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87
187.
안내를 받아 들어선 중생총본의 어느 방 안.
그곳에서 법당이 내민 의뢰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이 마인을 처리해달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내 질문에 시기불은 차분하게 답했다.
대상은 오래전부터 수배되어 있던 한 마인이자 파계승이었다.
다만, 그 파계승은 평범한 마인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법명 연원.
최고 등급의 국제 수배를 받고 있는 마인이자.
무엇보다 그녀는 전대 시기불의 자리에 있었던, 불교의 배교자였다.
그렇게나 높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7년 전, 돌연 이를 버리고 파계승이 된 마인.
그런데 굳이 그 연원의 처분을 나에게 맡긴 건가.
나는 가만히 내 앞에 앉아 있는 시기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볍게 미소만 짓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는 감정을 읽기가 힘들었다.
“이를 저에게 의뢰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요.”
시기불은 그렇게 운을 띄우며,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원래부터 연원은 법당에게 있어서는 그 존재 자체가 오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법당은 연원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기를 원했으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독자적인 술법 때문이었다.
“연원은 그 추적이 너무나도 힘든 자입니다. 마역과도 다른…제 공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공간을요?”
그 말에 나는 금방 사교를 떠올렸다.
그들 역시 이와 같은 효과를 가진 주술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것이 적용된 것이 바로 사교의 탑이었으니.
그러자 시기불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눈치채셨나 보군요. 맞습니다. 사교에게 그 술법을 전해준 이가, 바로 연원이지요.”
“그랬군요.”
“또한 그녀는 금서를 가진 자입니다.”
그 말에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어, 직접 금서를 찾아다니지는 못했지만, 그 행방만큼은 계속해서 알아보고 있었다.
지금 내가 보유하고 있지 않은 금서 중 대부분은 ‘금서 수집가’라고 불리는 마인의 손에 들어간 상태라고 하던가.
사교 소속인 그 마인이 사교가 마인들을 제 세력으로 흡수하는 틈을 타서, 빠르게 많은 금서를 모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놈조차도 남아있는 금서 중 유일하게 보유하지 못한 것이 바로 연원이 들고 있는 불교의 금서였다.
그래서 나는 금서 수집가보다 그 불교의 금서를 선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일이 바빠 미루고 있는데.
그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마라 파피야스의 경전이지요. 그래서 그녀가 만든 공간은 미궁이자, 그 자체가 거대한 번뇌입니다. 저희 법당의 중생들조차도 간단히 잡아먹는 마구니의 아가리지요.”
마라 파피야스는 불교에서 전해지는 최대 악신이다.
중생들의 수행을 방해하는 욕망과 번뇌의 신으로, 쾌락을 통해 수행자들을 유혹한다는 제육천의 주인.
그렇기에 연원이 만든 공간은 그 마라 파피야스의 권능으로 가득차 있을 터였다.
연원이 인도에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법당이 왜 방치하나 했더니만.
자신들조차 그 안에 발을 딛는 건 피해가 너무 클 거라고 판단해서였나.
“그래서 그 대처를 고민하던 차에, 마침 강 경정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기불의 말이 이어졌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내가 연원의 상대를 하기에 마침 딱 알맞은 인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를 상대로는 유혹이라는 마라의 가장 큰 무기가 봉인되고.
그 뒤에 있을지 모르는 사교조차 내 적이 되지 못한다는 걸 증명한 이후였으니.
“그런 거라면야 도와드릴 수는 있긴 한데…”
나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금서를 모은다는 점에서는 나도 거부할 이유가 없긴 해도, 이건 법당의 일방적인 부탁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 대가를 받아야 했고, 마침 필요한 것도 있었다.
“허허허-”
그런 내 의도를 시기불 역시 알고 있는지, 그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한동안, 그와의 협상이 진행되었다.
잠시 후.
이야기를 마친 나와 차서현은 중생총본을 나왔다.
“왜…그런 요청을 하신 겁니까?”
밖으로 나온 차서현은 지금까지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내가 법당에게 대가로 요청한 것은 총 세 가지.
첫 번째는 당연히 불교의 금서는 내가 회수하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들이 보유한 제작 재료들의 공유였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레시피에 중에는 나에게는 쓸모가 없지만,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로 괴이를 사냥하고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재료들이 필요했는데.
그중에는 나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화랑이나 관리부가 보유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부족분을 내가 하나하나 구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나는 새로운 재료 공급처가 필요했고, 그 공급에 법당이 협력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이 사건이 끝나는 즉시, 차서현에게 팔부신중 다음 단계인 명왕의 전승을 전수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상해?”
“그야…저는 아직 아수라조차 수행을 마치지 못한 몸입니다. 그런데 명왕의 전승이라니요.”
분명 법당의 전승에는 그들이 정해 놓은 순서가 있다.
