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93
193.
“후…”
최은영이 있는 이리섬 중앙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항구.
그곳에서 모니카는 사교의 마인들을 처리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조용해진 항구에서 자신의 손에 들린 성물, 모세의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
이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마인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탑에서 그랬듯, 강력한 전승들로 무장한 상태였고 개개인의 무위도 낮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지금 모니카에게 패배했다.
그만큼 그녀가 강하다는 방증.
특히 이번에 얻은 아홉 번째 재앙, 흑암은 강력했다.
적의 모든 감각을 차단하는 그 전승은, 인간을 상대로는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했으니.
그렇게 자신의 전력을 실감한 모니카는 묘한 고양감을 느꼈다.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에.
물론 이 성장이 단지 자신의 재능이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강진우.”
전부, 그 남자 덕분이었다.
한때 벽에 부딪혀 마인이 될 작정까지 했던 그녀의 한계를 없애준 남자.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와 같은 팀을 이루고, 사건을 처리하고 작전을 수행한 지 겨우 석 달.
그 시간 동안 이룩한 성장은 그전보다도 훨씬 빨랐고.
그 덕분에 지금 모니카의 이름은 교회 역사에 새겨지게 되었다.
최상급 성물인 모세의 지팡이의 힘을, 가장 높게 끌어올린 자로서.
하지만 이조차도 그녀의 종착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이 고집스러운 성물이 마지막 재앙인 죽음을 허락하는 날이, 그리 머지않았다는 것을.
“그보다…”
잠시 사색에 잠겨있던 그녀는 눈을 들어, 섬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교주 일족을 처리하기 위해 갈라졌던 팀원, 최은영.
그녀에 대한 근심이 모니카의 뇌리를 스쳤다.
일단 튀어나온 사교들은 전부 처리했으나, 아직 항구에는 그 잔당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력 병력은 확실히 전멸시켰기에, 만에 하나를 대비해 이대로 최은영을 지원하러 가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어…?”
불현듯 거대한 존재감이 섬의 안쪽에 내려앉았다.
그와 함께 몰아치는 거친 폭풍과 벼락.
마치 천재지변이 찾아온 것 같은 불길한 현상이었으나, 모니카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저 새하얀 번개는…몇 번이고 보았던 그 섬광과 너무나도 닮아있었기에.
“이건…”
모니카는 어렵지 않게 저기에 나타난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최은영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모니카, 그리고 차서현은 그녀가 매일 몰래 그리고 있는 그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언뜻 보였던 그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였는데.
그래서 모니카는 옅은 미소를 흘리며 창을 고쳐 쥐었다.
최은영이 정말로 그를 불러냈다면.
저 전장에 자신이 있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광명이 번뜩이는 섬 안쪽에서 등을 돌렸다.
대신 어딘가 숨어있을지 모르는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먼저 불이 켜진 건물로 달려갔다.
* * *
“뭐…”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에 최수만은 눈을 부릅떴다.
위기 앞에서도 자신만만했던 최은영이 부른 것은 그저 어떤 인간이었다.
화려한 갑옷과 검을 든, 게임이나 만화에나 나올 법한 기사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최수만은 그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소환수로는 안 되더니 이제는 사람까지 소환하느냐며 비웃었다.
그러나 남자가 그 일검을 내뻗었을 때.
최수만은 자신의 착각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한 번에 땅이 갈라졌다.
비유가 아니었다.
남자에게서부터 저택 끝까지, 그 지면 위에는 폭만 2미터에 이르는 깊은 상흔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던 일족은… 흔적도 없다.
다섯에 이르는 인간의 무리가, 그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네놈!”
단번에 그 격을 알아본 최수만은 곧바로 나섰다.
이전처럼 건들거릴 여유는 없었다.
그는 곧바로 화염을 두른 대검을 그에게 내질렀다.
쾅!
그러자 검과 검이 아닌, 묵직한 쇠공이 충돌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일순 최수만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손에 느껴진 충격이 지나치게 무거웠던 탓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기사는 유려한 움직임으로 다음 검격을 휘둘렀다.
그 처음은 부드러웠으나, 그 직후 섬뜩한 섬광을 담은 검이 말 그대로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이를 막는 최수만의 눈과 손이 바빠졌고.
“……”
정작 그 뒤에 선, 기사의 보호를 받는 최은영의 눈빛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자신의 그림으로 구현한 용사.
그가 구사하는 검술이 실체보다는 좀 떨어지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아직은 완벽에 이르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를 최은영은 직감하고 있었다.
모두 그녀가 부족한 탓이었다.
아직 그녀가 가진 소환사로서의 능력이, 원본이 가진 힘을 전부 구현하기에는 모자란 것이다.
그래서 최은영은 살짝 우울해졌다.
