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89
189.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연원을 감쌌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연원은 눈을 감았고.
지팡이에 기댄 그녀는 그대로… 죽었다.
“음…?”
이를 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단순히 생명의 기척이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 머리 위에 있던 레벨 표시마저 지워졌다.
내가 환상을 볼 리는 없으니, 이건 의심할 리 없는 현실일 텐데.
그렇게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연원의 모습과 레벨 표시가 엉뚱한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거기에서 몇 미터는 떨어진 곳에 마치 진흙이 뭉쳐지는 것처럼 살덩이가 모여들더니 어느새 그것이 인간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리고 빚어지는 것은 젊은 여성의 모습.
이건… 마라의 권능인가?
마라 파피야스는 욕망의 지배자이기에, 젊은 여자나 남자로 변해 수도자들을 유혹했다는 전승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그 전승을 실현한다면 젊음을 되찾는 일도 가능하겠지만.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연원의 변화는, 단순히 겉모습을 바꾸는 마라의 전승이라고는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분명 한순간 죽었다.
그렇다면 죽음을 트리거로 삼는, 어떤 전승의 작용일까.
나는 잠깐 이를 고민해 봤지만, 그럴듯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단서는 있었다.
7년 전, 시기불이었던 연원이 법당을 배교한 이유는 그녀의 수명 때문이었으니까.
법당의 말에 의하면 연원은 죽음을 피하고자 젊음을 돌려주는 마라의 권능이 담긴 불교의 금서를 찾았고.
이를 확보한 뒤에는 그대로 달아났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저건 젊음을 유지하는 종류의 주술이라는 건가.
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변화를 마친 연원이 눈을 떴다.
어느새 10대 초반의 모습을 한 그녀는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뭘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냐.”
목소리는 어린아이의 것이었으나, 그 말투만은 여전히 할머니와 같았다.
나는 그 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전승이라서.”
“재미? 우습구나. 이건 네놈이 그리 가볍게 평가할 전승이 아니다.”
“아니긴. 기껏해야 늙어 죽기 싫어 만든 술식일 텐데.”
내 비웃는 말투에 연원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입만 살아서는. 네놈은 내가 영생을 실현했다고 해도 그리 말할 테냐?”
“영생?”
“그래, 영생이다. 내가 이곳에서 이룬, 나만의 위업이지.”
연원은 자신만만하게 그리 말했다.
10대 초반이던 그녀의 모습이 다시 바뀌었다.
아이가 성인으로, 그리고 그 성인이 중년의 나이로.
연원은 순식간에 40대가 되어 말을 이었다.
“나는 이미 하나의 세계다. 그리고 이 인도의 땅에는 그 세계의 창조와 유지, 파괴를 주관하는 세 신이 있지. 즉, 윤회라는 것이야. 그리고 나는 그 세계의 윤회를 구현했다.”
그렇게 말하며 연원은 노인이 되어 죽었고,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눈을 떴다.
눈앞에서 반복되는 죽음과 삶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힌두교의 창세 신화를 구현했다고?”
힌두교의 세계관은 그녀의 말대로 윤회와 비슷하다.
창조신 브라흐마가 세계를 만들면, 그 후 비슈누가 세계를 유지하고.
말세에는 시바가 그 세계를 파괴하며 하나의 세계가 끝난다.
하지만 그 후 브라흐마가 다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창세이자 말세의 신화였으니.
이에 연원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불교와 힌두교는 서로 연관이 깊은 종교다. 때문에 시기불의 자리에 있던 나에게는 오히려 쉬운 일이었지. 힌두교의 세 주신조차 불교에서는 내 아래에 있었으니 말이다.”
힌두교의 3대신인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는 각각 불교의 범천, 나라연천, 대자재천이라는 신에 대응한다.
그래서 시기불이라는, 불교에서는 훨씬 높은 지위의 신격이라면 다른 신의 전승을 끌어다 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게 그리 쉽지는 않을 텐데?”
“네놈의 말대로다. 그래서 나에게는 사교가 필요했지. 하나…그렇다 해도 내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게다. 오직 나만이, 내 세계를 만들 수 있으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땅을 짚고 있던 지팡이로 땅을 한 번 두들겼다.
그러자 붉은 황무지 같던 풍경이 일변하여, 울창한 숲으로 변했다.
자신의 만든 이 공간을 다루는 기술은, 사교들 이상이라는 건가.
하지만 연원의 말을 듣고 이해한 것이 있었다.
그녀가 정말로 이 공간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고, 그 창조와 파괴의 윤회를 주관한다면.
그리고 그로써 자신의 영생을 구현했다면.
“그 말은 넌 여기서 못 나간다는 거 아니냐?”
“…그런 셈이지. 하나, 어리석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게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연원은 그렇게 말하며 지팡이를 반대로 쥐었다.
검, 혹은 마법사들의 완드처럼.
“쯧, 말이 너무 많았구나. 이제 그만 죽거라.”
연원이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쥔 지팡이가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날카로운 바위가 떨어졌다.
