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88
188.
옅은 달빛 아래에서 각진 철퇴의 날이 청명한 빛을 머금고 귀신의 머리를 깨부쉈다.
벌써 세 마리째.
마라 파피야스가 지배하는 욕계의 주민 중 하나인 아귀가 머리통의 2/3가 날아간 채로 바닥으로 쓰러진다.
그 뒤로는 아직도 수많은 아귀의 모습이 보였다.
이 좁은 복도가 망가지기 직전의 수도관인 양, 해일처럼 쏟아져 내리는 아귀의 군세는 일견 수십에 달했다.
하지만 이를 앞에 둔 퇴마사, 차서현은 그런 아귀들보다도 자신의 변화에 의식이 쏠려 있었다.
“……”
콰직!
가볍게 휘두른 듯한 일격이 또 하나의 아귀를 침묵시켰다.
그 과정은 자신이 보기에도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거기에는 이 좁아터진 복도에서의 공격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려함이 깃들어 있었고.
동시에 철퇴의 끝이 그리는 호는 아름다워, 그 적을 완벽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차서현은 기분이 이상했다.
도대체 자신이 언제부터, 고작 무기를 휘두르는 행위에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는 건가.
거기에 더해 지금 그녀의 손에 들린 철퇴는 더없이 가벼웠다.
어느새 차서현의 육체 스펙 자체가 크게 올라가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죽도를 휘두르는 양, 손목의 스냅만으로도 가볍게 아귀의 머리통을 깨부수고 있었다.
퍼억!
그렇게 둔탁한 파괴음이 이어졌다.
전방에서 쏟아지는 아귀는 쏟아지는 족족 차서현에 의해 쓰러졌다.
그들의 험악한 이빨과 그 앙상하게 마른 팔은 차서현의 옷깃조차도 스치지 못했다.
그들의 시체는 그저 복도의 바닥을 장식할 뿐이었고.
차서현은 그 아귀들의 주검을 밟고, 오히려 강물을 거스르는 물고기처럼 전진했다.
“어떻게…”
그리고 그녀가 박살 낸 아귀의 숫자가 두 자릿수에 이르렀을 때.
차서현은 비로소 자신의 변화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단지 그녀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강진우가 가르쳐준 둔기술.
처음에는 그저 기본기라고 생각했다. 퇴마사가 되기 전에 잠시 배웠던 기초적인 무술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의식은… 그 초보적인 판단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
그건 기본이자 전부였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철퇴를 쥐는 방식, 힘의 배분, 그리고 그것이 그리는 궤적과 이어지는 움직임 등.
그 하나하나가 무도의 묘리를 담고 있었고, 지금 자신은 그 묘리를 이해함을 넘어 유연하게 응용까지 했다.
그것도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그렇기에 그녀는 경악했다.
장님이 눈을 뜬다면 이러할까.
어느새 새로운 감각이 열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차서현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이 감각을 시력에 비유한다면, 자신에게는 아예 눈이라는 기관 자체가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 차서현의 시선은 잠시 강진우에게 향했다.
그는 뒤쪽에서도 몰아닥치기 시작한 아귀를 화염을 일으켜 여유롭게 막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그때, 차서현은 같은 팀원인 모니카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팀으로써 처음 함께 한 사건인 탑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팀원 간의 큰 차이를 직감한 차서현은 답답한 마음에 제 속내를 모니카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법당에는 훌륭한 퇴마사들도 많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한계가 뚜렷한 자신을 팀원으로 선택했는지 모르겠다는 한탄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모니카는 말했었다.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그는 그 한계를 없앨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 당시에는 솔직히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외국인이라서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모니카의 말은 어려울 게 없었다.
그야 그 말뜻 그대로였으니.
“크엑!”
서른이 넘는 아귀가 쓰러지자, 비로소 놈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발광하며 먹잇감을 쫓아 뛰어오던 굶주림의 악귀들이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놈들은 이제야 인지한 것이었다.
그들이 차서현의 살점을 뜯는 순간은 기어코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 앞에서 차서현은 멈추지 않았다.
아귀가 뒷걸음질 친 만큼 더욱 바짝 놈들을 쫓았다.
그러자 아귀들의 뒷걸음질은 곧 후퇴가 되었고, 그 후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필사적인 도주로 바뀌었다.
그렇게 되니 이 좁은 복도는 오히려 놈들에게 해가 되었다.
자기가 먼저 살겠다며 동족을 밀치고 넘어가려는 아귀들은 결국 서로가 얽히고 넘어져, 그 뒤로 날아온 철퇴에 의해 박살 났다.
“……”
그렇게 잠깐 사이, 좁은 복도는 수십의 아귀가 흘린 검은 피로 피바다를 이루었다.
더 이상 시야에 움직이는 괴이는 없었다.
어느새 조용해진 복도에는 다시 쓸쓸한 달빛만이 흘러들어왔다.
