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84
184.
그곳은 새까만 호수와 같은 곳이었다.
아래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둡게 물결치는 바닥.
그리고 그 위에는 7개의 하얀 대리석 기둥이 원형으로 꽂혀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옥좌가 새겨져 있었다.
그 외에는 하늘도, 벽도, 천장도 보이지 않는 검정뿐.
그러나 이곳은 신전이었다.
최소한 이 공간을 만든 자들, 사교에 의해서는 그렇게 불렸다.
그리고 그런 비현실적인 신전 속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나타났다.
“……”
로브를 뒤집어쓴 한 남자의 인영이 기둥의 옥좌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잠시 후, 또 다른 인영에 의해 기둥 끝의 의자가 하나씩 채워졌고.
금세 그곳에는 7명의 ‘사제’들이 모였다.
“…상황이 좋지 않다.”
인사말도 없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를 제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모두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첫 전쟁이 실패했다. 이의 있나?”
남자를 포함한 여섯 명의 시선이 한 명의 사제에게로 모여들었다.
그 시선을 받은 여자는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요. 저희는 명확히 패배했습니다.”
“그게 다야? 패배자치고는 너무 뻔뻔한데.”
이에 여자와 맞은 편에 앉은 또 다른 남자가 내뱉듯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물론, 처음 입을 열었던 남자 역시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워스트. 거친 말은 삼가라.”
“왜,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냐?”
남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워스트라 불린 사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애초에 말이야. 나는 신명도 받지 못한 반푼이가 우리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 하지만 너는 결국 저 무명을 받아들였고, 그 현실이 이거야. 아닌가?”
“그녀가 신과 접촉했다는 건, 우리 모두가 인정한 일이다.”
“그 신 자체가 이상하다는 말이야. 이름도 밝히지 못하는 신이라니. 처음부터 수상했어. 그런데 도대체 뭘 믿고 저 여자에게 첫 전쟁을 맡긴 거지? 저 무명은, 제 탑을 전부 짓지도 못하지 않았냐?”
이곳에 모인 일곱 명의 사제는, 일반적인 사교의 신도가 아니다.
사교의 창시자이기도 한 그들은 무엇보다 사교의 핵심인 이계의 신과 직접 소통하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각자 이계의 신에게 직접 그 이름을 들었고, 그 신명은 곧 사제 본인의 이름이 되었다.
이 남자가 워스트라고 불리는 이유도 그가 만난 신의 이름이 ‘최악의 하나’였기 때문.
그렇게 신명을 부여받은 사제는 특정 성지에서 그 신의 강림을 주도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이곳에서 단 한 명, 신과 접촉하고도 그 이름을 듣지 못한 이가 있었다.
바로 한국을 성지로 삼는 무명의 사제.
워스트는 이것을 비난한 것이었고, 그 말에 처음 입을 연 남자, 샤리타는 다소 목소리를 높였다.
“오래전에 합의된 사안이다. 우리에게는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고, 너 역시 찬성했었지. 그런데… 이제 와서 그 합의를 뒤집자는 건가?”
단호한 그의 목소리에 워스트는 혀를 차며 입을 다물었다.
그 팽팽한 긴장 사이에 가래가 끓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실험. 실험이 성공했어. 우리는… 신의 권속을 불렀다.”
그 말을 한 것은 어떤 노인이었다.
동남아 부근을 성지로 삼고 활동하고 있는 사교의 사제인 ‘우둔’.
그는 무명에게 제 신의 권속을 부르는 법을 직접 알려준 자였다.
“부르면 뭐해? 왕창 깨졌는데.”
이에 또 다른 여자, 오우스터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경박한 말투.
하지만 우둔은 고개를 저었다.
“어리석긴. 그것 역시… 성과다. 우리들의 신은 세계와… 법칙을 바꾸는 존재. 그런 신의 권속조차 이리 쉽게 쓰러질 거라고는… 예상했던 자가 있었나?”
신전에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의 말대로 이번 실패는 단지 무명의 실책에 의한 것이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한국의 공권력, 즉 경찰과 기관들의 전력이 예상치를 웃돌았기 때문이었고.
그 핵심은 신의 권속을 물리친 두 명, 한시예와 강진우였다.
샤리타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한시예는 예측 가능한 변수였다. 그래서 하나가 아닌, 둘을 준비했던 거고. 다만 문제는 강진우였지. 그의 전력을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
“아니요.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해요.”
샤리타의 말을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무명이었다.
이에 샤리타는 그 까맣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무명에게 향했다.
“반대?”
“강진우가 예측 가능한 변수였죠. 아니, 이 경우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라고 해야할까요.”
무명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는 완성된 탑을 무너뜨린 유일한 인간입니다. 제가 그 남자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분명 경고 드렸을 텐데요.”
이에 워스트가 표정을 굳혔다.
