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92
192.
세 마리의 괴물이 저택에 들어섰다.
무너진 대문 뒤, 널찍이 깔린 마당 위로 네다섯 명의 인영이 괴물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우오오오오!”
가장 앞장 서 있던 미노타우르스가 바로 제 주인의 적에게 달려갔다.
이에 질세라 거구의 오우거가 그 뒤를 따랐고, 아라크네의 독거미 떼는 어둠을 틈타 저택의 그림자에 숨어들었다.
쿠드득! 쾅!
미노타우르스가 순식간에 교주 일족 하나를 피떡으로 만들었고, 오우거의 둔기가 불이 켜진 집 하나를 박살 냈다.
그 거대한 충격은 이윽고, 늦은 저녁의 저택을 전장으로 뒤바꾸었다.
건물 안에 있던 교주 일족이 마침내 밖으로 기어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괴물들의 습격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일 정도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다는 듯.
밖으로 기어나온 그들은 저마다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런 친족들의 모습을 괴물 뒤에 선 최은영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고.
“저년! 최은영 그년이 왔다!”
교주 일족 중 누군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그렇게 소리쳤다.
거기에 최은영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정작 발작한 것은 교주 일족이었다.
여기저기에서 그들의 능력이 발현되었다.
사방에서 빛이 번쩍였다.
척 보기에도 하나같이 위협적인 전승들.
과거, 저들이 이리섬에 살았을 때는 손에 쥐어보지도 못했던 흉기들이었다.
그 출처는… 역시 사교일까.
최은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은 했지만, 전부 강진우의 말대로였다.
이어서 교주 일족과 소환수가 부딪쳤다.
최은영의 친족들은 어느새 그리 만만하기만 한 마인들이 아니었다.
그들 중 미노타우르스의 참격이 한 남자의 방패에 막혔다.
비록 그는 충격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지만, 미노타우르스에게 틈을 만들어냈다.
그 사이를 한 여자가 거침없이 찌르고 들어왔다.
촤아악!
거친 쇳소리와 함께 미노타우르스의 두꺼운 가죽이 찢기며 핏물이 흩날렸다.
순식간에 미노타우르스를 둘러싼 것은 다섯의 마인.
그리고 더욱 거대한 몸집을 가진 오우거에게는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
근접전을 시도하는 것만 7명.
원거리에서 끊임없이 화살과 총 따위를 쏴대는 것까지 하면 그 배가 넘는다.
“크어어어!”
날파리처럼 날아드는 투사체에 오우거가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그 거체가 비틀어 쥔 둔기가 넓은 범위의 지면을 한 번에 쓸어버렸지만, 가까이 있던 일곱 중 거기에 맞고 날아간 건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 하나마저, 다른 이들이 쓰러지기 전에 다시 일어나 전장에 합류한다.
이를 보며 최은영은 스케치북을 쥐었다.
숫자로는 당연히 교주 일족이 지극히 유리하다.
그러니 최은영은 소수 정예로 그들을 압도하는 전력을 보여줘야 했으나.
“우오오!”
유감스럽게도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기껏해야 반반.
저들은 두 괴물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반대로 밀리지도 않고 있었다.
그렇게 두 거대 괴물이 교주 일족과 악전고투를 벌이는 사이.
“저년부터 죽여야 해!”
또 다른 교주 일족이 최은영에게로 쇄도했다.
그 숫자는 아홉.
두 괴물을 묶어놓은 지금이라면 소환사를 제거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은영 역시 그 대비를 놓친 것이 아니었다.
“아악!”
갑자기 최은영을 향해 달려가던 한 여자가 다리를 붙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녀의 다리는 부자연스럽게 꺾여 허공에 걸려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뭐야!”
이에 그 여자는 그 허공에서 자신의 다리를 빼내려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마치 고무줄처럼 탄력 있게 움직이면서도 결코 그 다리를 놔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앞서가던 교주 일족 중 누군가는 팔이, 또 누군가는 머리가 허공에 걸렸다.
“물러나! 뭔가 있다!”
그걸 보며 나머지 교주 일족이 경계하듯 뒤로 물러났다.
“시이이-”
그러자 비로소 무너진 건물의 그림자 아래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온몸이 새까맣게 물든, 2미터가 넘는 거미.
그 희번덕거리는 여덟 개의 시선에 교주 일족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혐오조차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 아라크네에게서 검은 물줄기 같은 게 뻗어 나왔다.
그건 손톱만 한 거미 떼.
그것이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타고, 거기에 걸린 먹잇감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저, 저리 가!”
이에 거미줄에 묶여 있던 교주 일족이 기겁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비명에도 거미들은 이내 그들의 몸을 뒤덮었고.
곧 작은 톱날들이 살갗을 쥐어뜯는 섬뜩한 소리가 났다.
“힉…!”
이를 지켜보던 누군가 비명을 흘렸다.
분명 사람의 몸을 뒤덮었던 거미였건만.
거미 떼가 그리던 인영은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마치 폭염 한가운데에 선 눈사람처럼.