그리고 그 순서는 아무 의미 없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잘 따져보면 교리가 아니라 무도의 관점에서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고.
그래서 이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정석에 가까운 일이었다.
마음만 급해 봐야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심화 과정을 배울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미리 배우면 좋잖냐.”
지금 차서현에게는 그 정석을 따라갈 이유가 없었다.
차서현에게는 내 용사 스킬이 부여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그녀 자체가 이미 정석을 벗어났기에.
쉽게 말해 그녀의 재능은 이제 범인의 것이 아닌, 천재조차 넘어섰다.
기초가 없이 심화 과정을 배운다면, 그 기초까지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한꺼번에 익히게 될 정도로.
거기에 지금은 시간이 없다는 점도 내 요청의 이유였다.
사교가 언제까지 얌전히 있어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내일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차서현은 시간을 아끼고 강력한 전승을 습득할 필요가 있었다.
“…제가 익힐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내 속을 모르는 차서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표정을 흐렸다.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는 태도였다.
그야 고지식한 차서현이라면, 그 수행을 위해 우직하게 노력해왔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아니, 이제는 가능할 거야.”
“저도 그러면 좋겠습니다만…”
내 말에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가진 한계는 이미 내 스킬로 무너졌을 테지만.
이를 직접 체감해보지 못했으니 못 믿는 것도 당연했다.
최근에는 실전이 아니라 내가 가르쳐준 무도의 습득에만 열을 올렸으니.
그래서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다가, 이를 체감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보다, 이번 일은 너도 같이 가는 거다.”
“저도…말씀이십니까?”
“그래. 파계승을 처리하는데 법당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지.”
내 말에 차서현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있던 어두운 표정을 지우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입니다.”
*
얼마 후, 인도 남부의 어느 황무지.
“여기군요.”
나와 차서현은 이제 막 그 황무지 위에 선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의 모습은 을씨년스러웠다.
주변은 온통 드넓은 황야와 바위뿐이었고, 판자로 대충 지은 마을의 건물들은 전부 합해 서른도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중에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은 한 곳도 없다.
마을 전체가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곳을 차서현과 나는 묵묵히 걸었다.
겨우 천 하나로 가려진 허름한 문 안쪽으로 먹다가 만 음식이 담긴 그릇이나, 아무렇게나 널린 옷가지들이 보였다.
저것만 보더라도 이 마을이 처음부터 비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아마 일주일 전만 해도 분명 사람이 살았던 곳이었으리라.
하지만 지금 이곳의 주민들은 전부 마라의 입에 삼켜진 후였다.
“이게…마라 파피야스의…”
곧 우리는 마을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괴이한 이층집이었다.
또한 그 지붕과 창문 등은, 렌즈를 통해 본 것처럼 기괴하게 비틀려 있어, 이 빈민가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거기에 여기저기에는 귀신 같은 해괴한 석상이 새겨져 있다.
그저 악취미라고밖에 볼 수 없는 기괴한 건물.
하지만 그 안으로 통하는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얼마든지 들어오고 싶다면 들어오라는 듯.
나는 그걸 보며 차서현을 돌아보았다.
“준비는 됐어?”
이건 분명 연원이 만든 자신만의 마역일 것이다.
게다가 그 안에는 불교에서 마왕이라고 불리는, 마라 파피야스의 금술이 널려 있을 거고.
그렇기에 차서현은 몇 번 심호흡을 한 뒤에야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곧바로 연원의 영역 안으로 들어섰다.
“흠…”
문 안쪽으로 보인 것은 평범한 집이었다.
분홍색의 벽지 위로 작은 액자는 물론, 소박한 화분이나 가구도 있다.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도 있고 다른 방으로 향하는 닫힌 문이 두 개.
그렇게 내가 내부의 구조를 살펴보는 사이.
“윽…!”
옆에 있는 차서현이 짧은 신음을 흘렸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그녀에게는 마라 파피야스의 유혹이 그 효과를 보이는 것이었다.
차서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면서 눈을 비비고, 머리를 흔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잠을 깨려는 사람의 모습.
아니,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마라 파피야스는 모든 욕망을 통치한다는 제육천의 주인이다.
흔히 유혹이라고 하면 성욕을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모든 욕구 중에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수면욕이다.
그러니 차서현 역시 무엇보다 그쪽에 먼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먹어봐.”
그래서 나는 자기 뺨을 때리려고 하는 그녀에게 작은 알약을 건넸다.
그건 이럴 걸 대비해서 만들어놓은, 모든 상태 이상에 저항력을 가져다주는 소모품이었다.
이를 받자마자 꿀꺽 삼킨 차서현은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금방 정신을 차렸다.
“후…감사합니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어느새 말짱해진 차서현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소모품의 효과가 좋다고 해도, 이상할 정도의 회복력.
