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94
194.
그리스의 탑을 정복하고 며칠 뒤.
사무실에 있던 나에게 메일 하나가 날아왔다.
그때의 예고가 마냥 헛소리는 아니라는 듯, 큰 사건이 터졌다는 내용이었다.
장소는… 남아프리카 부근.
비교적 정부의 통제가 약해 탑이 방치되다시피 하던 그곳에서 결국 많은 힘을 얻은 마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 결과 한 나라의 정부가 무너져, 국가 전체가 마인의 영향 아래 들어간 모양이었다.
“……”
나는 이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한국에서야 먼 타국의 일이지만,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이것은 퇴마의 비닉이 본격적으로 위협받기 시작했다는 말이었으니까.
마인들과 사교가 지배하는 국가라면 퇴마의 비닉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대대적으로 광고까지 하며,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려 할 테고.
외딴 섬나라도 아니니 주변 다른 나라에까지 아무렇지 않게 퇴마라는 힘을 전파하겠지.
“큰일이 난 것 같군요.”
역시 같은 메일을 받은 차서현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사교가 국가를 이루었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 이제 그들을 막기 위해서는 저 나라와 전쟁을 벌여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먼저 나설 놈이 없겠지.”
이 뒤에 있을 일은 눈에 선했다.
한국은 물론, 여력이 있는 많은 나라들조차 스스로 나서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국가는 없을 것이다.
아마 같이 모여서 탁상공론이나 펼치며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그동안 사교의 세력이 커지고 그 칼날이 제 눈앞에 놓인 후에야 어쩔 수 없이 움직이기 시작하리라.
그래서 나는 이 메일을 본 순간 직감했다.
퇴마의 비닉이 벗겨지는 것은 이제 막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아마 내가 전쟁을 끝내고 사교를 무너뜨린다 한들, 이 세계는 크게 변해있을 터였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교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셈.
“……”
그래서 나는 잠시 퇴마의 비닉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서 전승을 사용하고.
누군가 백령 따위를 보며 호들갑을 떨다가, 그걸 지나가던 학생이 퇴마해버리는 상상.
그러다 그 상상에 묘하게 익숙하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건 마치… 마법과 마족이 있는 이세계와 같은 풍경이었으니까.
“후우…”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 탓에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쓸데없는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이제는 내가 할 일을 해야 했다.
“새로운 사건… 인가요?”
욕계로의 문을 막 불러낸 나에게 최은영이 물었다.
그리고 보니… 최은영은 이리섬에서 사건을 처리할 때 용사를 소환했다고 했던가.
본인은 밝히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으나, 그래도 업무 보고를 거짓으로 할 수는 없었기에 솔직히 털어놓은 것이었다.
한편 나에게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였다.
나조차 최은영의 능력으로 그게 가능한지도 몰랐다.
엘프를 부를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설마 용사라니.
이 역시 ‘영웅의 인도자’로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었기에 가능한 일일까.
거기다 하필이면 그 모델이 나라는 점이 특히 껄끄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차마 그만두라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다.
제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는 팀원에게 내 기분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제한하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용사 소환 따위는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했다.
잘 싸우기만 한다면, 용사가 아니라 용사 할아버지를 소환해도 상관없었다.
“그건 아니고. 관리부에 좀 들렀다 올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욕계로 들어섰다.
그리고 순식간에 관리부, 즉 김다영의 연구실로 이동했다.
한데 도착해보니, 그곳에는 김다영만이 아니라 이현아의 모습도 있었다.
* * *
최근 화인 그룹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원인은 말할 것도 없다.
바로 몇 달 전에 있었던 기업 전쟁 때문이었다.
화인 그룹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백산과 GTW 그룹이 자멸한 사건으로.
결국. 그 두 대기업은 자신들이 공격했던 화랑에게 제 지분을 크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먼저 퇴마 업계에서 이제 그 두 기업은 외인 기관의 자격을 잃어, 완전히 물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는 그들이 갖고 있던 신기를 비롯한 모든 퇴마 물품과 장비, 연구 시설 등을 피해 보상이라는 명목하에 몰수.
