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96
196.
“호오…”
구천현녀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여우의 움직임을 보며 그런 소리를 흘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구미호가 되어 공격해오고 있었다.
인간과 괴이 사이를 오가는 변신술.
이는 구미호에게 지극히 간단한 도술이지만 그것을 저리 신속하게 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검술로 치면 그냥 검을 뽑는 것은 어린아이가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더라도.
거기서 출발하는 검술인 발도술은 그렇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
“기본은 되어 있는 모양이구나.”
이에 구천현녀는 기껍다는 얼굴로 그리 말했다.
그녀 역시 저 구미호가 평범한 괴이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그저 강한 요호가 제 주제도 모르고 신선이 되려는 것이 아니었다.
저 여우는 여의주를 여우구슬로 삼고, 스스로 선녀의 자리에 올랐다.
그래서인지 그 기운은 요괴라기에는 터무니없이 맑았고, 그 심성 또한 순수했다.
게다가.
“……”
구천현녀는 여우를 데리고 온 이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비범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정도를 보자면 명백히 여우 이상이었다.
고작 인간의 몸으로 신의 기운을 품고 있는 자.
수천 년에 이르는 구천현녀의 세월 속에서도 몇 번 보지 못한 존재였다.
이 천도복숭아밭의 방문자들 중 평범한 이가 있겠느냐마는.
저 둘은 그중에서도 지극히 특이한 이들이었다.
화륵!
그때, 서연의 곁에서 화염이 솟았다.
구미호의 대표적인 도술인 여우불.
일반적인 여우불은 화염이 주먹만 하게 뭉쳐, 돌멩이처럼 날아오는 형태다.
그 개수가 많아 귀찮긴 하지만, 구천현녀쯤 되는 여선에게는 일검으로 그 전부를 뿌리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에 구천현녀는 차분히 검을 눕혀 반격을 준비했지만.
“호오…?”
여우불의 형태가 이상했다.
그것은 뭉치는 대신 바닥을 통해 흘렀다.
그리고 그 흘러간 자리를 침식했다.
잡초들이 듬성듬성 자라있던 땅이 새까맣게 타면서 갈라져, 그 안쪽으로는 화염이 이글거린다.
순식간에 서연과 구천현녀가 선 작은 전장이 불의 땅으로 변했다.
“선계를 집어삼키는 도술이라니.”
그 광경을 보며 구천현녀가 중얼거렸다.
선계, 그것도 이 곤륜산의 땅은 스스로가 살아있는 존재다.
그렇기에 다른 자의 도술로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하물며 이렇게 변화시키는 것은 웬만한 신선에게도 힘든 일.
그래서 그녀는 금방 도술이 아닌,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설마 이건… 이국 신의 권능이더냐?”
하지만 구천현녀는 끝내 그 정체를 간파할 수는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 불의 땅은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전해지는 화염의 거인, 수르트와 그가 사는 세계인 무스펠헤임을 재현하는 것이었으니.
이윽고 그 무스펠헤임의 밑바닥에서 올라온 화염이 검의 형상을 만든다.
겉모습은 평범하지만, 불길하게만 느껴지는 화염의 검.
그리고 그 검은 이것이야말로 서연의 여우불이라는 듯, 구천현녀를 향해 쇄도했다.
“건방지구나.”
이를 보며 구천현녀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필이면 자신에게 검을 화살처럼 쏘다니.
저 여우는 구천현녀에 얽힌 설화를 정녕 모르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 구천현녀는 그대로 그 화염의 검을 쳐냈다.
그러나.
챙!
구천현녀가 쳐낸 화염의 검은 그대로 날아가지 않았다.
그것은 튕겨 나가는가 싶더니, 제 몸을 돌려 반격했다.
그건 검의 모양을 한 화살이 아니었다.
마치 그 끝을 누군가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검사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 검은 그대로 구천현녀와 합을 주고받았다.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이는 명실상부한 검이었던 것이다.
“허…”
이에 구천현녀는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검을 쥐지도 못하는 짐승과 대련을 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그 짐승의 검은 제법 예리했다.
구천현녀가 보기에는 다소 부족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검술이 그 안에 깃들어 있었다.
무술에 관해서는 까다로운 그녀의 눈으로 보기에도, 무인이라 칭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요호가 어디서 이런 재주를…”
그때 그 화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기가 그녀의 사고를 방해했다.
