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95
195.
“물론이죠. 거긴 어떻게 갑니까?”
내 물음에 주선아는 싱긋 웃고는 말을 이었다.
“알려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 전에, 그 아이를 만나게 해줄래요?”
“그 아이? 여기서 서연을 부르라고요?”
“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 아이에게 달려있거든. 그야 강 경정이 등선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긴,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곧바로 서연을 불렀다.
그러자 목에 작은 방울을 맨 흰 여우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주선아는 서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인간일 때의 모습이 보고 싶은데.”
이에 나는 말 없이 서연을 바라보았다.
정말 변해도 되는 거냐며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던 서연은 금방 사람으로 변화했다.
그러자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10대 중후반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구미호라서일까.
그 외모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아직은 어린아이 같은 면이 강했다.
그래서 사람이라기보다는 잘 만든 인형 같은 얼굴이 나를 향해 번쩍 손을 들었다.
“안녕, 아저씨!”
서연은 평소처럼 활기차게 인사했다.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초등학생 같은 말투로.
이건… 역시 스킬의 부작용인가.
나는 당연히 서연에게도 내 용사 스킬을 사용했다.
그래서 그녀 역시 다른 팀원처럼 빠르게 전력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전력과 육체의 성장이 비례하는 서연은 정신적인 면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탓에, 서연은 반대편에 앉은 주선아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런데 이 아줌마는 누구야?”
아줌마라는 말 때문인지, 주선아의 관자놀이에서 혈관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반응은 그뿐.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야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걸 눈앞에서 봤으니까, 주선아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솔직히… 주선아 정도의 나이라면 안타깝지만, 아줌마가 맞았고.
“이분은 말이지…”
한편 나는 서연에게도 간단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제 그녀는 등선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곤륜산에 가야 한다는 것도.
그런데 서연의 반응이 어딘가 미묘했다.
“…벌써?”
그녀는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등선이 싫을 이유가 있나?
평소에도 감정을 감추는 스타일은 아니니, 이게 가식이나 겸손은 아닐 테고.
“왜 그래?”
“그야… 나는 아저씨랑…”
서연이 말끝을 흐렸다.
무슨 소리를 하려나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그 답은 주선아에게서 나왔다.
“아직 부모를 떠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네.”
“…부모요? 아니, 그보다 떠난다는 건 뭡니까?”
“몰랐어요? 이 아이가 등선을 해서 여우 신선이 되면, 식신의 지위에서 벗어나 독립된 존재가 될 거에요. 그야 당연한 일이지, 신선인데. 식신으로 있을 리가 있나.”
“……”
독립된 존재가 된다고?
그건 뜻밖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잠깐 이에 생각해봤지만.
역시 서연을 등선시키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단순히 전력의 증강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오히려 식신에서 벗어나는 것이 서연에게는 더 좋은 일이었으니까.
내가 불러주지 않으면 잠만 자야 하는 식신보다는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신선이 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는 금세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에 머리를 비볐다.
“그보다… 상당히 잘 키우셨네요.”
주선아는 그런 서연을 보며 말했다.
부드러운 시선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연의 가치를 감정하려는 듯한 날카로운 기세가 숨겨져 있었다.
“그렇습니까?”
“그래요. 구미호는 그 설화의 특성상 같은 구미호라도 격의 차이가 현격히 벌어지는 괴이 중 하나에요. 어떤 설화 속에서는 용을 물어뜯고 신을 자처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야기 속에서는 한낱 인간의 꾀에 속아 퇴치당하기도 하거든.”
그러던 주선아는 서연의 손에 들린 여우구슬을 가리켰다.
“그런 점에서 이 아이의 여우구슬은 아주 훌륭하네. 이건… 용천강 황룡의 설화를 비튼 건가요?”
“…예?”
알지 못하는 이야기에 나는 그렇게 되물었다.
그러자 주선아는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옛날 부산의 용천강에 황룡이 살았다고 해요. 그런데 황룡이 여의주를 얻어 승천하려는 걸, 천 년 묵은 여우가 싸움을 걸었어요. 그 여의주를 뺏기 위해서였지.”
거기까지 들으니, 나도 알고 있던 설화였다.