기왕이면 완벽한 그를 불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어.”
최은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억!”
한편 최은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최수만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검술이 부족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최은영의 인식일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한참 부족하다 여겨진 그 검조차 최수만은 채 다섯 합을 받아내지 못했다.
전격을 두른 검날이 최수만의 가슴팍을 잡아 뜯는다.
거기서 솟구쳐오른 핏방울이 피안화처럼 피었다가 흩어졌다.
까딱했으면 심장이 같이 도려내 졌을 부상에 최수만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런 젠장! 뭐하나! 죽여!”
그리고 일족에게 명령했다.
그들을 방패로 내세워서라도 반격을 할 시간을 벌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쳤어!”
“저런 게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그 생각은 다른 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살아남은 교주 일족들은 최수만조차 이겨내지 못하는 적의 출현에 망설임 없이 도주를 선택하고 있었다.
마치 몇 년 전의 일을 재현하듯,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치는 일족들.
“저 멍청한 놈들…!”
그런 일족의 등 뒤를 최수만은 황당함과 분노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어리석었다.
지금 그들의 앞을 막고 있는 것은 그때의 이매망량이 아니었다.
이 남자는 겨우 저런 어설픈 달음질로 벗어날 상대가 아니라는 걸, 정녕 모르는 건가.
그리고 그의 눈은 다시 눈앞의 기사에게로 향했다.
그는 도주하는 자들을 지켜보면서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단지 전격이 담긴 그 검을 하늘로 치켜들었고.
쿠르릉!
그러자 하늘이 답했다.
아까부터 불만이라도 있는 것처럼 천둥소리를 흘리던 벼락 구름에게서 일제히 벼락이 내리꽂혔다.
수십에 이르는 섬광.
그것은 오만한 신의 선고처럼, 어리석은 인간들의 생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중 가장 커다란 전격의 창이 최수만을 겨누었고.
“나는…!”
그는 이를 악물며 제 검을 머리 위로 들었다.
새하얀 벼락이 그에게 당도한 것은 그 직후.
콰르르르릉!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채 막아내지 못한 전격이 그의 몸을 태웠다.
전신에서 뻗어 나오는 격통에 다리가 흔들렸다.
몸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탄내가 그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쓰러지지 않았으나.
“……”
그가 내뱉은 말 역시 끝내 이어지지 않았다.
그 목소리를 내야 할 성대는 타서 없어져 버렸고.
말을 만들어야 할 그 혀는 절반 이상이 재가 되었으므로.
그렇게 마지막 남은 교주 일족은 하늘을 받치는 까만 기둥이 되어 생을 마감했다.
이리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9년하고도 32일이 지난 날이었다.
* * *
그리스 한복판에 생긴 탑 꼭대기.
알 수 없는 술식이 새겨져 있던 그곳은 지금 난장판이었다.
회색의 벽돌로 된 벽은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었고.
술식 때문에 배치한 것으로 보이는 몇몇 장식품들은 까맣게 그을려 바닥을 뒹굴었다.
전부 나와 이계의 괴마가 만들어낸 전투의 흔적이었다.
뜻밖에도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괴마는 상당히 강했다.
무엇보다도 놈은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괴마와는 달리 희한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놈은 전기를 다룰 수 있었다.
단순히 전격을 사용해 공격하는 수준을 넘어서, 몸을 전기로 바꿔 순간이동까지 하는 놈이었다.
그나마 폐쇄된 공간에서의 전투라서 어떻게 쓰러뜨리기는 했지만.
개방된 바깥이었다면 훨씬 더 고생했을 수준.
그런데 이런 놈이 왜 여기에 처박혀 있던 것일까.
“괜찮으십니까?”
그 전투의 치열함을 눈치챈 건지.
이제 막 이계의 괴마를 쓰러뜨린 나에게 차서현이 물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주변을 살폈다.
괴마가 쓰러지자 탑은 단순한 건물로 돌아가 있었다.
그건 이 괴마가 탑의 핵이었으며, 정상적으로 탑이 정복되었다는 이야기.
또한, 퀘스트는 완료되었고, 신성과 보상 역시 습득했으니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다만…이런 괴물이 탑의 핵이라는 것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일.
“이상한데.”
원래 탑의 꼭대기에 있어야 할 것은 이런 괴물이 아니라, 신의 옥체였다.
아마도 그건… 이계의 신이 강림하기 위한 육체일 것이다.
그리고 이 탑은 그걸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이자, 구조물이었고.
그런데 그런 탑에서 신의 육체가 사라졌다면, 그 원인은 두 가지뿐이었다.
첫째는 내가 오는 것을 눈치채고 아예 신의 옥체를 만드는 것을 포기했거나.