심상치 않은 열기에 구천현녀는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여우가 만든 화염의 검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겠다는 듯 시뻘건 화염을 사방으로 줄줄이 흘리고 있었다.
피처럼 그 붉은 불꽃에 구천현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거슬리는구나.”
그 불길한 화염에 구천현녀는 느긋하게 반응하던 태도를 바꿨다.
라그나로크와 함께 세상을 태운 신살의 검, 레바테인.
그 안에 담긴 수르트의 분노를 구천현녀가 읽어낸 것이었다.
이에 날카로운 월광이 주변을 베어낸다.
그 일격은 화염의 검을 튕겨냄과 동시에, 사방의 화염을 모조리 일소한다.
그렇게 생긴 순간의 틈.
이를 놓치지 않고 구천현녀는 서연에게 질주했다.
“어디 그 발톱은 얼마나 날카로운지 보자꾸나.”
달려나가는 구천현녀의 모습이 하나에서 셋으로, 그리고 다시 다섯으로 늘어났다.
도술을 통한 분신술.
그러나 서연은 그 분신 중 본체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그곳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서연이 먹은 선단의 효과였다.
여러 도술의 이해가 높아지며, 그 이치를 깨달은 것이었다.
도술에도 능한 모습에 구천현녀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서연의 발톱을 검으로 막아섰다.
그러자,
까드득!
구천현녀의 검에게서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은 파열음이 들려왔다.
이에 구천현녀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그녀의 검은 하늘의 달빛을 빚어 만들었다는 보검.
철을 베고, 산을 가른다는 그 검이 한낱 짐승의 발톱에 상처가 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무슨…!”
하지만 놀라운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신속히 검을 되돌린 그녀의 일격이 이번에는 서연의 어깨 부근을 스쳤다.
깊게 베어내지는 못해도, 얕은 부상 정도는 충분히 입힐 수 있는 참격.
그러나 그것은 서연의 몸과 부딪치더니 오히려 거칠게 튕겨나가 버렸다.
서연의 새하얀 털이 갑옷처럼 단단해져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 몸에 무슨 짓을 한 게냐?”
구천현녀의 물음에 서연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건 전부 강진우가 준 전승 때문이었다.
서연의 발톱에 새겨진 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다만트의 낫.
대지의 여신이 만들었다는 아다만트는 신의 육체를 조각낼 정도로 날카롭고 단단하다.
그리고 갑옷처럼 단단하던 서연의 털은 모로코 설화 속의 괴물 호저, 에이셴의 것이었다.
바위를 뚫고 창을 막아낸다는 그 산 미치광이의 털이 곧 미사일처럼 구천현녀에게로 쏘아졌다.
“이런 게 어딜 봐서…!”
이쯤 되니 구천현녀는 어이가 없었다.
불의 검을 제어하며 검술을 펼치고, 철을 찢어발기는 발톱에, 바위를 꿰뚫는 털을 쏜다니.
이게 어딜 봐서 구미호라는 건가.
그냥 여우의 모습을 한 전쟁 병기지.
그 증거로 정작 옆에 띄워둔 여우구슬은 그저 성스러운 기운을 흩뿌릴 뿐,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기이하구나.”
그래서 그녀는 서연을 그렇게 평했다.
마치 그 육체는 싸움을 위해 만들어진 괴물 같지만, 그 눈빛은 티 없이 순수했으니.
또한, 그 기운 역시 맑은 계곡의 물처럼 더없이 청명하다.
삿된 구석을 가지고 있으면 결코 꿰뚫어 볼 수 없는, 구천현녀의 도술을 간파한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서연과 계속 공방을 벌이던 그녀는 곧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요호가, 정말로 검을 이해하고 있는가?”
분명 저 구미호는 제 손으로는 단 한 번도 검을 잡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여우는 알고 있었다.
아니, 읽고 있었다.
황제를 도와 치우를 물리쳤던 전신이자.
월녀로서 한 나라를 구원했던 무신이면서도.
여선 중 제일의 검신인 그녀의 검을.
“허어…”
저 여우의 등선 시험은 이미 합격이었다.
정신과 육체, 그 어느 것 하나 합격을 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러니 더 볼 것도 없었지만, 구천현녀는 쉬이 이 시험을 끝내지 못했다.