이중 절반 이상을 화랑에게 넘겨주어, 그 관리를 일임했다.
이것만 해도 당장 화인 그룹에게는 일거리가 쏟아진 셈이었지만.
그 여파는 단지 퇴마 업계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실상 국가 공권력에 대한 쿠데타나 다름없는 짓을 벌인 두 대기업에 정부는 일반 사업에서조차 등을 돌렸고.
그 덕분에 수많은 국가 기관 주도의 사업이 전부 화인 그룹에게로 몰린 것이었다.
그 때문에 화인 그룹은 연일 기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고, 반대로 백산과 GTW 그룹의 주가는 나날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렇게 곧 한국 재계 1위의 주인이 바뀔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요즘.
“…저 왔어요.”
그런 화인 그룹의 일원인 이현아는 자신의 비서와 함께 관리부에 방문했다.
그러자 연구실에 있던 한 여자, 김다영이 익숙하게 그녀를 맞았다.
“아, 오셨어요?”
김다영은 들고 있던 신기를 잠시 내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얼굴이 묘하게 피곤해 보인다.
이현아는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그리 피곤할 시간은 아닐 텐데.
“혹시, 퇴근 못하셨나요?”
그녀의 물음에 김다영은 쓴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까… 자긴 좀 잤어요. 새벽에 눈을 좀 감았다가 떴더니, 아침이더라고요. 하하하하.”
“……”
김다영은 마른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현아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바빠진 화인 그룹이라고 해도 저렇게 일을 시키지는 않는다.
근로기준법이라는 게 있고, 직원들을 생각해도 못할 짓이니.
그래서 이현아는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 팀장님이 그렇게 일을 많이 시키시나요?”
김다영이 강진우가 맡은 특별팀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이현아도 알고 있었다.
그야 내심 자기도 거기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회사 일 때문에 부탁조차 해보지 못했던 것이 천추의 한이었으니.
한편 그 말에 김다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의지에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애초에 강진우는 김다영에게 일거리와 기한을 러프하게 던져줄 뿐.
나머지는 믿고 맡긴다는 건지, 세세한 일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또한, 그 기한은 다소 촉박하긴 해도 이 정도로 극심한 추가 근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은 그녀의 말대로, 단순한 고집이었다.
“전장에 서지도 못하는데, 이 정도로 엄살을 부릴 수는 없잖아요.”
“……”
“그보다, 이거 확인하러 오셨죠?”
어색해진 분위기를 파악한 김다영이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이현아의 앞에 몇 개의 신기를 꺼내놓았다.
그건 사교의 전승 부정에 대항하는 신기로, 한정된 수량 때문에 경찰과 정규 기관에만 배포되던 것이 겨우 외인 기관에도 풀린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오셔도 되는 건가요? 상무님도 바쁘실 텐데.”
“이런 일이니까 제가 와야죠. 한 번 확인해볼게요.”
이현아는 팔찌 하나를 들었다.
그러자 서늘한 영력이 잠시 그 팔찌를 지났다.
그건 이현아의 능력, 장비 공명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용하는 신기의 능력이나 전승을 추가로 증폭시킨다.
그래서 좋은 신기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강해지는, 재벌가다운 능력이었다.
그렇기에 이현아는 신기를 직접 만져보면 그 수준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이 정도면 훌륭하네요.”
그런 그녀의 눈에 김다영이 만든 신기는 결코 어설픈 물건이 아니었다.
특수한 기능에 특화되어 있을 뿐, 신기 자체의 수준은 최소 중상품.
만약 평범한 신기였다면, 번듯한 위인의 전승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걸 공장에서 찍어내듯 양산하고 있다니.
새삼스럽게 이현아는 김다영과 그녀를 데려온 강진우에게 신기함마저 느꼈다.
“그리고 이것도 있어요.”
그때, 김다영이 추가로 또 다른 신기를 내밀었다.
그건… 화려한 세검이었다.
