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90
190.
“후우…”
사건 하나를 처리하고 돌아온 경찰청 내부에 마련된 팀 사무실.
나는 그곳에 배치된 노트북을 통해 밀린 메일을 확인했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사무실을 비웠던 시간은 반나절 정도였을 터.
하지만 그 사이, 또 새로운 일거리가 들어와 있었다.
“쯧…”
이에 나는 혀를 차며 그 내용을 확인했다.
새로운 사건은 총 두 건.
그 중 하나는 외국 정부에서 온 협조 요청이었다.
곧 자국에 있는 사교의 탑을 정복할 작정이니, 한국에서 이를 도와줬으면 한다는 것.
그 탑의 위치는 오지가 아닌, 유럽 한복판에 있는 그리스였다.
결국, 여기도 탑에 대한 중립을 포기한 건가.
이처럼 탑에 대해 미온적인 대처를 보이던 각국의 정부들은 최근 들어 속속 그 태도를 바꾸고 있었다.
그건 탑이 마인들에 의해, 서서히 격렬한 전장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각자도생하던 마인들.
하지만 지금 놈들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하나로 뭉쳐, 거대한 조직을 이루고 있었다.
오로지 탑을 보호 중인 국가 병력을 뚫어내기 위한 일시적인 동맹을 맺은 것이었다.
일단 탑에 들어가기만 하면 전승을 얻을 때까지는 손을 댈 수 없고.
전승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은 후에는 정부에서 병력을 충원하더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그 계산은 그대로 맞아떨어져, 일부 국가에서는 실제로 거대 마인 조직이 탑을 장악했고.
일반인까지 강제 동원한 마인들이 차례차례 강력한 전승을 얻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마인들의 행각에 각 정부는 경악했다.
그래서 그들은 탑을 시급히 위험 지역으로 지정.
이를 정복하기 위해, 탑의 전승 부정에 대항할 수단이 있는 한국에 협조 요청을 보내오고 있었다.
“…진작 이렇게 하지.”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걸까.
한심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리스에 있는 탑이라면, 그 탑에 있을 신화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스 신화.
탑을 정복하고 신화의 두루마리를 얻는다면… 아무리 랜덤이라도 해도 건질 것은 있을 터.
“그렇다면…”
충분히 내가 갈 가치가 있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번째 사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건 국내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사교의 영향을 받은 듯한 어느 마인 조직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흔한 내용.
하지만 이 사건이 나에게 넘어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생교라…”
그 마인 조직의 이름은 ‘신생교’.
그것은 과거, 이리섬에서 수많은 사람을 살해했던 사이비 종교이자.
최은영에 의해 괴멸된 교주 일족의 종교명이었다.
그리고 그 과거의 사이비 종교가 되살아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죽은 교주의 아들 중 하나이자 최은영에게는 작은아버지가 되는 최수만.
그가 최근 살아남은 교주 일족을 모아 규합했고, 지금은 무인도가 된 이리섬에 주둔 중이라는 정보가 입수된 것이었다.
“흠…”
겉으로만 보면 그리 위험한 사건은 아니었다.
원래 교주 일족은 교주가 가진 세뇌 능력으로 일반인들을 지배하던 자들이다.
그래서 그 하나하나가 그리 강력한 마인이라고는 할 수 없었던 인간들.
설령 그들이 지금 다시 모였다고 한들, 적당한 마인 조직보다도 그 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나타난 시기가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현재 파악된 정보만 보자면 신생교는 교주 일족만 모였을 뿐.
아직 종교 단체에 걸맞는 신도는 확보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놈들은 어설프게 자신들의 존재를 들켰고, 그 결과 정보가 나에게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함정인가?”
그래서 나는 사교를 의심했다.
그들 역시 내가 팀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진작에 파악했을 테니.
이건 신생교라는 간판만 걸어놓은, 놈들의 함정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내 팀원을 노리고 있다는 건가?
그래서 나는 이 두 사건을 보며 고민했다.
어느 쪽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둘 다 내가 갈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지.”
그래서 나는 팀을 둘로 나누기로 했다.
탑에 가는 것은 나와 차서현.
그리고 이리섬으로 가는 것은 최은영와 모니카였다.
모니카는 이미 아홉 번째 재앙, 흑암을 개방하여 거의 완숙에 도달했고.
최은영 역시 그 전력이 나도 놀랄 부분이 있을 정도로 상당히 발전했다.
설령 이것이 진짜 사교의 함정이라도…내 팀원의 발전은 저들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고 있을 터.