아니면… 이미 완성되었거나.
“쯧…!”
그 둘 중 가능성이 높은 것은 명백히 후자였기에 나는 혀를 찼다.
설마 최근 사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가 이거였나?
나 역시 그 시간을 충실하게 보냈기에 후회할 일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놈들의 움직임이 빨랐다.
이대로라면… 그놈들이 말하는 신이라는 걸 만나는 날도 머지않겠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건 새로운 퀘스트였다.
하지만 나타난 것은 그 제목뿐.
이전과는 달리 퀘스트의 목표는 없었고, 어디로 가라는 화살표조차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뭔가 싶은 그때, 제목 아래로 추가 설명이 나타났다.
“……”
예고는 또 뭐야.
그보다 이게 지금…나한테 충고를 하는 건가?
처음 접하는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지난번, 제거티의 바늘을 얻고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었다더니 그 영향인 듯했다.
조금 더 친절해진 것 같긴 한데, 그 충고의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이라…”
나는 나에게 남은 서브 퀘스트를 떠올렸다.
이제 남은 것은 딱 두 개다.
하나는 서연과 관련된 서브 퀘스트.
그리고 나머지는 금서와 관련된 것.
즉 서연을 키우고 금서를 가졌다는 마인을 찾아 쓰러뜨리라는 말이었다.
물론 이 충고가 없었어도 당연히 했을 일이기에, 별 상관은 없었으나.
“그냥 강림하기 전에 죽이면 안 되나?”
나는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전처럼 사교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거기 있는 놈들을 쓸어버리면 될 것 같은데.
하지만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대신,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 옆에 있던 차서현이 반응했다.
이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눈앞에 있던 창들을 모조리 치워버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 한국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 * *
그 시각, 어느 산속 동굴의 내부.
그곳에서 사교의 사제, 무명은 거칠게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그건 이집트 신화의 시간의 신, 토트의 지팡이.
정확히는 토트의 지팡이였던 신기의 잔해였다.
이미 그 힘을 다하고 단순한 물건으로 전락한 그것은, 동굴 벽과 부딪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요란한 파열음을 냈다.
하지만 곧 그 파열음조차 잊게 할 날카로운 절규가 그녀의 목에서 터져 나왔다.
“어째서야!”
검은 머리의 성녀와 같던 그녀의 표정은 한없는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그녀의 주변에는 힘들게 완성한 신의 옥체가 있다.
그것은 이계의 신이 현신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껍데기.
하지만 정작 그녀의 신은 이 껍데기를 두고도, 이 세계에 현현하지 못했다.
“왜! 도대체 왜!”
처음부터 쉽지 않으리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신은 특별했으니까.
그녀와 접촉한 신은 자신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못했다.
그것조차 할 수 없는, 미약한 의식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 미약한 의식 속에 남아있는 기억의 파편 속에서 그녀는 보았다.
그 신의 위대함과 강함, 그리고 그 신이 불러오는 기적의 편린을.
그래서 그녀는 그 순간부터, 신의 사제가 되는 것을 자청했다.
그녀의 신은 그 어떤 신보다도 우월했다.
그녀의 신은 말 그대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신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름조차 없는 신, 무명의 사제라고 불리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참아 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참고 견딘 결실이 바로 오늘이었다.
성역으로 정했던 한국에서의 탑은 짓기도 전에 무너졌지만, 기어코 다른 나라에 세운 탑에서 완성한 신의 옥체.
그리고 한줄기 의식만이 남아 있는 신의 권능을 되찾기 위한 토트의 신기.
분명 준비는 완벽했다.
이대로 의식을 진행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끝내 강림의 의식을 행해도 그녀의 신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신은 여전히 소멸한 상태였다.
도대체 어떤 짓을 한 건지.
토트의 신기로 한 존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그 소멸을 복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결국. 그녀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 앞에서 무명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버티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신의 이름도 모르는 사제라며 자신을 비웃던, 또 다른 사제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그러자 곧 분노마저 사그라 들었다.
그녀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송곳처럼 날카로운 파편이 보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길로 그것을 집었다.
이제는… 희망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제 목에 찔러넣으려는 순간.
“…!”
어떤 지식이 불현듯 그녀의 뇌리에 꽂혔다.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더없이 충격적인 일에 손에 쥐고 있던 파편을 떨어뜨렸다.
그건 결코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이 아니었다.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다른 세계의 지식.
그것이 지금 그녀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 정체는… 자신의 신을 되찾을 수 있는 외법.
“아…아…!”
이 지식의 출처는 생각할 것도 없다.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신.
그 신이 마침내 그녀에게 응답한 것이었다.
그렇게 무명은 어둠 속에서 환희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그 외법을 수행하기 위해, 또 다른 어딘가로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