 그 순간.
그곳에 선 여자와 유아연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찌 된 영문인지 여자는 어둠 속에 숨어든 그녀의 수많은 벌레 중 하나를, 직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여자는 이에 반응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책은 있습니다.”
“대책? 그게 뭐요?”
“저희라고 저들이 가진 힘을 몰랐겠습니까?”
그 지적에 회장의 흥분이 다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불만이 있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진작 그 대책이라는 걸 내놓지 않고 뭐했습니까? 몇 시간 만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죽었는지는 아는 거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여자의 말에 회장은 움찔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아니, 이렇게 되기를 바랐다는 듯한 목소리였기에.
“그야 그 대책에는 많은 죽음이 필요하거든요.”
“뭐… 뭐요?”
회장이 되물었다.
하지만 여자는 대답 대신, 그저 환한 미소를 보일 뿐.
그것이 어떤 신호였을까.
“커헉…!”
한 자루의 검이 회장의 심장을 꿰뚫었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던 도플갱어의 짓이었다.
이어서 그는 쓰러지는 시신을 제 품으로 껴안듯 받아들었다.
얼마 안 있어 회장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
그렇게 축 처진 시체를 도플갱어는 빤히 바라보다가, 제 손을 그 심장에 찔러넣었다.
그러자 쩌저적-하는, 인간의 껍질을 벗겨 내는 피육음이 조용해진 회장실 안을 채웠고.
얼마 안 있어 그곳에는 죽은 회장과 똑 닮은 또 다른 사람과, 여성만이 서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당신의 그 능력은 쓸모가 많군요. 그리고… 그의 죽음도 말이죠.”
땅바닥에는 가죽이 벗겨진 끔찍한 형상의 시신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는 대량의 피가 고급스러운 목제 바닥에 퍼져 나가고 있었고.
그 피 웅덩이 안에서 불현듯, 무언가가 움직였다.
이를 보며 여자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우리가 할 일은 끝났군요.”
“그런데… 정말 남은 놈들을 막을 수 있나?”
도플갱어가 말했다.
땅을 기는 것처럼 낮은 그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당신도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요?”
“……”
“한번 지켜보세요. 벌레나 부리는 여왕개미는, 단숨에 밟혀 죽을 테니.”
여자는 다시 한 번, 유아연를 보며 냉소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아연도 참고만 있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 있니?”
바로 다음 순간.
유아연가 직접 그 여자와 도플갱어 앞에 나타났다.
이미 30층은 그녀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영역에서의 순간이동은 그녀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곧바로 그늘 속에 있던 벌레들이 튀어나와 여자와 도플갱어를 덮쳤다.
하지만,
“물론이에요.”
이를 되받아친 여자의 미소와 함께, 피 웅덩이가 솟구쳤다.
새빨간 피의 파도와 시커먼 벌레의 대군이 허공에서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