강진우에게 무너진 북유럽의 탑.
그것은 중유럽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을 성지로 삼고 있는 그의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탑에서 아무런 전승도 얻지 못했다. 스스로 거부했지.”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걸 왜 거부했을까요?”
“놈이… 우리의 의도를 알고 있다는 건가?”
그 물음을 무명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하지만 샤리타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아니요. 그건 모르는 일이죠. 그의 과거 기록은 보신 적 있으시죠?”
이미 탑이 무너졌을 때, 이들은 강진우라는 남자에 대해 한 번 주목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과거 행적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고.
특히 퇴마사가 된 이후의 활약이 얼마나 파격적인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명은 그런 퇴마사로서의 행적보다도, 다른 것이 눈에 밟혔다.
“그는 한때 자신이 이계의 용사였다, 그렇게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건 그가 퇴마사가 되기 전의 일.
그것도… 한낱 진료 기록으로 남아있던 내용이었다.
“물론 세상은 그 말을 그저 정신병자의 헛소리로 취급했지만… 여러분과 저만큼은 이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안 그런가요?”
“흠…”
그녀의 말에 샤리타는 침음을 흘렸다.
무명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이내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이계 신과 접촉했을 수도 있다는 건가?”
“그는 이번 전쟁에서 제거티의 바늘을 강탈했습니다.”
이어지는 말에 다른 사제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바늘의 소실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건 처음부터 이집트 신화 속 시간의 신인 토트의 전승을 재현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예비품에 불과했다.
그러나 토트의 전승은 성공적으로 재현되었고, 그 때문에 제거티의 바늘은 그 필요성을 잃어 그저 창고에 보관될 신세였다.
다만 그가 제거티의 바늘을 노렸다는 자체가 이들에게는 의문이었다.
시간과 관련된 그 신기는 지극히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두 개가 있다고 한들 쓸모가 없었고.
애초에 육체를 가진 인간은 사용할 수도 없다.
“이상하군. 그걸 왜?”
“그건 저도 모르죠.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역시 우리처럼, 계시를 받은 자 같이 움직인다는 거에요.”
“하지만… 그와 접촉했을 때는… 우리와의 협력을 거부하지 않았나?”
우둔의 말에 무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죠. 하지만 저희와 적대하는 또 다른 신의 세력이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지 않나요?”
“그건… 너무 비약이 심한 이야기야.”
“허튼 추정은 그만둬라, 무명.”
샤리타 역시 우둔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제 와서 적대하는 신이라니. 너무 근거 없는 소리였다.
“그래서 네 결론은 뭐지?”
“그를 당장 제거해야 해요.”
“당장? 무리한 요구로군.”
샤리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번 전쟁 이후, 숨을 골라야 하는 것은 경찰만이 아니었다.
패자인 사교 역시 당분간은 전력을 보충하고, 신도들을 안심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적을 암살하다니.
안 그래도 한국에서 크게 명예를 실추한 사교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어차피 탑은 모두 완성되었다. 신의 강림까지는 그리 머지않았지. 그리고 그때가 온다면, 그놈 정도의 변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 좀 닥쳐라, 무명.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 몰라서 그러냐?”
반박하려는 무명의 말을 워스트가 끊었다.
이에 무명은 입을 다물었고, 샤리타는 짧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무명의 요청은 기각한다. 과거의 일은 이제 되었어. 그보다, 미래의 이야기를 하지.”
그렇게 사제들의 회의는 그 화제가 전환되었고.
“……”
그 속에서 무명만이 서늘한 시선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어떤 결의가 깃들고 있었다.
* * *
김준성의 허락을 받고, 보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나는 투박한 군용 트럭처럼 생긴 차량에 타고, 한창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서사하라의 삭막한 황무지가 눈에 들어온다.
서사하라는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과 마주 닿아 있는 나라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사막을 달리고 있었지만, 한쪽 시야에는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있었다.
바다와 사막이 공존하는 묘한 풍경.
쿵!
그 풍경과 함께 차량이 크게 흔들렸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 그냥 포장은커녕 길도 나 있지 않은 황무지를 달리다 보니 종종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었다.
“아야…”
그 때문에 어디에 부딪히기라도 한 건지, 뒷좌석에 앉은 최은영에게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에 운전을 담당하던 차서현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길이 좋지 않아서, 조심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군요.”
“아… 아니, 아니에요.”
차서현의 사과에 최은영은 어색함을 잔뜩 담아, 고개를 휘저었다.
한편 차량에는 그 둘은 물론, 모니카까지 타고 있었다.
다만 모니카는 멀미라도 하는 듯.
“……”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미묘한 침묵이 지나갔고, 잠시 후 차서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강진우 경정님… 아니, 이제 팀장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호칭은 마음대로 하고, 왜?”