나는 이를 어렵지 않게 피했지만, 공세는 끝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나를 향해 거대한 화살이 날아왔고, 그 뒤에서는 번개의 번뜩임이 보였다.
“쯧…!”
나는 검을 들어 화살을 쳐내고, 번개는 몸으로 받아냈다.
용사 스킬이 있는 한, 번개와 화염, 그리고 냉기는 나에게 피해를 줄 수 없기에.
그러자 연원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지만 그건 한순간이었다.
이윽고 멧돼지 머리를 한 반인반수가 나에게 날아들었다.
“꿰에에에!”
그 멧돼지 인간의 쇠몽둥이와 검이 맞부딪쳤다.
그 힘은 과연 강대했으나 상대할 만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상대해야 할 것이 멧돼지 인간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놈의 뒤로 사자 머리의 인간과 검을 든 남성, 그리고 활과 도끼를 든 놈도 보였다.
그것도 모자라 온갖 투사체들이 나에게로 날아들고 있었다.
“하… 이게 다 몇 개야.”
이를 보며 나는 냉소를 흘렸다.
내 말이 어지간히도 거슬렸던 건지, 연원이 동원한 전승은 일견 수십에 달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 정도라면 나와 비슷한 숫자의 전승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였으니.
게다가 그녀가 부른 소환물은 전부 힌두교 3대 신격 중 하나인 비슈누의 화신들이었다.
저 멧돼지 인간은 바라하, 사자는 나라싱하, 검을 든 남자는 라마, 거기에 활과 도끼를 든 놈은 파라슈라마인가.
그렇다면.
“일단 숫자는 맞출까.”
쿠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땅속에서 강철로 만들어진 백호의 분신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내 부름에 응답한 구미호, 서연 역시 요기를 흘리며 나타났고.
거기에 나는 새롭게 얻은 팔부신중의 전승 중 하나인, 야차의 전승을 사용했다.
최대 셋까지 시전자의 분신을 소환한다는 그 전승은 그림자처럼 내 모습을 그대로 복사했다.
얼굴에 야차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만 빼면, 겉모습은 나와 똑같은 분신들.
물론 분신들의 전투력은 내 1/3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연원이 부른 저 화신들도, 결국 화신의 모습과 특성을 본뜬 소환수에 불과했으니.
“호오…?”
이에 연원은 흥미롭다는 듯 그런 소리를 흘렸다.
그러나 그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연원의 시선 끝에는 어느새 정신을 차린 차서현이 있었다.
“네놈도 그렇다만, 저 계집도 여간내기는 아니구나. 금서의 해독이 완벽하지 않았다고 한들, 마왕의 주술일진데.”
연원은 그렇게 감탄했고, 차서현은 숨을 몰아쉬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약간 상기된 얼굴을 보면 아직 주술에서 완벽히 벗어난 건 아닌 듯했지만.
차서현은 이를 악물고 철퇴를 꺼내 연원을 노려보았다.
이에 연원의 시선이 잠시 철퇴에 맴돌았다.
“네년은… 법당 놈들이 보냈느냐?”
연원의 물음에 차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래, 이 늙은이를 찾아올 놈들이 그것들밖에 없긴 하지. 제힘으로는 여기까지 올 수도 없으니 대신할 용병을 보냈는가. 한심한 놈들.”
연원은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나는 그 사이, 괜찮냐는 시선으로 차서현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럼 날뛰어 보아라.”
연원의 그 한 마디가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었다.
백호가 멧돼지 인간인 바라하에게 달려들었고, 나라싱하에게는 분신 셋이 전부 붙었다.
그리고 검을 든 인간에게는 서연과 차서현이.
그 사이 내가 노리는 것은 활과 도끼를 든 파라슈라마였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수많은 학살을 일으켰다는 그는 무신에 가까운 전승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불사신이었다.
그래서 전승 속에서는 세계의 종말이 올 때까지 살아있을 거라는 신의 화신.
그 전승이 어디까지 구현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 생명력이 질길 것은 뻔했다.
그렇기에 불사를 무효화시키는 내가 파라슈라마를 상대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고, 놈에게로 즉시 쇄도했다.
챙!
내가 검을 뻗자, 파라슈라마는 제 도끼를 움직여 마치 묘기처럼 그 초격을 아슬아슬하게 쳐냈다.
그 동작에서 엿보이는 무위는 절대 낮지 않다.
소환수의 재현도가 예상보다 높다는 뜻이었다.
“제법이네.”
이 정도면, 탑에서 보았던 오딘의 분신보다 조금 못한 정도일까.
그때의 오딘은 나와 한동안 검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강했다.
그렇기에 이 파라슈라마도 나를 상대로 잠시 버틸만했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탑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내가 모은 전승들이 부정되지도 않고, 그 격도 손상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검에 현무가 부리는 령을 휘감았다.
그러자 서늘한 귀곡이 검명에 깃들었고, 그 령은 아수라의 권능 아래에서 하나의 시한폭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파라슈라마는 우직하게 그 도끼를 움직였다.
