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82
182.
자료를 회수하고 곧바로 내가 향한 곳은 GTW의 본사가 있는, 서울의 시가지였다.
그곳에서 뭔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예고하는 듯한 퀘스트의 내용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장 주변으로 다가서자, 거기에 설득력을 실어주듯 경찰차의 무전에서는 정신없이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 7 기동팀에서 본부에 전달. 현재 모세의 성막이 부정된 것을 확인. 2차 결계 확인 바람.”
“현재 2차 결계 일부 손실을 확인. 현장에서 1km 반경 밖에 새로운 은닉 술식을 설치 중.”
“본부에서 현장에 알린다. 정체불명의 괴이가 작전 지역에 출몰. 전승 부정을 확인. 일시적으로 작전을 중단하고, 전 인원의 접근을 금지한다. 다시 한 번 반복한다. 현재 정체불명의 괴이가 작전 지역에-”
거기서 들려오는 내용은 대충 들어봐도 심상치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계획대로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
거기에 정체불명의 괴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왜인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 아까부터 기준 속도를 크게 초과하고 있는 차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내가 탄 경찰차는 그나마 최신 기종인지라, 차량은 그런 내 무리한 요구에도 묵묵히 따르며 텅 빈 도로를 질주했다.
그러자 이내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 작전에 동원된 퇴마사들이었다.
작전 지역 외곽으로 나와 있는 그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부상자였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현장 안쪽으로 향했다.
점점 눈에 보이는 퇴마사의 숫자가 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윽고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차량을 세웠다.
높기보다는 드넓고 웅장한 크기의 GTW 그룹 본사.
원래라면 옅은 황금색의 유리로 반짝였을 그 건물은, 지금 핏빛으로 덮여 있었다.
“…저게 뭐냐.”
반쯤 무너져내린 건물의 꼭대기 층에서부터 시뻘건 핏자국을 남기며 지상으로 내려온 것은 거대한 괴물이었다.
이목구비는커녕 팔과 다리라는 구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괴마.
하지만 그 전체 높이는 20미터에 이르렀다.
또한, 형태는 심해에 사는 해파리의 머리에 두꺼운 다리를 셋 붙여 놓은 것 같았는데.
유독 징그럽게 보이는 그 피부는 시뻘건 핏물, 그 자체였다.
탑에서 보았던 신의 옥체와 비슷한 느낌.
그리고 그 정체는 친절하게도 레벨 표시에 나와 있었다.
시스템의 제한이 풀렸다는 것 때문인지, 그 이름까지 표시된 덕분이었다.
미제라는 이름의 괴물.
한편 그 옆에는 어떤 남자의 모습도 보였다.
그의 외견은 GTW의 회장이었으나, 그 머리 위에 뜬 이름과 레벨은 내가 알고 있던 회장의 것이 아니었다.
도플갱어.
아무래도 놈이 GTW의 회장을 죽이고 그 모습으로 변한 모양이었으니.
“@#%$@#$%!@$%”
그 때 사산아 미제가 울부짖었다.
칠판을 수백 개의 손톱이 긁는 듯한,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그 소음 안에는 또 다른 힘이 깃든 건지.
이를 들은 주변의 퇴마사 중 몇몇은 거기에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지기까지 했다.
또한,
기존의 전승을 부정하는 이계 신의 힘이 놈에게서부터 터져 나왔다.
동시에 내가 가진 전승의 절반이 회색빛으로 변하며 비활성화되었고, 반대로 외신 전용의 세 전승은 제 빛을 되찾는다.
한편 그런 이계의 존재와 맞서고 있는 것이 있었다.
유아연.
지금 그녀는 꿈틀거리는 어둠 속에서 홀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이 GTW 본사 작전의 주력은 그녀였던가.
유아연의 능력에 대해서는 나도 들은 기억이 있다.
수많은 벌레로 공간을 침식하고, 침식한 공간 내부에서는 만능에 가까운 힘을 발휘한다는 괴상한 능력.
그리고 그 능력 때문인지, 유아연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97이라는, 독보적인 레벨 수치를 달고 있는 것은 어둠 속에 어렴풋이 그려진 인영.
즉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있을 뿐인 벌레의 군집이었다.
“…제법이군, 킬러의 수장.”
그런 유아연을 향해 도플갱어가 말했다.
이계의 괴물, 미제를 제 아군으로 삼고 있는 그는 수많은 적에 둘러싸인 이 전장에서도 지극히 여유가 넘쳐 보였다.
“설마 전승도 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여기까지 버틸 줄은.”