그러니 충분히 시도해 봄 직하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날.
나는 사무실에 뜬금없이 나타난 커다란 바위 문 앞에 서 있었다.
이건 불교의 금서를 습득하고 얻은, 나의 새로운 스킬이었다.
.
마라 파피야스를 의미하는 그 스킬의 효과는 간단했다.
바로 마라가 지배한다는 욕계, 타화자재천이라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 욕계 자체는 일종의 마역과 같아서 큰 쓸모가 없었다.
그저 삭막한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몇몇 괴이들만이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으니.
물론 나에게는 마라의 권능이 있기에 그곳의 괴이가 나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아귀나 수마, 음마 등을 직접 조종하거나 지배하는 것도 가능했고.
아예 현실로 불러올 수도 있었지만, 그 정도 전력은 냉정히 말해 내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스킬을 썼을 때는 다소 실망했었다.
인도까지 간 것치고는 수확이 그리 대단치 않았으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그 스킬의 진정한 가치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불교에서 욕계는 인간계 위에 있는 천상계로, 인간계보다도 훨씬 더 높은 위계를 가진 세계다.
그런 전승 때문일까.
욕계에 들어가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했고, 거기에 욕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출구는 전 세계 어디에나 만들 수 있었다.
즉 ‘욕계의 주인’이라는 스킬은 강력한 장거리 이동 스킬로 사용이 가능했다는 뜻.
비록 텔레포트처럼 순식간에 이동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나에게는 무척이나 유용한 스킬이었다.
그야 외국 출장이 워낙 빈번해진 요즘은 전투 시간보다도, 작전 지역으로 가는 이동 시간이 더 길어지는 판국이었으니.
“그럼… 챙길 건 다 챙겼지?”
“예. 문제없습니다.”
나는 그런 욕계로 향하는 문 앞에서 같이 그리스로 떠날 차서현과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것은 두 명.
한국에서의 사건을 해결할 최은영과 모니카였다.
“괜찮겠어?”
나는 그중에서도 최은영에게 물었다.
이미 신생교 사건에 관해 전해 들은 그녀는 다소 굳은 얼굴로 스케치북을 꼭 쥐고 있었다.
긴장이라도 하고 있나 싶었지만, 최은영은 지극히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러냐.”
그거면 되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모니카에게도 수고하라는 말을 남긴 뒤, 그들을 작전 지역인 이리섬 근처에 무인도로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차서현과 함께 그리스로 이동했다.
잠깐 욕계의 풍경이 시야를 지나가고, 곧 갈색의 나무로 가득 찬 마른 숲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여긴… 숲인가.
내가 나타난 장소는 미리 그리스 쪽에서 위치를 알려주었던, 탑 근처의 숲 속 공터였다.
역시나 멀리 떨어진 외국인지, 한국과는 사뭇 다른 공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여기가 그리스입니까?”
“그래, 도착했어.”
“허… 이동할 때마다 참 신기한 기분입니다.”
내 뒤를 따라온 차서현이 그렇게 말했다.
나도 오래전 텔레포트를 처음 사용했을 때는 그녀와 비슷한 감상을 느꼈다.
수백, 수천 Km의 거리를 단번에 뛰어넘다니,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다 익숙해진 지 오래라, 나는 말없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탑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역시 하늘을 꿰뚫을 듯, 높게 솟은 탑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가자.”
이번을 포함하면, 완성된 탑을 정복하는 것은 벌써 세 번째.
그렇기에 나는 다소 지루한 감정이 앞섰지만, 내 옆에 선 차서현의 얼굴은 긴장감에 약간 굳어 있었다.
하지만 차서현의 실력은 예전과 같지 않다.
그녀라면 탑 안에서도 충분한 활약을 보일 수 있으리라.
그러니 탑이 정리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터.
그렇다면… 모니카와 최은영은 그전까지 사건을 끝내놓을 수 있을까.
그쪽도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잘 키워놨으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탑을 향해 걸었다.
한편 벌써부터 우리의 등장을 눈치챈 건지, 탑에서는 작은 소란이 느껴졌다.
* * *
“……”
무인도에 남은 두 여자 중 한 명인 모니카는 조심스럽게 최은영을 바라보았다.
이번 사건에 관한 이야기.
즉 최은영의 과거 이야기는 본인의 허락 아래, 팀장인 강진우에게 전부 들었다.
그래서 모니카는 오늘따라 최은영을 대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이 사건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인지했기에.
그리고 동시에 강진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는 이 사건을 최은영, 본인에게 맡긴 것일까.