그 직후 내 검은 도끼와 부딪혔고.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도끼를 든 파라슈라마를 휩쓸었다.
“……”
그 폭발에 직격당한 놈은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도끼를 든 팔과 얼굴 일부가 날아간 치명적인 중상.
하지만 그럼에도 놈은 계속해서 일어서려 했고.
나는 그 사이, 인검을 그 심장에 박아넣었다.
그러자 비로소 파라슈라마의 형상은 그대로 무너져, 빛 무리와 함께 소멸했다.
“뭣…!”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연원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네놈…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구나.”
“위험?”
그녀는 내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원은 시기불이라는 자리를 버릴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
그래서 이 불사를 끊는 전승을 가진 인검이 연원은 기분 나쁜 듯 보였으나.
“하지만 그것조차도,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야.”
그녀는 곧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그렇게 지껄였다.
“그러냐?”
그래서 나는 그 자신감을 확인해 보기 위해 연원에게 달려갔다.
연원은 손에 든 어설픈 지팡이로 나에게 대응하려 했으나, 그 정도의 반응으로는 내 검을 막기에 한참이나 부족했다.
촤악!
지팡이를 지나쳐 쇄도한 인검이 연원의 목을 찢었다.
“네…놈…!”
반 이상 잘린 목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왔다.
연원은 그 목을 부여잡고 신음하다가 쓰러졌고, 그대로 사망했다.
하지만.
“진짜 살아나네.”
연원은 곧 다시 새로운 몸을 얻고 눈을 떴다.
부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20대 성년의 모습으로.
“그러게 말하지 않았느냐. 이곳에서 나는 불멸이자 영생의 존재다.”
인검은 불사와 재생을 막는다.
하지만 연원의 부활이 정말 힌두교의 창세 신화와 연관이 있다면, 인검은 연원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다.
세계가 끊임없이 파괴되고 창조되듯.
연원은 자신이 죽음에 이르지 않는 게 아닌, 확실히 죽음을 경험하고.
그 후에는 육체를 재생하는 것이 아닌,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기에.
“네 검 따위로는 나를 없애지 못한다.”
“…그런 거 같긴 하네.”
연원의 말대로였다.
이대로는 그저 연원에게 의미 없는 죽음을 계속해서 안겨줄 뿐이었다.
물론 그때마다 고통은 있을 테니, 연원을 괴롭힐 수는 있겠으나.
결국. 그녀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인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호오, 근성은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포기했느냐?”
연원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포기가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불사의 원리를 체감했기에, 떠오른 게 있을 뿐이었다.
“아니, 검을 쓸 것도 없어서.”
“뭐라?”
나는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린 연원을 직시했다.
내가 사용한 스킬은 .
미트라 교의 금서가 허락한 그 권능은, 상대의 스킬 목록을 엿보고 그중 하나를 뺏어올 수 있었다.
“뭘 하는 게냐?”
이를 알 리 없는 연원은 그저 의문을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연원의 기술 목록을 살폈다.
역시나 갖고 있는 전승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전승 중, 눈에 띄는 것이 셋 보였다.
브라흐마의 창조.
비슈누의 수호.
시바의 파괴.
이 세 스킬이 서로 뭉쳐, 불사를 이룬 건가.
그렇다면 그중에 내가 뺏을 만한 스킬은… 당연히 하나뿐이었다.
나는 연원에게서 ‘비슈누의 수호’를 강탈했다.
“허…?”
그러자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완벽한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있던 그녀의 몸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채 한 마디를 내뱉기도 전에 그녀의 몸은 완전히 무너져 사라졌다.
하지만 곧 다시 그녀는 자신을 창조했다.
그러나.
“뭘…한 거냐!”
이번에도 역시 그 몸은 채 몇 초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세계의 유지를 담당하는 비슈누의 전승을 나에게 뺏긴 탓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몸은 만들어지더라도 유지될 수 없었고, 이내 다시 파괴되었다.
“말해라! …나에게 …무슨…짓을!”
계속해서 창조와 파괴가 이어졌다.
그렇게 끝없이 무너지고 되살아나면서도 연원은 물음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 대신 그저 미소만 지었다.
연원의 신체는 이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어차피 저 발악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리라.
그래서 나는 연원의 이 공간이 부서지는 걸 기다렸고.
이내 멋들어진 숲의 풍경에 금이 갔다.
그리고 그 금은 곧 틈새가 되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
그렇게 잠시 후.
내 눈에는 다시 삭막한 빈민가의 풍경이 비치고 있었다.
한편 그 빈민가 한가운데에 있던, 연원의 괴상한 모양의 집은 더 이상 없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몇 개의 진흙 덩어리와… 거기에 파묻힌 불교의 금서.
나는 그 진흙을 털어내고 불교의 금서를 집었다.
그러자 금서는 한 줄기의 빛으로 변해 나에게 흘러들어왔고.
퀘스트 버튼이 번쩍이며, 또 하나의 퀘스트가 완료되었음을 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