“잘했어. 가르친 보람이 있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진우는 그렇게 말했다.
이에 차서현은 뭐라 대답할 생각도 못 하고,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할 말은 많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것을 받았다.
어떤 감사의 말을 건네야 할지도 고민해야 할 정도로.
그렇게 차서현이 다음 말을 고르는 사이.
“그런데…”
강진우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로, 차서현이 들고 있던 철퇴를 바라보았다.
척 봐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눈치였기에 그녀는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 무기도 이제 손을 봐야지.”
“이거 말씀입니까? 그래도 보급용보다는 나은 물건입니다만…”
이 철퇴는 나름대로 차서현이 신경을 쓰고 있는 그녀의 애장이었다.
법당에서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최하급 신기가 아닌,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모아서 1년 전에 장만한 신기.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던 어느 무장이 사용하던 물건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강진우는 그조차 성에 안 차는 모양이었다.
“줘 봐.”
강진우의 말에 차서현은 자신의 애장을 넘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가 철퇴를 살펴보려고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손으로 넘어간 철퇴는 그다음 순간.
“허…?”
신묘한 빛과 함께 그 모습이 변했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철퇴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원래 그녀의 철퇴는 다소 밋밋한 디자인이었다.
손잡이에는 간단히 가죽만 둘려 있을 뿐이었고, 끝에 달려 있던 철구에는 4개의 날이 돋아나 있던 것이 전부.
하지만 새롭게 변화한 철퇴는 그 색깔부터가 남달랐다.
무기 전체가 선명하고 청명한 은빛으로 빛났다.
그 재질은 은이 아닌 백금.
또한, 그 백금 막대 끝에 달린 것은 평범한 구가 아닌 금강저였다.
금강저의 가운데에는 역동적인 사천왕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이에 차서현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신기에 관한 지식이 얼마 없는 차서현조차, 자신이 쓰던 것과는 격이 다른 무기임을 직감할 정도의 최상급 신기였으니까.
“됐다. 다시 가져가.”
하지만 강진우는 그 최상급 신기를 마치 TV 리모컨을 건네듯 가볍게 차서현에게로 던졌다.
차서현은 허둥대며 그것을 받았다.
그러자 무기로 사용하기에 딱 적당한 무게감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차서현이 시험 삼아 그것을 가볍게 휘두른 순간.
그녀는 그 말이 얼마나 개소리인지를 직감했다.
무게와 균형, 그립감, 그리고 무기가 지닌 특유의 탄력성까지.
강진우가 변화시켜준 이 신기는 마치 처음부터 차서현을 위해 설계된 것처럼 완벽했으니.
“계속 가자.”
한편 그렇게나 완벽한 무기를 던져준 강진우는 이 연원의 공간을 계속해서 걸어갔다.
“아, 저기 가, 감사합니다!”
차서현은 뒤늦게 감사 인사를 건네며 그 뒤를 따랐다.
이에 강진우는 그저 손을 내저으며, 발길을 재촉했다.
* * *
아귀들을 쓰러뜨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연원이 만든 영역을 나아갔다.
방과 방을 지나, 부엌과 화장실까지 나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평범한 가정집의 풍경.
또한, 그 안에서는 아귀와 수마, 음마와 같은 온갖 괴이들이 시시때때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다지 번거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걸 처리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새로운 무기를 얻고 날뛰는 차서현이었기에.
“……”
괴이들의 레벨은 대부분 50 이상으로, 그렇게 약해빠진 놈들은 아니었으나.
차서현이 내뿜는 은빛의 번뜩임은 순식간에 괴이를 집어삼켰다.
무기도 바뀌었고, 이제는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도 붙은 덕분인지 그녀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 스킬, 영웅의 인도자는 그 스킬의 시전자와 함께 있을 때 특히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차서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기에.
점점 그녀의 수준은 내 목표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일을 마치고 바로 돌아가더라도 명왕의 전승을 전수받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렇게 차서현의 철퇴가 기괴하게 생긴 수마 하나를 끝장내려는 순간.
“-!”
어떤 위험을 감지한 나는 차서현의 앞으로 튀어 나갔다.
깜짝 놀란 차서현의 시선이 일순 나를 향한다.
하지만 나는 먼저 벽을 뚫고 들어온 섬뜩한 날을 쳐냈다.
마치 붉은 사마귀의 앞발처럼 생긴 그것은.
차서현의 목을 노리다 내 검과 사납게 맞부딪치고는 다시 벽 안으로 튕겨져나갔다.
“이게 무슨…!”
그 광경에 차서현이 눈을 부릅뜨며 반응했다.
하지만 이미 내 눈에는 벽 너머에서 하나의 레벨 표시가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91 레벨.
어디에 숨어 있나 싶던 연원이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화염을 일으켜 벽을 태웠다.
그러자 그 백염은 벽뿐만이 아니라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모든 거짓된 풍경을 지워버렸고.