모니카가 들은 최은영의 과거가 사실이라면, 이리섬은 결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곳이 아니던가.
게다가 그곳에 있는 친족을 죽이라니.
어떻게 그런 일을 최은영 본인에게 맡길 수 있다는 건가.
하지만 정작 최은영은 그런 모니카의 의문스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했다.
“소환수를… 부를게요.”
“응? 어… 응.”
시간은 저녁 8시로, 겨울이 다가온 지금은 해가 진 지 오래였다.
모니카가 도착한 무인도의 넓이는 운동장보다 조금 넓은 정도로, 사실 섬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암초 같은 곳이었다.
그 때문에 광원이라고는 하늘에 뜬 달과 별밖에 없다.
그렇게 어둠이 내리깔린 바다는 파도조차 없이 고요하다.
그리고 그런 바다 위로 무언가 떠올랐다.
그건 바다와 같은 짙은 검은색을 띠고 있어, 모니카의 눈에는 뭐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 가오리… 라고 하는데요.”
자연스럽게 최은영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수중에서는 잠행에 특화된 소환수로 바다를 건너기 위한 탈 것이라는 모양이었다.
이에 모니카는 최은영을 따라 그 바다 위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영락없이 바다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단단히 모니카를 받쳤다.
“그, 그럼… 이동할게요.”
모니카가 탑승한 것을 본 최은영은 지체없이 그림자 가오리를 움직였고, 그것은 소리도 없이 바다를 가르며 이리섬으로 출발했다.
그들이 있던 무인도와 이리섬 사이의 거리는 약 30 km.
하지만 이리섬이 있어야 할 방향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아무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더욱 어둠이 깊어진 바다 한가운데에서 모니카는 겨우 입을 열었다.
“저기…”
“네?”
“넌, 괜찮은 거야?”
모니카에게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물음이었다.
걱정되어 물은 것이긴 하지만, 어쩌면 최은영의 트라우마를 캐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
그러나 정작 최은영은 그 의도조차 알아듣지 못했다.
“뭐가요?”
“그게… 저기 있는 건, 너의 가족들이잖아.”
“아, 그건… 괜찮아요.”
이에 최은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딘지 익숙하다는 태도였다.
“걱정하실 건… 없어요. 오히려… 마침 한곳에 모여 있어서… 잘 됐다고 생각했거든요.”
너무나도 뜻밖의 대답에 모니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모여 있어서 잘 됐다니.
마치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대답이 아닌가.
이에 모니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머릿속에서 최은영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모니카는 최은영을 그전에도 강진우의 팀원으로 얼굴은 알고 있었고.
이제는 같은 팀으로 배속받은 지 석 달 정도 되었다.
그동안 그녀는 최은영이 그저 소심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여자라고 생각했건만.
의외로 무서운 점이 있었던 걸까.
모니카는 그런 최은영을 힐끗거리며 바라보았고, 최은영은 그저 검은 바다에 시선을 두었다.
그렇게 한동안 묘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던 그때.
불현듯 무언가를 느낀 모니카가 고개를 들었다.
“…잠깐, 결계야.”
결계라는 말에 최은영은 그림자 가오리를 잠시 멈췄다.
“혹시… 드, 들켰나요?”
“아니, 경비용은 아니야. 이건, 눈속임용. 아마 경비용 결계는 더 안쪽에 있을 거야.”
모니카의 말에 최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불안감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조금 더 접근하게 되면, 감시 시스템이 작동하여 이 조심스러운 잠행이 들켜버린다는 뜻이었으니.
“그, 그럼 어쩌죠?”
“은폐… 주술을 쓸게.”
그렇게 말하며 모니카는 품속에서 십자가를 꺼냈다.
이어서 그녀는 성호를 그으며, 시동구를 읊었다.
“주는 내 원수의 눈을 가리시나니.”
그건 다윗이 사울 왕의 추적을 피해 달아났던, 성경의 전승을 이용한 은폐술이었다.
혈혈단신의 몸으로 왕이 동원한 수많은 군인을 따돌리고 탈출했던 다윗의 전승이 두 사람의 모습과 기척을 가린다.
전승이 제대로 적용되었음을 확인한 모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도 돼.”
이에 잠시 멈춰 서있던 가오리가 서서히 전진을 개시했다.
그러자 눈을 속이고 있던 결계의 안쪽으로 진입하며 이리섬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어둠에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닌, 한밤중임에도 환하게 불이 켜진 섬의 풍경.
이를 보며 최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 섬의 풍경이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이리섬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