단지 그 이름이 용천강이라는 걸 몰랐을 뿐.
하지만 굳이 그녀의 이야기를 끊지는 않았다.
주선아의 시선은 나보다도 서연에게 향해 있었다.
왜인지 그녀의 모습은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와 같았다.
“그 결과 여우는 비록 패배하여 죽었지만, 여우에 얽힌 전승 중에서는 그냥 용도 아닌 황룡과 싸웠다는, 상당히 격이 높은 전승 중 하나에요. 그래서… 여의주를 여우구슬로 쓰는 구미호는 일반적인 구미호보다도 그 격이 훨씬 높아지는 거지.”
“……”
“게다가 여의주는 신선과 연이 있는 선녀가 되는 조건이기도 하니, 이 아이에게는 흠잡을 데가 없는 물건이네. 도대체 이런 걸 어디서 났어요? 나도 구하기 힘든 건데.”
“좀 오래 묵은 이무기를 하나 잡았었습니다.”
“이무기를?”
“그보다 곤륜산에는 갈 수 있는 거죠?”
삼천포로 빠지려는 대화의 주제를 다시 끌어다 놓았다.
“아차, 그랬었지. 그래요, 이 정도면 갈 수는 있겠네. 그런데… 여우신선, 그러니까 선호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있어요.”
“부족한 점이요?”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육체와 정신이 완벽히 정제되어야 하지. 그런 점에서 이 아이의 육체는 더없이 완벽해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키웠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정신적인 면, 바로 ‘도’가 부족해.”
“도…?”
“강 경정, 도를 아세요?”
길거리의 사이비에게나 들을 수 있는 물음을 주선아가 던졌다.
다만 내 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그녀는 씩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 그리 특별한 건 아니에요. 그냥 어떤 가르침, 어떤 깨달음. 그런 걸 전부 도라고 하는 거지. 그리고 그 도를 실체화한 것이 바로 도술이고. 그러니까, 쉽게 말해 도술이 부족하다는 말이에요.”
“음… 전승은 몇 개 배웠는데. 그걸론 안 됩니까?”
나는 팀원들은 물론 서연에게도 전승의 두루마리를 주었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에 못지않은 여러 개의 전승을 서연 역시 익히고 있었지만.
주선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 도술이라는 건 어떻게 배웁니까?”
“필요하다면 내가 가르쳐 줄 수도 있어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얼마나요?”
“최소한 1년?”
아무일도 없다면 모를까.
이미 전쟁이 시작되려 하는 판국에 1년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좀 더 빠른 방법은 없나요?”
“그야 있긴 하지. 선단이라고 들어봤어요?”
그녀는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 자신의 책상에서 무언가를 꺼내 가져왔다.
그건 엄지손톱만 한 금색의 환약.
“이게 신선의 약, 선단이에요. 보통은 이게 그냥 몸에 좋은 줄만 아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야. 이 안에는 도술의 묘리가 숨어있거든.”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 선단을 바라보았다.
분명 먹으면 사라지는 물건일 테지만 그럼에도 후광으로 금빛이 맴도는, 레전더리급 아이템이었다.
“다만 그걸 먹으면 먹는 족족 전부 깨달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지. 신선이 될 존재 중에서도 천재적인 재능이 아니라면… 그냥 몸에 좋은 약일 뿐.”
그러니까 저게, 도교의 스킬북이라는 건가.
그리고 그 스킬북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재능이 필요하다라.
그렇다면 그 점에 한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재능은 확실하죠.”
“그래? 그럼 먹어봐요.”
주선아는 아무렇지 않게 선단을 서연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서연이 그걸 받기 전에, 내가 먼저 물었다.
레전더리급 소모품인데. 이걸 이렇게 쉽게 건네준다니.
“그런데 이렇게 막 주셔도 됩니까?”
“설마. 나니까 주는 거고, 강 경정이니까 받는 거지. 이거 어디 가서 구할 수도 없는 거에요. 당장 내가 직접 구하러 다닌다고 해도 몇 년은 걸릴걸?”
그런데 그걸 왜 이렇게 쉽게 주는 건가.