이내 시뻘건 황무지 같은 광야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황무지 위에는 작고 마른 인영이 하나 서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그 깡마른 팔다리에 또 하나의 아귀가 서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승려복을 걸치고, 지팡이를 짚고 선 어느 노인이었다.
그 피부에는 바짝 마른 미라를 보는 것처럼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또한, 눈동자의 빛은 탁하다 못해 흐렸고,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상태의 노인이었다.
“네가 연원이냐?”
나는 그 텅 빈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연원이라면 저 시체와 같은 모습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연원이 시기불의 자리에 있던 7년 전에도, 그녀의 나이는 이미 90이 넘었다.
그러니 이제 그녀는 명실상부 100세가 넘는 노인이었고, 노환으로 앙상한 몰골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럴만했다.
그리고 그 나잇값이라도 하려는 건지.
“젊은 놈이… 말버릇이 없구나. 남의 집에 침입한 도둑놈 주제에… 쯧.”
연원은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그리고는 짚고 있던 지팡이를 살짝 들었고.
“너희 같은 것들은 되었다. 지옥에나 떨어지거라.”
이를 내리치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무언가의 술식이 발동되었고.
“큭…!”
곧장 차서현이 가슴을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숨을 쉬기가 곤란한 듯, 그녀는 크게 호흡을 몰아쉬었다.
나에게 아무 영향이 없는 걸 봐서는…이것도 유혹의 일종인가.
그렇다면 그 위력이 상당한 것으로 보였다.
안 그래도 차서현에게는 이곳에 오기 전에 정신 방어 계열의 신기를 몇 개 쥐어 주었고, 그것도 모자라 소모품까지 동원했다.
그럼에도 차서현의 상태를 보면… 겨우 이성만 유지하고 있을 뿐, 당장은 전투조차 힘들어 보였다.
상당한 수준의 정신 침식.
역시 마라의 권능인가. 용사 스킬 정도의 사기가 아니라면 대항하기도 힘든 모양이었다.
이를 인지한 나는 짧은 한숨을 쉬었고.
“아앙? 네놈은 왜 멀쩡한 게냐?”
한편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나에게 연원이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당연히 거기에 내가 답해줄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말 없이 검을 고쳐잡고, 연원을 바라보았다.
“이놈이…!”
이에 연원은 노여움이 담긴 목소리를 흘렸고, 거기에 그녀의 영역이 반응했다.
쿠구구궁!
땅의 메아리 같은 거대한 울림과 함께, 연원과 나 사이에 있는 지면이 크게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는 조금 전 봤던, 붉은 낫과 같은 앞발을 가진 사마귀와 함께 온갖 괴상한 괴물들이 올라왔다.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오는 괴수들을 보는 것 같은 풍경.
이 역시 마라 파피야스의 권능인 듯했다.
불교에서 마왕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온갖 귀신과 괴물의 왕이기도 했으니.
하지만 지금 내 앞에서 어설픈 대군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콰과광!
하늘에서 떨어진 신벌과 백염이 지하의 대군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땅속에서 벌레처럼 기어나오려던 그것들은 그 맹렬한 공격 앞에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그렇게 놈들이 주춤한 사이, 나를 중심으로 연원의 붉은 황무지 위를 검고 서늘한 돌 바닥이 뒤덮었다.
그 어떤 공간이라도 현무의 신역으로 바꿔버리는, 현무의 영역 구축 스킬이었다.
이에 크게 갈라진 균열을 타고 지하에서 올라오던 마라의 군세는 번개에 지져지고 불에 타다가.
결국 현무의 신역에 묻혀, 땅 위로 발조차 딛지 못하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허무하게 막혀버린 마라의 대군.
그래서일까.
“……”
비로소 나를 향하던 연원의 시선이 바뀌었다.
그저 방해꾼을 바라보는 듯하던 그 눈빛에 묘한 빛이 깃들었다.
이윽고 연원의 얼굴에는 옅은 냉소가 깃들었다.
“허어, 그래. 이제야 알겠구나. 너에 대한 것은 들었다. 그 허연 불꽃에 번개. 네놈이… 강진우구나?”
뜻밖에도 연원은 나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던 건지, 그렇게 말했다.
“사교 놈들이 하도 호들갑을 떨길래 어떤 놈인가 했더니. 그래, 범상치 않은 놈인 건 확실한 것 같구만.”
연원은 끌끌거리며 웃었다.
마라 파피야스의 권능이 아무것도 못하고 파묻혔음에도 그녀의 태도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그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불교의 금서를 사용하기 전에도 그녀는 과거칠불의 자리에 있을 정도로 강했으니.
그저 금서에 의지하는 마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바 야가가 나에게 미련 없이 금서를 넘겼듯.
연원에게도 금서의 주술은 그녀가 가진 능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기에.
그래서 그녀는 내 검을 앞에 두고도 코웃음을 치며,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나도 장난만 치고 있을 수는 없지.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그 말과 함께, 연원의 깡마른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