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86
186.
“후우…”
강진우가 그의 팀원과 함께 탑을 공격하고 있을 시간.
그의 팀에서 유일하게 한국에 남아있던 김다영은 깊은 한숨을 흘렸다.
그녀는 자신의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김다영이 쓰기에는 너무 넓은 연구실이었다.
이렇게 클 필요는 없었는데.
원래 그녀는 따로 연구실을 가지지 못했던 평범한 연구원에 불과했지만.
강진우가 그녀를 팀원으로 선발한 후, 사교의 힘에 저항하는 신기를 만들기 위해 특별히 제공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김다영은 보름간, 그 신기를 제작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자는 시간도 쪼개서 그저 바쁘게 일했다.
그래서 그때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가 끝나고 생각에 여유가 생긴 지금은.
그녀의 눈빛에는 미약한 후회가 깃들어 있었다.
퇴마사를 그만두었던 과거의 결정을 김다영은 이제 와서 재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휑하니 비어있는 연구실이 너무나도 쓸쓸하게 느껴졌다.
“……”
그녀도 사교에 관한 내용은 충분히 전해 들었다.
그들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그들이 그 힘으로 어떤 일을 벌였는지, 그리고 왜 그들을 막아야 하는지까지도.
그래서 그녀는 내심 팀원과 강진우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김다영도 한때는 퇴마사였다.
그것도 그녀는 자기 자신조차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퇴마사.
그 덕분에 정식 기관 중 하나인 LB 아카데미에서도 촉망받는 인재였으며.
또한, 한 학년, 즉 한 세대를 대표하는 학생회장이라는 직책도 받았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검을 놓았다.
전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굳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 강진우의 충고를 받아들여, 연구직으로 왔고.
그런데… 정말 그 결정이 맞았던 것일까?
“하아…”
다시 한 번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때와는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퇴마를 둘러싼 정세가 점점 심각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의 팀장이 된, 강진우에게 전해 들은 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사교는 괴이나 령과 같은 짐승이나 현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인 단체와 같은 범죄 조직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보다 훨씬 거대한 세력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이 세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그래, 전쟁이었다.
아무리 두렵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전쟁을 앞두고 그저 무섭다는 이유로 검을 놓아버린 자신은…그저 한심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김다영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
이어서 그녀는 자신의 팀원을 떠올렸다.
모니카와 최은영, 그리고 차서현까지.
그들은 지금도 탑이라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을 터였다.
그들이라고 두려움이 없겠는가?
그럴 리가 없었다.
한 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전투를.
순간순간 제 목을 가를 수 있는 칼날을 막아서야만 하는 싸움을 그 누구라도 무서워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김다영은 그들에게 미안했다.
동시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강진우는 그런 그들과 함께 자신을 팀원으로 선택한 것이었을까.
이건… 일종의 압박일까?
저들을 보고 반성이라도 하라는 건가?
그가 그런 음흉한 수를 쓸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순간 그런 착각마저 들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그녀가 앉아 있는, 외로운 연구실 문에 노크했다.
“아… 네! 들어오세요.”
그녀의 허락에 경찰 한 명이 들어왔다.
그 얼굴은 김다영도 알고 있었다.
한성민 순경.
그리 자주 본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강진우의 과거 팀원이었던 사람이라서, 김다영도 한두 번 같이 사건을 처리했던 경험이 있었다.
“안녕하심까.”
그는 들어오자마자 김다영을 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이에 김다영도 고개를 숙였고, 한성민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강 경감… 아니, 강 경정님께 연락이 와서 말임다.”
“벌써요? 팀원들은 무사한가요?”
“예,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하셨슴다. 그리고 만들어주신 신기가 탑에서 효과가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한동안 한성민은 탑으로 향한 강진우와 팀원의 경과를 전했다.
사교의 전승 부정을 막아주는 신기.
다행히도 그 신기가 제힘을 발휘했고, 그 덕분에 무사히 팀원들은 탑을 정복한 모양이었다.
보름간 그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지만, 김다영은 솔직하게 웃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 자신이 하던 생각이 여전히 그녀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기에.
그러나 이를 알 리 없는 한성민은 짧은 보고 후,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말인디… 신기를 더 제작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슴다.”
명령이라는 말에도 김다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우의 팀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에는 그녀도 경찰 소속이나 다름이 없었다.
“네. 얼마나요?”
“일단 300개… 아니, 300세트 정도만 더 만들라고 하시던디요.”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는 절로 고개가 갸웃거렸다.
300세트라니.
개수로 치면 1500개다.
