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91
191.
이리섬이 가까워지자, 섬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최은영에 의해 교주 일가가 괴멸된 후, 무인도로 남아있던 이리섬.
하지만 지금 그런 이리섬의 항구에는 다시 불이 켜져 있었고 그 아래로 경비원으로 보이는 몇몇 인영이 보였다.
“……”
그것을 최은영은 묵묵히 바라보았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고, 그립지만 결코 그리워해서는 안 되는 풍경이었다.
최은영은 이리섬의 야경에서 겨우 눈을 떼고 주변을 살폈다.
은폐 주술 덕분에 아직 저쪽은 모니카와 최은영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적의 병력조차 파악하지 못한 지금 대놓고 항구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때 모니카가 최은영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저쪽으로 가는 건, 위험해.”
그녀의 물음에 최은영은 잠시 자신의 기억을 뒤적이다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갈만한 곳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최은영이 향한 곳은 섬의 반대편이었다.
얕은 바위 절벽과 바다가 만나는 섬의 끝자락.
상륙하기는 다소 번거롭지만, 바위 위로는 키 작은 나무들이 서 있어서 몰래 상륙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지형이었다.
그래서인지 항구 근처와는 달리 눈에 보이는 불빛이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최은영은 조심스럽게 그런 절벽 아래로 그림자 가오리를 움직였다.
“후…”
그렇게 잠시 후.
짧은 한숨과 함께 최은영과 모니카는 섬에 상륙했다.
땅을 밟고 선 모니카는 가장 먼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했지만,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다.
그리고 그 사이, 그림자 가오리를 소환 해제한 최은영은 또 다른 소환수를 불러냈다.
손바닥만 한 눈알에 날개가 달린, 정찰용 소환수인 와쳐였다.
이리섬은 육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때 수천 명의 사람이 살았던 만큼 상당히 큰 섬이었다.
그래서 이리섬의 침입자인 모니카와 최은영에게는 무엇보다 섬 어디에 어느 정도의 전력이 분포해 있는지.
이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했다.
와쳐가 밤하늘을 날아 섬의 안쪽으로 날아갔다.
“…어때?”
와쳐에게 붙여둔 추적 주술이 발동하며, 최은영이 준비한 섬의 지도에 적의 위치를 속속 표시했다.
와쳐는 시력은 무척이나 좋은 편이지만, 투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와쳐에 의해 하늘에서 인식된 사람만이 지도에 점처럼 찍혔는데, 그 숫자가 제법 많았다.
이에 최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해요. 너무 많은데…”
지금은 밤이다.
아무리 경비에 힘을 쓰고 있다고 해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건물 안에 있을 터였다.
그런데 하늘에서 보이는 사람의 숫자만 30이 넘는다.
이는 살아남은 교주 일족을 전부 합한 것보다 많은 것.
그래서 최은영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모니카는 가볍게 답했다.
“강진우가, 말해줬잖아.”
“팀장님이요?”
“사교가 있을 거라고.”
“아… 마, 맞아요.”
분명 그런 말을 들었다.
이 사건은 사교가 준비한 함정일지도 모른다.
전부 강진우가 전해준 충고였다.
이를 떠올린 최은영은 조용히 지도를 노려보며, 그들의 분포에 집중했다.
단지 섬의 지도에 몇 개의 점이 찍혀 있을 뿐이었지만.
한때 이리섬에 살았고, 교주 일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그녀는 금방 그 속에 숨어 있는 상황을 간파했다.
“적들은… 두, 둘로 나뉘어 있어요.”
틀림없었다.
교주 일족과 사교는 따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야 교주 일족이 사교와 손을 잡았다고 한들, 그 두 세력은 원론적으로 공존할 수가 없다.
그야 서로가 다른 종교를 내세우고 있었으니.
또한, 교주 일족이었던 그녀의 친족들은 결코 만만한 성품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다.
한때 왕족처럼 살았던 그들은 몰락하고 나서도 지극히 오만했다.
그러니 자신들의 성을 되찾은 지금.
교주 일족은 자신들을 도우러 온 사교를 종처럼 부리려 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둘?”
“예. 여기랑… 여기에요.”
최은영은 그렇게 말하며 지도 위에 손을 짚으며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에는 저택과… 항구가 있어요.”
원래 이리섬의 주거 구역은 크게 몇 개로 나뉘어 있다.
먼저 교주 일족이 살고 있던 한옥식 저택.
그다음은 일반 신도들이 자신의 역할에 맞춰 나눠 살고 있던 세 개의 마을.
