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83
183.
온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붉은 괴수가 비틀거렸다.
땅을 딛고 있던 그 본체는 이미 2/3 이상이 소실되었다.
그 어떤 공격에도 꿈쩍하지 않던 핏빛 액체가, 맹렬하게 폭발하는 태양 빛에 전부 타버린 탓이었다.
이윽고, 끝내 그 손실을 버티지 못한 괴수의 한쪽 촉수가 무너져 내렸다.
그와 함께 핏빛 액체를 지탱하여 신체를 구성하던 모종의 힘이 사라지고.
쏴아아아!
시뻘건 핏물이 폭포처럼 땅으로 터져 나왔다.
그건 마치 지옥에나 있을 법한 피의 강을 도시 한복판에 그려놓았지만.
그것이 미제라는 이름의 거대한 괴마가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놈은 그 드넓은 핏자국을 끝으로 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
놈의 소멸을 확인한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모니카의 모습은 이곳에 없었다.
미제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파악하자마자 도주한 그녀의 원수, 도플갱어를 따라간 것이었다.
기왕이면 그 마무리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도 싶었으나, 그 궁금증은 일단 참아두기로 했다.
자신의 가족을 위한 사적인 복수에,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으니.
무엇보다 지금의 모니카라면 도플갱어 따위에게 패배할 리가 없었다.
설령 강한 전승을 갖게 되었다 해도, 전승 부정의 영향에서 벗어난 모니카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닐 테지.
그래서 나는 고개를 한번 젓고, 의식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나는 내가 든 활을 바라보았다.
“…활도 괜찮네.”
이계의 괴물을 처리한 태양의 화살.
그 위력은 실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비록 쏟아부은 영력만큼 위력이 강해지는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영력을 소모했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설마 활만으로 놈을 끝장낼 수 있을 줄은.
그것도 겨우 45의 신성으로 이 정도의 위력이었다.
이는 탑에 있을 때보다 2배 가까이 강해진 셈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신성을 더욱 끌어올릴 경우, 아직 더 강해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15라…”
그 기대대로 지금 로그 창에는, 이번에 얻은 신성이 표시되어 있다.
올라간 신성 수치는 15.
이로써 나는 총 60의 신성을 챙기게 된 셈이었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결과.
그때였다.
바로 근처에서 누군가의 인기척과 함께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쉬워라.”
그건 유아연이었다.
어느새 평소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는 조금 전의 혈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유아연은 내 손에 든 활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게 필요했었는데.”
“활이요?”
“활이 아니라, 네 화살.”
유아연의 말에 나는 금방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나예네즈가니의 힘이 깃들어 있던 권총 형태의 신기를 두고, 이현아가 경매에서 경합했던 상대는 바로 유아연이었다.
그때는 왜 그러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유아연 역시, 그 신기의 진가를 꿰뚫어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게 돈 좀 많이 모아두시지.”
딱히 내 돈으로 산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비아냥거렸다.
유아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할 말이 없는지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혹시 봤니?”
“뭘요?”
“여기에 있던, 다른 여자.”
이 현장에 여자가 한둘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유아연의 말이 이어졌다.
“저 빨간 괴물을 불러낼 때만 해도 있었는데… 없어졌단 말이지.”
이어서 유아연은 자신이 보았던 여자의 외모를 설명했다.
GTW 그룹의 회장을 죽이는 과정에 일조했다는 그 사교의 여자는, 언젠가 내가 만났던 사교의 사절과 비슷했다.
간부급처럼 행동하는 걸 봐서는, 아마 높은 확률로 동일 인물이겠지.
“죽은 회장은 그 여자를 사제라고 불렀어.”
“저도 만나본 적은 있는 사람 같네요. 여기서는 못 봤지만.”
“그래? 건방진 년이라, 한 번 그 눈깔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유아연은 아무렇지 않게 미친 소리를 하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경찰 일은 할 만 한가 봐? 승진까지 하고.”
그녀의 시선 끝에는 똑같은 모양이 하나 더 늘어난, 내 계급장이 있었다.
“뜻밖이야. 나는 네가 석 달도 못 버틸 거라 생각했거든.”
“왜요?”
“넌 우리랑 비슷한 사람이니까?”
스킬 때문인가.
내게 적대하는 인간을 구분하게 하는 특성인 ‘인간 사냥꾼’은 악 성향의 인간에게 호감도가 상승한다는 부작용이 있었으니.
하지만… 유아연의 직감은 단지 그것만은 아닌 듯 보였다.