칼날은 선명한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 손잡이는 황금색으로 만들어져 그 끝에는 녹색 에메랄드로 만든 작은 조각까지 박혀 있었다.
거기에 얇은 칼날에 새겨진 술식과 손잡이에 그려진 미세한 그림은 거의 예술품에 가까웠다.
“이건…?”
“강진우 씨 …아니, 팀장님이 전무님에게 주는 거에요.”
“진우 씨가요?”
이현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 세검을 받았다.
그리고 곧 그 신기의 수준을 확인한 그녀는 깜짝 놀랐다.
최상급의 신기였다.
수많은 신기를 보았고, 또 이를 보유하고 있는 그녀조차 비교할만한 게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그 격이 높은 신기였다.
이 정도로 격이 높은 신기라면… 한국을 통틀어도 10개가 안 될 텐데.
“재료 공급에 감사하다는 의미라네요. 그리고, 진 비서님 것도 있어요.”
“제, 제 것도 말입니까?”
하지만 김다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했다.
이어서 그녀의 옆에서 비슷한 수준의 너클이 튀어나오더니, 자신의 비서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보며 이현아는 입을 열었다.
“도대체 이런 걸 어디에서…?”
“남는 재료로 만들었다던데… 사실 저도 잘 몰라요.”
남는 재료?
무슨 짬처리라도 당하는 것 같은 말이었지만, 불쾌한 기분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이게 짬이라면… 지금 화랑의 창고에서 애지중지하게 보관되고 있는 신기들은 죄다 음식물 쓰레기 이하라는 말이었으니.
“정말… 고맙네요.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저, 저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 여자가 김다영에게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뒤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그 말은 직접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이현아는 고개를 돌렸다.
김다영이 보고 있는 곳은 연구실에서 휑하니 비어있던 공간이었다.
이상하게 항상 비어 있어 평소에는 짐이라도 쌓아두나 싶었지만, 거기에 뭔가 있던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는 어떤 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새하얀 벽과 천장과 대비되는 붉은색의 돌들이 솟아나와 문틀을 만든다.
그리고 그 문틀 안에 박힌 것은 시꺼먼 공간뿐.
이현아에게 그 문의 첫인상은 더없이 불길했으나.
곧 그 너머에서 걸어나온 것은 불길함과는 거리가 먼, 반가운 남자였다.
* * *
“아, 예. 이제 알겠으니까 그만하시고.”
나는 계속해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는 이현아와 진유나를 밀어내고, 김다영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 얼굴이 좋지 않았다.
물론 표정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로도 가려지지 않는 피로가 분명히 보였다.
“또 밤새웠어?”
“하하… 그게, 일이 좀 밀려서요.”
“그렇게 하지 말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요.”
김다영은 멀쩡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기계도 끝없이 돌리다 보면 고장이 나는 법이다.
내가 그런 걱정을 입에 담자, 그녀는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충분히 고려하고 있어요. 쉴 때는 확실히 쉬고 있고요. 갑자기 쓰러질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세요.”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수당도 얼마 안 될 텐데, 뭐가 좋다고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이세요?”
“아, 줄 것도 있고 물어볼 것도 있어서.”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김다영에게 새로운 레시피들을 잔뜩 안겨 주었다.
신기와 소모품 등을 포함한 수십 종의 레시피.
그것들이 동시에 머릿속으로 전달되자, 그녀는 어지러운 듯 이마를 감쌌다.
“이… 이건… 다 만들어야 하나요?”
“필요한 것만 알아서 만들어.”
“알아서…요?”
김다영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이현아를 바라보았다.
마침 그녀가 이곳에 와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 그래도 이현아에게 부탁할 게 있었으니까.
“전무님, 저랑 일 하나만 같이 합시다.”
“네?”
나는 화랑에게 신기의 제작과 그 분배를 맡기고 싶었다.
사교와의 대대적인 전쟁이 예상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군의 전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쉽고 간단하며 빠른 방법은 당연히 뛰어난 무기, 즉 강력한 신기를 만들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일은 나 혼자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퇴마사에게 어떤 무기를 쥐어줄지.