그의 목소리와 함께 미제가 움직였다.
슈악!
놈이 흩뿌린 핏물이 부채꼴을 그리며 마치 검기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유아연에게 닿아, 그 몸뚱어리를 사정없이 베어 갈랐다.
하지만 유아연은 쓰러지지도 아파하지도 않았다.
마치 액체처럼, 핏빛 칼날에 휩쓸린 부분이 자연스럽게 또 다른 벌레로 채워질 뿐.
그리고 그녀는 냉소를 지었다.
“너 따위가, 나를 평가하는 거니?”
유아연의 사방 몇 미터만을 점거하던 검은 공간이 폭발하듯 팽창했다.
한순간 만에 그곳에 들어선 것은 또 다른 거대 괴수.
이어서 두 붉고 검은 괴수가 서로 부딪혔다.
“%#$%#$%#”
괴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미제가 먼저 무너진 건물의 파편을 유성처럼 던졌다.
하지만 회오리처럼 몰아친 유아연의 어둠은 그 거대한 콘크리트를 초 단위로 분쇄했고.
그것도 모자라 미제의 두꺼운 촉수를 갉아 먹으려 들었다.
그러자 벌레와 닿은 촉수에서는 피가 폭포처럼 터져 나왔고.
그건 그대로 핏빛 채찍이 되어 이번에는 유아연이 있는 공간을 난도질했다.
콰과광!
눈 먼 공격이 지면과 부딪히며 묵직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무식하게도 싸우네.”
양쪽 모두, 기교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전투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오고 가는 공격의 무게만큼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저 공격이 스친 것만으로, 건물은 반파되고 가로수가 이쑤시개처럼 부러져 나갔으니.
그때, 그런 전장의 구석에서 나는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
“저건…”
그건 모니카였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눈앞에서 벌어지는 괴수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낯빛은 더없이 어두웠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은 아니었다.
저 앞에서 유아연과 맞서고 있는 도플갱어는 그녀가 퇴마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이자.
지금까지 모니카가 오랜 시간 찾아왔던 가족의 원수였다.
그런데 그런 도플갱어를 앞에 두고서도, 지금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성물의 전승이 저 이계의 괴물 앞에서는 부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쯧…”
이에 나는 조용히 괴유의 활을 꺼내 들었다.
활이 가진 전승 역시 그 격이 깎여나간 상태였으나, 상관없었다.
목표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으니.
한편.
미제와 유아연, 그 둘 사이의 전세는 분명 길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서로의 공세가 날카롭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서로의 공격이 각자 치명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래서 퀘스트가 실패한다는 거였나.”
나는 혀를 차며 태양의 화살을 활에 걸었다.
유아연은 자신이 만든 영역 내에서, 불사의 특성을 가진 듯 보였다.
그렇기에 미제가 아무리 유아연을 죽이려 한들, 그녀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핏물로 이루어진 듯한 육체는 거대한 바다처럼 결코 벌레에 갉아 먹히지 않는다.
아무리 씹고 물어뜯어도 빗물이 강으로 모여들듯,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재생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저 둘은 실로 닮은 능력을 가진 셈이었지만,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결국, 무한한 재생 능력을 가진 저 둘 간의 전투는 무의미하다.
그렇기에 도플갱어는 머지않아 그 사실을 깨달을 거고.
그 즉시 공격의 목표를 유아연에게서 다른 쪽으로 돌리겠지.
그리고 그건 당장 미제를 막지 못하는 경찰에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 괴물이 지금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결계를 박살 내고, 그 너머의 민간인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그 이후 어찌저찌 미제를 처치한다고 한들, 이 전쟁은 퇴마의 비닉을 유지하지 못한 경찰의 패배로 기억이 될 테니.
“……”
이를 눈치챈 것일까.
미제 옆에 서 있던 도플갱어가 유아연에게서 눈을 떼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도플갱어는 잠시 내 손에 들린 활과 그 시위를 팽팽히 당기고 있는 태양의 화살에 주목했다.
그 직후 놈이 눈치챘다.
모든 전승이 부정된 이 공간에서 내 전승만은 아무렇지 않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놈은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이미 시위를 쥐고 있던 손가락을 놓아버렸으니.
소리도 없이, 아니 소리보다 빠르게 빛이 쏘아졌다.
그리고 그 빛은 이형의 괴물과 부딪히며 막대한 섬광을 일으켰고.
시야가 잠시, 하얗게 물들었다.