하기야 신입 퇴마사 중에서도 진성 사이코패스만 귀신같이 찾아낸다고 하니, 이와 관련된 능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뭔 소리를 하십니까.”
그러나 나는 시치미를 떼고, 폰을 들었다.
이제 이 전장에는 사교는커녕 기업 소속의 마인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이 정도면 GTW 본사의 전투는 종료된 셈.
다만 작전 지역은 하나가 아니었다.
백산의 본사에서도 분명 이곳에 나타났던 괴물과 비슷한 놈이 출현했을 터.
그래서 나는 폰을 보는 척하며 퀘스트 창을 확인했지만.
“음?”
거기에 새로 추가된 퀘스트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말은 괴물이 여기에만 나타났다는 말인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보는 척만 하고 있던 폰을 조작하자, 메신저에는 백산 쪽에도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잠시 의문을 떠올린 그때, 유아연의 말이 이어졌다.
“백산 쪽은 신경쓰지 않아도 될 거야. 그 여자라면… 이길 수 있을 테니.”
그 여자?
사교의 괴물을 쓰러뜨릴 인물은… 딱 한 명뿐이었다.
바로 한시예.
그녀는 무엇보다 전승 부정에 대항할 수 있는, 자신의 이능을 주무기로 싸우는 퇴마사였으니까.
그리고 메신저의 내용을 살펴보니, 정말로 한시예는 백산 쪽에 나타난 괴물을 몰아붙이고 있는 듯 보였다.
“유능하시네요, 그분은.”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했고, 곧장 유아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물론 이것만으로 한시예가 유아연보다 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유아연은 그 능력의 특성상 대인전에 특화되어 있는 경향이 있었으니.
하지만 나는 그녀의 불만스러운 시선을 무시하고 등을 돌렸다.
또 다른 현장을 신경 쓸 일이 없다면, 내 일도 여기서 마무리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어디 가는 거니? 백산에는 안 가도 된다고 했잖-”
“퇴근하는 건데요.”
유아연의 말에 내뱉듯 답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은 일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들었으나, 나는 그대로 가던 길을 걸었다.
원래 나에게 맡겨진 임무는 GTW의 연구소를 처리하는 것뿐.
내가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사실 명백한 추가 근무였다.
“…집에나 가자.”
그래서 나는 이제 막 뒷수습이 시작된 현장을 보며, 일말의 재고 없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로부터 일주일 후.
그날 있었던 기업과 경찰의 전쟁은, 무사히 경찰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 결과 백산과 GTW는 외인 기관의 직위를 박탈당했고.
거기에 각 기업의 수장이 전부 사교에 의해 암살되어, 경제나 사회 쪽으로도 큰 파장을 몰고 왔다.
하지만 정작 경찰은 그 파장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사교가 터뜨린 눈앞에 있던 큰불은 겨우 저지했지만.
동시에 경찰과 정규 기관, 그리고 전 세계의 퇴마사들 역시도 사교의 진짜 실력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사교는 모든 전승을 부정하는 것도 모자라, 웬만한 괴이나 령보다도 훨씬 강한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하는 괴마까지 동원했다.
이를 겨우 이겨내기는 했지만, 그들의 전력은 기존의 퇴마사들에게 실로 위협적이었다.
만약 같은 전투가 다시 벌어진다면.
이미 한번 승리한 경찰이라도 외인 기관의 힘이 없이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경찰은 물론 사교에 반대하는 퇴마사들은 모두 그 대책에 골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전승 부정에 대한 대책.
그리고 나는 오늘, 바로 그 대책을 갖고 경찰청장인 김준성을 찾아갔다.
“자네에게 방법이 있다고?”
내 말에 대번에 그의 눈빛이 빛났다.
지난 일주일간, 경찰의 대표인 그가 얼마나 이 문제로 고민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니.
“예. 일종의 신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신기?”
“사교의 전승에 대항할 수 있는 신기죠.”
그건 내가 탑을 정복하고 보상으로 얻었던 레시피, 즉 항마의 세트였다.
반지, 목걸이, 팔찌, 그리고 장갑과 벨트.
이렇게 다섯 부위로 구성된 그 항마의 신기는 신성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침식 저항력을 높인다.
하지만 정작 신성을 가진 내가 쓸 수는 없었기에, 이걸 얻었을 때는 그다지 쓸모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난번 전투에서 뭔가를 깨달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교는 더 이상 작은 조직이 아니었다.
놈들은 이미 수많은 협력자를 얻었고, 그들을 바탕으로 하나의 세력을 구성했다.
앞으로 이를 상대하려면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개인이 아닌 조직이 움직여야 한다고 느꼈고.