그리고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거미들은 다시 투명한 거미줄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그 전에 거기에 걸려 있던 인간은 온데간데없었다.
시신은커녕, 피 한 방울 남지 않고 사라진 세 일족의 죽음에 다른 이들이 분노했다.
“저 미친년이 지금 우리 엄마를 죽였어!”
“방금 그건 민지였어! 너 민지 몰라? 네 사촌 언니잖아!”
혐오와 분노가 가득 찬 고성과 절규에 가까운 성토와 비난이 최은영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단 한 단어조차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저들이 이전과 다른 것처럼, 그녀 역시도 이전과 달랐다.
한때는 저들의 목소리에 흔들렸던 적도 있었다.
자신의 행위가 옳은 것이었는지.
정말 그래야만 했는지, 그녀조차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아니었다.
이제는 분명히 가슴을 펴고 이야기할 수 있다.
옳은 것은 분명 자신이었다.
그리고 저들은 완벽하게 틀렸다.
그 긍정과 증명과 판결은, 그가 해주었다.
그러니 자신은 제 죄조차 모르는 살인자들의 헛소리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아라크네.”
그래서 그녀는 아라크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직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거미떼를 꺼내, 저들을 덮치라고.
이에 아라크네는 그 주인의 명령을 따라 제 권속을 해방했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엄청난 수의 거미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마치 그림자가 스스로 늘어나는 그 모습에 교주 일족은 경악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최은영이 소유한 진짜 전력은, 바로 저 거미라는 것을.
“……”
그 모습을 최은영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다.
전방에서 싸우는 미노타우르스와 오우거는 그저 미끼.
그들이 화려하게 앞에서 시선을 끄는 사이, 소환사인 자신을 죽이러 올 일족들을 먼저 참살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대로 먹혀들었다.
벌써 세 명의 일족이 죽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도 이제 곧 죽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가 자신의 친족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려던 그때.
“뭣들 하고 있나!”
어디선가 노호가 들려왔다.
지극히 익숙한 목소리에 최은영은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최수만.
이 신생교를 이끌고 있다는, 자신의 작은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겨우 벌레 새끼들이다! 정신 차려라!”
그는 붉은 불꽃에 휩싸인 대검을 들고 그리 말했다.
한 사람의 몸집만큼이나 큰 대검.
그 대검을 보며 최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영력이, 강진우만큼이나 민감하지 않은 자신조차 알 수 있을 정도로 농밀했기에.
“교주님…!”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이에 최은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교주라니.
단연코 다시 듣고 싶은 단어는 아니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한편 최수만은 그 화염을 두른 대검을 들고 미노타우르스와 오우거를 겨누었다.
이윽고 몇 번의 검격과 맹렬한 화염이 몰아쳤다.
그 기세는 엄청났다.
이미 원형에 가까운 소환수인 미노타우르스와 오우거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화염은 곧장 거미떼에게로 휘둘러졌다.
불꽃이 해일처럼 일어나 거미는 물론, 보이지 않는 거미줄까지 태워버리며 그것들을 일거에 소멸시킨다.
분명 아라크네는 어느 정도의 화염 저항력을 갖고 있을 터였지만.
저건 예상 이상의 화력이었다.
그래서 최은영은 하는 수없이 아라크네를 뒤로 물렸고.
곧 최수만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뒤로는 수십 명의 일족이 따라붙었다.
“…오랜만이구나.”
“……”
“대답도 없느냐? 건방진 것.”
최수만이 냉소와 함께 말했다.
그러자 교주 일족 중 누군가가 사나운 기세로 소리쳤다.
“저년이… 저년이 민지를 죽였어요!”
그것이 시작이었다.
최은영에게 제 가족을 잃은 자들이 하나 같이 그 사실을 최수만에게 고발했다.
마치 억울한 피해자인 양 소리치는 그 모습이 최은영에게는 너무나도 역겨워 보였다.
저렇게나 자기 가족을 아끼는 자들이 왜, 다른 이들은 그리 쉽게 죽여버렸던 걸까.
한편,
“시끄럽다.”
최수만은 그들의 목소리를 단칼에 잘라냈다.
그리고 오히려 그는 그들을 비웃었다.
“죽을만했으니 죽었겠지.”
“뭐…뭐라고요?”
“말했을 텐데. 약해빠진 놈들은 죽어도 상관없다.”
그의 말에 실컷 최은영을 욕하던 이들은 당황의 시선을 최수만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눈빛 앞에서 오히려 혀를 찼다.
“그 꼴을 겪고도 아직도 모르겠나! 우리에게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 중 단 하나라도, 그때 이런 힘을 갖고 있었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어!”
최수만의 호령과 그 속에 담긴 기세에 다른 이들의 기가 죽었다.
그 꼴을 잠시 노려보던 그는 못을 박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 죽은 놈들의 이야기라면 닥쳐라. 이제 신물이 난다.”
그 노골적인 말에 교주 일족은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최수만의 눈을 다시 최은영을 향했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강해졌더구나, 은영아.”