원래는 서로 존칭을 쓰던 사이였지만, 같은 팀이 되며 나는 반말로 바뀌었다.
그야 차서현의 말대로 이제는 내가 그녀의 팀장이 되었으니까.
“팀장님은 항상 이런 곳으로 출장을 다니셨던 겁니까?”
차서현은 묘한 시선으로 물었다.
이런 곳이라.
아마 이런 오지로만 다녔느냐. 그런 뜻이겠지.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의 무법 지대는 나도 처음이었다.
그냥 사회 인프라가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내전 국가라니.
“설마, 이런 곳은 나도 처음이야.”
“…그렇군요.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요.”
살짝 안심한 눈치로 차서현은 계속해서 운전에 집중했다.
물론 다른 탑들이 전부 이런 오지에 있으니, 이제는 자주 다닐 소지가 다분했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잠잠히 폰을 꺼내 들었다.
내가 살펴볼 것은 GTW 연구소에서 회수한 데이터의 분석 결과였다.
공항에 도착한 직후, 잠깐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었는데 그 사이 관련된 자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내용을 차량 안에서 살펴보았다.
“……”
제거티의 바늘이라는 신기.
예상대로 그 신기는 사교의 힘을 빌려 제거티의 전승을 실현한 마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그 신기가 가진 힘은… 무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는 것.
일명 회귀였다.
그런데… 정작 그 회귀는 사람이 쓸 수 없단다.
아예 물질계에 속하는 것은 회귀의 대상이 아니며, 정신체나 령 같은 영적 존재만 가능하다는 내용.
하지만, 분명 내가 회수했던 것은 이미 신기가 사용된 흔적이었다.
그 말은 이놈들이 뭔가를 과거로 보냈다는 건데.
“흠…”
그게 뭔지는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신기를 누가 만들었고, 그 용도가 뭔지 알게 된 건 좋았지만.
어째 그걸 알게 되니 오히려 더 찝찝해진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불쑥 차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탑이 보입니다.”
그 말에 모니카와 최은영의 낯빛이 밝아졌다.
차서현의 말대로 드넓게 펼쳐진 황무지의 지평선 부근에,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은 무언가가 보였다.
잠시 후.
차량은 무사히 서사하라의 탑 근처까지 도달했다.
탑의 생김새는 북유럽에서 보았던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저건 대체…”
탑 주변에는 하나의 작은 마을이자, 요새가 형성되어 있었다.
커다란 철조망과 회색의 벽이 탑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철문으로 가려져, 몇몇 인간이 높은 망루에서 그 문을 감시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마치 내전 중인 군인들이 점거하고 있는 듯한 모습.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들은 이곳에 사는 원주민이 아니었다.
그야 인종부터가 전 세계 사람들을 모아놓은 듯 제각각이었으니.
또한 내 눈에는 그 머리 위에 뜬 레벨 표시가 선명히 보였다.
즉 군인이 아니라 전부 탑을 이용할 줄 아는, 퇴마사 혹은 마인이라는 뜻이었다.
“사교들일까요?”
그런 요새에서 충분히 거리가 떨어진 어느 바위 뒤쪽.
그곳에 차량을 숨기고, 운전석에서 내린 차서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탑에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사교라면 굳이 저렇게 길을 막아둘 이유가 없었다.
“아니, 아마 마인… 그것도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마인 조직이겠지.”
“마인 조직?”
“통제받지 않는 탑을 점거할 놈들은 그놈들밖에는 없어.”
생각해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마인들의 시선에서 탑은 들어갈 때마다 강력한 무기를 내어주는 공짜 자판기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탑에 가장 먼저 도착한 마인 조직이 있다면, 놈들은 탑을 통해 강해진 후.
그 전승의 힘을 이용해 오히려 탑을 독점하려 할 테고 그 결과가 바로 저 요새였다.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뚫고 가야지.”
그러니 놈들과는 부딪칠 수밖에 없다.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범죄자가 아닐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 저길 봐.”
나는 요새의 앞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듯, 참혹하게 살해된 몇 구의 시체가 꼬챙이에 꽂혀 있었다.
그 외에도 주변에는 처참한 살육의 흔적이 있다.
분명 이곳에는 다른 마인도 있었을테니, 아마 마인 조직 간에 탑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이를 눈치챈 차서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시작하나요?”
최은영이 자신의 스케치북을 꺼내며 물었다.
나 역시 저 마인들의 처리는 팀원들에게 맡겨볼 생각이었다.
다만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너희에게 줄 게 있어.”
그렇게 말하며 나는 아이템 창에서 두루마리 셋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그것들은 아무렇지 않게 허공에서 튀어나왔고, 그걸 보며 팀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쓸 수 있는지 확인해 봐.”
나는 그 두루마리들을 팀원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북유럽의 탑을 정복했을 때 얻었던, 전승을 담은 두루마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