내가 이를 묻자, 그녀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너무 고마워할 건 없어요. 나도 봤으니까, 다 봤으니까 주는 거에요. 그… 요즘 말로 코인이라고 하나? 그 동전처럼, 이미 강 경정은 엄청 올랐지만, 그 이상으로 팍-하고 오르는 걸 봤거든. 그러니 투자라고 생각해요.”
이것도 결국 그녀의 선견지명… 아니, 천기누설 때문이라는 건가.
확신에 찬 주선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상관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내가 떡상하게 되면, 그때 빚을 갚아주면 되는 일이니.
그래서 나는 그대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먹어봐.”
내가 허락하자, 서연은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던 선단의 끝을 살짝 씹었다.
그러자 그 직후, 서연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이거, 써…”
“써도 꼭꼭 씹어서 잘 먹어야 한다. 다 먹으면 사탕도 줄게.”
그 반응에 주선아는 그렇게 말하며 정말 사탕을 꺼내왔다.
그런데 그 사탕이… 누룽지와 인삼 캔디.
나이가 40대라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텐데, 할머니 같은 취향이었다.
“우에엑…”
잠시 후, 서연은 선단을 전부 씹어 삼키고 재빨리 누룽지 캔디에 손을 댔다.
그걸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선단의 쓴맛을 잊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았다.
한편.
내 로그 창에는 서연의 변화를 나타내는 내용이 주르륵 올라가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 서연은 선단에 담긴 힘을 온전히 소화해낸 모양이었다.
“대단하네… 이게 이렇게 쉽게 되는 건 아닌데.”
그리고 이를 눈치챈 건지, 주선아 역시 서연을 보며 탄사를 내뱉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연만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곧 작은 2개의 방울을 꺼냈다.
“어쨌든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그럼 이걸 각자 허리에 묶고, 선도산을 올라가세요.”
“선도산이요?”
“그래요. 이 아이를 돌봤었다는, 선도성모가 다스리는 그 산으로.”
선도산이라면 경주에 있는 산이다.
신라의 모신인 선도성모이기에, 신라의 수도였던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선도산의 ‘선도’라는 말 자체가 서왕모가 만든 천도복숭아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과일을 뜻하는 말이거든. 그러니 그곳에서 이 방울을 갖고 오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곤륜산의 천도복숭아밭으로 갈 수 있을 거에요.”
다행히도 선도산 자체가 천도복숭아랑 관련이 있는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하지만 보물이 있는 곳에는 경비가 있듯, 그곳에는 천도복숭아를 지키는 자가 있어.”
“그걸 쓰러뜨려야 합니까?”
“비슷하지만, 정확히는 시험을 통과하는 거지. 그리고 그 시험의 상대는 등선하려는 존재마다 달라요. 뛰어난 존재일수록, 뛰어난 신선이 마중을 나오는 법.”
주선아의 시선이 서연을 향했다.
그녀는 서연을 응원이라도 하듯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하면 신선에 어울리는 복숭아를 그 시험관이 직접 가져다줄 거에요. 그러니…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녀와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가야 할 곳이 정해진 나는 곧바로 선도산으로 향했다.
* * *
잠시 후.
욕계를 통과한 나와 서연은 이사장실을 나온 지 겨우 몇 초 만에 선도산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 막 산의 오르막이 시작되는 선도산의 입구.
“여기… 내가 아는 곳이야!”
그곳에 선 서연은 몇 번이나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같은 산이라고 해도 그녀가 여기에 있을 때와는 엄청난 시간 차이가 있을 텐데.
아직도 그녀는 이 선도산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무 일이 없더라도 한 번쯤은 데리고 와볼 걸 그랬나.
“여길 안다고?”
“응!”
“그럼 복숭아밭이 있는 곳도?”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서연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이쪽이야.”
서연은 앞장서서 산을 올랐다.
그리고 길 안내는 언제나 서연의 몫이었기에 나 역시 그녀를 믿고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선도산은 산 자체가 그렇게 높지도, 크지도 않다.
그래서 그녀의 걸음걸이라면 얼마 가지도 못해 그 꼭대기에 다다를 테지만.
“음…?”
아무리 산을 올라도 야트막한 산의 정상은 가까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주변은 평범한 한국의 야산이 아니었다.
뒤돌아보면 보일법한 시가지의 모습도, 전혀 없다.