* * *
눈앞에서 두 거대 괴수가 벌이는 상식 외의 전투에도, 모니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파괴력과 압도적인 힘에서 그녀는 공포나 두려움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그녀의 의식 속에는 그저 진한 무력감과 자책만이 가득했다.
“……”
모니카에게서 부모를 빼앗고 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동생을 죽이게 한 원수, 도플갱어.
그에 대한 복수는 모니카가 가진 인생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니카가 그를 쫓은 시간은 무려 10년이 넘었다.
또한, 그녀는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스스로 퇴마사의 길을 택했으며.
그가 한국에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곧바로 고국을 떠날 만큼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 모든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퇴마사가 되는 것은 매 순간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있어야 했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외모부터 문화까지, 그녀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곳이었기에.
하지만 모니카는 결국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단순히 그녀의 노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특히 그녀의 가장 큰 벽을 치워주었고, 도플갱어가 오늘 이곳에 나타난다는 단서까지 알려준 강진우에게는 특별한 고마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니카는 의욕이 넘쳤다.
오늘에야말로 도플갱어를 처단하고, 그 도움에 보답하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
하지만 정작 지금.
도플갱어를 앞에 둔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전방에서 맹렬한 파열음과 함께 거대한 풍압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전장에서 싸우는 것은 광포한 두 괴수.
그리고 그 앞에서 모니카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성물의 전승이 부정돼서?
아니,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모니카도 사교의 힘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자신이 있었다.
설령 성물이 힘을 잃는다 해도, 단지 창과 본신의 힘만으로 도플갱어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강진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착각이었다.
망상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헛소리였다.
지금 모니카의 앞에서 날뛰고 있는 저 괴물은 그녀가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령 전승이 부정되지 않고 온전했더라도, 모니카는 결코 대적할 수 없었을 괴물.
도플갱어는 그런 것을 제 식신처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분했다.
너무나도 큰 차이에 할 말조차 없었다. 불만을 내뱉지도 못했다.
그저 너무나도 분해서, 피가 나도록 입술만 깨물었다.
그런데 그때.
“-!”
어디선가, 빛이 날아왔다.
어둠과 핏물로 가득하던 시야를 가르고, 그것은 마치 태양처럼 빛났다.
그리고 그 빛은 맹렬하고 찬란한 섬광이 되어 온 세상을 비추고 동시에 괴물을 찢었다.
“xx@$%#$”
그러자 괴물이 울부짖었다.
그것은 위협이나 경고가 아니라, 처음으로 들어보는 저 괴물의 고통에 찬 괴성이었다.
하지만 그 섬광은 한번이 아니었다.
빛이 연속해서 폭발했다.
그것이 터질 때마다, 핏빛 괴물은 비명을 질렀다.
이에 그 옆에선 도플갱어의 얼굴이 변한다.
모니카보다도 훨씬 강한 유아연을 상대로도 자신만만하던 놈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제야 모니카의 의식 속에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도대체 누가, 저 괴물을 물러서게 한 걸까.
그리고 또 한 번의 빛이 반짝였을 때.
비로소 모니카는 그 빛을 쥔 남자를 발견했다.
그 얼굴을 본 그녀의 동공이 커졌다.
활에 빛을 실어 쏘는 그의 얼굴에는 이렇다 할 표정도 없었다.
저런 괴물을 앞에 두고도, 마치 당연한 일을 한다는 태도였다.
또 저 남자인가.
모니카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다음 화살을 활시위에 걸던 그의 시선이 불현듯, 그녀와 마주쳤다.
“…!”
이에 순간적으로 모니카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 보이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제 원수를 코앞에 두고도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이 현실이, 죽을 정도로 창피했으니까.
하지만 모니카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지극히 담담했다.
그저 길을 가다 만난 것과 같은 눈빛.
그리고 그는 모니카를 향해 무언가를 말했다.
거리가 멀어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모니카는 그 입 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봐.”
기다리라니, 도대체 뭘?
그때 또 한 번의 섬광이 폭죽처럼 터졌다.
어느새 핏빛 괴물의 몸은 절반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괴물은 여전히 괴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살아 있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전투의 우위는 확실했다.
그와 동시에.
“어…?”
그녀가 쥔 창, 모세의 지팡이가 힘을 되찾았다.
전승을 부정하는 사교의 힘이 약해진 것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도플갱어가 핏빛 괴물을 버려두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설마-하는 생각에 모니카는 강진우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의 담담한 시선은 아무말 없이 그녀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에 모니카는 벅차오르는 감정과 함께, 땅을 박찼다.
그녀는 건물 그림자로 숨어드는 도플갱어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