마지막으로 섬의 통행을 감시하던 항구 근방 지역까지.
그리고 현재 적들은 교주 일족의 저택과 항구 근방 지역에 몰려 있었다.
그중에 저택에 있는 것은, 생각할 것도 없다.
틀림없이 교주 일족일 것이다.
이제야 자신들의 집을 되찾은 그들이 제 저택을 사교에게 내어줄 리가 없었으니.
이를 보며 모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부터?”
모니카의 말에 최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최은영이 내뱉은 답은 모니카와 예상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아니, 아니요. 따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따로?”
각각 사교와 교주 일족을 택해, 양쪽에서 치자는 뜻.
빠져나가는 놈 하나 없이 괴멸시키고자 한다면 이상할 것도 없는 작전이지만.
“…위험할 거야.”
그 말대로였다.
현재 모니카의 무위는 강진우가 인정할 정도로 성숙해 있었다.
그러니 설령 사교의 마인들이라 할지라도, 다수를 상대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은영은 아니다.
단순히 그녀가 약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소환사다.
그러니 소환수는 다수의 마인을 상대할 정도로 강할지 모르나, 적들도 바보가 아니다.
최은영의 능력은 저들도 알고 있을 테니, 분명 소환수와 소환사를 동시에 공격하려 할 터였다.
“저는,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최은영은 그렇게 확언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듯 모니카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최은영은 자신의 품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꺼내 보였다.
“이, 이것도… 있으니까.”
그건 강진우가 팀원들에게 나눠준 흑진주로 지난번, 서사하라의 탑에서 얻었던 소소한 보상 중 하나였다.
모로코 설화 속.
어떤 현명한 아내는 전쟁에 나가는 남편에게 이 흑진주를 맡겼다.
그 후 남편은 결국 그 전쟁에 싸우다가 포로로 잡혔으나.
적국에서는 흑진주가 굉장히 귀한 보물이었고, 남편은 이를 적장에게 몸값으로 건네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흑진주는 그 전승을 바탕으로, 보유하고 있는 사람의 위험을 주인에게 알린다.
거기에 그는 먼 거리를 금방 이동할 수도 있었으니… 이건 그가 팀원에게 건넨 일종의 보험이나 다름이 없었다.
“……”
그래도 위험하다는 건 변하지 않았기에 모니카는 최은영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그 시선을 피하면서도 끝내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모니카는 하는 수 없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네 말대로 해.”
“그럼… 제가 저택을 맡을게요.”
그렇게 두 사람의 역할이 정해졌다.
이윽고 그들의 그림자는 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어후…”
그리스에 있는 탑 내부.
그곳에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탑에 도착하자마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탓이었다.
“아주 작정을 했네.”
그리스가 한국에 협조 요청을 했다는 첩보라도 입수한 건지.
내가 탑에 들어서자마자 탑은 자신의 모든 병력을 동원해 나와 차서현을 공격해왔다.
이를 갈고 있던 사교의 전면전.
그렇기에 나는 많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본뜬 환영은 물론.
그 전승을 사용하는 수많은 사교의 마인들을 동시에 상대했어야 했다.
“괜찮냐?”
나는 그 난리에 나와 함께 휩쓸린 차서현을 보며 물었다.
평소라면 힘들어도 힘든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그녀였지만.
“예. 걷는 것 정도는…”
지금만은 가늘게 떨리는 입술 때문에 억지 미소조차 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몸에는 여기저기 베이고 찔린 상처도 보였다.
나는 그것을 코셰이의 약물로 치료해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래 신화 속, 올림푸스의 풍경을 그리고 있던 이 전장은 철저히 파괴된 상태였다.
마인과 환영의 찌꺼기가 쓰레기처럼 사방에 널려있고, 고급스럽게 장식된 조각상들은 흉물이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와중에 여기저기 움직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서연이었다.
마인들이 죽으며 남긴 혼은 그대로 구미호의 먹이가 되기에.
서연은 인간의 형태로 여덟 개의 꼬리를 살랑거리며, 그런 마인들의 혼을 여우구슬로 모으고 있었다.
“아직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그 여우가 저렇게 변하다니.”
차서현은 그런 서연을 보며 말했다.
서연은 현재 10대 후반 정도 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럼 꼬리 9개를 전부 모으면, 성인이 되는 건가.
아니, 성인이 아니라 신선이었지.
하지만 아직 서연이 등선하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전히 그 행동이나 말투는 어린아이 같았기에.
나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서연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깐만 쉬다가 위로 올라가자. 서연, 너도 적당히 하고.”