보이는 것은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수림뿐.
미처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곤륜산에 와 있는 것이었다.
“…신기하네.”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바뀐 풍경에 나는 그리 중얼거렸다.
마역이나 신역을 들어갈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은 부분부터 선도산이 서서히 곤륜산으로 바뀌어 있었으니.
“거의 다 왔어, 아저씨!”
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골짜기 사이로 들어갔다.
양쪽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솟아있는 좁은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작은 공터.
그 공터의 맞은 편에는 골짜기 전체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대문이 있었다.
고대 중국 양식으로 만들어진 목제 문에는 알 수 없는 한자가 쓰여 있다.
아마도 저것이… 천도복숭아밭으로 향하는 입구이리라.
그리고 그 입구 앞에는.
“……”
어떤 여자가 서 있었다.
검은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그녀의 복식은 역시 고대 중국풍.
다만 그 옷 색깔은 온통 새까맸고, 그와 대비되는 선명한 은빛의 검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주선아 이사장이 예고한 등선을 시험하는 자.
그리고 그 레벨 표시에 나와 있는 그녀의 이름은… 구천현녀였다.
도교 최고 여신인 서왕모에 필적한다는 여선이 서연의 시험관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이 아줌마는 누구야?”
한편 구천현녀에게 다가간 서연은 순진한 말투로 그렇게 물었다.
외견상으로 구천현녀는 20대의 외모다.
그야 신선은 불로장생을 이룩한 존재이니, 당연한 일.
그래서인지 구천현녀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고.
잠시 깊은 동굴 같은 눈동자로 서연을 들여다보았다.
“요괴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느냐.”
이내 서연의 본질을 파악한 구천현녀는 그렇게 말했다.
구천현녀는 이미 서연을 적으로 규정한 듯, 적의를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서연은 그 시선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신선이 되기 위해 왔어.”
“신선? 건방지구나. 요호 따위가 그런 헛꿈을 꾸고 있다니.”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이 파르르 떨렸다.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르려는 그 기세에, 나는 서연의 옆에 다가섰다.
그러자 구천현녀의 눈이 이번에는 나를 향했다.
“멈춰라. 네놈은…”
구천현녀의 그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이 나를 훑었다.
그러다 내 안에서 무언가 보기라도 한 건지.
문득 그녀의 눈동자에는 놀라움이 깃들었다.
“실례했다. 그대는 꽤 지체가 높은 자였구나.”
호칭부터가 네놈에서 그대로 바뀌더니.
그뿐만 아니라 나를 대하던 그녀의 적의가 금세 사라졌다.
이건… 내가 가진 신성 때문인가?
70에 이른 내 신성은 이제 상급 신성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 구천현녀가 보더라도, 자신보다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존중할 만한 신성이라는 건가.
“허나 물러서라. 이건 이 여우가 걸어가야 할 길. 아니면, 그대가 등선이라도 할 셈인가?”
그리고 구천현녀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건 아니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한발 물러났다.
그녀의 말대로 여기서부터는 서연이 해쳐가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구천현녀의 레벨은 95.
시험이라니 전력을 다할지는 않을지라도, 절대 만만치 않은 레벨이다.
그래서 나는 서연을 바라보았다.
“할 수 있겠어?”
내 질문에 서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저 어린아이 같던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차분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드리운다.
“응. 나만 믿어, 아저씨.”
그리고 서연은 자신만만하게 그리 말했다.
서연의 눈에 형형한 빛이 깃들었다.
여덟 개의 꼬리가 넓게 펼쳐져 부채꼴을 그린다.
이어서 여우구슬이 시퍼렇게 빛났다.
그녀에게 호응한 숲의 나무들이 흔들리고, 사방에서 반딧불 같은 빛이 넘실거렸다.
상서로운 향기를 담은 바람이 불었다.
그저 괴이로 취급받는 구미호의 영력과는 본질부터 다른 신성한 기운에, 곤륜산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
그 기세가 워낙 심상치 않았던지라, 이를 지켜보던 구천현녀마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이 수준에 다다른 서연이라면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몫.
“좋아, 그럼… 믿어볼게.”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하며 뒤로 물러났다.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직후, 한 신선과 한 여우가 서로 허공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