그리고 그 수량이 얼마나 필요한지.
또 그 우선순위는 어떻게 되는지, 재료 공급은 가능한지 등.
아예 이를 맡아서 관리할 하나의 조직이 필요했고.
그래서 나는 그 조직으로 재료 공급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화랑을 떠올렸다.
“그런 일을… 저희가 맡아도 괜찮으시겠어요?”
한편 내 제안을 들은 이현아는 그렇게 반응했다.
그야 신기의 제작과 유통을 주도한다는 것은, 나쁜 마음만 먹는다면 중간에서 신기를 빼먹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니.
하지만 화랑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믿을만한 선택지였다.
그들에게는 사교를 향한 원한도 있고, 무엇보다 이를 이끄는 이현아를 잘 이해하고 있기에.
“예. 믿고 맡기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러자 이현아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드시 그 믿음에 보답할게요.”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다시 김다영을 바라보았다.
“다영 씨, 혹시 등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건 서연의 서브 퀘스트를 위한 질문이었다.
여유가 있다면 그저 등선이 되는 걸 기다릴 수도 있었으나.
상황이 생각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듯해서, 내가 직접 이에 관해 알아보려 한 것이었다.
또한, 김다영은 LB 아카데미 소속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녀라면 아는 게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예상대로, 김다영은 간단히 입을 열었다.
“등선이라면… 저희 이사장님이 가장 잘 알고 계시죠.”
“이사장님?”
“네. 도교의 전승을 사용하시잖아요.”
“아… 그렇네.”
생각해보니 그랬다.
LB 아카데미의 이사장 주선아.
도교 최고신의 전승을 사용하는 그녀라면, 등선에 대해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야 도교라는 종교의 목적이 신선이 되는 게 아니었던가.
바로 앞에 정답이 있었는데,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했나.
“알겠어. 그럼, 수고해. 전무님과 진 비서님도 수고해주시고요.”
나는 그렇게 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욕계로 향하는 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목적지를 찾았다.
이번에 향할 곳은… 당연히 LB 아카데미.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곧바로 주선아를 찾아갈 작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바로 아카데미에 도착했고.
“지금 바로 만날 수 있다고요?”
곧바로 그녀와의 만남이 주선되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방문인지라 어느 정도 기다리거나, 만나지 못할 경우도 생각했는데.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그렇게 찾아온 LB 아카데미의 이사장실 앞.
내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선아는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기다려요?”
“그럼. 올 줄 알고 있었거든.”
그녀는 자신이 입은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화려한 무복.
즉 점을 쳐서 알았다… 뭐, 그런 건가.
“그래서 용건이 뭐에요?”
“그건 모르고 계셨나보네요.”
“호호, 천기누설이라고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거든.”
나는 곧장 주선아에게 서연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것을 진지하게 듣고 있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이라… 내가 보기에는 선도성모의 전승에 서왕모의 전승이 섞인 것 같네.”
“서왕모요?”
“그래요, 도교의 서왕모. 모든 여선을 총괄하는 여신이자, 그 수하로 구미호를 부리는 신이죠.”
과연.
여선과 관련된 신인데다 구미호를 부린다면, 분명 그 공통점이 선명하긴 했다.
“그런데… 그 두 전승이 왜 섞인 겁니까?”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현지화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도교나 불교의 전승 속에서는 흔하잖아요?”
하나의 종교가 퍼져나가며, 현지의 신을 한 종파로 흡수하거나 그 신과 동일시되는 것.
주선아는 그 영향으로 선도성모가 서왕모가 지닌 신격의 일부를 흡수한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겠어요. 그렇게 된다면 등선에 관한 전승도 도교의 것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으니까.”
“잘됐네요. 그럼, 등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주선아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여러 방법이 있긴 하지만… 가장 쉬운 건, 곤륜산에 있다는 천도복숭아를 먹는 거지.”
“…곤륜산이요?”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야 곤륜산은 실존하지 않는 환상 속의 산이었으니까.
하지만 거기에서 주선아가 씩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왜, 거기 가고 싶어요?”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그곳에 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