“응!”
전장을 정리하고 우리는 탑의 위층으로 올랐다.
한 번에 모든 병력을 투입한 건지, 남아있는 사교의 세력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탑의 꼭대기.
바로 신의 옥체가 보관되어 있는 그곳이었다.
그런데.
“음…?”
두 달이 지나서 도착한 새로운 탑의 꼭대기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본래 붉은 고깃덩이 같은 신의 옥체는 더 이상 없었다.
그곳에 남아있는 것은…언젠가 보았던 이계의 괴마.
“#$%#$%#”
그 괴마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인간의 신경을 긁는, 불길하고도 역겨운 울음소리.
이에 나는 조용히 활을 꺼내 들었다.
그 시위에 걸리는 것은 빛의 화살.
태양을 실은 활은 이내 팽팽한 힘으로 당겨졌고.
이어서 찬란한 빛의 폭발이 괴마에게로 날아들었다.
* * *
“……”
최은영은 말없이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저택을 바라보았다.
저택의 대문이 끝도 보이지 않는 담벼락 한가운데에 나 있었다.
저 대문 안쪽으로는 수십 채에 이르는 한옥이 마치 궁궐처럼 늘어서 있다.
한때 이곳을 지배했던, 신생교의 오만이자 그 흔적.
지금 그 안에서는 한창 인기척이 들려오고 있었다.
좋다고 떠드는 목소리와 거기에 섞인 웃음소리들.
이 저택을 되찾은 것이 그렇게나 기쁜 걸까.
최은영의 낯빛이 어둡게 물들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일족이 행한 죗값은, 그녀가 직접 벌해야만 한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은 지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나.
여기까지 와서도 일말의 반성조차 없는 저들의 행각은 실로 실망스러웠다.
어째서 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 저택에 앉아 있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저 비극의 장소에서 저리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걸까.
최은영은 그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저들은 친족을 제 손으로 살해하는 최은영에게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정신이 나간 거냐고 물었지만.
최은영이 보기에 미친 쪽은 바로 저들이었다.
그런 그녀와 교주 일족 간의 이해의 간극은 곧, 또 한 번의 비극을 불러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와.”
최은영이 제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러자 그 페이지가 스스로 넘어가며, 곧 셋의 괴물을 현실로 불러왔다.
섬뜩한 도끼를 든 미노타우르스가 지상에 발을 디뎠고.
그 뒤로 그 두 배는 되는 몸집을 가진 녹색의 괴물, 오우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런 오우거의 그림자 아래에서 조심스럽게 나타난 것은 아라크네.
수천, 수만에 이르는 맹독 거미를 거느린 거미 여왕이었다.
“……”
최은영은 그런 자신의 소환수를 잠깐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 하나의 소환수만을 소환할 수 있었던 최은영의 능력.
그러나 강진우에게 모종의 가르침을 받은 이후, 그녀의 능력은 추가로 개화한 상태였다.
본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바라지도 못하던 도움이었다.
하나였던 소환수가 셋이 된 것만으로도, 순수 전력은 세 배 이상 늘어난 셈이었으니.
아니, 그뿐일까.
지금 최은영이 부른 소환수 셋 모두, 강진우가 알려준 괴물들이 아니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녀는 강진우가 자신에게 건넨 흑진주를 꺼내 보았다.
뒤돌아보니 강진우에게 받은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는 친족을 제 손으로 죽인 자신을 인정해주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과업이었던, 이매망량까지도 해방시켜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최은영에게 힘을 주었다.
모니카에게 힘이 자신의 복수를 위한 것이었다면.
최은영에게 힘은 과거의 속죄를 위한 것이었다.
한때 그녀는 그 속죄조차, 자신이 부른 이매망량에게 의지했다.
그 결과 이매망량은 속죄해야 할 사람들의 한까지 집어삼켜 폭주했다.
그때 최은영이 느꼈던 한심함과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후로도 자신의 친족을 제 손으로 죽여 속죄하려 했지만, 그조차 쉽지 않았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혹은 그가 최은영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오늘, 신생교가 부활했다는 말을 듣고도 그저 구경만 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그래서 최은영은 당당히 저택의 대문 앞에 섰다.
더 이상 제 몸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강진우를 만났고, 그와 함께하게 된 그녀는.
더 이상, 저들보다 약하지 않았다.
“가자.”
강진우의 흑진주를 소중히 쓰다듬던 그녀는 곧 소환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장 앞서 있던 미노타우르스의 도끼가, 굉음과 함께 저택의 대문을 반으로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