지금 그녀의 팀원들이 착용할 15개를 만드느라 보름을 썼는데, 1500개라니.
그래서 김다영은 되물었다.
“며…몇 세트요?”
“300이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살짝 당황한 김다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나 많이 만들기에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 하지만 그러기엔 재료가 없는데요?”
“재료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슴다. 화랑에서 제공해 준다고, 오늘 오후에 1차분이 배송될 거랍니다. 그리고… 아, 저기들 오시네.”
한성민이 연구실 문밖의 복도에서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수십 명의 사람이 연구실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혼자 있을 때는 넓다고 생각했던 연구실이 순식간에 답답할 정도로 가득 찼다.
“이분들은…?”
“혼자서는 다 만들기 힘드실 거라, 도와주실 분들도 모셨슴다. 먼저 서른 명 정도. 제작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공개해도 된다고 하셨다던디. 들으셨슴까?”
분명 강진우가 그런 말을 하긴 했다.
김다영은 가까스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예, 그거 이분들 가르쳐주시고, 같이 제작하시면 된답니다. 추가 인원은 다음 주랑, 다다음 주에 걸쳐서 올 거고요. 그럼 수고하십쇼.”
한성민은 그렇게 제 할 말을 마치고 홀연히 떠났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김다영과 그녀를 바라보는 서른 명의 사람들뿐.
“……”
이제 이들에게 신기 제작 방법을 전수하고, 함께 1500개의 신기를 만들라는 건가?
“그러니까…”
순식간에 김다영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눈앞에 쏟아진 막대한 양의 일감에, 어느새 그녀를 좀먹고 있던 쓸데없는 걱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 * *
서사하라의 탑의 정복은 예상보다 어렵지 않았다.
뜻밖에도 사교의 저항이 그리 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놈들은 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저항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 이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예를 들면, 외부에서 사교의 병력이 충원된다든가 하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덕분에 나와 팀원들은 문제없이 하나의 탑을 더 정복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 대가는 몇 개의 전승과 레시피.
나는 그것들을 챙겨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이후.
“흠…”
나와 팀에게는 예상치 못한 여유 시간이 생겼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사교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두 기업을 선동해 전쟁을 벌인 만큼 곧바로 움직일 거라 생각했건만, 그 예상이 틀렸던 것이다.
그만큼 사교에게도 지난번 패배가 뼈 아팠다는 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짓을 꾸미기 위한 잠깐의 휴식인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나에게 이 잠시동안의 휴전은 나쁘지 않았다.
나 역시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 움직이기로 한 이상, 준비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거기에 안 그래도 서사하라의 탑을 정복하면서 팀원들의 부족한 점을 많이 파악한 상태였다.
내가 없어도 일 인분을 감당할 수 있게 하려면 충분한 교육이 필요했다.
“…다녀왔어.”
그때, 모니카가 내가 있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맡긴 사건을 해결하고 이제 돌아온 것이었다.
“수고했다.”
“응.”
“다음은 이거야.”
“…또?”
곧바로 튀어나오는 일거리에 모니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불만이라도 있냐?”
“그건… 아니야. 그래도, 아직 탑이 남아있다고 들었어.”
그녀의 말대로, 무너뜨려야 할 오지의 탑은 아직 2개나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쪽은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
사교의 전승 부정에 대항할 수 있는 항마의 세트.
그것이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간 이후, 그 신기들은 경찰은 물론 교회와 법당 같은 정규 기관에게도 일부가 배포되었는데.
내가 그걸 그냥 기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신기를 주는 대가로 그들에게 탑의 정복을 요구했고.
이전 전쟁에서 사교의 위험성을 직시한 정규 기관들은 내 제안을 결국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은 그쪽의 간부들이 우리 대신 오지의 탑을 열심히 공략하고 있을 터.
나로서는 잠재적인 아군에게 사교와의 전투 경험을 쌓아주는 동시에, 내 할 일도 떠넘긴 셈이었으니 결국 일석이조였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다른 쪽에 맡겼어.”
“그래?”
“그러니 너는 열심히 움직여. 다음 재앙도 개방해야지.”
내가 모니카에게 사건을 맡기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것이 그녀가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용사 스킬의 보조를 받은 지 오래된 그녀는 내 훈수를 들을 단계를 지났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전뿐.
그러니 그 실전을 반복하며, 전투 경험을 쌓고 성장하는 것이 그녀가 가야 할 길이었고.
“응, 알겠어.”
모니카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최은영을 조금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건, 내일.”