다만 그리 말하는 그의 눈은 최은영을 거쳐, 그 발치로 향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제 주인의 앞을 지키고 있는 거미, 아라크네.
그 징그러운 거대 거미를 최수만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직시하고 있었다.
“다른 쓰레기들보다는 쓸모가 있겠어.”
사실 그는 아라크네에게 당한 자신의 친족을 구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이는 최은영이 가진 아라크네의 힘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고.
그 결과 최수만은 아라크네에게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최은영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돌아와라. 지금의 너라면 다시 받아줄 가치가 있다. 처벌은 필요하겠다만, 쓸모가 있으니 살려는 주지.”
그는 굳이 괜한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았다.
최은영은 교주 일족을 파멸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었다.
그러니 그녀를 회유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보상이나 사면이 아니었다.
최은영의 죄는 결코 사면될 수 있는 것도, 상으로 가려질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래서 단지 최수만은 그녀의 쓰임새만을 언급했다.
인간이 아니라 도구로써 목숨만은 붙여두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제안을 받은 최은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요?”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 네 소환수가 소멸하는 꼴을 보지 못했나?”
“하지만… 제 소환수는 아직 남았어요.”
“판단력은 별로군. 그런 허세가 통할 거라 생각하나? 아니면 저 거미를 믿는 거냐.”
최수만은 대검을 들어 거미를 가리켰다.
그 검에 실린 불길이 위협적으로 타올랐다.
“나는 너를 안다. 그 스케치북에 그린 걸 소환할 수 있다지?”
최수만은 비릿하게 웃었다.
사교의 도움으로 최은영에 관한 정보는 충분히 수집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소환사는 결코 자신의 소환수보다 강한 상대를 이길 수 없기에.
하지만 그 앞에서 최은영은 웃었다.
“맞아요. 그래서… 아직, 남아있다고 하는 거에요.”
“쯧, 어리석은 것.”
그런 최은영을 최수만은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도 두 번 이상 권할 생각은 없었다.
그 능력이 쓸모가 있다고 한들, 그녀는 이 비극을 시작한 배신자였으니.
“고집을 부린다면, 어쩔 수 없지.”
그 직후,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최수만의 대검이 아라크네를 베어 갈랐다.
그러자 아라크네와 그 권속들이 일제히 소멸하며, 최은영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뻗어진 화염은 화살처럼 쏘아져, 최은영에게까지 닿았다.
“앗…!”
갑자기 느껴진 맹렬한 열기에 그녀가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그녀가 갖고 있던 스케치북은 새까만 재로 변해 있었다.
그 상태에서 최수만은 교주 일족에게 눈짓했다.
“죽여라.”
그 말에 그의 뒤로 물러나 있던 수십 명의 일족이 움직였다.
냉정한 최수만과는 달리, 광기에 가까운 분노가 깃든 이들.
그들의 기세는 사람이 아니라 괴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흉흉했으나.
그 앞에서도 최은영의 미소는 무너지지 않았다.
최수만의 말대로 그녀의 능력은 환상을 그림으로 그려, 이를 실현하는 것이다.
또한, 최은영의 능력은 그 대상의 이해가 깊을수록 구현이 확실해지고 원본에 가까워진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가 소환하고자 하는 이 그림의 주인은, 그녀가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존재였다.
“나와주세요.”
다른 괴물의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그에 관한 설명을 아무리 자세하게 읽어도.
그녀는 그 괴물들의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또한, 그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 하물며 접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단 한 명.
그 환상 속의 세계, 판타지의 이야기 속 최강의 존재를 그녀는 만난 적이 있었다.
그뿐일까.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으며, 그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가 자신의 앞에서 빛나는 검을 휘두르던 그 순간만큼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래서 최은영에게 그의 존재는 그 어떤 소환수보다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그걸 스케치북에 그려 넣을 수는 없었다.
이를 들키면 무척이나 곤란해질 것이기에.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노트에만 몰래 그의 모습을 그렸다.
그렇게 채워진 페이지만 수백 장, 그녀의 방안에 고이 숨겨진 노트만 수십 권.
얼마나 그렸는지, 그 정확한 숫자는 그녀조차 모른다.
하지만 그런 노트 중 하나는 항상 그녀의 품속에 있었고.
지금 그녀는 거기에 잠들어있는 자신의 영웅을 이 자리에 불렀다.
“…용사님.”
황금색으로 빛나는, 드래곤 로드의 가죽으로 연마된 갑옷을 입은 남자가 땅에 발을 내디뎠다.
그 남자의 등장에 강렬한 위압감이 주변을 짓눌렀다.
하늘에서는 돌연 벼락과 천둥이 몰아쳤다.
또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광풍이 적들을 날려버렸고, 그저 땅을 밟고 있음에도 지면은 지진이 난 것처럼 떨려왔다.
그렇게 화려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등장한 그의 이름은 용사.
정확히는 ‘용사_VS엘프_Ver.3.2’라고 이름 붙여진 그림이 실체화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