어째서 저 선호가 이리 자신의 검을 쉽게 읽어낸 건지 궁금했기에.
그래서 그녀는 잠깐 뒤로 물러나, 서연에게 물었다.
네 검은 배운 것이냐, 아니면 타고난 야생의 감이더냐.
그런데 서연에게서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많이 봤어.”
“보다니? 내 검술을 말인가?”
“아니.”
서연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그것보다 훨씬 대단한 거.”
“뭐라?”
자신보다 대단한 검이라니.
구천현녀는 기가 찬다는 얼굴로 되물었지만.
서연의 도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야… 아저씨에 비하면 허접하던데?”
“허, 허접?”
구천현녀의 얼굴에 황당함이 차올랐다.
허접하다니.
난생처음 들어보는 평가였다.
그것도 아저씨라면… 저 뒤에 있는 남자를 뜻하는 것일진데.
화가 나다가도 그 전에 먼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신성을 가진 남자라 할지라도, 신격은 구천현녀 쪽이 더 높았다.
그런데… 허접하다니.
“이 시건방진 여우가…!”
그래서 구천현녀는 다시 검을 들었다.
이 순간 그녀는 이게 시험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단지 이 주제도 모르는 짐승에게 딱 한 번, 진검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는지 알게 될 터이니.
구천현녀의 검이 움직였다.
이윽고 밝게 빛나던 검날이 어둠 속에 녹아내리는가 싶더니.
한밤중에 어둠을 뚫고 내리꽂히는 달빛처럼, 스산하지만 예리한 일격이 허공을 갈랐다.
촤악!
“아얏!”
“허…?”
그리고 서연의 비명과 구천현녀의 의아함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어느새 서연의 앞발에는 작은 생채기가 생겨 있었다.
구천현녀의 예기가 가득 담긴 진검에, 그 강철 같던 털조차 힘없이 베어져 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구천현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분명 서연의 어깨를 노렸다.
그럼에도 저 짐승은 그녀의 검에 확실히 반응했고, 제 발로 이를 방어했다.
만약 저 앞발의 털이 짐승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격에 이른 검이었다면.
분명 순순히 베이지 않고 자신의 검을 튕겨냈으리라.
“……”
이를 직감한 구천현녀는 무표정하게 뒤로 물러났다.
서연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그 뒤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 여우의 말이 진실이라면.
저 남자는… 다른 신화 속의 무신이라도 된다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곧바로 구천현녀의 눈빛에 흥미가 동했다.
검의 길을 걷는 신선의 처지에서,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그를 잠시 바라보던 구천현녀는 곧 결심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여우… 아니, 서연이라고 했던가? 합격이다. 새로운 선호여.”
“합격?”
뜬금없이 나온 합격 통보에 서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금방 기쁨에 방방 뛰기 시작한다.
그 사이, 구천현녀는 재빨리 다음 말을 이었다.
“단… 천도복숭아를 내어주기 전에 제안이 있다.”
그녀의 시선이 서연을 벗어나 그 뒤에 선 남성, 강진우에게로 향했다.
“그대와 잠시 검을 나누고 싶구나.”
“나랑?”
남자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는 나서지 말라더니.
왜 이제 와서 말을 바꾸냐는 눈치였다.
구천현녀도 자신이 했던 말이 있었기에,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조건을 설명했다.
“저 아이라면 등선에 가장 훌륭한 천도복숭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백도라고 하지.”
그건 이 서왕모의 천도복숭아밭에서도 100년에 한 번 나온다는 보물.
그러나 이곳에는 그 이상의 보물이 있었다.
“하지만 그대도 알다시피 이곳에는 선도도 있다. 3천 년에 하나가 나온다는 보물 중의 보물이지. 이는 결코 이제 막 등선하려는 자에게 내주는 게 아니다만…”
구천현녀는 큰 인심을 쓴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대의 검이 날 만족시킨다면 그걸 내어주지.”
“만족? 조건이 좀 애매한데.”
“그럼 그쪽이 이기는 걸로 하면 되겠나?”
“그건… 괜찮긴 한데. 그래도 되는 거냐?”
남자는 네가 정말 그걸 줄 수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듯 구천현녀를 보며 말했다.
어찌 보면 얕잡아보는 것이었지만, 충분히 그럴만했다.
그야 이곳은 다른 이도 아닌 서왕모의 밭이었으니.