“……”
모니카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내가 내민 사건 파일을 돌려주었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7시.
퇴근 시간은 지났지만, 왜인지 퇴근한다고 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 때는 말이야. 새벽까지도 일했는데.
하지만 굳이 그런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입맛만 한 번 다시고 그걸 돌려받았다.
그러자 모니카는 만족한듯 미소를 짓고는 최은영에게로 다가갔다.
한창 집중해서 펜을 움직이고 있는 최은영은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소환수를 그리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아, 힉! 아니…그게…”
모니카의 목소리에 최은영이 깜짝 놀라며 스케치북을 가린다.
그리고 보니 최은영은 뭔가를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했던가.
그러나 모니카는 그런 기색은 전혀 느끼지 못한 건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소환수?”
“예, 뭐… 그런 건데요…”
“사람 같던데?”
“사람이 아니라 엘프다.”
모니카의 말에 내가 대신 답했다.
나는 최근 용사 스킬인 ‘영웅의 인도자’를 최은영과 차서현에게도 사용했다.
탑에 갔다 온 이후, 꼬박 하루에 걸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그 직후 그 둘은 자신의 한계를 초월했고, 최은영이 괴물이 아닌 존재까지 소환하게 된 것은 그 영향이었다.
비록 아직 드래곤 같은 건 불가능하지만, 계속 성장하다 보면 훨씬 대단한 것도 소환할 수 있게 되겠지.
“엘프?”
한편 모니카는 엘프라는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더 보고 싶다는 듯한 눈으로 스케치북을 빤히 바라봤지만, 최은영은 그 스케치북을 다시 열지는 않았다.
참고로 최은영이 소환하는 엘프의 모델은, 내가 용사 시절에 부리던 소환수였다.
원래는 세계수의 어머니이자 세계의 창조신인 두 여신 중 하나로.
태초에 있었다는 자매 신끼리의 전투에서 패배해, 언니에게 권능을 뺏기고 그 잔념만이 정령계에 남아 순백의 정령이 되었다는… 더럽게 복잡한 설정을 가진 소환수였다.
정확히는 엘프가 아니라 엘프를 창조했던 영락한 신인 셈.
그렇게나 대단하신 정령이라서 계약할 때도 더럽게 복잡하긴 했지만, 그 대신 가지고 있는 능력은 꽤 유용했다.
단순히 전투력만이 아니라 미래 예지나 공간 이동 등, 특별한 능력이 많았고.
로봇 같긴 해도 지성 역시 갖추고 있었으니.
“저기…”
그때 모니카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최은영이 스케치북을 꼭 안고 종종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왜?”
“물어볼 게… 있어서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곧바로 질문을 쏟아냈다.
엘프의 무장이 뭔지, 무슨 능력을 사용했는지 등.
이제 막 설계하기 시작한 소환수를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한 질문들이었다.
“그, 그럼… 강 경정님은 그때 무슨 갑옷을…”
그러다 질문이 내 쪽으로 튀었다.
하지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익숙하게 답했다.
“그때? 그때가… 드래곤 로드인가 뭔가 하는 놈 가죽을 벗겨 입고 있던 때 같은데.”
그때 내가 입은 옷이 뭐가 중요한지는 모르겠다만.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니라서 나는 적당히 답해주었다.
그러던 중, 스마트 폰이 진동했다.
차서현이었다.
그녀에게는 제대로 된 둔기 사용법을 알려주었고, 지금쯤이면 체육관에서 이를 열심히 수련하고 있을 때인데.
“무슨 일이야?”
잠시 문답을 멈추고 폰을 들었다.
그러자 다소 뜻밖의 내용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 * *
잠시 후.
나는 차서현과 함께 한국 법당의 중심인 중생총본으로 향하고 있었다.
“법당에서 나를 불렀다고?”
“예. 의뢰할 사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의뢰?”
“무슨 사건인지까지는 저도 듣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건 없지.”
차서현이라면 그 사건이 뭔지, 스스로 물어봤을 것이다.
다만 법당에서 알려주지 않은 거겠지.
그래서 나는 정확한 이야기는 법당에서 듣기로 했다.
그렇게 중생총본에 도착하자, 뜻밖의 얼굴이 나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60대 전후의, 머리를 깨끗하게 민 노년의 남성이었다.
거기에 입고 있는 회색의 승려복은 다소 허름하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승려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레벨 역시 눈에 들어왔다.
93 레벨, 시기불.
과거칠불 중 두 번째 부처의 칭호를 부여받은 그는, 한국과 일본의 법당을 총괄하는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