그건 차서현이 가진 이능 때문이었다.
그녀가 퇴마사로서 가진 이능은 ‘소화 체질’.
그건 일종의 패시브 스킬로, 섭취한 음식의 효과를 크게 늘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차서현은 이를 활용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야 영약 같은 게 흔한 것도 아니고, 있다고 해도 그녀가 먹을 일이 없었으니.
그래서 여태 차서현 본인도 이능에 집중하는 대신 전승만을 사용하며 싸워온 듯했으나, 나는 달랐다.
나에게는 차서현에게 도움이 될만한 영약의 레시피가 너무나도 많았고.
실제로 그녀를 팀원으로 받아들인 후에는, 이를 통해서도 그녀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그런데…팀장님은 아무렇지 않으신 겁니까?”
차서현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가자.”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안쪽으로 향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또 다른 방이 나타났다.
책상과 의자, 옷장만 있는 삭막한 방이었다.
중간에 침대 하나만 놔둬도 꽉 찰 것 같이 작은 방.
딱히 뭔가 눈에 띄는 것도 없었기에 우리는 그대로 그 방을 통과했고, 그 너머에는 좁은 복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쪽이 갈색의 나무 벽으로 가로막혀, 딱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넓이의 복도.
그런 복도는 어두컴컴했는데, 가운데에 있는 작은 꼬마전구가 복도의 유일한 광원이었다.
차서현은 자신이 앞장서서 복도를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여긴…도대체 뭐하는 곳일까요?”
“글쎄.”
슬슬 으스스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아직 마역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한 모습이었다.
창문 밖으로 비치는 광경이 한밤중의 숲 속 풍경만 아니었다면, 진짜 빈집이 아닐까 착각했을 정도.
그리고 그때.
펑-하는 소리와 함께 꼬마전구가 꺼졌다.
“핫…!”
갑자기 복도에는 어둠이 깔렸고, 이에 놀란 차서현이 제 목소리를 흘렸다.
나는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짧은 복도의 끝에 불현듯 하나의 레벨 표시가 나타났다.
“저건…”
레벨은 41, 그리 높지는 않았다.
또한 때마침 창밖에서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빛이 창문을 통해 쏟아져 내렸고, 어둠에 가려져 있던 놈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건…인간 형태의 괴이였다.
다만 그 얼굴은 흉측하게 뒤틀렸고, 팔과 다리는 바짝 말라 뼈밖에 남지 않았지만, 배는 툭 튀어나와 있었다.
또한 이목구비 중 입만이 양쪽으로 커다랗게 찢어져 있는 그 괴이의 이름은.
“아귀군요.”
차서현이 말했다.
어느새 표정이 굳은 그녀는 이미 저 아귀의 출처를 짐작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야 저 아귀는…이 마라의 영역에 들어온 무고한 일반인이 식욕에 타락한 결과일 테니.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차서현은 나에게 결단을 미루는 대신 자신이 나섰다.
그녀가 들고 있는 철퇴가 환하게 빛났다.
“키오오오!”
이에 아귀가 반응했다.
놈은 입을 크게 벌리고, 바짝 마른 두 팔을 우악스럽게 휘두르며 달려왔다.
그 입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침이 흘러넘친다.
당장에라도 차서현의 살점을 뜯고 싶다는 욕망이 그 아래로 방울져 떨어지는 것처럼.
“……”
나는 이어지는 차서현의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아귀는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닐 테지만, 이곳은 지형이 좋지 않았다.
그야 양팔도 다 펼 수 없는 좁은 복도다.
이런 곳에서는 제대로 된 무도의 소양이 없다면, 한참 아래의 괴물을 상대로도 충분히 고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차서현에게는 내가 직접 사사한 둔기술이 있을 터.
나는 그 성과를 확인하고 싶었고.
후욱!
이내 빛을 휘감은 철퇴가 움직였다.
나는 무엇보다 먼저 그 철퇴를 휘감고 있는 손가락이 마음에 들었다.
얼마 전만 해도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있는 건지, 무기를 들고 있던 건지 알 수 없던 파지법에 겨우 근본이 깃들어 있었다.
거기에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지는 그 궤도는 흔들림 없이 매끄럽다.
마지막으로,
퍼억!
그 끝이 아귀의 머리를 깔끔하게 부수며 지나가는 광경은 지난번, 탑에서 보았던 추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과연.
내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
한편 그 비약적인 성장에 차서현 본인도 느끼는 바가 있는 건지, 그녀의 입에서는 의아함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녀가 여유롭게 감탄할 여유는 없었다.
“흐아아아!”
하나의 아귀가 쓰러지자.
그 뒤로는 곧바로 또 다른 아귀들이 복도 끝에서 기차처럼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