하지만 구천현녀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신선이었다면 어림도 없다. 서왕모가 두려워, 백도를 주는 것도 주저할 테지. 하지만 나는 구천현녀. 나중에 사과 한 번 하면 될 일이다.”
그러자 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과할 일은 왜하냐는 듯.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았다.
“뭐… 그럼 좋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구천현녀와 마주 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방에서 번뜩이는 검광 앞에, 구천현녀의 눈에 경악이 깃들었다.
* * *
얼마 후.
“이거 맛있어!”
서연은 오물거리며 선도를 먹고 있었다.
그 뒤에 달린 꼬리는 이제 하나가 더 늘어, 완전한 구미호가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여우 신선이 된 그녀의 주변에는, 왜인지 아홉 개의 검이 날아다녔다.
“저건 뭐야?”
여우구슬도 아니고, 칼이 날아다니는 광경에 내가 물었다.
그러자 구천현녀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신선에게는 등선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자신의 길, 즉 도를 의미하지.”
“…그래서?”
“저 서연은 검의 여선인 이 구천현녀의 시험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전에는 그대와 같은 고명한 검신에게 가르침을 받았지. 그 덕분에 여우에게는 어울리지도 않은 검의 도를 깨달은 것이야.”
나에게 패배해서일까.
어느새 나는 그녀에게 고명한 검신이 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서연이 검의 도를 깨달았다니.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는데, 딱 그 짝이었다.
뭐, 검이든 창이든 도를 깨달았다면 좋은 거지.
내가 그렇게 결론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구천현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나저나… 어이가 없구나.”
“뭐가?”
“내 그 긴 시간 인세를 돌아보았으나, 그대와 같은 검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묘하게 억울하다는 말투였다.
“그야 당연하지.”
“뭐가 말이냐?”
“이건 이 세계의 검이 아니거든.”
“호오…? 그건 또 재미있는 이야기구나. 어디, 좀 더 들려다오.”
내 말에 구천현녀는 흥미를 표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짧게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전했다.
온 인류는 물론, 지성을 가진 또 다른 종족들이 인류보다 훨씬 오랜 세월 동안 오로지 검만을 갈고 닦아왔던 어떤 세계의 이야기를.
“그러니 이곳의 검으로는 이길 수 없는 거야.”
단순한 이야기였다.
결국, 과학기술의 발전과 같다.
시간과 예산을 더 퍼부은 쪽이, 결국 더 높은 경지를 가지게 된 것.
이에 구천현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세계가 있었다니. 정말 그런 세계가 있다면 한번 가보고 싶구나. 바깥에는 안 좋은 것만 있는 줄 알았건만.”
“…안 좋은 것?”
내가 그렇게 되묻자 구천현녀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다 먹었어!”
서연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복숭아를 전부 먹었지만, 오히려 외형은 초등학생 수준으로 더욱 어려져 있었다.
구천현녀의 말로는 신선이 되어, 가장 어울리는 모습으로 화한 것이란다.
“그렇느냐? 그럼, 이제 떠날 때구나.”
구천현녀는 그렇게 말하며 손으로 우리가 걸어온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곧 곤륜산의 풍경 위로 짙은 안개가 몰려왔다.
그녀의 말대로 할 일을 다 마쳤으니, 갈 때가 된 것이었다.
이에 나는 서연과 함께 출구로 걸었고, 등 뒤에서 구천현녀의 마지막 목소리가 닿았다.
“현세로 돌아가면 부디 조심하거라.”
“조심?”
“서역에서 바깥으로의 문이 열린듯하니.”
그녀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물론, 곤륜산과 복숭아밭으로 통하는 커다란 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어느새 우리는 선도산 기슭에 서 있었다.
나는 불길함만을 가득 담은 구천현녀의 말에 혀를 찼지만.
“돌아왔어, 아저씨!”
서연은 그저 선도산으로 돌아온 게 좋은지, 순진무구하게 그리 말했다.
그 후.
우리는 곧바로 욕계를 통해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기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구천현녀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자리를 비운 것은 겨우 몇 시간 정도였지만, 경찰은 외국에서 날아든 한 소식에 발칵 뒤집혀 있었다.
그건 교회의 중심인 유럽의 이탈리아.
그곳에서 첫 번째 신이 강림했다는 소식이었다.