그 결과 이 신기를 대량으로 제조해, 세상에 뿌리고자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런 신기를… 만든다니? 그게 가능한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나에게는 이제 팀이 있었다.
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교의 괴마, 미제를 쓰러뜨렸다.
그 때문에 나는 내 전력과 공로를 경찰은 물론 각 기관에게도 인정받았고.
그로 인해 내 팀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가 되어, 그 구성을 서두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가 각 기관에서 선별한 팀원은 총 넷.
먼저 교회에서는 모니카를 선발했다.
지난 전투에서 무사히 도플갱어를 처단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그녀는.
이제 모세의 지팡이의 여덟 번째 재앙까지 개방한 상태였다.
그래서 모니카가 가진 실력이나 성향, 또 잠재력을 고려한다면, 모니카를 선발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또 경찰에서는 최은영을 데리고 왔다.
여러 소환수를 다루는 그녀의 능력이 써먹을 곳이 많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법당에서는 차서현을 선택했다.
차서현은 비록 전투력은 부족한 편이었지만.
종교 단체의 강력한 퇴마사들은 대부분 광신도적인 구석이 있어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나마 멀쩡한 이소월을 불러오자니, 팀원이 아니라 상전을 모시는 기분이 들 것 같았고.
마지막으로 LB 아카데미에서 선발한 김다영은… 애초에 전투 역이 아니었다.
내가 그녀에게 부여할 역할은 다름 아닌 대장장이.
내 팀은 물론, 사교에 대항하기 위해 끝없이 장비를 찍어내야 하는 것이 바로 그녀였으니까.
“예. 일단… 시제품도 있습니다.”
“시제품?”
나는 김다영에게 레시피를 전수해주었을 때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김준성을 찾아오기 전.
나는 김다영에게 미리 항마의 세트 레시피를 전수하고, 이를 제작하도록 했다.
나야 제작 기능이 있어 아이템을 만들어 낸다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그것이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레시피의 전수는 간단했다.
나는 그냥 눈앞에서 레시피 전수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었다.
또한, 이를 전수받는 사람, 즉 김다영의 말에 의하면 그 과정은 머릿속에 책 한 권이 그대로 들어오는 느낌이라나.
하지만 그 레시피의 제작만은 그리 쉽지 않았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재료와 기술, 그리고 술식이 필요했고.
김다영은 다른 연구원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종일 그 제작에 매달린 결과, 항마의 세트 중 하나를 겨우 완성해서 그 시제품을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그 효과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물론 나는 이를 곧바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먼저 그렇게 만들어진 신기의 효과를 시험해봐야 했다.
항마의 세트는 각각 침식 저항력을 한 단계 올린다는 애매한 설명뿐인지라.
다섯 부위를 전부 착용해 저항력을 다섯 단계를 올려도, 전승 부정에 어디까지 대항할 수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팀원에게 이를 장착시키고, 그 효과를 직접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아직 남아있는 사교의 탑에서 말이다.
그런 내 뜻을 이해한 김준성은 무겁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이 시점에 사교를 다시 자극하는 것은 위험한 일인 건, 알고 있겠지?”
그의 염려는 이해가 되었다.
사교는 제 힘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한계 역시 보여주었다.
사교는 자신만만하게 올라섰던 자신의 데뷔 무대를 절반 정도는 망쳤다는 의미.
그러니 여기에서 내가 또 하나의 탑을 정복하기라도 했다가는, 눈을 뒤집힌 사교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경찰의 처지에서는 전승 부정에 관한 대책을 갖추기 전까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싶었을 테지.
하지만 지금 내 제안은 바로 그 대책과 그대로 연결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준성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렇다면 좋네. 이번 일은 내 권한으로 허락하지. 다만 그래도 자네가 갈 수 있는 탑은 한정되어 있어. 아직 외국의 정부들은 탑에 대해 중립을 유지하고 있네. 그들이 적대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게 설득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탑을 정복한 이후.
전 세계에서 사교의 탑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였다.
지금 경찰이 파악한 완성된, 그리고 건설 중인 탑의 개수만 총 열 하나.
그리고 그중에 특정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탑은 겨우 셋뿐이었다.
하나는 남극 깊숙한 곳에 있다는 탑.
다른 하나는 태평양 어딘가의 외딴 섬에 세워졌다는 탑.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그러니 서사하라로 가게.”
아프리카의 오지, 서사하라에 있었다.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데다 오래된 내전이 끊이지 않아 통제되지 않는 그 땅에 사교가 스며든 것이었다.
그렇게, 내 다음 일정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